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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455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7.12 21:39
조회
1,016
추천
17
글자
25쪽

첫 친구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65화



비밀병기들의 활약 속 1차 심사가 빠르게 끝이 났다.


원래 예상대로라면 4시간 걸릴 일이 1시간 남짓으로 끝났으니. 얼마나 효율이 좋았는지 알 수 있다.


잠깐 교장과 공아린 선생님을 모아 회의를 했다. 1차 심사 합격자를 정하기 위함이다.


“일단 지훈이는 다들 동의하실 테고.”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1차 심사만 놓고 보면 지훈이 보다 잘 한 녀석이 없었으니까.


“더 추천하고 싶으신 학생 있으세요?”


우리 셋 중 심사위원장은 나다. 교장도, 공아린 선생님도 아닌 나.


그래서 내 마음대로 결정해도 상관은 없지만, 예의상 물어보기로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두 사람도 1시간 동안 같이 고생했으니까.


공아린 선생님이 손을 들었다.


“나는 8반의 한진선을 추천할게.”

“아~ 그 머리 양 갈래로 땋은 애 말씀하시는 거죠?”


그 아이라면 내 인상에도 남아 있었다. 또한 아린 쌤이 왜 추천했는지도 알 것 같다.


“응. 평소에도 성격이 좋기로 유명한 애야. 어린이답지 않게 성숙하고. 상혁이랑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애어른한테는 애어른을 붙이자는 생각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다.


“교장 선생님은요?”

“나는 박완조를 추천하도록 하마.”

“이유는?”

“우리 동문회 소속 박사님의 자제시거든.”


정말 교장다운 이유였다. 이젠 비리를 숨기지도 않는다.


내가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자, 그가 홀홀 웃으며 첨언했다.


“박사님의 교육방식이 자율적 공부여서 지금은 잠잠하지만 기본적으로 똑똑한 아이야. 분명 크게 될 거니 옆에 두는 게 좋아보이는구나.”

“... 참고할게요.”


일단 후보에 올리기로 했다. 올리고 안 뽑으면 되는 거니까.


회의를 마치고 단상에 나아가 합격자를 발표했다.


“합격자는 김지훈, 한진선, 박완조... 그리고 장승윤까지. 4명입니다.”


참고로 승윤이는 내 픽이다.


애초에 우리끼리 대화하던 것이 이렇게 판이 커지지 않았나.


그러니 2차까지는 데려가 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발표를 들은 아이들의 희비가 명확하게 갈렸다.


호명된 아이들은 크게 기뻐했다. 그중에서도 승윤이는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꺼이꺼이 눈물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 아이들은 바닥에 드러누워 팔다리를 버둥거리기까지.


나는 그들에게 미리 준비해 둔 위로의 메시지를 건넸다.


“제 친구모집에 응시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귀하의 인상적인 발표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많은 지원자로 인해 합격하지 못하였음을 안내드립니다. 귀하의 무궁한 발전과 안녕을 기원하겠습니다.”


한창 취업 준비할 때 많이 들었던 탈락 멘트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흐어어어엉. 너무해!”


‘맞다. 이거 생각보다 꼴받는 말이었었지’


생각해보니 나도 이런 종류의 문자를 받고 분개했던 것 같다.


그짓말이자 기만이라고. 뽑을 생각도 없었던 거 아니냐고 투덜거렸다.


아이들도 저 마법의 단어에 심리적 내상을 입은 게 틀림이 없다.


세상을 잃은 듯 엉엉 우는 애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추가적으로 애들의 마음을 다독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단상에서 내려갔다.


“흐어어엉.”

“윤주야 울지마. 뚝하자. 우리.”

“흐엉?”


윤주라는 이름의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냐는 눈치다.


“아까 개구리 이야기 해 줬잖아. 나는 정말 좋게 들었어. 멋지다고 생각해.”


물론 기억하고 있는 건 정점에 이른 두뇌 덕분이다.


하지만 그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윤주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정말?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하지만 떨어졌는 걸?”


그건 심사위원 마음...이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


때마침 적당한 핑계거리가 있으니 이를 활용하기로 했다.


“이건 비밀인데. 심사위원이 세 명이잖아.”

“응응.”

“나는 윤주 너를 뽑고 싶었는데 교장 선생님이 막았어.”


아이의 입이 떡 벌어졌다. 냉랭한 현실을 처음으로 마주한 아이와 같은 반응이다.


“그러니까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너는 언제나 최고였어.”

“... 웅.”


덕분에 윤주는 진정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석의 교장을 노려보기 시작했지만 그건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나는 윤주를 두고 옆 아이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좋은데 교장 선생님이 반대표를 던졌다니까?”(아님)

“교장 선생님 나빠!”


한 명도 의심하는 아이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교장, 담임, 학생이 모여 있으면, 교장이 가장 입김이 강할 것이라 생각하는 게 정상이다.


일개 학생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니까.


‘그렇게까지 틀린 말도 아니고.’


사실상 저 양반이 초등학생을 무자비한 경쟁, 컴퍼티션으로 밀어 넣었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경기가 생겼으니 패배자가 나온 게지. 일을 키운 사람들의 잘못이다.


때문에 교장은 한동안 학생들의 원망어린 시선을 받아야겠지만, 참 교육자이시기 때문에 이 정도는 웃어넘기실 거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분노와 실망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려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보다 교장한테 돌리는 편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설마 교장씩이나 되어서 학생들보다 본인의 명예를 우선하는 건 아닐 테고 말이다.


“곧 면접인데 어딜 갔다 오는 거냐?”

“일이 조금 있었어요.”


심사위원석으로 돌아가니 교장이 맞아주었다.


“... 뭐가 그렇게 웃기니?”


이런. 입꼬리 단속을 잊고 있었다.


자신에게 찾아올 재앙도 모른 체 삽질을 하고 있는 교장의 모습이 웃겨 실실 쪼개고 말았다.


“글쎄요. 아! 애들이 다 모인 것 같은데 면접이나 시작할까요?”


심사위원장이 그러자는데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회자와 지원자들이 모두 나가고, 2차 심사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자. 합격한 분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4명의 후보와 눈인사를 나눴다.


2차는 정말 쟁쟁한 녀석들만 남았다. 그 중 혼자 덜덜 떨고 있는 너구리, 아니 승윤이가 눈에 띄었다.


“2차 심사는 간단해요.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릴 테니까. 생각나는 대로 대답을 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전부에요.”


원래는 교장이 20문 20답을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랬다간 너무 지루할 것만 같아서 모두 컷트해 버렸다.


사람의 진심을 아는 데는 한 마디 문장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빠르게 넘길 수 있는 일을 질질 끄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여러분은 저와 어떤 친구가 되고 싶습니까?”


이것이 내가 그들을 위해 준비한 질문이다.


물론 초딩 때는 보통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친구끼리 뭘 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저 애들이 어떤 애들인지, 뭐 하는 애들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시간을 들여 관찰한 다음 선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이건 내가 보이는 호의였다.


아무리 이런 얼탱이 없는 대회에서 만났더라도 괜찮은 답변, 공감이 가는 답변이 있으면 친구로 뽑을 생각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의외로 박완조였다.


“만나면 좋은 친구.”


마치 M사 방송의 로고와 같은 발언이다.


“우리가 친구를 만드는 이유는 즐거움 때문이야. 서로를 받아주고 믿어주고. 거기서 나오는 긍정적 상호작용이 발달에 도움이 되지.”

“오...”


박사 아들 아니랄까봐 말하는 것 하나하나가 지적이다.


만약 미리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명탐정 X난 마냥 나이가 어려지는 약을 먹었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 지원을 한 거야.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흥미가 생긴 사람은 네가 처음이거든. 우리 두 사람이 자아낼 상호작용이 궁금하지 않니?”


괜찮다. 이번 심사의 맥락을 정확히 짚으면서도, 첫 발표자가 가져가는 이점을 모두 챙겼다.


저렇게 정석적인 대답을 내놓으면 다음 사람들은 부담을 느끼기 마련이다.


저 대답과 차별되면서도 정답에 가까운 답변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장 말이 맞았네.’


저 아이도 지훈이와 같은 엘리트 과였다. 심지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까지.


어쩌면 지훈이가 할 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비리에 찌든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교장은 교장인 것 같다. 확실히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다.


두 번째로 나선 것은 아린 쌤이 추천한 한진선이다.


“나는 네가 필요해.”


진선은 완조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것 같다.


“다른 애들이랑 지내는 건 어렵지 않아. 애들이 뭘 바라는지,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지를 잘 알고 있거든. 그런데 그러다보면...”


진선은 교장과 아린 쌤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어른 앞에서는 말하기 곤란한 내용이 있는 것 같아,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진선이 귓속말을 건넸다.


“지치거든. 남한테 맞춰주기만 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야. 그래서 나는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어. 너 같은 사람을.”


진선이 말을 하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너도 마찬가지 아냐? 내가 널 필요로 하듯, 너도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할 거야.”


그녀는 말을 마치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하여간 요즘 초등학생들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다니까. 쪼끄만한 게.


그와 별개로 진선이도 자신이 2차 심사에 오를만한 인재였음을 증명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친구’. 이는 내가 승윤이한테 미리 언질을 흘렸던 내용이다.


그런데 진선은 그러한 도움 없이 정답에 가까운 결론에 도달했다.


이미 이러한 주제가 나온 이상, 승윤이의 이점이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른 심사위원이 뽑은 두 학생이 심사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지훈이와 승윤이가 어떻게 대응할지, 흥미진진해졌다.


한참 동안이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지훈이었다.


“만나면 좋은 친구...”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지훈이의 대답은 완조의 답과 토씨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았기 때문이다.


뭘 하는 거냐고 지훈이에게 시선을 던지자 녀석이 빙긋 웃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미소였다.


“라고 예전의 저였으면 답했을 것 같네요.”


역시 뭔가 있을 줄 알았다. 설마 상대의 대답을 완전히 부정하는 전략을 세울 줄이야.


그 말을 들은 완조의 표정이 종잇장마냥 구겨졌다.


그러나 새롭게 태어난 지훈 MK2는 오히려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


“저는 상혁이와 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어요.”


아직 몇 달 안 되었을 텐데, 되도 않는 블러핑을 치고 있다.


아니, 8살한테 몇 개월이면 오랜 기간 맞나?


“많은 일이 있었죠. 그런데 함께한 시간들이 모두 즐거웠냐? 그건 아니었어요. 틈만 나면 놀리고, 속이고, 장난치고. 어떤 날은 제 눈물을 흘리며 잠에 들기도 했는걸요?”


... 이 자식이? 어필을 하라니까 어필은 안하고 엿을 멕이고 있다.


심사위원장의 권한으로 바로 탈락을 꺼내려는 찰나. 지훈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저는 좋았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친구는 그런 거 같아요. 늘 하하호호 웃는 건 아니지만 또 만나서 장난치는. 그런 관계를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탈락은 봐주기로 했다.


지훈은 완조의 답을 부정하면서도 보완하여 더 좋은 답변을 내어놓았다.


교장과 아린 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고 있다.


나랑 보낸 몇 개월 사이, 지훈이도 성장이라는 걸 한 것 같다.


황새의 걸음을 따라가려다 보니, 절로 다리가 유연해졌다고 해야 하나.


심심할 때마다 불러내 괴롭힌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지금까지 나온 답변 중에서는 제일이다.


착한 녀석은 흑화할 때 제일 세진다더니. 100점 만점에 97점 정도는 줄 답변이다.


이제 남은 것은 장승윤 하나.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히끅.”


승윤이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과연 그녀는 어떤 답변을 준비했을까. 내가 흘린 힌트를 어떻게 캐치해 냈을까.


회귀 이전, 한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만큼 보여줄 모습이 기대되었다.


원래라면 그 미모만으로도 1차, 2차 심사를 자동으로 통과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볼빵빵한 너구리에 불과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는... 히끅. 상혁이의... 히끅. 괴상한 짓을 도와주고 시퍼요.”

“하아...”


어딘가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들린 위치를 고려하면 교장인 것 같다.


조용히 하라는 눈빛을 보내자, 교장은 역으로 더 들어야 하냐면서 끊자는 손짓을 보냈다.


그 정도로 승윤이의 답은 이상하긴 했다.


괴상한 짓을 돕는다니? 그 착한 아린 쌤마저도 난처한 표정을 지을 정도의 대답이다.


“흐윽. 흑. 히끅!”


반응이 안 좋은 것 같자 승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 역시 맥이 조금 풀렸지만 그녀의 대답을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승윤아. 조금만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어? 듣고 싶어.”

“웅.”


승윤은 눈물을 비비적거리며 닦더니 꼬물거리며 이유를 설명했다.


“상혁이는 멋져요. 밥도 혼자서 잘 먹고, 모르는 것도 없고, 축구도 잘하고.”


이것 참. 굳이 비행기를 태워줄 것 까지는 없는데.


어린 아이의 순수한 칭찬 러쉬에 코 밑을 쓱 닦았다.


“그런데 상혁이는 가끔 이상한 짓을 해요.”

“크흡.”


코를 훑던 손가락이 콧구멍으로 들어갈 뻔 했다.


“막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나무에 머리를 밖고,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안 일어나거든요.”


주변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린다. 특히 교장은 당장이라도 내 어깨를 붙잡고 추궁할 기색이다.


나는 곧장 고개를 저어 의혹을 부정했다.


다행히 평소 신뢰작을 어느 정도 해 두었기 때문에 의심을 깔끔히 불식시킬 수 있었다.


‘큰일날 뻔 했네.’


승윤이 녀석. 생각보다 내 행동을 자세히 보고 있었다.


“저는 똑똑하지 않아서 상혁이가 왜 그러는지 몰라요... 하지만 상혁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에요. 그런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고 싶습니다.”


승윤이의 발표가 끝났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한 듯 하고, 다른 경쟁자들조차 자신이 이겼다며 낙관하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내 입가엔 가느다란 미소가 떠올랐다.


“그냥 볼 빵빵한 너구리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답변이다.


안 그래도 혼자서 하는 DNA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차이다.


그래서 방법을 모색하고 있던 중에 도와주겠다는 말을 들으니 구미가 당길 수밖에.


흠이 있다면 승윤이가 조력자치고는 유약하다는 점인데... 그것도 상관없을 것 같다.


쓸만한 사람을 키울 때 가장 우선시 하는 게 무엇일까?


임무수행력? 무력? 잠입 능력? 아니. 충성심이다.


승윤이는 그러한 점에서 가산점을 줄 수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을 ‘괴상’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기꺼이 ‘돕겠다고’ 나서지 않았나.


집착이라고 해야 할까, 믿음이라고 해야 할까, 그 두 가지가 절묘하게 섞인 듯하다.


이미 내 기행을 들킨 시점에서, 조력자를 뽑는다면 승윤이만한 조건이 또 없기도 했고.


진선이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


진선이는 필요성이라는 맥락은 잘 짚었지만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이 뭔지는 잘 몰랐다.


내게 필요한 건 더 큰 능력, 더 큰 성공, 정점의 DNA다.


승윤이는 지독한 관찰 끝에 내게 필요한 것을 정확히 짚었다.


자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결국 성과를 따낸 것이다.


“그럼 슬슬 결과를 발표해 볼까요?”


교장이 이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더 볼 것도 없이 결과를 발표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고민을 하고 있었다.


완조보다는 지훈이가, 진선이보다는 승윤이가 우세하다.


그러나 지훈이와 승윤이 두 사람 중 한 명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한 쪽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답변, 한 쪽은 점수는 낮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답변이다.


‘그냥 귀찮은데 공동 우승을 시킬까?’


그것도 나쁘지 않아 그렇게 하려는 찰나, 문제를 발견했다.


이대로 승윤이를 우승자로 발표하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난리가 날 거 같은데...’


무려 180명이 넘게 모인 대회였다. 그런데 거기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도 못한 녀석이 우승을 한다면?


학연이니, 지연이니, 흡연이니 이야기가 나올 것이 뻔하다.


거기에 승윤이가 다른 아이들의 시기를 사고 말 터.


별로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다.


하여간 쓸 데 없는 교장 같으니라고. 괜히 일을 더럽게 꼬아놓았다.


사람들의 기대 어린 시선이 따가웠다. 더 이상 미룰 시간도 없는 것 같다.


그래. 까짓 거,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지르기로 했다.


“제 1회 천하제일 친구대회의 우승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내 취향,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사람밖에 없다.


“그 우승자는! 바로!”


TV였으면 1분 정도의 광고가 흘렀을 타이밍이 지나고. 우승자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공아린 선생님입니다!”


내 떠들썩한 소개와 다르게 사람들은 반응이 없다.


그런 이들을 위해 택한 이유를 밝혔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린 쌤이 가장 잘 통하더라고요. 성격도 좋으시고. 충분한 이유죠?”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나이가 비슷할수록 대화가 잘 통하는 건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포인트는 그것이 아니다. 아린 쌤이 당황하며 말했다.


“상혁아. 선생님은 대회에 참가 안 했는데?”

“하셨잖아요. 심사위원으로.”

“그렇긴 한데...”


나도 궤변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 알고서 계속 논점을 비틀고 있는 것이다.


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게 무엇인가. 천하제일 친구대회의 뒤처리다.


그렇다면 문제의 근원을 제거할 뿐.


공아린 선생님을 우승자로 뽑아 대회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내 목표였다.


애초에 일에 휘말렸을 때부터 이런 결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린 쌤께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녀는 거부할 수 없다.


“선생님은 저랑 친구하는 게 싫으세요?”


승윤이의 울먹거리는 모습을 따라하자 아린 쌤이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아니야. 선생님도 상혁이랑 친구하고 싶지~ 그런데...”


좋아. 확언까지 받았다. 이제 대회를 끝내도록 하자.


“와! 선생님도 좋으시구나! 그럼 이번 대회 우승자는 공아린 선생님으로 하겠습니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바로 자리를 파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사람들을 훠이훠이 내쫓았다.


대회에 참석한 이들은 얼떨떨하면서도, 진행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어이가 없다는 반응은 있었지만 의외로 큰 불만은 없는 것 같다.


완조는 본인의 미숙함을 깨달은 것처럼 ‘칫, 다음 번에는 지지 않겠어!’라며 강당을 떠났고.


진선이는 ‘흥. 선생님은 반칙이잖아’라며 볼을 부풀리며 돌아갔다.


남은 것은 지훈이와 승윤이 두 사람. 둘 다 예상치 못한 결말에 많이 허탈해 하는 모습이다.


“두 사람 다 고생 많았어. 꽤나 잘 하던걸?”


고생한 두 사람을 치하하고 합격했음을 밝히려는 찰나, 지훈이가 벌떡 일어나며 검지를 척 내밀었다.


“너의 의도를 알겠어!”

“응?”

“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공아린 선생님을 뽑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우리의 답변이... 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지?”


지훈이는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긴 하지만 뭐 어쩌겠어. 너의 마음에 들기 어려웠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닌 걸. 하지만 기억해둬. 언젠가 반드시 네 기대치를 충족하고 말 거야!”


지훈이는 그 말을 남기고 도도하게 강당을 나섰다.


... 완전 방향을 잘못 짚었지만 말이지.


애가 이번 기회로 좀 날카로워지나 했더니, 여전히 허당 끼가 남아있다.


“잠깐!”

“응?”

“아니다. 그냥 가라.”


붙잡고 사실을 정정할까 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번 대회 덕에 확실하게 깨달았다. 지훈이도 전형적인 라이벌 포지션이라고.


오늘만 봐도 몰아넣으니까 제법 잘 하지 않나. 쟤는 보듬기보다는 굴려야 발전하는 스타일이다.


그래도 간간히 챙겨주긴 해야겠다만, 스스로 착각하고 있으니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이제 강당에는 승윤이 혼자 남아 있다.


“흐으엥. 히끅. 흐어어어엉. 히끅.”


아까 발표할 때는 딸꾹질을 안 하더니, 그 사이 다시 재발한 모양이다.


“상혁이랑 친구하고 싶었는데 흐어어엉.”


미래에 경국지색, 아니 나라는 좀 오바고 경마을지색이 될 여자 애가 나랑 친구 못했다고 세상이 떠나가라 엉엉 울고 있다.


조금 부끄러운 감이 있다. 내가 그렇게 멋진 놈인가. 하하.


어제까지만 해도 친구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아니. 필요성을 못느꼈다.


홀로 다니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다보니 자연스레 혼자가 되더라.


그런데 두 사람의 말을 듣다보니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손을 내밀었다. 인생 2회차 첫 번째 친구에게.


“자 뚝하자. 내 친구 될 사람은 이렇게 울음이 많으면 안 돼.”

“... 흐엉?”

“너의 답변이 마음에 들어서 특별히 기회를 주기로 했어. 수련의 성과가 나올 때까지 친구[임시]인 거라도 괜찮다면...”

“좋아! 완전 조하! 나 그거 할래!”


승윤이가 달려들어 내 옷에 눈물, 콧물을 다 묻히기 시작했다.


“야! 너... 에휴 됐다.”


경마을지색이고 자시고 일단 뻑하면 우는 습관부터 고쳐야겠다.


이제부터는 친구니까 좀 본격적으로 간섭을 해도 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강한 정신에, 화려한 실력을 갖춘 중학생으로 키워서, 회귀 이전의 그녀랑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자 이제부터 같이 수련이다 수련!”

“응! 수련!”


승윤이는 앞으로 어떤 일에 동원될지도 모르는 채 좋다고 히히 웃었다.


그래도 애가 웃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볼빵빵 너구리라고 해도 웃는 모습은 이쁜 모양이다.


천하제일 친구대회도 그렇게까지 쓰레기 같은 대회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 * *


우리 두 사람은 수련장으로 이동했다.


잘 모를 승윤이한테 수련 방식을 설명해주자 그녀의 눈이 점이 되었다.


“이 나뭇가지로... 상혁이 머리를 때려?”

“응! 아주 그냥 세게 후려버려.”


도와준다고는 했는데, 설마 친구가 되자마자 헤드샷을 날리게 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나는 걱정 말라며 승윤이를 격려해주었다.


“걱정마. 날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니까.”

“...그래?”

“그래. 나 못 믿어?”


그녀는 고개를 젓고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다행히 여러 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역시 신뢰도 MAX를 찍은 동료답다.


“그럼 간다?”

“그래!”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력자가 참여한 첫 수련이다. 과연 어떤 진전이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승윤이가 풀 스윙으로 나뭇가지를 내려 찍었다.


“에잇!”

“악!”


눈앞이 번쩍였다. 확실히 스스로 할 때와는 느낌부터가 다른 고통이다.


나는 빠르게 DNA 활성화 여부를 확인했다.


잠시 후, 두뇌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심장 부근의 미세한 변화 확인. DNA 활성화와 관련된 현상으로 파악됨.’


“오오오. 오오오오.”


물밀 듯이 밀려오는 감동에 가오나시와 같은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별의 별 지랄을 해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조력자를 하나 구했다고 바로 성과가 나왔다.


눈을 꿈뻑이는 승윤이에게 엄지를 치켜 세워주었다.


“나 잘 한 거야?”

“응. 잘했어. 고마워.”

“히히. 기쁘다.”


이 정도면 슬슬 다음 각성 능력을 생각해도 될 타이밍이 아닐까?


회복 능력, 초능력, 타임 스토퍼. 여러 능력을 떠올리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는데, 두뇌가 산통을 깼다.


‘이러한 추세로 보았을 때, 정확히 100,000대 정도 맞으면 능력이 활성화 될 것으로 추정.’


X발. 0이 몇 개냐. 10만대면 능력 활성화고 나발이고 대가리가 먼저 깨지지 않을까?


‘그렇다.’


“대답할 필요 없어 새끼야!”

“흐엥. 상혁아 갑자기 왜 그래.”


약을 올리는 두뇌와, 눈물을 터트리는 승윤이.


다 왔다고 생각한 목적지가 갑자기 신기루마냥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X발 그럼 그렇지.”


쉽지 않으리라는 건 예상했다. 진전이 있다는 것에 만족을 해야지.


방향을 찾았으니 앞으로 대가리를 박기만 하면 능력은 활성화 될 것이다.


“내가 반드시 해내고 만다. 반드시 능력 활성화 해서, 뭐가 되었든 다 씹어먹고 말 거야.”

“흐에에엥.”


bgm으로 서글픈 승윤이의 울음소리가 깔렸다.


그래. 쟤도 데리고. 한 번 부딪혀 봐야 할 것 같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랑을 전해 드립니다.


댓글과 추천, 선호작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당.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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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갑(甲)의 계산법 22.08.06 769 13 23쪽
89 돈지랄을 상대하는 법 22.08.05 772 11 17쪽
88 치기 어린 행동에 대한 대가는 그리 가볍지 않다 22.08.04 786 1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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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스타 이즈 본 +1 22.08.02 783 13 20쪽
85 배우가 되다 22.08.01 791 12 23쪽
84 드라마 속 짱 센 엑스트라가 되다 22.07.31 775 10 16쪽
83 경국지색 +1 22.07.30 825 10 19쪽
82 주연배우가 되기 위해 +2 22.07.29 801 10 18쪽
81 어깨에 힘을 풀고 22.07.28 794 10 25쪽
80 첫 촬영 22.07.27 815 12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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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드라마 너로 정했다 22.07.24 853 10 18쪽
76 박상혁 강화 프로젝트 +1 22.07.23 909 15 25쪽
75 sorry i’m strong 22.07.22 865 10 21쪽
74 집으로 22.07.21 862 10 21쪽
73 야밤의 전투 3 22.07.20 853 10 14쪽
72 야밤의 전투 2 22.07.19 853 10 16쪽
71 야밤의 전투 22.07.18 923 10 17쪽
70 현장학습을 가다 3 22.07.17 902 12 15쪽
69 현장학습을 가다 2 +1 22.07.16 938 13 16쪽
68 현장학습을 가다 22.07.15 976 15 13쪽
67 호가호위호위 22.07.14 964 13 19쪽
66 호가호위 22.07.13 987 15 16쪽
» 첫 친구 22.07.12 1,017 17 25쪽
64 1차 심사 22.07.11 1,082 16 15쪽
63 천하제일 친구대회 22.07.10 1,102 18 13쪽
62 친구를 만드는 법 22.07.09 1,180 19 15쪽
61 향상심 2 +1 22.07.08 1,255 22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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