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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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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6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7.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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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권 (46)

DUMMY

사리나 님의 편지봉투를 연상케했다. 개봉부에 부착된 인장은 엄연히 사리나 님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시대의 이런 고급스러워 보이는 편지봉투는 예삿일이 아니었다.


"임무라고?"

"나도 모르겠어. 임무인지 아닌지. 그러나 갖다달라고 하더라고."

"누가?"

"본부가."


사적인 일은 아닐 터였다. 이것도 살수의 임무의 일환이라고 봐야되는 게 직업상 올바른 판단이었다. 허나 방법이 부담되는 나머지 임무표보다도 받기가 꺼렸다. 비정상적으로 격식이 있어 소름이 끼쳤다.

그 안의 담긴 편지조차 과한 디자인이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특색 있는 디자인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성도 익숙해지기 전에는 알레르기라도 있는 듯이 거부 반응이 있었던 터라 천천히 편지를 펼쳤다.

현재, 소실된 편지로 구절과 문체를 표현할 길이 없다. 요약한 내용만 말하면 이랬다.

'미프로트'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해달라는 초대장이었다. 파티 이름이 따로 있었지만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제'라고 적혀 있었으니 파티라고 편하게 부르기로 한다.

미프로트는 현 수도가 마겐노하가 되기 이전에 후보에 올라올 만큼 두 번쨰로 큰 도시다. 예전 세계에도 광역시가 있던 것처럼 크지만 수도가 아닌 주요 도시급이라고 보면 된다.

내 견해로는 마겐노하나 미프로트나 수도가 한 도시 밖에 있을 수 없으니까 애석하게도 미프로트가 후보로만 남겨졌단 예상이었다. 미프로트를 거쳐간 기억이 있어 상상에만 근거한 비교는 아니었다.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파티에 내가 간다는 것은 말이 초대장이지 꿍꿍이가 있을 게 분명했다.


"따로 전할 말은 없어?"

"없어."

"그냥 즐기라는 건가?"

"그러게. 이대로 축제에 가서 평범하게 놀다 오라는 걸까? 그런 친절한 기관이 아니란 말이지, 우리."


로브도 혼동이 와서 딱히 어느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 일단 내 품에 오게된 초대장이니 선택은 내 몫이었다. 아니면, 그들도 선택을 바라지 않으니까 나한테 책임을 떠넘긴 것일 수도 있었다.

이 초대장에는 딱히 특정 인물 보고 오라는 말이 없었다. 정해진 초대장 수에 선착순이라는 시스템에 숨겨져 있는 듯했다. 그렇단 말은 남에게 양도하기 참 좋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쩌면 암표가 있는 걸지도 몰랐다.

부상 때문이라도 2주간 나를 방치한 본부가 내린 임무도 포상도 아닌 마의 선택지는 쉽사리 해결할 수 있지 않았다.


"가도 좋아. 내가 알아서 할게."

"참견할 마음도 없었어."


로브는 지조 있게 편지봉투에 대해 일절 간섭을 안 하였다. 살수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이라 이번에도 만류할 줄 알았었다. 그만큼 이 일에 대해서는 임무라 생각 안 하는 경향일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나도 임무라고 여겨지 않았다.

뜻밖의 휴가라고 할까, 그런 류로 받아들여 목숨을 위협받을 것이란 생각은 접었다. 내가 위협으로 여기는 것은 살수사냥꾼들 밖에 없었으니 파티는 경계 대상 밖이었다.

안전하면 더 안전하지, 그 이상은 없었다. 웬만해서는 유명인사들이 모일 자리일 걸 보안은 갖춰줘 있을 것이었다. 전시의 파티인 게 걸리적거리긴 해도 전선에 있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의 생활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었겠다. 미프로트가 마겐노하보다 최심부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지리여서 말이다.

다소 안일하게, 의도는 가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태평한 결론을 내렸다. 같은 직장으로서 헛된 자부심이 있는 게 아니고, 살수 본부가 쓸데없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한편으로는 있었다. 무의미한 짓은 아닐 거라고 받아들였다.




2일 간 격식을 차리는 데에 공을 들였다. 너저분한 머리를 다듬고, 정장도 하나 장만했다. 이 이후로 쓰일지도 모르지만 돈이 남아돌아서 상관이 없었다. 벽에 대고 말투를 개선하는 작업도 약간은 곁들였다. 최후의 최후에 가서는 생색내며 때려치긴 했지만 한 건 한 것이었다.

묘사는 여기까지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준비한 것들이 그리 길거나 많지도 않았다. 최소 안 하리만 한 수준보다는 조금 진전은 있었다. 이 얘기는 본편에서 마저한다.

미프로트의 축제장까지는 오로지 내 사비를 들여 셀프로 이동하였다. 초대장이 통행권은 못 되어 마차로 이동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말을 타면 냄새가 배겨서 남한테 피해줄까봐 그랬다. 기껏 격식을 연습해놓고 다 망칠 순 없었다.

미프로트가 괜히 수도 후보가 아닌지라 그냥 넓은 수준이 아니었다. 언덕을 끼고 쌓아올린 도시라 경사 때문에 건물들이 구별이 가긴해도 도로가 뻥 뚫려있을 것 같은 곳이 곡면 도로 때문에 실은 막혀있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어떻게든 구두로 저택을 찾으니 허망했다. 위치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설마했던 외곽에 도시와 동떨어져 있던 대저택이 축제장인지 두 코너를 돌기 전에 확신했다. 길을 가르쳐줄 게 아니라 목적지를 정확히 짚었다면 맨눈으로 찾아갈 수도 있었겠다.

무슨무슨 축제라고 하다만 대저택만의 일인지 가는 길이 북적이지 않았다. 한산한 게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그러나 저택의 정원부터 낌새가 남달라서 거짓말이 아닌 걸 알았다.

날이 날이라 그런지 경비들도 차려 입고 있었다. 아니면, 블루드 사용자이기에 갑옷 등의 갑갑한 걸 찾 이유가 없다던가. 말 얼마 섞지 않고 초대장만 보여주니 들여보내주었다.

고요하다고 느끼다가도 정원의 길을 따라 들어갈수록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전파되었다. 시장같은 요란함은 아니었다. 정직하게 주로 1:1로 대화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모인 곳이라 점잖았다.

정원 한가운데에 차려진 수많은 흰색 원형 탁자들에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있었다. 굳이 친하다는 걸 증명시키지 않아도 친하다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슬쩍 암거래 현장도 있을 것 같아도 전형적인 사교의 장이라 돈이 오고가는 장면은 목격되지 않았다.

나는 탁자에 합류할 생각 없이 멀찍이 떨어져서 시각으로 즐겼다. 이런 데에 와서 이러고 있다는 게 누가 동정해도 부정할 수 없지만, 본부가 여기에 날 보낸 이유를 찾는 게 더 급급했다.

잠입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목표를 정해주지 않고 보내는 잠입이란 있을 수가 있나. 잠입이 아닌 다른 형식이라도 목표 없이 임무를 주진 않았을 것이었다.

놀다오라고 준 건가? 아무리 선의를 베푼다고 해도 의도 모를 선의는 남을 당혹하게 만들 뿐이거늘 내가 그 모양새였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둘 중 하나였다. 인맥이 광활하거나 사교성이 매우 뛰어나거나. 살수에겐 굳이 필요없는 능력이며 내가 대표주자였다. 옆에 지나가더라도 비키기만 할 뿐 대화를 걸 수가 없었다.

동정조차 오지 않는 듯했다. 내가 자기중심적이었던 같다. 그들이 나를 의식해야 동정을 할 수 있겠지 보지도 않은 중에 동정이 올 리는 없었다. 게다가 일부러 남들 시선이 안 오는 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그러기가 힘들었다.

또, 그들에게 접근하기가 버거운 게 내 신분이 비교적 미천하단 이유도 존재했다. 보통 곱게 자란 인물들이 아니었다. 바실리스크가 비쩍 마른 체형도 있다는 게 놀라웠다. 평균이란 게 있을 건데 바실리스크 계의 저체중이 아니냐 걱정될 정도로 말랐었다. 그럼에도 나보다 체형은 좋아서 이는 동정이 아니었다. 설계된 몸매였다.

마냥 서 있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빈 원형 탁자를 찾아 앉았다. 요기거리로 뷔페도 있어서 먹고 싶긴 했다. 다과회 느낌은 아니라서 처음 보는 음식들이란 유난히 해물이 많았다. 비린내가 아예 안 나는 게 실력 있는 요리사 손에서 탄생한 것 같긴 했다.

그러고 보면, 내륙에서 지내기만 해서 바다를 보질 못했다. 이 시대의 바다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긴 했다. 언제 바다로 임무를 보내주면 고마울 것 같았다.


"야."


먹는 데에 정신이 팔려 누가 원형 탁자에 앉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대가 다 앉고 나서야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전에, 내가 보지 않았는데 먼저 '야'라고 호칭을 부르는 이가 이 파티에 있을 리라고는 곰곰히 생각해도 없었다. 후발주자라고 하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해도 과연 이 파티에 올 조건이 될지는 몰랐다.

그런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누가 오든 이상할 것은 없었다.

운명적으로 라데르를 이 자리에서 만난다한들 불분명한 파티의 목적 때문에 그리 비현실적인 해프닝은 아니었다.


"라데르?'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군. 그래서 얼굴이 똑같은 거였냐."

"8달이죠."

"얼마 안 된 거 아니냐."

"그렇긴 하네요."


삭막한 침묵에서 가뭄의 단 비 같이 내려와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인맥도 별 거 없는 중에 제일 잭팟이라 할 수 있는 라데르를 이곳에서 재회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옛날에 날 가르쳤던 선생님을 만나는 거라 훈련병 시절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살아남으라고 했건만, 살아남는 데서 그치지 않았군."

"욕심을 달고 사니까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 욕심 때문에 잃은 게 있어서 유쾌한 대답은 아니었다.


"라데르는 아직도 교관이신가요?"

"교관 일을 했으면 좋겠다. 아직도 그 밑에 있다."


토넴을 말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교관보다 편할 거라 생각이 드는데, 남의 전속 수하에 있는 게 싫은 기색이었다.


"그 때문에 내가 이곳에 온 거다."

"네?"

"초대장은 그 녀석이 받았었다. 그걸 나한테 양도라면서 싫은 걸 억지로 떠넘긴 거다. 나도 싫은 걸 모를 리는 없을 거다."

"아하."


나도 동류인지라 기분이 이해되었다. 그러나 본부가 싫어서 보냈다는 건 아직 잘 모르기에 섣불리 라데르에게 꺼내기 힘든 화제였다. 살수에 대해 비밀로 한다는 건 은연 중에 지키고 있는 규칙이었다.


"넌 어떻게 온 거냐?"


그래서 이런 질문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거라, 같은 질문으로 받아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도 상관이 강제로 가라고 해서 오게 되었어요."

"그러냐."


다행히 라데르는 에민하지 않아 이 이상은 삼갔다.


"몇 명이나 죽여왔냐."

"얼마면 많이 죽였다 할 수 있을까요."

"세리기 귀찮아질 때."

"많이 죽였다고 할게요."

"언제부터냐."

"오래 되었죠."


공백이 생기면 나도 한 입, 라데르도 한 입으로 심심한 걸 억제했다. 그러나 입 크기가 차이가 나는 탓에 접시를 비우는 속도는 라데르가 훨씬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데르가 곧바로 다른 접시를 들고오기 바빴다.


"너는 죽이는 대상에게 악감정이 있냐."

"악감정이요?"

"죽여야 한다는 정당한 이유 말이다."


라데르 입에서 저런 철학적인 소리가 나오는 건 진귀한 현상이었다. 진지하고 은근히 까다로우면서 재밌는 현실적인 생각만 하는 참된 교관인 라데르가 그간 변화가 있었는지 재회의 현장에서 나한테 진부한 화제를 하사했다.


"정당방위로 죽이기는 하지만요."

"정당방위가 아니라도 기습을 했을 거 아니냐."

"기습은 생각 못했네요."

"일일이 물어볼 필요는 없겠군. 너도 없는 거 아니냐."

"제 살려고 하는 거죠."

"이 전쟁의 시작도 정당방위였을 거다. 갑자기 휴먼들이 블루드를 잡고 일어나 우리들의 나날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것에 대한 저항이었었지."


길게 끌고 가기 전에 명료하게 내가 답을 내렸다.


"원래 지속되면 전부 독해지죠."

"이쪽이나 저쪽이나 전쟁범죄가 난무하고 있지. 널 보고 떠올렸다. 다른 세계에서 인원을 충당하는 게 휴먼이라도 용서되는 일은 아닐 거라고. 용케 잘 살고 있는 네가 특이한 거지, 평범한 건 아니지 않냐."


저런 말을 들으면서도 멀쩡히 난 회를 곱씹어 먹고 있었다. 맛있다는 것 외에는 불감증에 걸린 듯 라데르의 심오한 발언에 고개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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