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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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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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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403,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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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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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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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권 (34)

DUMMY

"푸하하하하, 하하앜하하하."


심야의 개그 프로그램이라도 보는 것 같은 대소였다. 한참 저렇게 웃은 적이 없어 가능한 일인지부터 의심했다. 도대체 뭘 보고 웃을 수 있는 건데, 내가 가는 이유는 타이르는 것과 함께 그 웃음의 원천이 궁금해서였다.

마침 그 방 앞에 다다랐을 때, 가는 과정만 해도 당당하고 정의로웠지만 열기 직전에는 겁쟁이로 변절되어 있었다. 조심스레 잠기지 않은 문을 열다가도 노크를 했다.

똑똑


"엉? 누구요?"

"옆 방에 사는 사람인데요."


흔한 층간소음으로 방문하는 이웃 스타일로 진행했다.


"죄송해요. 이거 있는 줄 몰랐네요."


꽤나 친절한 이웃이었다. 문제를 제기한 지 몇 초 되자마자 사과를 바로 하는 모습에 세상이 살만 하다고 느꼈다. 이제 나에게는 여한이 없어 돌아가려 했었다.

하지만, 뭔가 미안한 게 더 있는지 안쪽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문을 열고 나를 반기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궁금하니까 고의적이지 않은 선택으로 문 앞에서 기다렸다.


"충당된 인원···인가?"


열자마자 하는 소리가 저거였다. 기대와 다르다, 는 표시가 확 드러나는 억양에 나는 되물으려고 했다.

순간 도를 넘어선 살기에 숨을 멎은 채 긴장을 하여 온몸에 블루드를 흐르게 했다. 분위기가 전투태세로 흘러가는 듯했다.


"왜죠?"

"오늘이 보름달인가?"

"아뇨. 그믐달이죠."


살수 간의 암구호였다. 태양력을 기준으로, 월과 일과 요일에 따라서 정해진 규칙이 있었다. 배워놓고 처음 써보는 곳에서 실수를 안 한 게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확실히 적으로 인식하고 대판 싸웠을 것이었다.


"휴, 공작인 줄 알았네."

"싸우자는 줄 알았어요."

"야, 내 입장에서 휴먼이 여기 있으면 안 의심하겠냐!"


상대의 블루드가 걷히는 걸 보고서 나도 전투태세를 풀었다. 만약 오해가 안 풀리고 싸웠으면 어땠을지 당시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항상 압도적이게 적을 제압해 왔었지만, 기압만으로도 동등하거나 그 이상일 것 같은 상대였기에 우아한 성의 일대를 박살내면서 비기거나 도망쳤을 터였다.

가정은 이쯤하고, 현실에서는 정전이 되고 난 후에야 상대의 모습에 의문을 가질 수 있었다.

비늘로 봐서는 역시 라데르와 비슷한 바실리스크라고 할 수 있지만, 교묘하게 입만이 달랐다. 입술이 길지 않고 비교적 짧으며, 머리 자체가 길게 뻗어져 있지 않아 그런 것이었다.

바실리스크가 아닌 건지, 바실리스크 중에서도 종족이 나뉘는 건지 그것부터 확인했다.


"저기요?"

"와?"

"바실리스크···인 거죠?"

"믓?!"


'믓'이 맞는지는 모른다. 저런 발음의 감탄사 정도였다.


"이 혀를 보면, 알 수 있잖아?! 리자드먼이라고?!"

"어, 처음 듣는데요?"


보통 '리자드맨'이라 할 텐데, 사투리일 걸라고 잠시 생각했다. '왜'를 '와'라고 하기도 했으니까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처음? 그리 무식해서 어캐 살수가 될 수 있었냐?!"

"그러게 말이에요."

"허··· 우리 종족은 벌써 글러먹었구나. 설마 모를 줄은 몰랐네···."


허탈한 표정으로 리자드맨은 침대 위로 돌아갔다. 혈기왕성하던 사람이 급변한 것에 괜스레 유감을 표했다.


"리자드맨을 만난 적이 없어서 몰랐네요."

"요즘 부대엔 없대?"

"제가 있던 부대가 그런 걸지도 모르죠."

"어디?"

"'만달' 쪽이었죠."

"아, 전방 전선? 전방에 없으면 말 다한 거지."


교과서로 준 역사책에도 딱히 종족에 관한 종류를 다루고 있진 않아서 몰랐다. 주요 인물들 위주의 역사서라 어쩌면 리자드맨이 없을 수도 있다고···

그런 경우가 더욱 비굴했다. 주요 인물들에 리자드맨이 일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 종족으로서의 자부심은 바닥을 치고 있을 터였다. 휴먼은 차별을 받는다고 쳐도, 리자드맨은 정말 역사적인 인물들이 없어서 이러는지 아픈 부분에 호기심이 들었다. 물론 묻진 않았다.


"···아까 웃던 이유가 있나요?"

"아, 그거?"


기운 빠진 상태에서 다시 활기차게 변했다. 화제에 따라서 기분이 급변하는 게 연기하는 줄 알았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 알기 쉽게 움직인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였다.


"읽으면 알 수 있을 걸?"


읽으라면서 건네준 것은 어떤 책이었다. 책의 제목부터 '알면 유용한 농담'이었다. 다양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문답형식으로 고작 두 개의 문장만으로 끝나는 농담도 있고, 아니면 길던지, 이야기 형식으로 끌고 나가는 농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보기에는 전부 아재 개그에서 지나지 않는 것들이라 답답했다. 피식 웃은 것은 진짜 웃겨서가 아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냐는 생각에서였다.

이걸 보고 소음공해로 의식할 정도로 웃어댄 사람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계속 읽는 척하면서 고민했다.


"오랜만에 겁나 웃었다고?"


저런 말까지 나오는 것에서부터 글러먹었다. 내가 글러먹었다. 지금에서라도 웃어줘야 하나? 이곳 사람들은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건가? 이런 걸 안 좋아한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할 것은 아니겠지만, 여러모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추천할 구석이 있네요."


마음에도 있지 않을 소리를 하였다.


"그래도 역시 애한테는 안 통하는 건가?"


알고 보니 상대도 아재 개그라고 의식은 하고 있었다. 괜히 빈말을 해서 내 이미지만 갉아먹었다.


"네, 재미없어요."

"그래도 몇 안 되는 오락 도서라고? 그 점에선 큰 의의가 있지."

"몇 안 된다고요?"


몇 달을 지냈는데도 아직 재사회화가 덜 되었던 것이었다. 그토록 시대가 다르다고 자각을 몇 번이고 했음에도 말이다.

당연 출판이라는 게 기계처럼 찍어내는 곳이 아니니까 책의 종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걸 모르고 또 이미지만 갉아먹었다.


"뭐지? 우리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 맞나?"

"제가 어리숙해서 그래요."

"음···."


날 신기하듯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젠 빠져나오기는 그르게 되었다. 맘 편히 상대의 비위에 응하기로 했다.


"너, 고향이 어디야?"

"네?"


뜬금없는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도무지 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얼렁뚱땅 이 세계의 지명을 말하려고 해도 자연스레 나오지 않은 이상 실패였다.


"그런가? 소문으로 듣던 다른 세계의 휴먼인가?"

"···족집게시네요."


고향을 묻기 전에 이미 그런 쪽으로 의심을 했다는 뜻이었다. 생각만 하면 쉽지만, 생각을 하는 게 어려운 것이니 훌륭한 추리실력이었다.


"다른 세계의 휴먼이, 우리와 같은 살수로 있는다, 라··· 근데, 다른 세계라 해서 꽤 대단한 동네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왜소한 체형이잖아?"

"여기나 거기나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하죠."

"아,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이리로 들어와!"


흥미로운 소재가 되어버린 나는 거의 붙잡히듯이 들어갔다. 일방적인 어깨동무로 끌려들어가서 의자 없는 맨바닥에 리자드맨과 내가 마주 보며 앉았다.

의자는 어디 있었나. 구석에 다리가 부러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수리하거나 새로 살 생각은 없어보였다.

내가 피소환자는 사실에 이끌린대로, 그 다음의 이야기들은 내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문답들이었다. 우선적으로 어떤 종족들이 있는가, 어떤 동력을 쓰는가, 그 시대의 병사들은 어떤 무장을 하고 있는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가, 어떤 오락거리가 있는가 등이었다. 무장이나 사상은 감히 내가 아는 체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기본적인 것만 답하고 나머지 세세한 건 모른다고 했다.

다 들은 리자드맨의 감상을 이러했다.


"여기보단 덜 혼란스러울 것 같은 곳이네?"

"음··· 글쎄요?"


구성 자체는 다를지 몰라도, 세상이란 것 자체에 혼돈을 일으키는 요소가 있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종족이 다양하든 인간만 있든 꼭 어떻게든 편을 가려 싸우려고 드는 것은 피차일반이었다. 만국공통이란 표현을 넘어서, 만우주공통이다.


"엘프들끼리 대판 싸운 것을 보면 생각하는 종족이 하나 밖에 없어도 힘들겠다고 이해가 가긴 하네."


이건 의문을 안 가져도 되는 정보였다. 이것도 역사책에서 봤었다. 현재 휴먼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기 전에 엘프가 먼저 이 정도의 규모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일종의 견해였다.

거대한 야망을 꿈꿀 수도 있었지만, 한 반란 때문에 좌절되었다. 그 반란은 부족의 견제로 발발하게 된다.

한 부족이 멀쩡히 자연사한 동맹의 수장을 놓고 멋대로 독살이라며 소문을 퍼뜨린다. 어느 수준까지 퍼뜨렸을 때, 여기서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다른 부족의 족장이 독살한 거라고 단정짓게 만든다. 그렇다 할 알리바이도 없어서 완전히 손에 놀아나고만 족장은 그래도 미련 때문에 끝까지 결백을 주장한다.

모두가 적인 시점에서 결백이라 주장하는 순간, 린치의 불씨가 점화가 되었다. 평화를 위협하는 반동분자란 명목으로 족장만 처단하는 게 아니라 부족 자체를 멸시하여 그냥 쫓겨내는 게 아니고 몰살 시키려고 애썼었다.

그러다가 이 일을 꾸몄던 부족의 내부에서 고발자가 나오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고발자는 바로 다른 부족으로 전향하고, 자신이 있던 부족의 위치를 샅샅이 불어서 두 번째 린치까지 이끌어냈다.

먼저 반동분자로 찍힌 부족은 겨우 숨이 붙어 있었고, 반대로 일을 꾸몄던 부족 쪽이 거의 전멸하는 기이한 사건이었다.

부족이 너무 많아 이걸로 전력 상의 손해는 없었다고 한다. 단지, 내부분열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새로운 동맹 지도자가 나오고 통치가 안정될 때까지 외부 침략을 못 이겨냈다고 집필자는 그렇게 전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있던 세계나 다를 바 없는 내용이지만, 저거 하나만으로 대등하려고 한다면 오산이라 여기고 있었다.


"솔직히 그 건보다 비현실적인 일이 많아서요."

"그래? 한 번 가보고 싶네.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게 취미라서."

"갈 수 있어도, 그러지는 마세요."

"갈 수 있어야 말이지."


복합적인 생각이었다. 휴먼 아닌 종족이 갈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리자드맨은 살수의 전투력이니 웬만한 살상무기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만, 어쨌거나 내 세계니까 이 사람한테 감정이입을 하는 게 아니라 당할 현대인들에게 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 참, 개판으로 만들기 딱 좋은 픽션 소재였다.


"그러면, 네가 여기로 왔으니까, 반대로 네가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있다고 믿진 않아요."


옛 토넴의 말을 다 신용할 순 없어도 여전히 돌아갈 수 없다는 쪽이었다. 가능 여부와 별개로 돌아갈 의사도 없어서 그랬다. 여태껏 사리나 님을 쫓고 있었고, 있는 중이니 일편단심이었다.


"···어디···."

"돌아가고 싶은지는 안 물으시나요?"

"응? 그런 걸 왜 물어.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사정은 알 바가 아니지."


정작 준비해 놓았던 대답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도 대답 안 하는 편이 나쁜 것은 아니라 아무 문젠 없었다.


"임무는 아직이지?"

"예. 받았으면 진즉 갔겠죠."

"좋아. 정했다."


몹시 불안해서 물어보았다.


"뭘요?"

"대련 해보자."

"···바로, 요?"

"시간이 많지 않을 거야."


뭘 정했는지 몰라도 나와 관련된 것이면 의사라도 물어봤으면 좋았다. 자기중심적인 것은 인정하다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다 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 내가 성격이 느슨해서 이 리자드맨에게 얕잡아보인 것이라 반성할 수도 있었다. 변명을 하자면, 이번에도 신장 때문에 위축된 것일 수도 있었다. 왜 인간이나 엘프 아닌 인물들은 큰 건지 운명이 마음에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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