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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57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2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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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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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권 (35)

DUMMY

대련장이라 할 만한 장소는 외딴 산 속에 있었다. 나무 밑둥도 잘려나가져 있는 평평한 인공적인 산등성이, 도끼로 저럴 수는 없으니 이곳의 존재를 아는 리자드맨의 소행이라 일단 예측했다.


"그 쪽이 만든 건가요?"

"어. 상도덕이 있으니 그 성에서 할 순 없어서 만들었지."

"민간인은 안 오나요?"

"안 오길 빌어야지. 용케 여태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럼 된 거지."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나름 비교적 사소한 문제였으니 무시하고 넘어갔다.


"대련을 해보자는 게 말 그대로인가요?"

"따로 어떤 뜻이 있는데?"

"왜죠?"

"음, 이제와서 묻는다라. 올 때까지 묻지도 않아서 납득했거나 이유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


올 동안에는 사심을 채울 화제만 늘어놓았었다. 특히나 살수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해결했었다.

제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살수로서 학살하면서 다녀도 되는지에 대한 일이었다. 대답으로는 정 자취와 후환만 안 남길 정도로만 하면 된다고 알아서 잘 하라고 했다. 어쨌든 나 자신을 신뢰하라는 뻔한 소리였다.

지위의 수준은, 리자드맨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교관이나 장교보다는 높다고 하는데 그닥 다른 간부급들하고 소통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 어떻게 보면 최고존엄이라고 했다. 내 생각에도 만날 일이 없어서 필요 없을 사실이었다.

사망보험금같은 것도 있다고 했지만 난 가족이 없어서 그다지 쓸모 없는 거라서 흘려들었다. 어떻게 보면 괜찮은 직장 같으면서도 홀로 누굴 위해 일하는 게 아니면 그닥 마음 고생만 심한 게 살수였다.

이런 대화로 얻은 것은 리자드맨이 가족이 있다는 것뿐. 이름은 살수의 원칙대로 안 알려주어서 나 역시 알려주고 있지 않았다.


"대련을 하는 이유는 내 사심이긴 한데, 들을래?"

"안 들을 리가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거라, 리자드맨의 사심을 우선 허용해주었다.


"네가 있던 세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모로 신경 쓰이거든. 그닥 살인병기로써 자라난 것 같지 않은 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원동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고 싶네. 블루드가 사상 최강의 무기이긴 해도, 시대를 타고난 게 있거늘. 소문의 소환이 과연 유익한지 확인해보고 싶거든."

"그래서 저랑 겨뤄보겠다는 건가요."

"해봤자 7절기 만에 살수까지 올라온 너와 겨루면 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지."

"마치 제가 저 세계 휴먼의 대표가 된 것 같은데요?"

"틀린 말은 아니지."


초면에 보였던 살기가 다시 피어올랐다.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푼 듯한 느낌으로 곧 있으면 점화될 것 같은 기운에 나도 똑같이 물들었다.

곧바로 부딪쳐서 불똥이 튀어오를 것 같아, 침착하게 막간을 두어 제대로 대련에 대해서 물어봤다.


"승패 규칙은 어떻게 하죠?"

"아, 그러네. 그게 곤란하네."


슬쩍 둘러보던 리자드맨은 바닥에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 두 개를 주웠다.


"부러지면 패배로 할까?"

"···좋아요."


내키지 않았지만 던져서 주는대로 받긴 받았다. 이 승패조건의 공정성을 고려했다. 내 스타일대로라면 어디까지나 원거리에서 요격을 해야되는 것을 안 다치게 하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릴 수 있을지 리자드맨이 걱정되었었다.

그렇다. 자만이었긴 했다. 내가 이긴다는 전제 하에서 상대를 걱정하고 있었기에 긴장하면서도 기고만장한 건 딱 내 성격이었다. 이 때마다 사리나 님의 조언을 떠올리지만, 아예 안 하는 것은 무리였다.


"시간은 일각 내로! 시작은 지금부터 한다! 알아들었나?!"

"예!"


높아진 목소리에 덩달아 나도 크게 내었다.


"시작을 내가 말했으니 선공은 너부터 해라!"


리자드맨의 나뭇가지의 위치를 확인했다. 나처럼 옷 속에라도 숨길 줄 알았지만 당당히 손에 쥐고 있었다. 어떤 꿍꿍이일까, 조심스런 추측보다는 이런 구도가 나에겐 우위라는 확신이 있었다.

당장 떠올리는 전술만 해도 와이어, 가시나무 등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건블레이드도 유효했다. 다만, 저런 가느다란 걸 조준한 적은 거의 없어서 난사로 고려했다.

선공이라고 하니 섣불리 하진 않았다. 나는 화끈하게 선공에서 끝내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셋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건 무의미했다.

셋 다 하면 되는 거였다. 양손으로 가시나무, 작살&와이어를 발사한 후에 건블레이드를 장착했다.


"인정사정 없는 거냐!"


그런데, 리자드맨은 날아오는 탄막을 향해서 나뭇가지를 치켜세웠다.

뭐지? 지려는 속셈인가?

내게 유리한 쪽으로만 사고하는 이 버릇은 곧 일어날 현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독이 되게 했다.

휘이이이이이이잉

느닷없이 들리는 정겨운 소리였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컴퓨터 쿨러 돌아가는 소리, 센 환풍구 소리 등 날이 돌아가는 모든 것들의 근본이 되는 효과음이었다.

그야말로 기계라는 단어가 안 어울릴 수 없는 정교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완벽한 회전이었다. 리자드맨에 앞에 펼쳐진 방어막 같은 대회전의 블루드에 탄막이 갈려나갔다. 멀쩡히 몇 %의 형체라도 유지해서 도달한 녀석은 없었다.

대회전이 그치고, 그 현상을 일으킨 것의 실체가 드러났다.

리자드맨이 괜히 나뭇가지를 세워 든 게 아니었다. 나뭇가지를 손잡이로 하여 둘러싼 창의 형태는 그가 왜 나뭇가지를 승패요인으로 했는지 알려주었다. 무기 자체와 동화시켜 뚫을 수 있으면 뚫어보라는 식으로 나왔다.

창의 형태 말고는 별 거 없는 게, 아마 대회전의 원리는 내 와이어랑 비슷해 보였다. 대신 나보다 훨씬 매끄러웠다. 하루이틀의 숙련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기동성으로 활용하는 분사법을 해내었다. 굳이 명명하자면, '제트 엔진'이라 한다. 창의적이라 했던 내 기술들의 사용법은 이미 널리고 널린 기술이었던 것이다.

압축된 위력으로 단번에 거리를 좁히는 무지막지한 기술임에도, 리자드맨은 내 코앞에서 멈췄다. 상위호환으로 다루고 있는 모습에 나는 겁을 먹는 게 당연했다.

팅팅, 팅팅

내가 도망치려는 제트 엔진을 쓰면 리자드맨은 보란듯이 쫓아왔다. 선공이었음에도 기세가 밀린 것이었다. 매번 도망칠 때마다 내 방어막이 창에 긁히고 있으니 소모전도 아니라 판단했다.

반격은 했다. 도망치면서 방어막에 밖으로 피어나는 가시나무를 심어 리자드맨이 접근했을 때 발동시켰다.

그는 당황은 했다. 그러나 적당히 뒤로 약간 분사해 가시나무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변수에 노련하게 대처했다.

그 다음 순식간인 충전시간을 가지더니 나를 향해 창을 던졌다. 던지기 전에 쫄아서 아무 방향으로 이동했다.

쿠우풍!!

맞았으면 나뭇가지 걱정은 무슨 배가 관통당했을 위력이었다. 바람 가르는 소리, 소닉붐 현상 후에 창이 땅에 쳐박히는 것과 더불어서 충격의 여파로 땅이 들렸다가 내려가는 현상까지 목격했다.

잠깐은 기회를 엿봤다. 창에 나뭇가지가 달려있으니까 어김없이 그 땅을 향해 힘껏 난사를 했다. 건블레이드에 작살&와이어를 달아 보냈다.


"어딜!"


리자드맨과 창과의 거리가 멀어 기회인 줄 알았던 게 착각이었다.

너무나도 손쉽게, 창은 혼자 움직여 리자드맨의 손에 돌아갔다. 창이 움직인 게 아니고 블루드를 사용한 염력이었다.

또 다시 접근한 리자드맨을 보며 건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명색에 근접전까지 고려하여 라데르에게 배웠던 검술을 활용할 수 있는 검술인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잘난 점이 하나도 없는 내 검술이 리자드맨에게 통하지 않았다. 공격은커녕 방어만 하는데도 상대의 창이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합을 이뤘는데도 내 방어막을 톡톡 건드렸다. 교묘하게 창을 자유자재로 각도를 변형시키고 잡는 자세를 고쳐잡아 농락하듯이, 듯한 게 아니라 농락하였다.

이렇게 된 이상, 건블레이드의 비기를 사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이 이전에 딱히 알려 준 적도 없었던 게 알려줄 수가 없어서 그랬다.

건블레이드를 자폭시키는 비기, 수류탄의 상위호환이라고 싶을 정도로 위력은 대단하지만 사용자의 안전은 보장 불가능이었다. 맞으면서 어떻게든 나뭇가지 주변에 건블레이드를 들이대었다. 그 상태로 자폭을 실행했다.

지이이익펑!

자폭 직전에 제트 엔진으로 빠져나와 공멸은 면했다. 사실 공멸이라고 인지한 것이 웃겼다.

리자드맨을 신용하는 나는 이걸로 내가 이겼다고 할 수 없었다. 흙먼지로 보이진 않는 게 내가 상대에게 연막을 쳐준 꼴이었다. 적디 적은 시간 안에 가시나무를 발사하면서 허공에 함정처럼 뿌려놓았다.

흙먼지의 연기들을 보고 있을 때,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이 상황에서 블루드인 게 틀림없긴 했으나 꺼림직했다. 거대하게 위로 솟아올라 잭과 콩나무를 연상시키게 했다.

그것은 엄연히 콩나무가 아니라 거대한 창날이었다. 들고 있으리라 상상도 못할 크기와 무게는 중력에 따라 나를 향해 기울어졌다.

풍!

오늘따라 지면이 고생이 많았다. 충격파로 지면이 또 들렸다. 그리고 창날의 풍압으로 흙먼지도 걷혔다. 그래도 굼뜬 속도란 내가 피하기에는 시간이 넉넉했다.

설마 저걸 휘두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안 휘두르려고 하기에는 절대 창날의 길이를 줄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휘두를 거라는 에상을 했어야 했다. 바보 같이 그걸 지켜보다가 어리석은 자의 말로로 봉변을 당했다.


리자드맨이 제트 엔진으로 창을 쏘는 걸 봤는데도 내 창의력의 한계였다. 제트 엔진을 이용해 맨몸으로 움직일 수 없는 창날 따위 휘두르는 건 거뜬했다.

방어막으로 힘껏 방어해도 크기 만큼의 위력에 나는 날아갔다. 온몸이 허공을 돌아 머리가 제정신을 잘 못차렸다. 본능이 나를 도와줬다. 제트 엔진으로 모든 운동을 감속시켰다. 자세를 고쳐잡은 나는 지면에 발을 디뎠다.

발을 딛자마자 나는 직감했다. 반격은 이젠 글렀다고. 체념하고 옷 속에 넣어둔 나뭇가지를 꺼내보았다.

몇 피스 더 있겟지만, 일단 산산조각 난 나뭇가지를 하나 꺼내며 대련을 종료했다.


"졌어요."

"직격했네! 후우···."


리자드맨은 내 패배를 보자 주저앉았다. 숨을 고르는 게 힘들었단 모습을 역력히 드러냈다.


"넌 안 지쳐?!"

"저는 아픈 것 빼고 괜찮아요."

"와···, 그렇게 하고도 안 지친다고?!'


저 '와'는 '왜'가 아니라는 걸 겨우 인지했다. 하마터면 어떻게 이유를 설명할까 고민했다. 정신적으로는 지친 상태였다.


"내가 이기긴 했지만, 후우···, 너도 만만치 않아? 이거 골 때리는 인재를 데려왔구먼."


표준어를 쓰다가도 사투리를 썩어쓰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버릇이면 어쩔 수 없으니 물어보려는 마음은 없었다.


"저도 옛날에 지치긴 했었는데요···."

"지금은 안 그런다?"

"···지친다는 게, 정확히 몸의 피가 빠지는 빈혈 같은 느낌이죠?"

"그래, 그거. 그걸 못 느낀다고?"

"병일까요?"

"낸들 아나! 적어도 블루드와 관련된 병은 공식적으로 없어."


내가 목격한 건 아니지만, 거짓말 할 리 없는 라데르가 했던 나한테 나타난 현상이 기억이 났다. 수시간이고 의식 없는 나에게서 블루드의 불꽃이 이글거렸다는 헛소리 같은 이야기.

별로 중요할 거라고 여기진 않았지만, 나만 특별하다고 자만할 수 없었다. 조그마한 불안감이 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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