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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611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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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21,531

작성
22.08.0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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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
추천
12
글자
23쪽

배우가 되다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85화



“아니! 그것보다 잘 찍을 수가 없었다니까!”

“X발! 그렇게 찍으라고 준 대본이 아니라니까!”

“뭐 X발? 나는 욕을 못해서 안 하고 있는 줄 알아?”


다 큰 어른 두 명이 머리 끄댕이를 붙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추한 꼴을 보고 있자니 집에 가고 싶어졌지만, 저게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자리를 피할 수도 없었다.


“아이고 두야.”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지긋히 누르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외모의 DNA를 발현했고, 내 외모가 떡상하는 바람에 감독은 촬영 구도를 다시 짜야만 했다.


그래도 어찌저찌 촬영을 잘 끝냈는데, 찍은 영상을 본 ‘나비효과’의 작가가 득달같이 달려와 거품을 무는 중이다.


자신이 구상한 나비효과와는 너무나 다르다면서.


사실 그녀의 분노는 정당하다. 소설은 하나의 세계다. 작가는 그 세계를 창조한 신이고.


그런데 남에 의해 세계가 변형되는 꼴을 넋 놓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시청률 경쟁에서 지든 이기든 온전히 자신의 시나리오로 승부하고 싶겠지.


하지만 촬영은 온전히 감독의 권한이다.


정말 유명한 스타 작가가 아니고서야 감놔라, 배놔라를 시전할 수 없다.


믿고 맡긴 이상 잘 찍어주길 바라며, 첨언을 건네는 게 전부다.


두 사람 다 자기의 권리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언성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고.


감독님이 감독놈, 개X끼 시X새끼로 변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황을 목격한 조연출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나로 인해 불거진 분쟁이니 소방수 역할 좀 맡으라는 것.


덕분에 나는 다 큰 아줌마 아저씨가 싸우는 걸 VIP석에서 Full HD로 관람하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애 뽑자니까! 왜 얘를 뽑아가지고는.”

“뭔 소리야. 지도 좋다고 박수 쳤으면서.”


다툼은 점점 더 열기를 띄고 있다.


모로 봐도 고작 8살짜리가 해결할만한 문제는 아니지만, 나는 평범한 8살이 아니기 때문에 중재할 자신이 있었다.


“그만하세요! 싸움은 나쁘다고 그랬어요!”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양반들이 8살 꼬마 앞에서 뭐하는 짓이냐는 말을 점잔하게 표현했다.


다른 사람이 말렸으면 아마 들은 척도 안 했겠지만, 때로는 아이의 시선이 더 아픈 법이다.


나는 일부러 8살 꼬마의 순수함을 살리며 호소했다.


“저는 두 분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두 분 모두 좋으신 분들이잖아요!”


감독과 작가는 부끄러움은 알고 있는지 폭언을 멈추었다. 자신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아역배우 앞에서 보일만한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과열되던 열기가 가라앉고, 어색한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놓는 겁니다.”

“... 예.”

“하나 둘 셋! 왜 안 놓습니까?”

“그쪽도 안 놨잖아요!”


물리적 다툼이 끝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정말 누가 꼬마인지 모르겠다.


나는 두 사람의 사이로 들어가, 본격적인 중재에 나섰다.


아, 중재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설득에 가깝다. 나는 감독의 편을 들 예정이니까.


작가를 설득하지 못하면 내가 짤릴 텐데 작가 편을 들어줄 이유가 없지.


겸사겸사 설득과정에서 분량을 더 얻어 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감독님. 일단 저희 NG난 것들 보여드리는 건 어떨까요?”

“보여줘서 뭐 하니. 굳이 입만 아프게 될 텐데.”

“그래도 그 영상을 보면 작가님도 감독님의 말을 이해하실지도 몰라요.”

“... 그래. 그래 보자.”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절차를 밟았으면 머리를 잡고 싸울 일은 없었을 텐데.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간단한 방법을 외면하고 강짜를 부린 것 같다.


우리는 기록실로 향해, 어제 NG 영상을 같이 감상했다.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건 생각보다 민망한 일이었다.


영상을 다 돌려 본 뒤, 감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때요. 그 쪽이 하자는 대로 찍었는데, 마음에 드세요?”

“끄으으응.”


작가는 대답 없이 앓는 소리만을 뱉었다. 그녀가 봐도 어색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역간의 구도는 저게 맞는데, 생김새만 놓고 보면 위화감이 있다.


김태히가 주인공들 옆에서 호떡을 팔고 있는 것만큼이나.


괜찮다고 자존심을 부릴 수도 있지만, 진정 드라마를 원한다면 그래서는 안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감독의 촬영 방법이 옳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드라마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갑자기 내 두 귀를 모두 막고 입을 벙긋거렸다.


“배역을 바꾸는 방법도 있잖아요.”


갑자기 왜 그러나 싶었는데, 당사자 듣는 앞에서 못할 말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작게 말한다고 하고 있지만, 정점에 이른 두뇌께서는 독순술도 할 줄 알았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감독 역시 내 눈치를 보며 따라서 입을 벙긋거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잖아요.”

“그럼 이렇게 계속 찍을 거에요? 그게 더 이상한데?”


드디어 두 책임자 간에 생산성 있는 대화가 흐르기 시작했다.


논점은 간단하다. 다른 이가 아닌 ‘박상혁’을 끌고 가야 하는 이유.


거기에 감독은 명료하게 대답했다.


“잘생겼잖아요. 안 써먹긴 아깝지 않겠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


내 얼굴을 본 작가의 말이 점차 느려졌고 잠시 후, 그녀의 미간에 내 천(川)자가 생겼다.


“잘생기긴 했네요. 분명 안 이랬던 거 같은데.”


작가의 시선이 내 얼굴에 고정되었다. 그녀의 얼굴 위로 고민의 흔적들이 드러났다.


지금부터는 내가 나설 타이밍이다. 그녀의 고민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생각이다.


외모의 DNA의 출력을 5%더 높였다. 현재 수치는 25퍼센트. 거기에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장착한 뒤 작가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히히히.”

“허억!”


그녀의 미간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거의 다 왔다. 이제 쐐기타만 박으면 끝이다.


과감하게 출력을 5% 더 높이며 말했다.


“작가님! 저 열심히 할 게요!”

“끄으읏!”


작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동시에 코에서 피가 터졌다.


이성이 격렬하게 거부했으나,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그녀는 백기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빨갛게 물들었으니 여기서는 홍기가 맞는 표현인가?


일단 그녀의 팔을 떨쳐내고, 거리를 벌렸다.


설득은 설득이고, 코피는 코피였으니까. 굳이 더러운 액체를 맞고 싶지는 않다.


“휴지 드릴까요?”

“아니! 종이! 내 노트가 필요해! 지금 당장!”


그러나 작가는 코를 막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노트를 피자마자 미친 듯이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흐히히히! 설마 여기서 더 쓸 내용이 있을 줄이야! 흐하. 흐하하하! 이거면 다시 그때로고 나발이고 찍어 누를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들어보니 나비효과에 대한 추가 설정 같은 게 생각이 난 모양이다.


예술가들은 특정 사람에게 영감을 받는다더니. 내 30%의 외모는 그녀에게 영감을 주기 충분했던 것 같다.


이런 경우 내가 뮤즈가 되는 건가?


“음... 그건 좀.”


노트에 코피를 뚝뚝 흘리면서 미친 듯이 웃는 아줌마의 뮤즈가 되는 건 조금 꺼림칙 했다.


어쨌든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다.


* * *


정신을 차린 작가는 바뀐 설정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비효과의 아역은 3인 체제로 간다!”


그녀는 미래 편은 아예 손을 대지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다만 과거 편의 ‘민수’의 비중을 늘려 여주인공과 어느 정도 엮어 둘 거라고.


미래에는 없는 민수가, 과거에선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주인공이 과거에 남을지, 미래로 돌아갈지를 더 고민하겠네요.”

“그렇췌! 역시 나의 뮤즈! 상혁이가 공부를 잘 한다 그랬나?”


칭찬 공세가 날아올 기미가 보이기에 대충 엄지를 날려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바뀐 대본이 꽤나 흡족했다.


기존의 틀을 부수지 않으면서도, 극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유연한 대처가 훌륭하다고나 할까?


이 정도면 드라마가 급발진으로 꼬라박았다고 욕을 먹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드라마는 순항할 예정이고, 그 중 내가 얻을 파이가 늘어났다. 계획대로였다.


그 후로는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우선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드라마의 변화에 대해 팀장님께 보고를 드렸다.


처음엔 난항을 겪었지만, 팀장은 나를 좋게 보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결국 승낙을 얻어냈다.


두 번째는 바로 계약서를 새로 쓴 일. 촬영 분량이 달라졌기 때문에 시급도 변하는 게 정상이다.


덕분에 일당이 꽤나 올랐다. 고작 단역에서 조연으로 바뀐 것뿐임에도.


“이제 더 이상 엑스트라라고 부를 순 없겠네.”

“에이. 뭐라고 부르셔도 저는 상관없어요.”


그렇다. ‘민수’의 분량은 이제 조연이었다. 정확히는 주연급 조연. 요즘 말로는 서브 남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렸을 때 TV에서 보던 드라마에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한다니 감회가 새롭다.


그래도 감독에게 한 말은 진심이다. 엑스트라든, 조연이든 내가 하는 일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할 일, 그건 바로!


탐욕스럽게 외모를 가꿔 드라마의 인기를 쪽쪽 빨아먹기!


한탕을 크게 쳐서 재테크로 넘어갈 생각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자 그럼 열심히 달리는 일만 남았구만.”


마지막으로, 추가촬영이 결정되었다.


드라마의 전개가 바뀐 만큼 1화의 끝부분을 다시 찍어야 했기 때문이다.


“상혁아. 이제 네가 맡은 비중이 작지 않은 만큼 더 잘 해야 한다! 알지?”


감독은 바쁠 거라며 엄포를 놓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기왕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 조금 더 잘생긴 얼굴로 나오면 좋을 테니까.


문제가 있다면 얼굴만 잘생겨진 거라 연기력은 그대로라는 점?


잣대가 높아진 만큼 연기를 가지고 혼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근처에 어릴 때부터 탄탄하게 연기력을 쌓아 올린 사람이 있었으니까.


나는 그길로 배우 대기실로 직행했다.


“한별에몽! 연기 좀 도와줘!”

“얘는 갑자기 또 무슨 소리니?”


한별은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혼자서 연습하는 것도 심심하니까. 같이 하면 되겠다. 이 누나만 믿어!”


자꾸 누나라는 말을 강조하는 걸 보니, 저번에 도움 받았던 일을 아직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실력은 확실한 만큼 도움이 되는 건 틀림없다.


애초에 연기력이 아닌 외모를 고른 이유 중 하나가 유한별이었다.


그녀라면 내 연기에 부족한 디테일들을 채워줄 수 있을 테니까.


그 대신 나도 인생 선배로써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챙길 것이고, 상호간에 도움을 주며 절차탁마할 생각이다.


“뭐해! 연기 연습 한다며!”


한별은 콧김을 내뿜으며 나를 잡아 끌었다. 원래 얘가 이런 이미지였나?


“아직 대본도 안 나왔는데.”

“걱정 마. 연기는 대본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오. 벌써부터 그럴듯한 말을 하고 있는 게 꽤나 전문적으로 보인다.


꼬마가 어른인 척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조금 골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올 때마다 떡이라도 가져 올 게요.”

“떡? ... 크흠. 떡은 왜 가져와?”


한별의 표정이 크게 요동쳤다. 애써 아닌 척 하고 있지만, 순간 그녀의 입가에 침이 흐른 걸 놓치지 않았다.


“에이. 어떻게 수업을 공짜로 배우겠어요. 수업료라고 생각해요.”

“그...래? 그런가? 그럼 그러지 뭐. 히히.”


아까의 위엄 있는 모습은 어디가고 10살 유한별의 모습이 드러났다.


벌써부터 칠칠치 못하게 떡을 오물거리는 유한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앞으로도 누나인 척 위엄을 세우는 일은 없지 않을까?


그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한별과 연기 연습에 몰두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나비효과’의 첫 방영일이 되었다.


* * *


‘나비효과’ 주요 출연진과 제작진이 한 자리에 모였다.


드라마 첫 방영일이다. 그것도 강력한 라이벌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시작하는 드라마였다.


때문에 방송국에는 전운이 맴돌고 긴장이 흘렀다.


그 가운데 감독이 입을 열었다.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오늘만큼은 촬영을 일찍 끝내고 드라마를 시청할 생각이다. 다들 첫 스타트가 중요한 거 알고 있지?”

“넵!”


나야 드라마 판도를 모르니 멀뚱히 있지만,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들어보니 첫 화의 시청률은 상징적인 지표가 된다고 한다.


경쟁 드라마가 어지간히 재미없거나, 우리 드라마가 정말 재미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첫 시청률을 쭉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그러나 객관적으로 상대는 탑독이고, 우리는 언더독이다. 당연히 나비효과 측의 스타트가 더 늦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시청률의 추이를 지켜 볼 예정이다.”


이번에도 주변 스태프가 보강 설명을 해주었다.


한 번 드라마를 튼다고 해서 끝까지 그 드라마를 보는 건 아니다. 흥미가 떨어진다 싶으면 다른 채널로 돌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최고 시청률이라는 말이 있는 거라고.


감독이 보고자 하는 건 시청자들의 선택이다.


다시 그때로 측에서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들이 나비효과 측으로 얼마나 넘어 오는지를 확인하겠다는 소리다.


설령 1화의 최고 시청률이 상대보다 미진하더라도 그 과정이 좋으면 우리에게도 가능성은 생기는 거니까.


만약 유동의 폭이 크다면, 점점 탄력을 받아 경쟁 드라마 측을 집어삼킬 수도 있다.


때문에 1화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여기서 같이 보려고 하는데, 시간 되는 사람 있니?”


의외로 감독은 열정적인 인물인 것 같다. 같이 모여서 응원하면 결과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


그러나 호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먼저 성인 배우들은 스케줄의 이유를 들어 빠졌다.


감독도 바쁘다는데 촬영 외적으로 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


그 대신 우리를 향해 기대를 담은 눈빛을 보냈다.


아역배우들은 드라마의 주역이면서도 시간이 많았기에.


그러나 그 기대는 깔끔히 배신당하고 말았다.


먼저 김태양이 손을 들고 불참 의사를 밝혔다.


“저도 일이 있어서요.”


잘 사는 집 아들이라더니 깡이 남다르다.


아무리 봐도 여자를 만나러 가는 것 같았으나, 아무도 막을 권리는 없었다.


감독도 애초에 기대를 안 한 모양. 그러나 한별 역시 불참 의사를 밝혔다.


“저는 엄마가 같이 보면서 개인 지도해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상대는 국민배우 나윤희다. 감독이 이래라 저래라 할 깜냥이 아니다.


결국 감독의 간절한 시선은 나에게로 향했다.


‘너는 괜찮지? 별 일 없지?’라는 바람을 담아서.


어... 나도 어지간해서는 기대에 부흥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죄송해요.”

“상혁이 너마저!”

“엄마가 같이 보자고 하셨거든요.”


물론 우리 엄마는 국민 배우는 아니다. 나에게는 국민 배우보다 멋진 분이시지만 아닌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감독이 어깃장을 놓을 수 있느냐? 그건 아니다.


아이한테 엄마는 일종의 치트키다. 감독도 꼬마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이해를 할 수밖에.


결국 감독은 아무런 호응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부하 제작진들이 있으니까 쓸쓸하지는 않겠지.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미안함을 가득 담은 사과를 건네고, 곧바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한별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한별 – 우리가 이길 수 있겠지?’


그녀가 집에 가는 길이 심심한 듯하다. 피식 웃고 답장을 작성했다.


‘상혁 – 몰라. 그래도 금방 이기지 않을까?’

‘한별 – 그러면 좋겠다. 너도 우리 집에 와서 엄마랑 같이 보면 많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감독 이전에 한별에게서도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역시나 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가장 먼저 권유한 것은 엄마였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가 1화를 같이 보자고 권유했을 때 조금 놀랐다.


‘나비효과’는 목금 드라마다. 거기에 딱 저녁 먹을 시간대에 방영한다.


빵집을 운영하는 엄마에겐 한창 장사를 하고 계실 시간대였다. 그런데 어떻게 드라마를 본단 말인가.


그래서 처음엔 농담 아니면 투정이라 생각했다.


대한제일 빵집에 커다란 벽걸이형 TV가 설치되기 전까지는.


그 때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 빵집에 TV가 필요해요?”

“그럼! 아들 드라마를 꼭 봐야 하는데 당연히 필요하지. 나는 반드시! 꼭! 본 방송을 사수할 거야!”


스케일이 다른 엄마의 사랑에 입에서 절로 탄식이 나왔다.


그런데 웃긴 게, 대형 TV가 떡하니 들어왔음에도 가구 배치가 이상하지가 않다.


빵의 진열을 바꾸고, 그 자리에 테이블과 의자를 늘렸다.


그 덕분에 TV는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울 수 있었고, 우리 빵집은 미래에 유행하는 베이커리 카페와 같은 구조를 갖출 수 있었다.


들어보니 할아버지 지인 중에 기술자 분들을 총동원해서 만든 결과라고 한다. 정말 남다른 행동력이다.


‘한별 – 우리 내일 1화 이야기 잔뜩 하자! 파이팅!’

‘상혁 – 그래 파이팅!’


문자를 다 보낼 즈음, 가게에 도착했다.


원래도 사람이 많은 대한제일 빵집 2호점은 오늘따라 한층 더 사람이 많아 보였다.


빵집에 못 보던 현수막이 하나 더 생겼다.


‘나비효과 첫 방송 기념 이벤트! 빵을 사면 쿠키를 나눠드려요!’


엄마는 그 현수막 아래에서 손님들께 쿠키를 건네고 계셨다.


“여러분 저희 아들 나오는 드라마 많은 시청 부탁드릴게요!”


언제 또 이런 일을 준비하신 건지. 내가 그동안 빵집에 신경을 못 쓰긴 한 것 같다.


솔직히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엄마를 말리지 못했다.


“사장님! 상혁이 드라마 나온다면서요!”

“현희야 오랜만이네? 맞아. 우리 상혁이 이번에 드라마 찍었어. 오늘 7시에 나온대.”

“와! 대단한데요?”

“대단하지. 아! 이것 좀 가져가서 먹어. 먹으면서 우리 상혁이 드라마 보는 거다?”


엄마는 빵을 나눠주면서도 귀찮거나,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서 미소가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정말 순수하게 아들을 자랑할 수 있어 행복한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말릴 수 있겠는가.


“어? 상혁아! 지금 왔니?”

“네 엄마.”


나를 발견한 엄마가 방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지금 다들 모여 있어! 빨리 가자!”

“모여 있다고요? 누가요?”


나는 그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냥 우리 가족끼리 보는 건줄 알았는데, 빵집은 어느덧 아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우리 손주 왔어?”

“할아비가 홍보 하는데 힘 좀 썼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오랜만이다 상혁아. 네가 1살 때부터 봤는데 벌써 커서 TV에 나간다니 크흑!”

“이이가? 벌써 울면 어떡해요!”


1호점의 머리가 빛나는 봉식 아저씨와 진숙 아줌마.


“상혁아! 나 같이 보러 왔어! 여기 앉아!”

“아니! 상혁이는 내 옆에 앉을 건데?”


승윤이와 지훈이, 거기에 어머니회 수석 아줌마까지.


그 외 홍 사범과 광언이, 유리 누나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 나랑 친한 사람은 다 모인 것 같네요?”

“응. 이것도 자리가 부족해서 몇몇은 돌려 보낸 거야. 교류회 회장님이라고 했나?”


입구에서 빠꾸를 당한 교류회 회장님께 심심치 않은 위로를 건넨다.


...가 아니라! 고작 1화를 보는 것 뿐인데 스케일이 너무 커졌다. 누가 보면 무슨 마을 대잔치라도 열린 줄 알겠다.


TV 나오는 게 자랑할 만한 일은 맞긴 한데... 가족들한테 보여주는 것도 민망한데 의도치 않게 공개처형 쇼를 당하게 생겼다.


지금 이 상황만으로도 이불킥을 수천 번씩 찰 자신 있다.


과연 이 계획을 세우면서 내 쪽팔림은 고려가 된 걸까?


아니겠지. 엄마는 내 드라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테니까. 쪽팔리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셨을 게다.


여기서 도망칠 수도 없었기에 가운데의 자리로 향했다.


나는 외모의 DNA를 활성화 시킨 것을 진심으로 감사했다.


만약 내가 비중을 더 늘리지 못했다면? 그래서 재촬영을 하지 못했다면?


이 수많은 인파 앞에서 고작 ‘그...그게 무슨 소리야? 과거라니?’ 대사 한 마디를 보여주고 끝낼 뻔 했다.


굳이 저 멀리까지 가서 곰이랑 마주치게 만들 필요도 없다.


그랬으면 바로 이 자리에서 수치로 인한 사망에 이르렀을 테니까.


그래도 새롭게 준비한 1화에서는 대사가 조금 늘었다. 나름 서브 남주라고 조금 멋지게 찍히기도 했고.


정말. 참으로 다행이었다.


내 속이 타들어 가는 사이 공개처형의 시간이 다가왔고, 이내 익숙한 오프닝 음악과 함께 나비효과 1화가 시작되었다.


“오오! 시작하나 봐요!”

“상혁이는 언제 나오는 거지?”

“것 참. 조용히 좀 하시죠?”


여러 사람들이 모인 만큼 시끌벅적 했지만, 모두 서서히 드라마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여주인공이 과거로 타임리프를 했고. 나의 첫 등장 씬이 브라운관을 타고 흘렀다.


혼란에 빠진 여주인공 다연, 그 때 누군가가 한 발자국 나서며 말을 건넨다.


“다연아 왜 그래? 도와줄까?”


마치 그녀의 사정을 알고 있는 것처럼 시의적절한 도움의 손길.


카메라는 서서히 그 인물의 외모를 담아냈다. 누군지는 몰라도 참 잘생긴 꼬마였다.


그 좌석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끼야아아아아아악! 상혁이 너무 멋져!”

“허허. 우리 상혁이가 정말 TV에 나오는구나!”

“와~ 상혁이 대단하다!”


과거로 돌아간 것이 1화의 하이라이트였기 때문에 드라마는 얼마 안 가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빵집의 열기는 식을 생각을 안 했다.


서로서로는 모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감탄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상혁이 멋있었죠? 평소보다 멋있었 던 거 같은데.”

“이게 화면이 잘 받는 사람이 또 따로 있는 법이래요.”

“이러다 킥복싱계로는 안 오는 건 아닐까?”


그렇게 나비효과 첫 화 상영회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지인들의 리액션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배우를 선택하길 잘 한 것 같다.


아직 드라마는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고, 인기를 끈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명인이 되지 못해도, 인기를 끌지 못해도, 돈을 못 번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을 것만 같다.


이미 나의 마음은 성취감으로 가득 찼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족들이 기뻐해주니 내가 연기를 했다는 실감이 난다.


어쩌면 배우는 영상을 찍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았을 때 완성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 비로소 배우가 된 걸지도 모른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언제나 댓글, 선호작, 추천은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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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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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갑(甲)의 계산법 22.08.06 769 13 23쪽
89 돈지랄을 상대하는 법 22.08.05 773 11 17쪽
88 치기 어린 행동에 대한 대가는 그리 가볍지 않다 22.08.04 787 13 18쪽
87 오히려 좋아 22.08.03 769 10 17쪽
86 스타 이즈 본 +1 22.08.02 783 13 20쪽
» 배우가 되다 22.08.01 792 12 23쪽
84 드라마 속 짱 센 엑스트라가 되다 22.07.31 775 10 16쪽
83 경국지색 +1 22.07.30 825 10 19쪽
82 주연배우가 되기 위해 +2 22.07.29 802 10 18쪽
81 어깨에 힘을 풀고 22.07.28 795 10 25쪽
80 첫 촬영 22.07.27 816 12 23쪽
79 오리지널 vs 가짜 +1 22.07.26 822 13 21쪽
78 어린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처럼 22.07.25 815 10 16쪽
77 드라마 너로 정했다 22.07.24 853 10 18쪽
76 박상혁 강화 프로젝트 +1 22.07.23 910 15 25쪽
75 sorry i’m strong 22.07.22 865 10 21쪽
74 집으로 22.07.21 863 10 21쪽
73 야밤의 전투 3 22.07.20 853 10 14쪽
72 야밤의 전투 2 22.07.19 854 10 16쪽
71 야밤의 전투 22.07.18 924 10 17쪽
70 현장학습을 가다 3 22.07.17 903 12 15쪽
69 현장학습을 가다 2 +1 22.07.16 940 13 16쪽
68 현장학습을 가다 22.07.15 979 15 13쪽
67 호가호위호위 22.07.14 968 13 19쪽
66 호가호위 22.07.13 989 15 16쪽
65 첫 친구 22.07.12 1,018 17 25쪽
64 1차 심사 22.07.11 1,084 16 15쪽
63 천하제일 친구대회 22.07.10 1,103 18 13쪽
62 친구를 만드는 법 22.07.09 1,182 19 15쪽
61 향상심 2 +1 22.07.08 1,256 22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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