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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91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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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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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권 (19)

DUMMY

"뜬끔없긴 한데요···."

"왜?"

"교관 님은 쓸 수 있나요?"


사전에 경고한 대로 너무나도 뜬끔없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쓸데없기도 했다. 이제와서 이런 물음이라는 것 자체가 실패였다.


"시대가 이러니 쓰지 못하는 지휘관 급은 없다고 보면 된다."


간단히 라데르는 손가락에 조그맣게 블루드를 점화하듯 발현했다. 불꽃같이 이글거리는 게 블루드의 본질이려나, 나는 블루드의 정의에 의구심만 들었다.

곧바로 라데르는 블루드를 꺼뜨렸다.


"최초의 수제자라고 불리우는 휴먼이 돌아오고, 당연히 이런 사기적인 힘을 바라는 시민들은 차고 넘쳤다. 어떻게 그 분을 뵐 수 있는지 수제자를 추종하는 이들이 줄을 이루었었다. 그러나 그 수제자는 스승의 뜻이라면서 오로지 휴먼만을 채택하여 보내었다."

"그 때부터 낌새가 있었더군요."

"그건 결과론이다. 불편해도 이해할 만한 사항이었다. 같은 마을에서 같이 지낸다고 해서 차별이나 편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싸우지는 않아도 냉정히 선을 그어서 평화라고 우기는 때였다. 이상하다고 여길 만한 건 적어도 없었다. 경계야 하기는 했다. 경비원들을 제치고 도망간 양상만 보더라도 단순 무시할 만한 존재감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긴 했다. 그렇지만, 고작 1년이었다. 소문만 무성해지지 그게 위협적인 존재라고 다가올 거라는 에상은 못할 기간이었다."

"이 사건들이 라데르가 직접 겪은 것은 아니죠?"

"이미 난 지휘관이었다만 강 건너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었다. 어느 날, 단 하루 만에 일대 도시가 휴먼들에게 점령당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졌다. 짧은 염탐만으로도 휴먼 외의 종족은 말살 당했다는 첩보가 들어올 만큼 대담한 경과였다. 평화를 깨뜨리는 행위임을 명백히 인지했기에 병들은 진압을 위해서 대거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의미했으며,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었다. 투입된 병들은 전부 몰살 되었고, 웃기게도 그 중 휴먼이었던 자들은 주동자 쪽으로 귀화하였다. 당연히 그들의 전력의 주는 블루드였다. 물론 당시의 우리들은 이해 못할 힘이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형태 불명, 부피 불명, 범위 불명의 괴랄한 전쟁병기 이하가 아니었다.

파란빛이 요동치고 난 후의 전장은 오로지 휴먼 아닌 자들의 피바다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전보를 계속 살펴 보면 그들의 점령 활동은 곧 진군 속도를 의미했다. 그게 전보를 받는 속도보다 빨랐다. 어느 순간 전보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건 절명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그럼에도 가만히 죽는 것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적의 무기를 습득하는 일이었다. 모든 걸 총동원해서 한 명이라도 포로를 만들자고 불가능한 일을 어떻게든 실천하려 했다. 내 부대가 아닌 얘기라 잘은 몰라도, 작전은 성공했다고 한다."

"오오."

"고문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알아냈을 거다. 하지만, 시간은 걸렸다. 습득하자마자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던 블루드라 전선을 버티고 버텼다. ···이후의 이야기는 확신이 없다. 아무튼 그걸 계기로 이렇게 대치되고 있는 상태다."


어렵게 쟁취한 무기이니 만큼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알자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의 이야기 같이, 가 아니라 실제로 남의 이야기였으니까 흥미진진한 전설을 듣는 기분이었다. 문득 이런 기분에 또 호기심이 가르킨 것은 다름 아닌 내가 이 세계로 오게 된 이유였다.


"도대체 저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그건 나도 모른다."


라데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약간을 후첨했다.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온 게 아니라 내 쪽이 끌고 왔다는 건 이해하다마는, 그 이상의 정보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나에게 있는 것은 너를 가르치라는 의무이지, 알아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고 본다. 만약 알아야 하겠다면 적어도 자기 선에서 다 해결해라. 나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거다."


자력으로 구하라는 말에 목표 의식은 확고해졌다. 어제 사리나 님을 보면서 든 장래이긴 하다마는 여러모로 명분이 덧붙여지니 희망보다는 필연이라고 여겼다.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왠지 이곳의 진실은 엉뚱하고 엉켜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지만 험난할 거라서 걱정이 들면서도 흥분이 요동쳤다.


"블루드를 바로 배울 수는 없나요."

"재능이 있다는 것은 알다마다. 그래도 내가 즉시 가르쳐 줄 수 없는 이유가 뭔지 아냐?"

"왜죠?"

"그 체력으로 네가 살아남을 거라는 것조차 내 경력에서 장담을 못하기 때문이다. 번데기도 되지 않고서 탈피한다는 건 허락을 못한다."

"네."


순순히 의도에 따르는 게 라데르의 눈에는 진귀환 광경이었던 것 같았다. 몹시 당황하여 입을 닫지 못하고 벌리고 있었다.

배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라데르의 말마따나 블루드를 배우기 이전에 전장에서는 난 애벌레 수준일 거라 자각을 했다.

죽지말자는 것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흔한 전쟁물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었기에 이해는 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은 해야만 피비린내를 맡고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의지가 하늘 높이 충만한 듯했다.




그러나 막상 의지란 것은 그리 견고하지 않았다. 매순간마다 무너질 수도 있는 갈대 같은 거라 극심한 스트레스 앞에서는 가끔 열심히 하지 않을까, 라며 종이 의지로 변하기도 했다.

그 다음 날부터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수준에 도달한 걸 확인했으니 언어 시간을 필요없다며 상의 하나 없이 오로지 하루 일과를 무술과 검술만으로 채워넣었다. 이곳엔 주말이란 개념도 없었다. 주 7일 모조리 쉬는 날 없이, 내가 온몸이 망가져있다고 하더라도 라데르는 아침 일찍 깨워 나를 혹사시켰다.

매일 그러면서 툭하면 던지는 말이 '전장에서 죽고 싶은 거냐'면서 날 죽일 기세로 잔뜩 굴렸다.

그래도 여기에서 희망적인 점이 있었는데, 빡세지만 유한인 하루 할당량을 내가 채운다면 몇 시간이 지났는지 신경 안 쓰고 끝내주었다는 점이었다. 언어 시간이 줄어든 만큼 이론적으로 내가 쉴 시간은 더욱 늘어난 셈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미친 소리 같아도, 쉴 시간이 있기에 나는 뭔가를 더 습득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여기에서 육체적인 일은 제외하였다. 아무리 블루드에 대해서 캐물어도 도무지 답변을 해주지 않아서, 기발하게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거라고 라데르에게 물어보았다.


"도서관 같은 게 있나요?"

"도서관?"

"어··· 책이 쌓여있는 곳 말이에요."

"서재가 있다."


처음에는 블루드에 관한 내용을 엿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간 거였지만, 그런 위험한 기술에 대한 내용이 적힌 책이 있을 리란 만무했다. 헛된 기대감에 시작한 거였던 서재 출입은 의도와는 다르게 흥미진진했다.

나는 무엇보다 지리에 관한 내용에 관심이 갔다. 성에서 절대 나갈 수가 없으니 상상으로나마 적힌 내용을 보면서 어떤 지역인지 체험해보았다. 그렇게 해서 지리에 대한 지식을 탐구해서 박식해졌는지는, 아마 선천적으로 그러한 지능은 없으니까 무리였다고 본다.

우선 내가 있는 위치를 아는 게 중요했는데, 라데르에게 지명을 물어보니 '사우스피나'라고 했다. 지도에서 이를 확인하였으며, 마음 속 우스갯소리로 '노스피나'도 있을까는 의문에 찾아보았더니, 진짜로 있었다······. 이곳의 언어 체계는 차마 알 방도가 없었다. 단순 한글만 있는 것 같았더니 영어의 잔재도 있고, 여러모로 혼란했다.

11일차였다. 그간 만나지 못했던 사리나 님이 서재에 나타난 것이었다. 사리나 님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은 의식되지 않은 채 반가움에 나는 말을 걸었다.


"사리나 님?"

"와, 테즈다."


천연기념물을 보듯 내 이름을 부른 것에 적잖이 기뻤다. 이게 반한 사람의 심정인지 알 길은 없었다.


"여기엔 왜 온 거니?"

"매일 여기에 옵니다."

"뭐 때문에?"

"지명 정도를··· 공부합니다."


딱히 계획을 잡고서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래도 알아들었는지 사리나 님은 재밌다는 기운으로 다가왔다.


"무슨 책을 보는지 보여줄래?"

원래 펼칠 마음이 있었던 지라 명령 때문만에 책을 가져와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사리나 님은 글이 적힌 곳을 모조리 생략하고 하이라이트인 지도 부분을 펼쳐놓았다.


"즉석에서 문제, 내 고향은 어딜까요?"

"그게, ···단서는 없습니까?"

"없어."


단순히 찍으라는 문제 아닌 문제에, 나는 그럼에도 대단히 고민을 많이 했다. 어디든 고향이 될 수 있는 것을, 그야 사리나 님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세상에 태어나 있었기에 전선 형성이든 뭐든 상관이 없었다. 그나마 따지자면, 휴먼들이 점령했던 지역에서 이민을 왔을 리는 없었기에 이 국가의 영토에 있던 원주민일 거라고 추측했다.


"여기요?"

"틀렸어! 여기야."


그러나 생뚱맞게 내 추정을 완전히 무시하여 적 국가의 영토 속, 그것도 최심부에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것이었다.


"어째서, 어떻게 여기로 온 거죠?"


내가 물어놓고서는 내가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라데르가 말했던 한 명의 포로가 이 때 떠올라서 갑자기 그것과 사리나 님을 겹쳐보게 되었다. 속으로 '설마'라고 간 졸이는 중이었다.


"고향이 어디라도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거지. 여기에 있다가 전쟁이 발발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는 거지."


이 말에 사리나 님에게 동정이 갔다.


"···괜찮습니까?"

"괜찮아 보이지?"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는 태생 고아라서 말이지."

"예?"


그런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줄은 몰랐다. 내가 죄책감이 들어 기분이 급감했다. 하염없이 사리나 님의 손가락 위에 있는 '남사르'란 지명을 읽고 있었다.


"상심할 필요가 있을까? 따지자면 너랑 나랑 똑같은 처지인데?"


사람에 따라서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안 그랬다. 부모가 없다고 남이 말해서 화나기보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게 내 성격 따라였다.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안 보고 싶어?"

"있어도 그만이었던 터라, 그다지···."


이런 말을 해도 미안하단 심정은 없었다. 들은 거면 들려주고 싶긴 했다. 솔직히 방치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돈을 벌어다 주는 것 외에는 부모라는 존재는 타 부모라고 할지라도 부럽다는 선망의 대상도 아니었다. 내가 그 둘의 결실로 태어났다는 사실만 인지하지 별로 혈연이라는 게 무덤까지 끌고 갈 인연이라는 관념 따위 사리진 지 오래였다.


"그래도, 양부모라도 없었습니까?"

"양부모같은 게 있었지. 적어도 내가 멀리 팔려나가지 전까지는."


내가 잘못했다고 빌고 싶을 만큼 나의 죄책감은 커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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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권 (20) 20.06.18 1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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