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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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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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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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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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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27쪽

향상심 2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61화



문제점을 고쳤으니, 이제 장점을 발달시킬 차례다.


나에게 있어 최대 강점이라 함은 ‘정점의 DNA’라고 볼 수 있다.


능력의 개발 여부에 따라 활약할 여지가 판이하게 달라질 정도로, 규격 외의 힘이다.


그래서 그동안 간간히 건드려보았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래저래 사건도 많아 시간을 많이 못 쏟기도 했고.


이제 좀 주변이 조용해졌으니, 다시금 두드려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각을 잡고 본격적으로.


“그러기 위해선 장소를 바꿔야지.”


공부방에서 수련을 하는 주인공은 없다. 시간과 정신의 방이든, 샤봉디 제도든 적합한 곳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단은 운동장으로 향했다.


초등학생들의 피와 땀, 눈물로 다져진 대지는 이 몸을 키우기에 적합한 곳일지도 모르니까.


그대로 나가려는데 방해가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이 문 앞을 지키는 중이다.


“상혁이 또 나가려 그러지!”


옆 방 이웃이자 자칭 라이벌 김지훈이다.


바로 옆방이라 소리가 잘 들리는 건지, 내가 땡땡이를 치려 할 때마다 귀신같이 먼저 나와 기다리곤 한다.


“어. 같이 갈래?”


여느 때와 같이 권유하자 지훈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상혁아 개미와 베짱이라고 알아? 아무리 뛰어나고 잘난 사람이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법이야.”


호오. 오늘은 녀석이 도발을 준비해 온 것 같다.


녀석을 놀리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기꺼이 받아주기로 했다.


우선 도발의 의도부터 살피기로 했다.


많고 많은 전래 동화 중에 굳이 개미와 베짱이를 고른 이유가 뭘까?


‘나를 자극시켜 어떻게든 공부를 시키려는 것이겠지’


공부는 저 녀석의 분야다. 유일하게 나와 견줄 시도라도 해 볼 수 있는 분야기도 하다.


지훈의 말이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을 상대해달라는 말로 들렸다면 착각일까?


요즘 신경을 덜 썼더니 깜찍한 행동을 다 하고 있다.


아무리 삼길초의 용, 희망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8살 꼬마였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착하게 우쭈쭈해주는 성격이 아니다.


순진하게 우화를 믿고 있는 녀석에게 삭막한 현실을 들려줄 차례다.


“그거 이솝 우화에서는 원래 베짱이가 아니라 매미였던 거 알아?”

“응? 그...래?”

“그래. 여름에 짧게 노래를 부르는 매미랑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개미랑 대비시켜서 만든 우화라고 하더라고.”


의심 어린 눈초리가 느껴졌다.


그래도 그동안 내 밑에서 헛배운 건 아닌 것 같다.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진실이다.


“정말이야. 인터넷에서 봤어.”


그 뭐냐, 에이브러헴 링컨 대통령도 그런 말을 했다지 않나. ‘인터넷에 적혀 있다면 그 말은 모두 진짜다.’


어떻게 컴퓨터도 없는 시대에 인터넷을 알고 있는지, 왜 사진에는 링컨 말고 딴 사람이 들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단다.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지훈이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설령 매미가 아니라 베짱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야. 베짱이도 어차피 수명 때문에 겨울 전에 죽거든.”

“그렇구나.”


지훈이의 어깨가 축 처졌다. 분명 아는 척은 자신이 먼저 시작했는데 어느새 설명하는 쪽과 듣는 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 과연 겨울 태생이 아닌 베짱이를 굳이 겨울에 굴릴 필요가 있을까?”

“아니.”

“그래. 베짱이는 여름에 노래를 부를 때가 가장 멋진 곤충인 거야. 모든 생명한테는 자기가 빛날 수 있는 시기라는 게 있다고.”


대충 지껄인 말에 지훈이가 감명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는 그게 지금이다 이거지. 지금 내가 이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 음?”


지훈이의 고개가 35도 정도로 기울여졌다.


맞는 말이고, 멋진 말인데 결론이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거 맞아?”

“응. 맞아.”


지훈이는 입만 달싹일 뿐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래... 갔다 와.”


논파 완료. 애초에 나랑 논리 대결을 하려고 하다니 10년은 이르다.



결국 녀석은 고개를 푹 떨구고 방으로 돌아갔다.


역시 똑똑한 녀석을 놀리는 게 가장 재미있는 것 같다.


이대로 ‘초등학생이 바깥에 나가 노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면 같이 데리고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만약 멀쩡히 공부 잘 하는 애 나쁜 길로 들였다가는 그 날로 수석 아줌마가 칼을 들고 쫓아올 것 같으니까.


요즘 수석 아줌마랑 엄마랑 친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 굳이 내가 끼어들어 초를 칠 필요는 없다.


올 때 바나나 우유라도 하나 사다가 줘야지.


* * *


운동장은 체육 수업이 한창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땡땡이를 치는게 막 눈치가 보이고 그렇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체육은 그냥 공 하나 주고 애들을 뛰어 놀게 시키는 것이 국룰 아닌가.


덕분에 운동장에 스리슬쩍 끼어들어도 땡땡이 중이라는 사실이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다만 이 몸이 너무 유명하다는 게 문제일까?


스스로 말하는 것도 조금 그렇지만, 나의 유명함은 학년이나 반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면 나를 알아보는 애들이 꽤나 나올 것이고.


평범했던 체육시간은 박상혁 쟁탈전으로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만약 붙잡히면 하루 종일 공중제비를 돌게 되겠지.


이를 피하기 위해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삼길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낙후된 건물이 하나 있다.


구 교사, 현 창고로 사용하는 건물인데 마침 그곳에 철봉과 작은 터가 있었다.


파상풍만 조심하면 신체를 단련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그 장소로 이동해 몸을 풀며, ‘정점의 DNA 활성화 계획’을 다시 점검해보았다.


심장에 손을 올렸다.


심장 부근엔 아직도 4개의 조그만 이물감이 느껴진다.


이 이물감이야말로 DNA 활성화의 핵심 키라 할 수 있다.


회귀 초반에는 6개였던 것이 걷기를 활성화 시키며 5개가 되었고, 반격을 익히며 4개가 되었다.


다음 DNA를 진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이물감을 터트려 3개로 만들어야한다는 소리다.


‘문제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점이지.’


흥분, 강렬한 감정이 격발장치가 되는 것은 분명한데 딱 거기까지다.


화약이 있다고 그 자체로 폭탄을 발사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감자, 생닭, 당근, 고추장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고 해서 닭볶음탕이 연성되는 것이 아니다.


과정. 보다 세밀한 과정을 알고 있어야 한다.


‘과정만 제대로 알았어도 이미 대한민국의 정점을 찍고, 세계 편을 시작하고 있었을 텐데.’


괜히 불만이 차올라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쓸모없는 두뇌 녀석 같으니라고.”


만만한 게 두뇌 녀석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미 3번이나 경험을 했음에도 과정 하나 기억 못하는 게 말이 되나?


그래놓고도 정점에 이른 두뇌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한창 투덜거리고 있자니 변명 비슷한 것이 들려왔다.


‘억울.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아주 세밀한 신체의 작용을 관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틀린 말은 아니다. 이성이 날아갈 정도로 감정이 요동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누구보다 냉철하게 집중을 해야 한다니 상당히 모순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시키는 쪽은 어떻게든 성과를 내라고 독촉하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정점이라면 해 내야지. 혹시 정점이 아니라 허접의 두뇌 아냐?”


‘기본 베이스가 되는 기억력과 집중력이 미천해서...’


“갈喝!”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날 탓하고 있다. 팍 씨, 맞을라고.


잠시 후, 두뇌에게서 확답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 번. 다음 번엔 과정까지 확실하게 기억하겠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게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사실 애초에 일이 이렇게 된 건 이 능력을 준 녀석이 사용 설명서를 같이 안 넣어준 탓도 크다.


애꿎은 두뇌를 탓해서 뭐하겠나?


‘뭐 이 새ㄲ...’


잡생각은 무시하고. 다시 현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 번만 더 DNA를 활성화시키는 데 성공하면, 그 때부턴 내 마음대로 능력을 조율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준비한 방법들을 하나 둘, 실행해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시도해 볼 것은 ‘의도적으로 육체적 한계에 봉착하기’다.


각성은 보통 한계 상황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일단 몸을 한계까지 몰아넣고 상황을 재연해보자는 기획이다.


팔과 다리의 DNA를 활성화시키고, 운동 자세를 취했다.


차렷 자세로 시작해 팔굽혀펴기, 스쿼트를 거친 후 점프로 마무리를 한다.


팔, 다리, 체력 모두를 동시에 소진시키는 운동. 이른 바 버피 테스트라는 것이다.


일단은 몸이 지칠 때까지 무작정 해 볼 생각이다.


이놈의 근육들이 너무 단단한지라 얼마나 굴려야 한계에 도달하는지를 모르겠어서 말이지.


처음 해보는 운동이지만 생각보다 별로 힘들지 않았다. 이러다가 날을 새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리고 20분이 흘렀다.


“허억. 허억. 살려... 주세여...”


이성이 한계를 토로하고 있다.


구기 종목 같은 건 1시간을 뛰어 놀아도 쌩쌩했는데, 고작 20분만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폐가 축 쳐저 숨을 헐떡이고, 산소 부족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거기에 근육은 딱딱하게 굳어서 나노미터 단위로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호소한다.


헬스를 사랑하던 1회차의 직장 동료가 떠올랐다.


근육에 부하가 걸릴 때마다 요상한 웃음을 흘리며 기뻐하는 전형적인 헬창이었는데.


그 당시도 정상인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미친놈이 맞는 것 같다.


근육에 부하가 걸리는 감각이 즐겁고 짜릿하다니. 아마 평범한 사람은 평생 이해 못할 것이다.


이윽고 내가 내뱉은 수 천 번의 호흡이 주변 공기를 이산화탄소 범벅으로 눅진눅진하게 만들었다.


그 쯤 되자 이제 그만 해도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정점에 이른 팔과 다리는 멈출 생각을 안 했다.


관성이라도 붙은 것처럼 후들거리면서도 다음 동작을 해 낸다.


이게 내 의지일까, 두뇌의 조종인가, 아니면 근육들의 반란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지옥의 버피 테스트는 한동안 더 지속되었다.


“버피... 씹 새기야... 왜 이딴 걸 만들고 지라를... 우욱.”


그러다가 어느 순간 팔과 다리가 우뚝 멎었다.


마치 내가 원하던 ‘육체적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강렬한 생각 밖에 남지 않았다.


‘DNA’


당장이라도 쓰러져 의식을 잃고 싶었다.


그런데 DNA 활성화도 안 해보고 쓰러지면 이 지랄을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X발. 안 돼. 뭐라도 해야 해. 지금 필요한 게 뭐지?’


어지러운 사고 속, 두뇌가 빛을 발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이 무슨 능력인지 캐치한 것이다.


“... 나는.”


상체를 간신히 일으켰다. 비틀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도록 겨우 몸을 지탱했다.


지친 폐에 딱 필요한 만큼의 공기를 우겨넣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지쳤더라도 최선을 다했으니 당당하게, 하늘이 감복할 정도로. 내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먹는 것처럼 당연하게!


“나는 정점에 이를 회복능력을 희망한다!”


이렇게 몸을 혹사시켰으니 회복 능력이 없고서야 정말 뒤지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힐 능력은 어느 공대를 가더라도 환영받을만한 능력이 아닌가.


“희망한다으 다으 다으...”


어찌나 크게 말했는지 내 목소리가 메아리쳐 울렸다.


그런데 메아리가 점점 희미해지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 확인한 이물감도 그대로다.


“... X발.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끝으로 몸이 넘어갔다. 흙바닥이 내 등을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에흑.”


근육이 너덜너덜해져서 그런가 땅에 부딪히는 것도 더 아팠다.


“X발”


성공이 실패의 어머니고 할머니고, 할아버지고. 엿 같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 속, 뇌가 셧다운을 내렸다.


의식이 침전했다.


* * *


누군가 내 팔 다리를 내리 찍고 있었다. 열라 아팠다.


“으... 씨 뭐야.”


짱돌인가 싶어 눈을 떴는데, 그냥 기다란 나뭇가지였다.


운동장에서 체육활동을 하던 애들이 어느새 나를 둘러싸 나뭇가지로 콕콕 찌르고 있었다.


“상혁이 죽었어!”

“안 죽었어. 이 새... 상 참 즐겁게 사는 친구들아.”


이성을 부여잡고 험한 말을 예쁜 말로 포장시켰다.


‘아 씨. 뭔 놈의 나뭇가지가 저리 아프냐.’


손을 내저어 막아보려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한계까지 몸을 혹사시키기 대작전 성공, 대성공이다. 쩝.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게 생겼다.


“애들아. 선생님 좀 불러줄래? 그리고 나뭇가지는 찌르지 말고. 금지 금지.”

“상혁아 공중제비 좀 돌아줘!”

“나중에. 나중에 많이 돌아줄게.”


애들이 선생님을 부르러 우르르 몰려갔다. 몇 애들은 남아 있으려 했지만 다 쫓아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으려나.


하늘이 파란 것을 보아 의식을 잃은 시간이 그렇게 긴 것 같지는 않다.


“야. 두뇌야. 지금 몇 시야?”


‘저도 그 쪽이랑 같이 의식을 알았는데 어떻게 압니까.’


진짜 도움이 되는 녀석이 하나 없다. 기대도 안 했다. 퉷!


“헉! 상혁아! 이게 무슨 일이야!!!”


저 멀리에서 체육교사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게 보였다.


첫 번째 테스트는 1보 전진 2보 후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괜찮다. 아직 나의 계략주머니는 도톰하게 남아 있으니까.


* * *


“도대체 어떻게 하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부상을 당할 수 있는 거니?”


양호 선생님의 시선이 아프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다는 반응이다.


만지는 곳마다 아파 죽겠다고 난리를 쳤으니, 그럴만도 하지.


나이 서른 먹고 저런 눈빛을 받고 있자니 조금 민망했다.


“하하... 보통 8살 정도면 가끔 이럴 때가 있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평범한 8살은 그렇게 말을 하지 않는단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점점 의심의 눈초리가 강해진다.


학생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는 것 같다.


대충 넘어가려하면 오히려 귀찮아질 김새가 보였다.


하는 수 없지. 비장의 수를 쓰는 수밖에.


“... 했어요.”

“응?”

“파워레인져 놀이 했어요. 악한 괴인들을 혼내주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그러자 양호 선생님의 눈이 조금 푸근해졌다.


“학교 최고의 기대주도 그런 놀이를 하는구나.”

“... 그렇죠.”

“혹시 거기에 다른 사람은 없었니? 악한 괴인 역할을 한 친구라던가.”


정말 꼼꼼한 사람이다. 혹여나 학교폭력이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넌지시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혼자였어요.”

“그럼. 괴인은?”

“크읏. 상상 속에서.”

“아하. 그렇구나.”


거짓말은 아니다.


상상 속에선 못된 운동을 개발해 낸 ‘버피’라는 사람을 수도 없이 혼쭐을 내주었으니까.


파워레인저 놀이에, 상상 속의 괴인까지. 어른으로써의 존엄성은 조금 떨어진 것 같지만, 덕분에 학교 폭력 의혹은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양호 선생님은 진통제 2알을 처방해주고, 5학년 성교육을 위해 자리를 비우셨다.


약 효과가 들자 그제야 조금 몸이 가벼워졌다.


슬슬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해도 괜찮을 타이밍이다.


일단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크흠 거기 아무도 없나요?”


대답이 없는 걸로 보아 지금 양호실엔 나 혼자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처음은 실수여도 두 번째부턴 아니라고 하지 않나. 이제 더 이상의 쪽팔릴 일은 사절이다.


DNA 활성화 계획 그 두 번째는 바로 ‘메쏘드’다.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한 이유는 아무래도 ‘위기감’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위급하다고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여 이번 테스트는 위기감을 잔뜩 느껴보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메쏘드’.


일반적으로 메쏘드 연기라 함은, 배우가 배역에 몰입하여 극도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연기법을 말한다.


덕분에 소름 돋는 연기를 펼칠 수 있지만 배우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부여하는 양날의 검과 같은 방법이다.


나는 그 중에서 ‘스트레스’라는 부분에 주목했다.


만약 내가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피해자 배역에 몰입을 한다면?


DNA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새로운 능력을 일깨우지 않을까?


상당히 그럴듯한 추론이다.


물론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어디 닌자나, 흉폭한 연쇄살인마랑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다 만약에 진짜 죽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지금 이 상황에선 ‘메쏘드 연기’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어기적거리며 걸어가 보건실 문을 잠그고 불을 껐다.


그리고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 쓴 뒤, 눈을 감았다.


‘자 지금 당신은 어두운 숲 속을 거닐고 있습니다... 그런데 뒤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군요.’


“... 이거 아닌 거 같은데.”


지금 한가하게 사이코패스 테스트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다시 집중, 몰입하기 시작했다


서기 2345년 한국이 멸망했다. 서울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렸고,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몬스터들이 모든 것을 때려 부쉈다.


살아남은 것은 힘이 있거나, 운이 좋은 소수의 사람들.


그들 중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을 각성자라고 불렀지만. 나는 그냥 무지랭이에 불과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그럴 듯한 건물에 들어왔으나, 이곳은 살인을 일삼는 미친 각성자들의 소굴이었다.


순간의 재치로 몸을 숨길 수 있었지만 흔적이 남았다.


허벅지에서 흐른 피가 발을 타고 흘러 자국을 남긴 것이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또각또각 발걸음이 들린다.


그 발걸음을 반주삼아 누군가 콧노래를 부른다.


‘먹이를 찾아 들어온 쥐새끼를 토막낼 거라네~ 해골을 부수고 뇌수를 흩뿌리자! 창자로 줄넘기를 타자!’


소름이 돋는다. 공포가 몸을 잠식했다. 들키면 틀림없이 험한 꼴을 당하다 죽고 말 것이다.


‘그 동료도! 어미도! 소중한 사람들도 오 오! 모두 다 토막, 토막, 토막...’


노래가 점점 작아져간다. 이대로 지나치는 걸까? 그런데 왜 내 귓가엔 누군가의 숨소리가...


그 때 누군가 이불을 확 뒤집었다.


“... 여기있구나”

“끼에에에에에에엑!”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을 찾으며 팔과 다리의 DNA를 활성화 시켰다.


그러자 천 개의 바늘을 동시에 찌르는 듯한 근육통이 찾아왔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아까가 공포에 따른 비명이었다면, 이번에는 고통에 의한 비명이다.


‘시발 DNA! DNA!’


DNA 각성을 속으로 부르짖어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젠장’


이 상황에는 SSS급 능력을 각성하는 게 헌터물의 수순이 아니던가.


내심 네크로멘서로 전직하여 나 혼자 레벨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쉬웠다.


몰입이 깨졌다. 아포칼립스 속 비각성자에서 양호실 환자 박상혁으로 의식이 돌아왔다.


순간, 내 이불을 걷은 불법 침입자에게 생각이 미쳤다.


어떤 미친 사람이 문도 잠그고 불도 껐는데 들어와 나를 건드렸을까?


주위를 돌아보니 주저앉아 엉덩이를 문지르는 교장의 모습이 보였다.


“아우 깜짝이야. 왜 이러고 있는 거니? 불은 왜 끄고?”


‘쯧, 교장이었나’


하여간 지인들 중 도움 안 되는 사람 1순위를 뽑자면 단연 이 사람이 1등일 것이다.


보건실에 왜 온 건지는 알겠는데, 타이밍이 안 좋았다.


“제가 불을 키면 잠을 잘 못 자는지라. 다쳤다는 소식 듣고 오셨어요?”

“그럼. 내 커리어 자판기.... 아니, 삼길초의 보배가 다쳤다는데 당연히 와야지. 하하. 그런데 문이 잠겨 있어서 깜짝 놀랐지 뭐니.”


혹여나 내게 무슨 일이라도 있을 까봐 화들짝 놀랐나 보다.


교장이니 양호실 마스터키 정도는 있을 테고.


“괜찮아요. 좀 피곤해서 그래요.”


그가 들러 붙으려 하길래, 손을 훠이 내저어 축객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입맛이 썼다. 육체적 한계, 위기감도 아니면 도대체 뭐지?


남은 가능성을 점쳐보고 있자니 교장이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몸이 많이 안 좋은 거면 병원에서 정밀 검사라도 받는 건 어떠니? 내가 잘 아는 병원이 있는데.”


병원이라... 생각보다 나쁜 제안은 아니다.


나의 능력이 유전자와 관련이 있는 이상, 병원에 의뢰하면 보다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능력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도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멀쩡히 살아 있을 수 있다면 말이지’


육체의 능력을 몇 배로 강화시켜주는 능력이다. 과연 과학자들이 이 능력을 보고 개수작을 참을 수 있을까?


여차 했다간 인류의 발전을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박/상/혁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뭐, 운 좋게 잘 풀리더라도 국가 비밀병기 캡틴 코리아가 되지 않을까?


북한군과 협조중인 하이드라의 수작을 막기 위해 옥류관에 잠입해 평양냉면을 먹는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위험하고 번거로운 일은 사절이다.


숭고한 희생도 좋지만, 소시민적 영달이 더 좋은 사람이라.


병원을 찾아 정밀 검진을 받는 것은 제일 마지막 수단으로 삼아야겠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볼까’


뒤숭숭한 마음에 비척거리며 양호실을 탈출해 정글짐으로 향했다.


생각이 많을 땐 정글짐에 올라가 멍을 때리는 게 최고다.


“존나 쎄지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능력이다. 제어가 어려운 것이 당연하지만, 꼴받는 것도 당연했다.


“어쩌면 스스로 하면 안 되는 걸지도 몰라.”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보통 내가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고 해도 큰 타격을 입을 일은 없다.


내가 물 주먹이라는 소리는 아니고.


스스로를 때린다는 생각에 힘도 조금 덜 들어갈 뿐더러, 미리 대비를 하고 있으니 덜 아프다는 이야기다.


테스트 결과도 그런 맥락으로 봐야하지 않나 싶다.


한계도, 위기감도 다 내가 조성했기 때문에 DNA가 반응을 안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인이 혼자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실눈을 뜨고 보고 있었을지도.


‘그렇다’


정점에 이른 두뇌가 반응했다. 정답을 맞춘 것 같다.


“참 빨리도 말한다 새끼야.”


‘물어본 적 없으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다. 두뇌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지 멋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엄밀히 따지면 두뇌는 보조역할에 불과하다.


여하간, 나는 착한 아이로 있고 싶은데 주변 환경이 그렇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니 내가 8살임에도 욕을 달고 사는 거 아니겠나.


‘그런 것 같지는 않은...’


쓸모없는 생각은 뒤로하고. 남은 가능성을 탐색해보았다.


정점의 DNA는 내가 주도적으로 개발하기 힘든 능력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개발을 위해서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위기상황에 처하거나, 조력자의 도움을 받거나. 둘 중 하나는 충족해야한다.


“아~ 어디 적당하고 말 잘 듣는 충직한 조력자 없나?”


데리고만 있어도 능력 개발에 도움이 되는 도우미 도입이 시급하다.


사실상 위기 상황에 처해서 새로운 능력이 발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 몸이 누구인가. 정점의 DNA를 3개나 활성화시킨 초특급 치트 미래인 아닌가.


어지간한 위기라고 하더라도 내 한 몸 정도는 능히 빼 낼 수 있다.


위기만 기다리고 있으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두뇌야 뭐 없냐?”


‘... 탐색중.’


역시 만만한 것이 두뇌다. 짬을 때리고 한가로이 주변 경치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그냥 뛰어내려?”


충동적으로 든 생각이다. 정글짐에서 점프하는 게 능력 개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글짐 꼭대기 정도면 어지간한 건물 2층 높이는 된다.


잘못 착지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육체적 한계와 위기감을 동시에 충족한다.


허공에 몸을 맡기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피해가 발생할 테고.


“... 나 완전 천재인데?”


고의성이 다분한 행동이긴 하지만 참작의 여지는 있다.


여기서 내가 탭댄스라도 춘다면 우연히 발이 미끄러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럼 몸도 다급하게 각성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생각할수록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혹시나 싶어 두뇌에게 검토를 받기로 했다.


“어때?”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두뇌가 결과를 보고했다.


‘능력을 개방할 확률 12.49%, 못할 확률 84%, 죽을 확률 0.01% 그리고 special 3.5%.’


“스페셜은 뭔데.”


‘special은 special입니다. 예측 못한 특별한 사태를 말합니다.’


스페셜은 제쳐두더라도 확률이 나쁘지 않다.


앞으로 10년 뒤 유행할 가챠 게임의 SSR 드랍 확률이 3.5퍼 정도인 걸 고려하면 상당히 후하다. 거의 3배 아닌가.


죽을 확률이 있는 건 흠이긴 한데, 0.01% 정도면 접시물에 코 박아 죽을 정도의 확률과 비슷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유려하고 눈부신 춤사위를 추기 시작했다.


3걸음 내딛었을까? 발이 미끄러지며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부디 기똥찬 능력을 각성할 수 있기를 바라며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두뇌의 말이 더 또렷하게 들렸다.


‘지금까지는 평소에 멀쩡했을 때의 경우 값을 계산한 것. 현재 근육이 파열된 상황에서는 생존율에 변환이 생긴다. 죽을 확률 11%...’


“씨바아알!”


이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저 쌍놈의 두뇌 새끼. 언젠가 사고를 거하게 칠 줄 알았다.


‘지가 안 들은 거면서 말해줘도 지랄’


마음 같아서는 꿀밤을 힘껏 갈겨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당장 두 눈을 떠 살아남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했다.


아파 뒤지겠더라도 근육을 활성화하고, 완벽한 착지자세를 취한다.


착지 면적이 넓으면 좋겠지만, 낙법을 제대로 못 배운 상태에서 했다간 내장이 파열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착지 후, 바로 바닥을 뒹굴어 충격을 분산한다.


셋, 둘, 하나. 두뇌의 보조로 타이밍을 계산한 뒤, 땅에 발을 디뎠다.


“허윽! 아이고...”


바로 바닥에 구르긴 했지만, 발이 깨질 듯 지끈거렸다.


그래도 꼼지락거릴 수 있는 걸 보면 부러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89%의 확률 만만세다.


“맞다. DNA는?”


‘신체에 별다른 변화 확인 불가능.’


이쪽도 높은 확률이 실현된 것 같다. 84%의 확률 개쓰레기다.


“아이씨. 도대체 뭐가 부족한 거야. 괜히 발만 다쳤네. 아야야.”


아무래도 다음 능력 개방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만화 같은 거 보면 한 페이지 넘기면 수련 파트 끝나 있던데.


어디 꼼수가 없나 생각하던 차에, 어딘가에서 날아온 시선을 감지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상혁이가 DNA를 개방하기 위해 수련을 하는 파트입니다.


아무리 재미 요소를 넣었다고는 해도, 헛발질만 하다 끝나면 답답할 것 같아 분량을 조금 늘렸습니다!


댓글과 선호작 추천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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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0 갑(甲)의 계산법 22.08.06 773 13 23쪽
89 돈지랄을 상대하는 법 22.08.05 774 11 17쪽
88 치기 어린 행동에 대한 대가는 그리 가볍지 않다 22.08.04 790 1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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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배우가 되다 22.08.01 794 12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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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sorry i’m strong 22.07.22 866 10 21쪽
74 집으로 22.07.21 864 10 21쪽
73 야밤의 전투 3 22.07.20 854 10 14쪽
72 야밤의 전투 2 22.07.19 855 10 16쪽
71 야밤의 전투 22.07.18 925 10 17쪽
70 현장학습을 가다 3 22.07.17 904 12 15쪽
69 현장학습을 가다 2 +1 22.07.16 942 13 16쪽
68 현장학습을 가다 22.07.15 981 15 13쪽
67 호가호위호위 22.07.14 969 13 19쪽
66 호가호위 22.07.13 991 15 16쪽
65 첫 친구 22.07.12 1,019 17 25쪽
64 1차 심사 22.07.11 1,085 16 15쪽
63 천하제일 친구대회 22.07.10 1,104 18 13쪽
62 친구를 만드는 법 22.07.09 1,184 19 15쪽
» 향상심 2 +1 22.07.08 1,258 22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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