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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578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7.2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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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
추천
13
글자
21쪽

오리지널 vs 가짜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79화



“우와~ 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신기하다!”


민수가 연기를 펼치자 면접관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하면, 오늘 중 가장 괜찮은 반응이다.


연기력이 훌륭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외모가 잘생긴 것도 아니었다.


기본이 탄탄한 아이. 나였다면 분명 그렇게 평가했으리라.


그런데 어째서 면접관들은 저렇게 좋은 평가를 보내고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2차 면접자들의 연기를 다 들은 면접관들이 다시 한 번 회의를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목소리가 꽤나 커서 엿듣기 좋았다.


“어울리지?”

“그러게요. 어울리네요.”


평가를 관통하는 말은 ‘어울리다’였다.


뭐 입은 옷이 어울린다는 말이 아니라면, 배역이 어울린다는 소리겠지.


그 말엔 나도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외모에 어린 티가 묻어나오는 연기력.


어느 학교를 가도 한 명쯤은 있을 법한 그런 흔함이 오히려 ‘친구’라는 역할에 잘 어울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는 오리지널 민수가 나비효과에 출연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찰떡같은 배역이라고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후... 역시 너무 잘난 것도 힘들다니까.’


설마 숨길 수 없는 존재감 때문에 곤혹을 겪을 줄이야.


연기를 잘한다고 해서 모두 배역을 따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승부가 끝난 것은 아니다. 면접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나는 그래도 박상혁이라는 친구가 괜찮아 보이는데. 똘똘하잖아.”


팀장은 초지일관 나를 밀어주었다.


“제가 생각한 민수는 저 이진수라는 아이가 딱이에요.”


작가는 오리지널 민수를 선택했다. 이걸로 1대 1. 감독의 선택만이 남았다.


“음... 솔직히 나는 둘 다 괜찮은데. 이렇게까지 어렵게 고를 배역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 말을 하면서 감독은 다른 두 사람의 의중을 살폈다.


하지만 양보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고, 감독도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한 번만 더 보자고. 박상혁 어린이? 혹시 아무 연기나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네.”


기다리고 있었다. 기회가 한 번은 더 찾아오리라고 생각했기에.


준비했던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 순간이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우와. 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신기하다.”


비교하기 편하라고 오리지널 민수와 같은 부분을 연기했다.


연기를 들은 감독이 침음을 흘렸다.


“어렵네. 연기가 생생한 아이냐, 배역이 어울리는 아이냐. 둘 다 장단점이 뚜렷하단 말이지.”


내 연기가 그의 고민을 더욱 심화시킨 것이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비장의 무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한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은 뒤, 세 치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이 드라마에 꼭 출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괜찮은 대본, 재밌어 보이는 대본은 태어난 이후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깜찍한 발표에 작가의 인중이 늘어났다.


안 그래도 요새 자존감이 많이 깎였을 그녀에게 칭찬은 더없이 달콤하리라.


왜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 물론 나는 거짓말이었지만.


그래도 효과는 끝장나게 좋았다. 10년 넘게 다져온 사회생활 스킬이 빛을 발하고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오리지널 민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도! 저도 이 드라마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본을 볼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걸려들었다’


민수가 기대한 반응대로 움직여주었다. 녀석은 알까?


내가 입을 털었던 건 작가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수의 아부를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칼같이 나서 민수의 발언을 차단했다.


“거짓말. 말만으로는 뭘 못하겠어?”


칭찬릴레이를 즐기던 작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민수의 표정도 당혹으로 물들었다.


상황만 봐서는 분위기를 망친 눈치 없는 자식의 발언이지만, 이 모든 게 내가 원하는 피날레로 가기 위한 빌드업이다.


고작 8살 또래의 행동을 유도하는 건 나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저 봐라. 민수가 얼굴을 붉히며 내가 바라던 말을 내뱉지 않았는가.


“말뿐인 건 너도 똑같잖아!”


딱 내가 바라던 워딩 그대로다. 상황은 갖춰졌다. 이제 쇼 타임이다.


“아닌데? 난 증명할 수 있거든.”


나는 민수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연기를 시작했다.


“네가 누구냐니? 너는 나랑 같은 반 친구인 구원일이잖아!”


그러자 면접관들의 머리에 물음표가 떴다.


“저건.... 뭐지?”

“우리 드라마 대본이 아닌데?”


그들이 혼란에 빠지건 말건 나는 꿋꿋이 연기를 이어갔다.


“과거? 그게 무슨 소리야. 얘가 오늘따라 이상한 말만 하네.”


아까까지 보여주던 민수와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보다 활동적이고, 씩씩한 기세가 연기에서 묻어나온다.


마치 다른 사람을 연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 연기가 길어지자, 면접관들 중 내 의도를 파악한 사람이 생겼다.


“아! 저거. ‘다시 그때로’다.”


그래. 내가 지금 연기하고 있는 건 라이벌 드라마 ‘다시 그때로’의 배역이었다.


갑자기 내가 미쳐서 타 드라마의 대본을 읽고 있는 게 아니다.


면접관들을 능욕하기 위해서 읽는 건 더더욱 아니고.


보여주는 것이다. 민수에게, 심사위원들에게.


나는 다시 그때로 역시 완벽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을.


처음엔 면접관들도 어이가 없을 것이다. 얘가 왜 여기서 저러고 있지 싶기도 할 것이고.


하지만 이 면접장에서 연기를 펼치는 나를 보는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곳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이 드라마의 대본을 좋아했다는 나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동시에 박쥐와도 같던 민수의 행위를 꼬집었다.


근거가 갖춰진 주장은 진정성을 갖는 법이며, 내 진심은 그들의 가슴을 찡하게 울리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얼마만일까, ‘나비효과’가 ‘다시 그때로’를 이길 거라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난 게.


‘나비효과’의 일원들이 입에 달기라도 한 것처럼 하는 말이지만 다들 응원이나 주술에 가까운 말일 뿐이었다.


면접관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위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보이지 않고, 꿈꾸지도 않았던 승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고작 마음가짐의 변화에 불과하지만 그들로써는 꼭 필요한 변화였다.


팀 ‘나비효과’는 드디어 비상할 준비를 끝마쳤다.


동시에 조연급 엑스트라의 배역도 결정이 났다.


“박상혁 군. ‘나비효과’에 참여하게 된 걸 환영하네.”


감독의 말이다. 작가도 더 이상의 반대는 하지 않았다.


승리를 향해 달리기로 한 이상, 민수 자리에 나만큼 어울리는 조각은 없었으니까.


실력이 비슷하다면, 그 다음으로 보는 건 마인드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부하 직원만큼, 편하고 마음에 드는 존재는 없다.


덕분에 나는 ‘나비효과’에 합류할 수 있었다.


약탈자가 오리지널을 집어삼키는 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치열한 승부였고,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원래 배역을 맡았던 ‘진짜’를 집어 삼켰다는 생각에 쾌감이 짜르르 아랫배를 타고 내려갔다.


울상을 짓고 있는 민수에게 다가가 좋은 승부였다고 악수를 건넸다.


“저리가!”


대차게 거절당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티배깅을 참을 수는 없다.


나는 녀석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를 속삭였다.


“이제 오리지널은 나야.”

“그게 무슨 말이야?”

“넌 모르겠지. 앞으로도 모를 거고.”


어쩌면 오리지널 민수는 ‘나비효과’로 큰 사랑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 치고는 많은 돈을 받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제 그건 다 내 것이다. 안타깝지만 원래 세상이 이런 법이다.


내가 뭐 불법을 저질렀나, 잘못이라도 했나.


공정한 절차를 거쳐 실력으로 찍어 눌렀을 뿐.


억울하다면 실력을 키워 다시 돌아오면 된다.


“강해져서 돌아와라. 기다리고 있으마.”


물론 그 때는 내가 더 강해진 상태겠지만 말이다.


면접장을 나서자마자 만식 아저씨가 내게 바짝 붙었다.


“대단하구나. 설마 대본을 두 개나 통으로 외웠을 줄은 몰랐다.”

“흐흐. 언제는 나비효과 같이 허접한 곳은 가지 말라더니. 꽤나 기뻐 보이네요?”


아닌 게 아니라, 만식의 얼굴에는 미약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나를 보고 얼굴을 붉히는 게 아니라면 내 퍼포먼스에 흥분한 거겠지.


그는 머쓱한지 뒤통수를 긁었다.


“아슬아슬하게 붙은 거니까 말이다. 물론 여전히 다시 그때로가 더 낫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나비효과가 격전지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 실력이었으면 다시 그때로도 붙었을 거라는 소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 안다 알아. 붙은 이상 이곳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 좋든 싫든 이 드라마를 대박나게 만들어야지.”

“맞아요.”


다행히 만식은 말귀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면접에 붙긴 했지만 이제 첫 관문을 넘었을 뿐이다.


또다시 증명하고 보여줘야만 한다.


성공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매번 증명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


물론 자신감은 충만하다. 정점의 DNA를 가진 회귀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아낌없이 보여줄 생각이다.


“기다려라 정점.”


제빵도, 공부도, 운동도 같은 나이 대에는 이미 적수가 없다.


이제 그 리스트에 연기가 추가될 예정이다.


* * *


내가 조연급 엑스트라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너무 빠르게 퍼졌다.


‘축! 대한제일 빵집의 자랑 배우 박상혁. 드라마 합격!’


다음 날 빵집을 가니 못 보던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었다.


“엄마... 이거 뭐에요?”

“응! 자랑스러운 소식을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어서. 우리 아들이 TV에 나오다니 꺄악! 진짜 마음 같아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목이 나갈 것 같아서 말이야.”


엄마는 어제부터 높은 텐션을 유지하는 중이다.


이해는 간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자식이 전국으로 데뷔를 하는 거니까.


20년대도 그렇지만 00년대의 TV는 가지는 의미가 컸다.


그런데 설마 현수막을 달 줄은 몰랐다. 아니 어제 합격했는데 왜 벌써 현수막이 있는 거지?


엄마에게 물어보니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붙을 줄 알고 미리 제작을 맡겨놨지!”


자식을 향한 믿음과 사랑은 고맙긴 한데... 엄마는 수치플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까?


수치플레이. 흑역사 생성기. 뭐 다 비슷한 말이다.


“웜머. 이 집 아들이 드라마에 나오나봐?”

“가끔 일 돕던 그 아이가? 대단하네. 어느 드라마에 나오나? 시간나면 한 번 봐야겠네.”


가게를 찾는 아줌마마다 이렇게 수군거리는 바람에 내 볼은 실시간으로 빨개지는 중이었다.


심지어 질문에 대답하기도 부끄러웠다.


가게에 떡하니 현수막을 붙여 놨는데 막상 배역은 엑스트라에 아직 방영 일정도 안 잡혔다니.


호들갑도 이런 호들갑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떼버리고 싶은데 엄마가 기뻐하시는 중이라 그러지도 못한다.


회귀 이전에는 그렇게 불효를 저질렀는데 인생 2회차에는 그래도 되도록 좋아하시는 건 다 해드리고 싶다.


“어머. 이게 누구야. 드라마에 합격한 상혁이 아냐? 대배우님 오셨네?”


유리 누나가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다가왔다.


기회가 생기자마자 바로 놀리는 것 봐라. 평소에는 맨날 당하기만 하니까 복수라도 할 생각인 것 같다.


물론 근처에 엄마가 있으니 화를 낼 수도 없다.


하지만 해결 방법이 꼭 대화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걷기와 반격의 DNA를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실실 쪼개고 있는 그녀의 뒤로 빠르게 이동해 손바닥을 내리쳤다.


“이거 싸인이라도 받아야 하는 하읏!!”


오랜만의 엉덩이 찜질에 유리 누나의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엄마가 이쪽을 보길래 걱정하지 말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누나가 발가락을 찧었나 봐요.”

“얘는 조심 좀 하지.”


그 말을 마치고는 다시 손님과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였다.


유리가 부들거리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내가 흑, 틀린 말 한 것도 아니 흑 잖아.”

“맞아요.”

“그럼 왜?”

“기분이가 나빠서요.”


평소라면 적당히 져 주었겠지만 오늘의 나는 다르다.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상대가 놀리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상대가 유리 누나라면 더욱 더.


“이씨. 그럼 평소에는 왜 그런 건데 흐엉~”

“그 때는 그 때. 지금은 지금.”


억울하면 빨리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서열을 재정립하길 바란다.


유리 누나가 훌쩍이는 모습을 보니 스트레스가 좀 가시는 것 같다.


역시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누나였다.


하지만 드라마 합격의 여파는 가게가 끝이 아니었다.


등교를 하자마자 애들이 나를 둘러싼 것이 그 반증이었다.


“상혁아 TV 나오는 거야?”

“우와 캡이다!”


평소에도 학교의 아이돌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오늘은 한층 그 열기가 강했다.


나는 손을 내저어 최대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이제 시작하는 거라 그렇게 많이는 안 나올 거야.”


이런 건 쿨하게 말하는 게 멋진 거다. 괜히 허세라도 부렸다간 이불킥 횟수만 누적될 뿐이다.


그래도 애들은 TV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모양이다.


“그럼! 그럼 유한별이랑도 만나겠네?”

“... 그럴 걸?”

“우와아아아아!”


아이들의 함성이 배로 커졌다. 그럴 만하다.


유한별이라고 하면 나름대로 인지도 있는 아역배우였으니까.


그녀는 나비효과의 어린 여주인공 역을 맡았으며, 나비효과 팀이 밀고 있는 몇 안 되는 자랑거리이다.


얼마나 홍보를 할 게 없었으면, 애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그러면 다른 유명한 사람도 보는 거야?”

“부자 되는 거 아니야?”


점점 열기가 과열되어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 한 무리의 꼬맹이들이 와서 나와 애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그 정체는 정보 집단의 수장을 맡고 있는 다빈이었다.


이제는 정보 집단이 아니라 수하 조직 같은 게 되어 버렸지만, 솔직히 이번만큼은 고마웠다.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동하는 도중, 학교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동규가 징계를 받는다고?”

“예. 학생을 두고 이동한 게 큰 문제가 되었다고 해요. 아마 복직은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리네요.”

“그리고 공아린 선생님은 임신을 하셔서 인수인계를 하신 뒤 휴직을 하신다고.”

“네.”


내가 입원한 사이 있었던 중요한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그 사이 다빈이 꽤나 유능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초등학교 6년 동안 계속 옆에 두고 싶을 정도.


그나저나 어째서 입학했을 때 공아린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없었는지 알 게 되었다.


‘임신휴직 때문에 그러셨구나.’


그동안 몰랐던 수수께끼가 하나 풀리는 느낌이다.


내가 멧돼지를 쓰러트리고, 배우라는 일에 도전을 하는 것처럼 학교도 변화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바뀐 변화 속에서도 정점을 유지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닐까?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공부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다빈이 붙잡았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학교 전체에 드라마 홍보를 하는 게 좋을까요?”


정보 조작을 하기 전에 허락을 구하는 것 같다.


여기서 더 유명해져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지만, 생각을 해보니 그렇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홍보는 곧 시청률로 이어지니까. 아무리 나비효과가 대박날 거라고 해도 시청률은 높을수록 좋은 게 사실이었다.


“방영할 때를 맞춰서 부탁할게.”

“예스 마이 로드.”


말을 마친 다빈은 슬슬 뒷걸음질을 치면서 물러나다가 기어코 넘어졌다.


“으악!”


얘가 요새 자기 역할에 빠져서 이상한 물이 든 게 틀림없다.


역시 초딩은 초딩이다. 한창 그런 걸 좋아할 나이지.


나는 피식 웃으며 공부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공부방에는 선객이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이.


승윤, 지훈, 광언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다들 나랑 친한 관계였기 때문에 그렇게 이상한 조합은 아니었다.


“다들 여긴 어쩐 일이야?”


그래도 3명 정도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주였기에 웃으며 맞이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승윤이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이쿠.”


얘가 왜 갑자기 몸통박치기를 하는 걸까? 너구리가 몸통박치기를 해봤자 아프지는 않았지만 조금 의외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친구가 TV에 나온다며 좋아했는데.


그런데 나를 올려다보는 승윤이의 얼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상혁아. 드라마 찍으면 학교에 안 나오게 된다는 게 사실이야?”


아이고.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걸 깨달아버렸구나.


승윤은 내가 드라마를 찍으면서도 학교에 잘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진실을 깨달아서 이렇게 울먹이는 거고.


곤란했다. 누가 이런 시련을 준비했을까?


“승윤아 그 말은 누구한테 들은 거야?”

“... 지훈이.”

“이 자식이!”


지훈 쪽을 보자 녀석이 다급하게 시선을 피했다.


저쪽이 피하면, 이쪽이 따라가면 되는 법.


작은 공부방 안에서 녀석이 도망갈 곳은 그렇게 넓지 않았고, 머지않아 나와 시선을 맞추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지훈이.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았을까?”

“아니! 불만은 아니고! 네가 학교에 안 나오면 공부를 안 할까봐. 그래서 라이벌이 없어지는 걸까 해서...”


지훈의 말은 시작만 당찼지 점점 줄어들어 데크레센도를 이루었다.


결국 녀석도 내가 학교에 안 나오게 되어서 불안하다는 소리였다.


지훈은 민망한지 계속 광언을 툭툭 치며 권유했다.


“야. 뭐라도 말해봐. 너도 라이벌이잖아.”


하지만 광언은 말이 없었다. 멍하니 눈만 깜빡일 뿐이다.


불과 얼마 전에 붙었다가 크게 깨진 충격이 아직 다 안 가신 것 같다.


보아하니 지훈이 끌고 온다고 그냥 와서 머릿수만 채우고 있는 모양이다.


“상혁아! 나도 촬영장 가면 안 돼?”

“그보다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거 같은데.”

“...”


철이 없는 징징거림이다. 그래도 녀석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나만의 작은 하꼬 상혁이가 대기업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겠지.


그 애절한 마음을 알기 때문에 애들한테는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셋 다 우쭈쭈하며 달래줄 수밖에.


우선 승윤이를 붙잡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울음이 점차 잦아들었다.


“내가 너희들을 두고 어딜 가겠냐.”

“정말? 그럼 촬영장도 안 가?”

“가겠지.”

“흐엥. 거짓말쟁이!”


반색했던 승윤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중요한 말은 언제나 뒤에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돌아오겠지.”

“흐엉?”

“우린 같은 초등학교잖아. 앞으로도 5년은 계속 볼 건데?”


변하는 게 있으면 변하지 않는 게 있는 법이다.


애들과의 관계가 그러했다. 학교의 환경이, 나의 지위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녀석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리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옆에서 얻어먹는 게 늘어나겠지.


나는 지훈이에게 엄한 시선을 건넸다.


“지금까지 나를 한 번도 못 이겼으면서 벌써부터 그런 걱정이나 하고 말이야.”

“읏!”

“내가 없는 동안 공부나 잘 하고 있어. 갔다 와서 검사한다?”

“그 때는 안 질거야!”

“그러던가.”


다음은 광언이. 그에게는 한 짓이 있기 때문에 보다 부드러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너는 일단 나 말고 가까운 목표부터 다시 잡아. 그러는 편이 좋을 거야.”

“그러면 언젠가 너한테 닿을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안 그럴 가능성이 더 높지만, 어린아이의 꿈을 짓밟을 만큼 사악한 놈은 아니다.


그렇게 한 차례 우쭈쭈 타임을 가지자 드디어 애들이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이런 저런 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음이 놓였다. 동시에 채워지는 기분이다.


이제 시원한 마음으로 연기를 하러 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우주 대스타 급의 아역배우가 되더라도, 변함없이 날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마음 놓고 전력을 다해 날뛰어 정점을 찍을 뿐이다.


한동안 연기를 연습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첫 촬영날이 되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큰 도움이 됩니다! 댓글! 선호작! 추천!


뵙겠습니다!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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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sorry i’m strong 22.07.22 865 10 21쪽
74 집으로 22.07.21 862 10 21쪽
73 야밤의 전투 3 22.07.20 853 10 14쪽
72 야밤의 전투 2 22.07.19 854 10 16쪽
71 야밤의 전투 22.07.18 923 10 17쪽
70 현장학습을 가다 3 22.07.17 903 12 15쪽
69 현장학습을 가다 2 +1 22.07.16 940 13 16쪽
68 현장학습을 가다 22.07.15 979 15 13쪽
67 호가호위호위 22.07.14 967 13 19쪽
66 호가호위 22.07.13 989 15 16쪽
65 첫 친구 22.07.12 1,018 17 25쪽
64 1차 심사 22.07.11 1,083 16 15쪽
63 천하제일 친구대회 22.07.10 1,103 18 13쪽
62 친구를 만드는 법 22.07.09 1,182 19 15쪽
61 향상심 2 +1 22.07.08 1,256 22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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