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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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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21,531

작성
22.07.23 19:59
조회
909
추천
15
글자
25쪽

박상혁 강화 프로젝트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76화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도, 빵집 일도 한동안은 휴식이다.


여유가 생겼으니 고대하고 고대하던 ‘박상혁 강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일단 멧돼지 정도는 쉽게 이길 힘이 필요하고.”


일차적인 목표는 멧돼지로 잡았다. 그만큼 녀석은 충격적이었고, 강한 적이었으니.


다음에는 간당간당한 승리가 아니라 확실한 승리를 거두고 싶다.


“거기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운명과도 싸워 이길 수 있어야겠지.”


일이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앞으로도 방해나 암살시도가 종종 들어올 거 같은데.


그걸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븅신이다.


그동안 나도 X나 강해져서 운명이 무슨 개수작을 벌이던, 정면에서 처부술 생각이다.


‘정점의 DNA’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 이상 강해지는 건 문제가 아니다.


어떠한 방향으로 강해지는가가 중요할 뿐.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압도적인 무력이다.


하늘을 발아래 꿇리며, 모든 것을 부수고 터트릴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멧돼지가 아닌 그 무엇이 상대라도 두렵지 않으리라.


이를 위해 두뇌에게 미리 준비시킨 것이 있다.


정점의 DNA를 적용시킬만한 부위를 선별하라고 명령을 내려 두었다.


적용할 수 있는 부위가 생각보다 많은지, 얼마나 효율을 뽑을 수 있을지가 가늠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내 힘으로 괜히 깔짝대는 것보다는, 전문가의 추천을 따르는 게 수월할 터.


잠시 후 두뇌는 신체 강화에 쓸 만한 능력들을 허공에 띄웠다.


‘눈, 반사 신경, 속도, 악력, 회복력’


하나씩 선택하자, 얻을 수 있는 기대 효과가 간략하게 드러났다.


예를 들어 눈을 고르면 모든 것을 자세히 볼 수 있다던지.


반사 신경을 고르면 몸이 자동으로 상대의 공격을 회피한다던지.


설명을 한 번 쭉 읽어보았지만 생각보다 빡 꽂히는 게 없었다.


어차피 지금도 두뇌가 집중하면 상대가 천천히, 자세하게 보인다.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눈’이나 ‘반사 신경’ 비슷한 효과는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긍정. 이제 두뇌의 위대함을 알겠는지?’

‘몰라 이 자식아.’


잘나긴 했는데 거드름을 많이 피우는 능력이다.


여하튼 ‘속도’와 ‘회복력’도 비슷한 이유로 선택하지 않았다.


속도는 이미 걷기의 DNA를 활성화 하면서 어느 정도 챙길 수 있었고.


회복력은 수호의 DNA랑 겹치는 부분이 있다.


게임 캐릭터로 비유하면 조금 쉬울 것 같다.


보통 속도를 찍은 캐릭터는 암살자라고 보면 되고.


방어와 회복을 찍은 캐릭터는 자힐탱커로 분류한다.


둘 다 한 분야에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만...


난 그것보다는 모든 스텟을 두루두루 갖추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속도를 찍었는데 좁은 곳에 갇히면? 힐탱을 찍었는데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게임에서는 다른 스텟을 찍은 동료들이 도와주겠지만 나는 솔로 플레이어다.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치트와 같은 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때문에 다양한 공격 수단을 갖추려는 것인데 영 마땅찮다.


그나마 ‘악력’은 직접적인 공격 수단에 속하지만 접촉해야만 쓸 수 있다는 점이 살짝 아쉽고.


“야 두뇌야. 다른 능력은 없냐?”

‘무슨 능력?’

“왜. 초능력 같이 손에서 불 나가고 거미줄 나가고 그런 거 있잖아.”

‘부정. 그건 진화가 아닌 생성의 영역.’


혹시나 싶어 물어봤는데 대차게 까였다.


아무리 능력이 강해진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범주에서만 가능하다는 소리다.


인간이 못하는 능력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그런데 이미 원초적인 전투 수단인 주먹질, 발차기는 이미 강화를 끝마쳤다.


“애매하네.”


킥복싱으로는 멧돼지 가죽을 뚫을 수 없다고 홍 사범이 그랬다.


여기서 더 강해지려면 무기를 사용해야 했다.


세상의 어지간한 문제는 총으로 해결이 가능하니까.


문제는 우리나라는 총기 소유가 불가능하다는 점.


총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군대에 입대해서 장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다.


절대. 다시 그런 집단에 들어갈 일은 없으리라. 군대를 두 번 가느니 혀 깨물고 인생 3회차를 노리는 게 낫다.


신체 강화도, 무기도 안 된다면 남은 건 하나다.


돈. 돈으로 때리는 것이다.


아이X맨이나 배X맨이 강한 이유가 뭔가. 어마어마한 돈으로 현질을 했기 때문이다.


돈은 곧 힘이다. 돈만 많으면 나 역시 한시름을 덜 수 있으리라.


원래도 정점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을 조금 앞당긴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흠... 장사를 해야 하나?”


큰돈을 만지는데는 장사만한 것이 없다.


대왕카스테라, 밥버거, 핫도그나 밀크티 등 유행할만한 소스들은 충분하다.


걱정이 있다면 내가 장사 관련해선 잼병이라는 점. 나이가 너무 어리기에 뭘 주도적으로 하기도 어렵고.


그리고 이런 유행은 초반부터 작정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금방 대기업에 의해 파이를 빼앗기고 만다.


내가 한 10살만 더 먹었더라도 전면에 나서서 부딪힐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나이. 결국 나이가 문제다.


내가 얼마나 개쩌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미래의 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나이가 어리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다.


“첫 단추만 잘 끼우면 될 것 같은데.”


일단 돈을 벌기만 하면 그 뒤로 불릴 자신은 있다.


돈이 생기는 대로 샘숭전자에 때려 박았다가 기회를 봐서 코인, 부동산에 투자하면 된다.


다만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공부로 돈을 벌기는... 힘들겠지.


얼마 정도의 후원을 받겠지만 계속 성과를 내야할 테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공부 뿐만 아니라 경영도 잘 해야 한다.


운동으로 돈을 버는 것 역시 마찬가지.


어느 리그에 속해 몸값을 올리는 게 아니고서야 돈을 벌기 힘들다.


8살 꼬마가 나갈 수 있는 리그는 지하격투장 같은 곳 말고는 없지 않을까.


적지 않은 운동선수들이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한다 하더라도 정기적인 수입을 찾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빵집 돈을 땡겨 쓰자니, 불효자가 되는 것 같아서 좀 꺼려지고.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돈, 정기적으로 돈을 수급할 수 있는 일거리가 필요하다.


“에잇 모르겠다.”


gg를 치고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돈도 잘 벌어본 사람이 알 테니 가족의 지혜를 빌리도록 하자.


어차피 가족한테 숨기고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 * *


회의 참석자는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전원이 모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엄마였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빵집에서 업계 최고 대우를...!”

“기각!”


우리 가게에서 월급을 많이 받아봤자 제 살 뜯어먹기에 불과하다.


“저 때문에 엄마에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안 그래도 고생이 많으신데.”

“상혁아. 흐윽.”


8살이 하기엔 너무나 성숙한 말이었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고생을 알아준다는 사실에 감동의 눈물을 흘릴 뿐이다.


엄마는 날 껴안고 눈물을 흘리느라 더 이상의 참여가 불가능할 것 같다.


할아버지는 일단 참여하긴 했지만 돈 버는 일에 관련해선 경험이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한 쪽 구석에 박혀서 고개만 끄덕이고 계신다.


결국 나선 것은 할머니. 그녀는 베테랑답게 요점을 바로 잡아주셨다.


“나이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겠구나.”

“맞아요.”

“하지만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게야.”


막힌 혈을 뚫는 것만 같은 묘안이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른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린이에게는 어린이의 방식이 있는 법이고, 그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였다.


키즈모델, 아역배우, ebs 방청객, 인터넷 방송까지.


한 번 갈피를 잡자, 우후죽순처럼 아이디어가 솟구쳤다.


아이를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중, 말 잘 듣고 똑똑한 꼬마를 싫어하는 어른은 없으리라.


그들에게 있어서 나란 존재는 가뭄의 단비, 희귀템, 구원이 될 수 있다.


얼굴이 팔리는 단점 같은 건 있겠지만... 그런 거 다 따지면 세상에 할 일은 없을 터.


지금은 리스크가 있더라도 나아가야 할 때였다.


나는 할머니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좋은 거 같아요 할머니.”

“역시 할미가 최고지?”

“네!”


덕분에 방향을 잡았으니 이제 지원만 하면 된다.


아역과 관련된 일은 의외로 수요가 있는 편이다.


육아용품의 시장이 작은 것도 아니고, 가족과 관련된 방송을 찍을 때는 항상 꼬마가 등장하니까.


다만 취업의 문턱이 조금 좁다. 아는 사람만 아는 정보라고나 할까?


아직 알바가 천국인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공고를 찾아 지원을 해야 했다.


이 시기에는 정보도 돈이었으니까.


그래도 정보전에서는 나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내가 눈을 빛내며 컴퓨터에 앉으니 할머니가 고개를 기울이셨다.


“상혁아 뭐 하려고?”

“지원 공고 찾을 생각이에요.”

“그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게 있지 않겠니?”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할아버지를 가리켰다.


“아!”


그러고 보니 있었다. 나보다 정보전에서 뛰어난 사람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가만히 있던 할아버지가 당황했다.


“왜? 무슨 일 있어?”

“네.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해요.”


정확히는 카피바라를 상회하는 친화력을 가진 할아버지의 정보력이 필요했다.


찾을 수 있는 정보야 내가 더 많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분야는 인맥을 통해 들어가는 게 더 수월하다.


사정을 들은 할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지금까지 눈치를 보고 빠져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할아버지가 날 뛸 시간이다.


“그래. 한 번 보자꾸나.”


그 사이 어깨가 3cm는 높아진 할아버지가 품 안에서 수첩을 꺼냈다.


“어디보자. 저기 옆 동네 사는 만식이가 단역배우들을 관리한다고 그랬었지?”


그리고도 수첩에서 두 사람을 더 찾고 약속까지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똑똑한 할머니에, 유능한 할아버지가 판을 깔아주었다. 거기에 엄마의 응원까지.


이 정도면 못하는 게 이상하다.


“좋아요. 가 봅시다!”


‘정점의 DNA로 꼬마 대스타’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 * *


잠깐의 준비를 마치고, 할아버지와 나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어린이 의류브랜드 부장, 단역배우 소속사 사장, 어린이방송 PD. 이렇게 세 사람이 한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오늘 만나는 거에요?”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다들 모르는 사이인데 한 곳에서 기다리라 그래도 될까요?”

“에이~ 친구의 친구가 곧 친구 아니겠니? 걱정하지 마렴.”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갑작스럽고, 어색할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여유만만이었다.


역시 수백 명이랑 친구를 먹는 분은 다르다고나 할까.


저 정도는 되어야 저렇게 인맥을 넓힐 수 있구나 싶었다.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쫄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내 능력을 선보이고 상대의 호감을 사야 하는 자리이지만, 내가 누구인가.


하늘이 내린 천재이자, 불세출의 재능러가 아닌가.


오히려 상대 쪽에서 제발 우리 쪽으로 와달라고 애걸복걸하게 되리라.


까짓거 모델 포즈를 취하면서 표정 연기를 선보이고, 동시에 적절한 리액션을 펼치면 되지.


어렵지 않았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범주라 생각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묘기를 부릴 일은 없었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가 자연스럽게 교통정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갑수 형님. 오셨습니까?”

“어 그래. 반갑다. 다들 초면이지? 인사해. 여기는 우리 손자 상혁이.”


아저씨들을 순서대로 동수, 진영, 만식이라고 소개한 할아버지는 동수만을 남기고 테이블로 향했다.


“그럼 이야기 하고 와. 우리는 저기서 한 잔씩 하고 있으마.”


어린이 의류 브랜드의 부장이라는 동수는 살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할아버지의 손자라는 점이 큰 이점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동수가 가방에서 몇 가지 의류를 꺼냈다.


“상혁아 반갑다. 삼촌이 옷 좀 가져왔는데 입어볼 수 있겠니?”

“네!”


보통의 면접과 달리 지원동기 같은 건 물어보지 않고, 바로 실제 착용을 권유했다.


하긴 꼬맹이의 지원동기라고 해봤자 거창할 게 없을 테니까 당연한 건가?


나는 그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고 준비해 온 포즈를 취했다.


회귀 이전에 자주 보던 웹툰 중에 패션을 다루던 웹툰이 있었으니까.


한 쪽 다리를 굽히고, 나머지 다리는 사선으로 쫙 핀다.


거기에 양 손을 뒷머리에 올리면! 간지작살 포즈 완성!


‘흐흐. 어떠냐.’


이걸로 나도 패션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동수의 반응은 뚱했다.


‘... 이게 아닌가?’


역시 만화는 만화의 뿐인 것 같다.


다행히 내가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었기에, 재빨리 자세를 수정했다.


중요한 건 자신감. 어색하고 뻣뻣하게 있는 것보다는 당당한 포즈가 상대방의 호감을 사는 법이다.


그러자 동수의 표정도 좋아졌다.


그 때를 노려 준비해온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정점의 DNA의 미세한 컨트롤이 가능해져 사용할 수 있는 필살기를!


나는 팔과 다리의 근육을 활성화시켰다.


다만 평소와 다르게 적당한 수준으로.


이상적이면서도, 꼬마가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근육이 차올랐다.


그 이름하여 ‘반 활성화’.


동수의 입에서 처음으로 감탄사가 흘렀다.


“하아. 대단하구나. 혹시 다른 옷도 입어볼 수 있겠니?”

“물론이죠.”


옷을 갈아입는 와중에도 아저씨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동안 얼굴이 잘생긴 꼬마들은 만나봤어도, 이 정도로 몸이 좋은 꼬마는 만난 적이 없는 모양.


근육에 힘을 주자 아저씨의 입에서 계속 탄성이 나왔다.


“하아. 이건 놓치기 아깝구나. 핏감이 장난이 아니야. 갑수 형님이 그렇게 자랑하고 다니는 이유가 있었어.”


‘훗. 벌써 한 명을 함락시키고 만 건가?’


동수가 계약서를 꺼내 할아버지를 찾았지만 할아버지는 계약 관련 전권을 내게 맡겼다.


순간적으로 얼이 빠진 동수였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다잡았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마. 키즈모델은 그렇게 페이가 좋은 편이 아니란다. 신입일수록 그게 더 과한 편이야.”


그는 밑밥을 깐 뒤, 자신이 챙겨 줄 수 있는 부분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가 남도 아니고, 갑수 형님 손자니까 초짜 취급은 하지 않을게. 어차피 근육이 예뻐서 금방 업계에서 이름을 알릴 거야. 그러니 유망주라고 가정하고 보수를 측정했단다.”


그렇게 내밀어진 계약서에는 시간 당 20만원이라는 금액이 적혀져 있었다.


정확히는 15라고 적었다가 찍찍 긋고 20으로 바꾼 것이긴 한데, 결국은 20만원이니까.


인터넷에서 찾아본 키즈 모델의 평균 보수보다도 꽤나 쳐준 금액이다.


‘괜찮은데?’


첫 보수가 20만원이면 적지 않다. 앞으로 쭉쭉 치고 나가 몸값을 높인다 생각하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이 정도면 굳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안 들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손가락에 인주를 발라 계약서에 찍으려는 순간, 동수가 흘리듯 말 한마디를 추가했다.


“가을 시즌에는 별로 어울리는 옷이 없겠지만 말이다.”


지금 사진을 찍어봤자 게시되는 건 가을이다.


그러니 가을 옷을 찍어야 하는데, 가을 옷은 길이가 길다보니 내 근육을 뽐내기 어렵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동수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노출이 많은 옷이 있으니까 말이지.”


노출...? 혹시나 싶어 그게 뭔지 물어보았다. 손가락은 여전히 계약서 위에 멈춘 상태에서.


“그게 뭔데요?”

“아아. 바로 속옷모데...”

“안 할래요. 고생하셨습니다.”


속옷모델이라는 말에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다.


어쩐지 페이가 좋더라니.


지금이 인터넷이 없는 시대라면 모를까. 함부로 이런 걸 남겼다간 나중에 발굴되어서 요리돌림, 조리돌림 당하고 만다.


나는 나중에 정점에 이를 사나이다. 정계의 거물이 되던, 대기업의 CEO가 되던, 연예계의 슈퍼스타가 되던. 큰 사람이 되는 건 확정된 일이다.


그러니 속옷광고는 백퍼센트 발굴된다고 보면 된다.


밈이 형성되어 죽어도 사라지지 않아, 구천을 떠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키즈모델은 확실하게 거부하기로 했다.


동수 아저씨가 간절히 손을 뻗었지만 매몰차게 쳐냈다.


“상혁아...”

“할아버지! 다음 사람이요!”


그 말에 사람이 교체되었다. 이번에는 어린이 방송의 PD인 진영이었다.


그의 테스트는 어렵지 않았다.


진영이 말을 꺼내면 내가 맞장구를 치는 방식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지,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했는데 그는 퍽 흡족한 것 같다.


애초에 대화하는 건 내 장기 중 하나였으니까 당연한 결과다.


빵집의 마스코트를 하며 6년 가까이 단련했으니 방청객 수준은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방청객 역시 패스하기로 했다.


“할아버지 다음 사람 보내주세요!”


페이가 짜도 너무 짰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그냥 빵집에서 일을 하는 게 더 많이 받겠다.’


애초에 정식 패널도 아니고, 방청객한테 많은 돈을 주는 방송사는 없다.


그게 어린이 방송이라면 더욱 더.


방금 속옷모델 업계에서 20만원이라는 금액을 봤던 탓인지, 방청객의 보수가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진영은 아쉬움을 토했다.


“너라면 분명 최고의 방청객이 될 수 있을 텐데.”


어쩔 수 없다. 이 몸을 데려가려면 보다 많은 돈을 가져오도록.


마지막 주자는 단역배우들을 관리한다는 만식이었다.


그는 할아버지와 꽤나 달린 모양인지 얼굴이 빨개진 상태였다.


만식이 품에서 대본을 하나 꺼내 건냈다.


“아무 부분이나아 한! 군데 외워서? 연기하면 돼. 기초적인 암기려기랑 집중녁 끄으윽! 발썽 같은 걸 보는 거뉘까.”


술냄새가 진동했다. 암기력, 집중력, 발성을 본다는데 말하는 당사자의 발성이 죄다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정신을 차리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평소였으면 뺨을 붙여 올렸겠지만, 지금은 연기력 테스트니까 연기로.


대본을 건네받아 첫 장부터 쭈욱 살폈다.


만식은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첨언했다.


“아무 부분이나 대츙 해도 돼.”

“네. 잠시만요.”


귀찮은 모양이지. 빨리 가서 술이 마시고 싶나보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대본을 다 읽고 그에게 돌려주었다.


“어디 할 거냐?”

“처음부터요.”


이거 오랜만이다. 학교에서 아린 쌤한테 보여준 이후 처음이던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내 인생 첫 연기를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주인공이 모함을 뒤집어쓰고 고통을 받는 부분이다.


대본을 들고 있는 만식이 자연스럽게 상대역을 맡았다.


“무슨 말이기이는. 주옷된 거지. 크크큭.”


만약 발연기로 내 집중력을 떨어트릴 생각이었다면 충분히 성공이다.


나는 굴하지 않고 대사를 이어갔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뭐하러 우리 회사 기밀을 팔아넘기겠습니까?”

“그거야 조사하다보면 나오겠지.”


연기가 길어질수록 만식의 표정에 짜증이 서렸다.


말은 안하고 있지만 무슨 생각인지는 알 것 같다.


엑스트라가 대사가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저렇게 많이 외우냐는 뜻이겠지.


그래도 대놓고 뭐라고 하지 못하는 건, 이 자리에 할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나는 마음 놓고 대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연기가 대본의 3장을 넘어갔을 즈음, 만식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 어라?”


슬슬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연기가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작 한번 대본을 훑었을 뿐인데.


그 뿐인가? 단순히 대사를 읊는 것이 아닌 지문의 내용까지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만식은 놀라움에 대사를 받지 못했다.


나는 씨익 미소를 지어주고는, 만식의 대사까지 받아버렸다.


“하하! 그러게 평소에 잘 했어야지!”

“어... 그거 내 대사인데.”


단역배우 관리하는 일을 오래 한 만식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처음인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제는 1인 2역을 하고 있음에도 내 대사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았기에.


굳이 대본을 볼 필요가 없다. 내가 대본을 완전하게 수행하고 있었으니.


나의 완벽기억 능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결국 대본을 끝까지 소화하고 나서야 성에 차서 연기를 그만두었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박수가 쏟아졌다.


“와. 진짜 똑똑하구나.”

“천재 아닌가? 맞죠 갑수 형님.”


할아버지는 어깨를 쭉 피며 손자 자랑을 늘어놓았다.


손자 자랑이 10분을 넘겨 20분에 육박하고 있을 즈음 만식이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그는 술이 다 깬 모습이었다.


“그래서 어때요?”

“응? 아아. 굉장히 똑똑하더구나. 그 정도면 단순한 엑스트라가 아니라 조연급 단역을 맡을 수도 있겠어.”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사를 잘 외우는 꼬마는 희귀하다고 한다.


애들의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러 번 촬영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대사를 잘 외우는 꼬마를 조연급으로 설정한 다음, 극에 필요한 대사를 다 그 꼬마에게 넘긴다고 한다.


일종의 짬통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나 감독 입장에서는 그만큼 편한 존재가 없다.


그렇다고 꼬마에게 있어 손해는 아니다.


그만큼 카메라에 더 잡히고, 보수도 늘어난다. 누이 좋고 매부도 좋고 장인 장모까지 좋은 관계라 이 말씀.


“보수가 얼마 정도 나와요?”

“촬영이 있는 날만 일당으로 5만원 정도.”


인맥을 거쳐서 들어간 조연급 치고는 보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4일 일해야 속옷모델 한 번과 같은 금액이었으니까.


하지만 방청객보다는 괜찮은 편이고, 일주일에 촬영 횟수도 적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거기에 스펙이 쌓이고, 관계자들 눈에 띄면 다음엔 더 나은 역할을 맡을 수도 있기까지.


정점의 DNA로 적절한 보조를 한다면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는 배우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마음이 기울었다.


어차피 샘숭전자에 투자할 금액을 모을 때까지만 할 일이다.


지금 얼굴이 팔려봤자 나중에 잠적하고 모르쇠하면 아무도 모를 일이고.


맨날 TV를 멍하니 지켜보기만 하던 내가,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도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좋아요. 할래요. 제가 참고할만한 사항이 따로 있을까요?”

“음. 촬영 때문에 초등학교 등교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

“에이. 그건 상관없어요.”


학교의 주인은 교장이지만, 실세는 나다.


내가 학교를 며칠 안 나가겠다고 해서 교장이 반대를 할 수는 없다.


“또 뭐 있을까요?”

“조연급 되면 우리가 추천을 해도 저 쪽에서 한 번 면접을 가질 거야. 그러니 연기력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타당한 이야기다. 과연 내 연기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나야 언제나 자신이 있지만 관계자가 보기엔 또 어떻게 다를지 모른다.


혹여나 발연기 수준이었다간 아예 시작부터 안 하는 게 나을지도.


그러나 만식은 대답이 없었다.


“별로였나요?”

“아니. 기억이 없어서. 한 번만 다시 보여줄 수 있겠니?”


아무래도 내가 보여준 퍼포먼스가 너무 놀라워 연기에는 신경을 못 쓴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내가 너무 잘난 걸 어떡하겠나.


부디 이번에는 눈을 똑바로 뜨고 보길 바란다.


마침 대본에 이 장소에 어울리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있는 테이블에 가서 소주잔을 쥐었다.


“... 상혁아?”


만식이 난색을 표했으나 멈추지 않았다.


잔에 물을 가득 채운 뒤, 한 입에 들이켰다.


“크으~”


단순히 공기를 내뿜는 게 아니다.


회한, 괴로움,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술기운과 함께 토해지고 있었다.


“X발. 술이 왜 이렇게 안 쓰냐... 인생이 좆같아서 그런가?”


뭉개지는 발음에, 늘어나는 말꼬리. 꾹 억누르지만 새어나오는 슬픔과 억울함까지.


7살의 연기라고는 믿지 못할 생생함이었다. 정말 술을 마신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이건 인생의 쓴 맛을 맛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연기다.


회귀 이전 술을 달고 살았기에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연기였고.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만식이 보기엔 그저 인생을 비관하고 있는 주인공이 눈앞에 있을 뿐이었다.


그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연기 테스트는 끝이다.


만식은 한동안 바쁠 예정이 될 거라고 실감했다. 천재 아역 배우를 위해 걸맞은 배역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언제나 감사합니다


선호작, 댓글, 추천이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돈을 쓸어 담을 예정입니다. 그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아역 배우입니다요.


아예 노선을 바꾼 건 아니고, 2챕터 정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중간 중간에 학교 아이들, 가족들의 이야기도 다룰 생각이에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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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54 so****
    작성일
    22.12.16 02:03
    No. 1

    굳이 배우를? 이 정도면 그냥 주인공 욕심이지... 피지컬도 좋고 머리도 좋은데 굳이 배우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게, 운동선수로 대회 나가서 상을 타도 되고 머리로 상 타는 대회를 나가도 됨. 베이스가 좋으니 굳이 노력을 안 해도 상 탈수 있을거고, 그러면 시간 대비 상금 싹쓸이 하면 말단부터 시작해서 일당 받는것 보다 페이도 좋지. 그리고 2006년부터 유튜브 할 생각은 왜 안함? 유튜브가 얼마나 돈이 될지 몰라서 그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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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야밤의 전투 2 22.07.19 854 10 16쪽
71 야밤의 전투 22.07.18 924 10 17쪽
70 현장학습을 가다 3 22.07.17 903 12 15쪽
69 현장학습을 가다 2 +1 22.07.16 940 13 16쪽
68 현장학습을 가다 22.07.15 979 15 13쪽
67 호가호위호위 22.07.14 968 13 19쪽
66 호가호위 22.07.13 989 15 16쪽
65 첫 친구 22.07.12 1,018 17 25쪽
64 1차 심사 22.07.11 1,083 16 15쪽
63 천하제일 친구대회 22.07.10 1,103 18 13쪽
62 친구를 만드는 법 22.07.09 1,182 19 15쪽
61 향상심 2 +1 22.07.08 1,256 22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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