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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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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21,531

작성
22.07.2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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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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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23쪽

첫 촬영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80화



어느덧 첫 촬영 날이 다가왔다.


이래 뵈어도 나는 아직 8살 꼬맹이인지라 누군가 촬영장까지 나를 데려다 주어야 했는데.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두고 가족끼리 각축전이 벌어졌다.


가장 먼저 나가떨어진 건 의외로 엄마였다.


“가게 주인이 자리를 비우면 어떡하니?”

“씨이... 그래도 상혁이가 더 중요한데.”

“너만의 가게가 아니잖니. 종업원이랑 손님들은 생각 안 해?”


엄마는 가게의 주인이다. 유리 누나가 실력이 많이 늘긴 했어도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그녀가 축 늘어졌다. 그래도 승부는 납득하는 모양.


남은 사람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선공은 할아버지가 가져갔다.


“크흠. 가게 주인은 자리를 지켜야하지 않겠는감. 나는 운전도 할 수 있는데.”

“하이고. 그런 중요한 자리를 어떻게 당신한테 맡겨요. 차라리 버스를 타고 말지.”


두 사람은 팽팽하게 대치했으나, 경제권을 쥐고 있는 할머니가 용돈을 인질로 잡았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호호호. 가게나 잘 지켜요. 우리 상혁이는 이 할미가 데려다 줄 테니까.”


그렇게 되어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촬영장 입구에는 출입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방송사 사람으로 보인다.


면접 합격자 출신인 나는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가슴을 들이밀며 신원을 밝혔다.


“안녕하세요. ‘나비효과’ 엑스트라 박상혁이라고 합니다.”

“아 엑스트라요. 잠시만요.”


스태프는 명단을 확인하고는 돌아와 손을 휘적거렸다.


“아 네 들어가세요.”


엑스트라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태도가 건성으로 바뀌었다.


살짝 김이 빠지긴 했지만 그러려니 한다. 엑스트라는 그런 법이지 뭐.


“그런데 어디서 기다리면 되는 거지?”


스태프는 들어가라는 말 뿐, 어디로 가라는 안내는 해주지 않았다.


다시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 남자는 어느새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바쁜가 보네.’


첫 날이라고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촬영장은 부산스러웠다.


감독부터 말단 직원까지, 어느 누구 한가한 사람이 없다.


첫 촬영이 시청률의 추이를 좌우하기 때문일까?


라이벌이 있는 만큼, 1화에 열과 성을 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좋네.”


면접 때 감독을 자극했던 것이 아직까지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다들 ‘다시 그때로’ 측을 죽여 버리겠다면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조금은 김샜던 마음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연출 구도를 잡는 감독부터, 촬영 세팅을 하는 촬영 팀, 현장을 함께하는 작가, 그 외 잡다한 부분을 담당하는 스태프들까지.


여러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분주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 역시 가슴이 벅차는 느낌이 자연스레 들었다.


“할미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볼까?”

“아뇨. 시간도 있으니까 한 번 둘러보고 싶어요. 인사도 드릴 겸.”

“그러자꾸나.”


할머니께서도 드라마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여정에 동참해주었다.


하지만 그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안녕하세요. 민수 역할을 맡...”

“네. 반가워요.”


현장에선 일 못하는 사람보다, 인사를 안 하는 사람을 더 싫어한다.


그 때의 경험을 살려 보이는 족족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고 있는데, 그 짧은 한 마디를 다 내뱉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친절한 편이다.


“안녕하세...”

“바빠요.”


힐끗 보고 견적을 낸 다음, 자신이 대꾸할 군번이 아니다 싶으니 바로 귀찮다는 듯 쫓아내는 사람.


“안녕하세요오오.”

“...”


그냥 무시하는 사람까지.


나는 엑스트라가 왜 엑스트라인지 알 수 있었다.


사람 취급을 못 받으니까 extra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감독과 작가가 아는 체를 해 주어서 체면은 지킬 수 있었다.


“아. 민수. 잘 해보자.”

“잘 좀 부탁해요.”


그마저도 촬영을 잘 하라는 응원 겸 당부가 전부였지만.


어쨌든 그래도 아예 쌩 무시를 당한 건 아니라 다행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할머니가 나섰을지도 몰랐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싸가지가 없는 거 아니니? 그러다 나중에 큰 코 다치지.”


물론 할머니는 경우가 있으신 분이니 직접적인 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욕을 한 바가지로 내뱉을 뿐.


저렇게 화를 내시는 것도 내가 주눅이 들까봐 걱정되어서 그런 거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 느낌은 오랜만이네.’


빵집에선 마스코트이자 1옵션이었고, 나를 따르는 종교가 하나 있었으며, 학교에서는 내가 왕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겪는 홀대가 신선한 느낌이다. 오히려 개무시를 당하는 게 즐겁기까지.


정점의 DNA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어서 나오는 여유일까?


이제부터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는 과정이 즐거우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정점에 도달했을 때 주위가 어떻게 바뀔지를 생각하면 오싹오싹하게 소름이 돋는다.


그러니 지금은 잠시 엑스트라의 신분을 즐기도록 하자.


“스태프님. 혹시 엑스트라는 어디에서 대기하면 돼요?”

“걸리적거리지 않는 곳에 알아서 모여 있어요!”


알아서라. 되게 모호한 지시사항이다.


엑스트라는 촬영장에 많이 안 와봤을 텐데 어디가 걸리적거리는지, 안 걸리적거리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렇다고 아무 곳에나 앉으면 개지랄 할 게 뻔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니 엑스트라 몇 명이 촬영장 구석에 쳐박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가 안전지대인지를 모르니 아예 구석에 찌그러져 있자는 선택인 것 같다.


나야 현장 짬밥이 몇 년인데 흙바닥에서 뒹굴며 밥을 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할머니랑 있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여 방법을 모색하던 차에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어, 민수 역의 상혁이 아니야. 여기서 뭐 하고 있니?”


면접 때 만났던 드라마 팀장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첫 촬영이라고 격려 차 온 것 같다.


운이 좋았다. 나한테 우호적인 사람이니 입만 잘 털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팀장님! 다름이 아니고 할머니가 앉으실 의자 같은 게 없나 해서요.”


대놓고 자리를 옮겨달라는 말은 너무 속보이기 때문에 비슷한 화두를 던졌다.


다행히도 팀장은 알아서 상황을 이해한 듯하다.


“아. 확실히 꼬마랑 어르신을 바닥에 앉게 할 수는 없겠네. 가만있어 보자 공간이 어디 없나...?”


좋다. 팀장이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겸양이나 떨기로 했다.


“아니에요. 팀장님. 저도 엑스트라인데요.”

“에이, 그래도 너는 조연급이잖니. 면접을 보고 들어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렴.”


잘 안다. 이미 자부심은 빵빵하고. 드러내지 않을 뿐.


어쨌든 팀장 덕분에 촬영장 구석이 아닌, 그럴듯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이름도 거창한 ‘배우 대기실’. 뭔가 들어가면 대배우가 잔뜩 있을 것 같은 이름에 조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팀장님. 정말 저 곳에 들어가도 되는 거 맞아요?”

“그럼! 이름만 거창하지 사실 안에 의자밖에 없어.”


그렇게 듣고 보니까 생각보다 허름해보이긴 한다.


“그래도 들어갔는데 막 ‘니까짓 게 감히 여길!’ 이러면서 김치로 싸대기를 때리고 그런 건 아니겠죠?”

“에이 설마 그러겠니?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아역배우 두 명밖에 없거든. 그보다 김치 싸대기라... 그거 괜찮구나.”


팀장님은 우리를 데려다 주고, 다시 바쁘게 어딘가로 떠났다.


김치 싸대기를 계속 중얼거리시는 걸로 보아 적잖이 꽂힌 모양.


어쩌면 나는 대한민국 막장 드라마의 계보를 조금 앞당긴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앉아 있을 장소가 생겨서 다행이다.


안에 누가 있는지 알게 된 이상, 거리낄 건 없다. 나는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팀장의 말대로 그곳엔 아역 남주와 여주, 그리고 그 관계자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역 민수 역할을 맡은 박상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가 흩어졌다.


“누구래?”

“몰라.”


건방진 인상의 남자 꼬맹이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 인사를 귀담아 듣지 않은 듯하다.


‘쟤가 그 유명한 김태양이구나.’


김태양은 나비효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다.


아버지가 중견기업 회장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덕분인지 그저 그런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TV에 얼굴을 비추었다.


하지만 녀석이 이름을 알린 것은 연기 때문이 아니다. 범죄 이력 때문이지.


놈은 훗날 유명한 난봉꾼이 된다. 재력과 인지도를 이용하여 여러 여자들을 가지고 놀다가 폭로가 터져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게 뉴스였던가.


금발로 염색하고 태닝을 한 태양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 이름값을 잘 하는 놈이다.


‘별로 달갑지는 않네.’


드라마에 합류하면 만나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장래가 촉망한 인재이긴 하지만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


처음으로 만난 배우가 저 녀석이라니 뭔가 손해 본 기분.


비위가 상해 아역 여주인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한별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예쁘네.’


유명 배우를 실제로 마주하니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음을 놓고 있었다면 감탄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을지도 모른다.


김태양을 보고 상했던 비위가 치유되는 느낌이다. 그래봤자 아직 꼬마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가볍게 인사를 마친 뒤 다시 연기 연습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혼자서도 참 열심이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연습하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런 소문이 돌았단 말이지?’


유한별은 커리어에는 히트작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더 없이 찬란한 커리어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녀는 항상 연기력 논란이 따라 다니곤 했다.


얼굴은 예쁜데, 작 중 분위기를 묘하게 흐린다나 뭐라나.


악플의 심각성이 처음으로 불거진 게 아마 저 유한별 때문일 것이다.


지속적으로 인신공격을 당한 그녀는 화려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TV에 나오지 않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잠시 그녀의 연기를 지켜봤는데 감정이며, 발음, 동작까지 흠 잡을 부분이 없었다.


‘아무래도 헛소문이었나 보네.’


하긴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는데 연기를 못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래도 연기를 괜찮게 했으니까 ‘나비효과’가 승리한 것이겠지.


한별의 모습에 의욕을 받은 나는, 방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연기 연습에 돌입했다.


내가 지금 남을 평가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가 막힌 연기를 선보여 제작진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실력행사를 하면 받는 대우도 달라지겠지.


“에휴. 부질없을 텐데.”


어디선가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집을 안 짓고 놀기만 하는 돼지 새끼는 늑대에게 배때지를 따이는 법이니까.


아기돼지 삼형제의 원작이랑 뭔가 다른 느낌이 든다면 그건 기분 탓이다.


나는 저 불쌍한 녀석을 꼭 집어 삼키고 말 테니까.


그 뒤로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나비효과의 1화는 어른 여주인공이 사회에서 고통을 받다가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드라마를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라고는 해도 아역들의 촬영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남는 시간 동안 연기 연습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다가, 어른 배우들의 촬영을 엿보기도 했다.


시간이 길어지니 할머니께 먼저 귀가하시라고 권유를 해보았으나.


“그래도 우리 손자 첫 촬영은 구경해야지. 내일부터 출퇴근 식으로 바꾸마.”


라며 강경하게 나오셔서 말릴 수는 없었다.


그나마 대기실이 있어서 다행이지. 촬영장 구석에 쳐박혀 있었으면 골병이 들고도 남았으리라.


“아역분들 준비하세요. 곧 촬영 들어갑니다.”

“네!”


드디어!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스태프가 우리를 찾았다.


나는 태양과 한별을 따라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감독이 우리를 발견하고 찍을 장면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한별아 너는 도망을 치다가 나비를 만나 과거로 넘어온 거야. 어떤 느낌인지 알지?”

“네!”

“태양이 너는 여주인공이 미련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야. 분위기 있고 잘생기게, 뭔가 있는 것처럼.”

“네~”


따발총 같이 요구 사항을 늘어놓던 감독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어. 음. 상혁아. 너는 친구 역할 잘 하고.”

“네.”


배역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다 보니 코멘트나 관심도 적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괜찮다. 머지않아 모든 사람이 내 연기를 확인할 테니.


원래 주인공들보다 엑스트라가 더 강한 법이다. 잘나가는 소설들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의 연기가 무엇인지 아낌없이 보여주리라.


보는 사람들은 이마를 치고, 무릎을 치고 부라... 아니 고간을 탁 칠 정도의 연기.


그 서막이 시작! 하려던 찰나 문제가 생겼다.


촬영을 시작한지 1시간이 되었음에도 내 차례가 안 돌아오고 있다.


배역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지메를 당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한별의 연기에 OK 싸인이 안 나오고 있는 것뿐이다.


“컷. 한별아. 내가 몇 번을 말해! 중요한 장면이라고. 당황, 그리움, 기쁨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야 한다는 말 못 들었어?”

“죄송합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그럼에도 다음 연기에서 OK 싸인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결국 감독과 한별이 1대 1 대면을 가지는 것으로 잠시 쉬는 시간이 부여되었다.


원활하지 않은 촬영 때문인지 스태프들도 사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나는 귀만 쫑긋 세워 그들의 대화를 훔쳐 들었다.


“이번이 몇 번째지?”

“10번은 넘었을 걸.”

“이래도 되려나. 이거 분명 나중에 이야기 나올 텐데.”


역시 이 정도로 촬영이 늘어지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확실히 한별의 연기가 연습할 때보다 어색하게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10번이나 빠꾸를 먹을 정도로 엉망이지는 않았다.


때마침 스태프들도 그 부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조금 어색하긴 한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그냥 괜찮아서는 안 되지. 우리는 다시 그때로를 부숴버려야 하잖아.”

“하긴. 그건 그래.”


그들은 한별을 안쓰러워하면서도 감독의 결정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덕에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열기가 너무 올랐는데?”


적당한 불은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고, 음식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 불이 통제가 안 될 정도로 심해지면 사람을 불태우고 만다.


지금 제작진이 딱 그 상태였다.


아침부터 심상치 않은 열기를 보인다 싶더라니, 지금 보니 의욕 과다 상태였다.


그 때문에 완벽한 촬영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조그만 오점이라도 발견하면 계속 재촬영을 하고 있는 거고.


사실 아역 배우들이 조금만 더 연기를 잘했으면 더 없이 완벽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감독이 한계의 한계까지 아역의 재능을 끌어내는 것이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아역들은 연기가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태양은 아빠 빽으로 들어온 녀석이고, 한별은 연기력 논란이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나비효과가 이겼는지 싶을 정도.


분명 다른 쪽에서 강점이 있었겠지.


원래의 흐름대로라면 그 점을 잘 살려서 대박을 쳤을 거고.


그런데 누군가가 제작진들의 의욕을 불태운 탓에 일이 살짝 꼬이고 말았다.


‘X발.’


안타깝게도 그 누군가가 나인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어떻게 내가 뭘 하려고만 하면 일이 이렇게 꼬이는지 모르겠다.


열정적인 제작진과 실력 없는 아역배우들이 쏟아내는 시너지는 최악이라 봐도 무방했다.


오히려 이러다가 촬영장 분위기만 나빠지고, 아역 배우들도 자신감을 잃고.


결과적으로 1화도 이상하게 뽑혀서 ‘다시 그때로’가 승리를 차지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의 ㅈ같은 운명을 생각하면 100퍼센트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악은 험악해진 분위기 때문에, 나의 하이퍼 울트라 초 그레이트한 연기가 묻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어찌저찌 내 상황까지 찾아오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백 번도 넘게 연습한 대사를 내뱉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과거라니?”

“OK. 컷.”


카메라 앞에서 처음으로 내뱉는 대사다 보니 완벽하지는 않았다. 긴장도 했고.


그래도 아역, 엑스트라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연기라 스스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거 봐라. 내가 멋진 연기를 선보였음에도 별다른 코멘트가 없지 않나.


감독은 그냥 기계적으로 컷을 내리고 다시 한별에게로 주의를 기울일 뿐이었다.


사람은 여유가 없을 땐, 주변의 것을 살피지 못한다.


자기 할 일이 바빠서 눈앞에 다이아가 떨어져 있든, 외제차 차키가 떨어져 있든 못 보고 지나치고 만다.


“이럼 나가리인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연기력으로 다 때려 부수겠다는 계획이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해결법은 간단하다. 한별의 연기 실력을 감독의 요구치까지 끌어올리면 된다.


그럼 감독도 나의 연기를 감상할 여유를 되찾게 되겠지.


아무래도 내가 나설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 *


결국 촬영은 엉성하게 끝이 났다.


감독이 도저히 한별의 연기를 납득할 수 없다며, 그녀의 촬영 분량만을 내일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까지는 답을 찾아와. 반드시! 무조건! 너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고!”

“넵. 죄송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추가 촬영이 남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한별을 찾았다.


분명 한별의 연기 실력은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높다.


하지만 그녀가 겪고 있는 문제는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의 문제는 실력이 아닌 경험과, 방향성의 문제였기에.


가까이에서 연기를 지켜보고, 감독의 원하는 바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깨달을 수 있었다.


한별이 지금 엄한 곳을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니, 분명 감만 잡으면 괜찮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으리라.


그럼 그녀도 좋고, 나도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서로 좋은 일이라 생각하여 한별을 찾았는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팍 상해서 혼자 있고 싶은 모양인데, 지금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하루라도 빠르게 절치부심 으쌰으쌰해서 연기를 성공시켜야 했기에, 조금 전력을 다해 그녀를 찾기로 했다.


걷기의 DNA를 발동시키고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여자화장실에 들어간 게 아니라면 도망가지 못할 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 화단에 혼자 앉아 있는 한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별아!”

“크흐흐읍. 크흐어엉.”


그 애의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촬영장에서는 혼나면서도 감정을 잘 억누르길래 역시 프로 배우는 다르구나 감탄했었는데. 아무래도 꼬맹이는 꼬맹이인 모양.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TV에는 비추지 않는 유명인의 인간적인 일면을 본 것 같아 신기했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다급하게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여긴 킁, 뭐하러 히끅 온 거야?”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이전의 진지한 표정을 짓는데 성공한 한별이다.


그와 별개로 목소리는 여전히 젖어 있었지만.


일단 이상한 사람이라는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찾아온 목적을 밝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늘 연기를 보면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를 찾은 거야.”


최대한 아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가시 돋힌 냉대 뿐이었다.


“니가 뭔데?”


뭐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조연급 엑스트라 민수.”


내 대답을 들은 한별의 표정이 더 없이 차가워졌다.


“엑스트라? 나이는 몇 살인데.”

“8살.”

“씨.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연기도 못하는 게. 뭘 안다고.”


격려해주러 왔다가 오히려 내 마음에 스크레치가 생기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한별의 나이가 10살, 태양의 나이가 11살로 둘 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


하지만 나는 누적 나이 38살인데...


그래도 일단은 설득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공자님이 그러는데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걸으면 거기에 반드시 스승이 한 명쯤은 있는 법이랬어.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너는 왠지 나머지 두 사람일 거 같아.”


최대한 어른스럽게 접근을 해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입은 듯하다.


종로에서 맞은 뺨을 한강에 와서 흘기는 걸 보면 말이다.


공자 선생님이 저렇게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걸 보셨어야 할 텐데. 아마 회초리부터 꺼내지 않았을까?


아, 그곳에서 보고 계신가요 공자 센세.


몇 가지 격언을 더 꺼내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고, 나는 한별을 설득하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이래서 인지도나 명예가 중요하다. 게임을 하다보면 그렇게 명예를 쌓으라고 플레이어를 닦달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새초롬한 한별에게 인생의 쓴 맛을 보여줄까도 했지만 참기로 했다.


저 상태에선 뭘 해도 악효과만 날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쟤랑 원수 진 것도 아니고, 그냥 잔뜩 혼난 꼬마에 불과했으니까.


성공을 향한 길을 조금 더 돌아가게 되었지만, 결국은 내가 쇼 앤 프루브 하지 못한 탓 아니겠나.


원래 멋진 사람은 계획 하나가 틀어졌다고 해서 당황하지 않는다.


가진 것을 토대로 새로운 방안을 수립할 뿐.


그리고 나 역시 평범한 꼬마는 아니다. 풀소유 꼬맹이다.


그러니 성공을 가로막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꺼내들 수 있었다.


한별의 연기력을 고치지 못한다면? 촬영장의 분위기를 개선하면 된다.


보다 스케일이야 커지겠지만 충분히 감당 가능한 범주였다.


예민한 사람한테는 당분을 채워주는 게 제일이다.


내 주변에는 우연히도 그 업계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 두 분이나 계시고.


나는 나를 기다리고 계신 할머니에게 달려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함모니! 부탁이 있어요!”


코맹맹이 소리를 시전한 순간 할머니의 표정이 미소로 물들었다.


제작진 녀석들, 동네 최고의 떡 맛을 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댓글도 선호작도 추천도 큰 힘이 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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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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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갑(甲)의 계산법 22.08.06 769 13 23쪽
89 돈지랄을 상대하는 법 22.08.05 773 11 17쪽
88 치기 어린 행동에 대한 대가는 그리 가볍지 않다 22.08.04 787 13 18쪽
87 오히려 좋아 22.08.03 769 10 17쪽
86 스타 이즈 본 +1 22.08.02 783 13 20쪽
85 배우가 되다 22.08.01 791 12 23쪽
84 드라마 속 짱 센 엑스트라가 되다 22.07.31 775 10 16쪽
83 경국지색 +1 22.07.30 825 10 19쪽
82 주연배우가 되기 위해 +2 22.07.29 801 10 18쪽
81 어깨에 힘을 풀고 22.07.28 794 10 25쪽
» 첫 촬영 22.07.27 816 12 23쪽
79 오리지널 vs 가짜 +1 22.07.26 822 13 21쪽
78 어린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처럼 22.07.25 815 10 16쪽
77 드라마 너로 정했다 22.07.24 853 10 18쪽
76 박상혁 강화 프로젝트 +1 22.07.23 910 15 25쪽
75 sorry i’m strong 22.07.22 865 10 21쪽
74 집으로 22.07.21 863 10 21쪽
73 야밤의 전투 3 22.07.20 853 10 14쪽
72 야밤의 전투 2 22.07.19 854 10 16쪽
71 야밤의 전투 22.07.18 924 10 17쪽
70 현장학습을 가다 3 22.07.17 903 12 15쪽
69 현장학습을 가다 2 +1 22.07.16 940 13 16쪽
68 현장학습을 가다 22.07.15 979 15 13쪽
67 호가호위호위 22.07.14 968 13 19쪽
66 호가호위 22.07.13 989 15 16쪽
65 첫 친구 22.07.12 1,018 17 25쪽
64 1차 심사 22.07.11 1,084 16 15쪽
63 천하제일 친구대회 22.07.10 1,103 18 13쪽
62 친구를 만드는 법 22.07.09 1,182 19 15쪽
61 향상심 2 +1 22.07.08 1,256 22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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