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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94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2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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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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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권 (31)

DUMMY

금세 배낭여행의 로망은 깨졌다. 교통이 상상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배낭여행도 막 교통수단을 다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만, 여긴 특히나 심했다.

도시 하나하나마다 이동하는 것은 쉬울지언정 외곽 지방으로 가는 길인 교통을 찾기란 어려웠다. 마부라는 게 자선사업이 아니기에 돈을 벌어야하니 마냥 쓴소리를 할 순 없었다. 많이 오고 가는 도시만 경유하는 게 그들에게는 돈벌이가 되기에 합리적인 선택이다.

필히 승마를 배워야만 했다. 내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기 위해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매번 임무를 받고 가는 데에 마부들의 힘을 빌리는 것은 시간이 아까웠다. 내가 손수 말을 타고 다닐 수 있으면 임무에 지장이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괜히 마부가 직업으로 있는 게 아닌 것을 봤을 때 승마가 어려울 거라는 건 예상은 했었다. 예상보다 어려워서 생채기까지 났다. 오랜만에 겪어 본 피맛은 쇠맛이 진하게 곁들어져 있었다.

블루드로 말에서 떨어질 때 방어하고 싶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블루드는 어디까지나 병법이고 민간 지역에서 쓰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 드워프가 가르쳐준 내용 중 하나였다. 그래서 자동방어도 일일이 섬세한 관심을 통해 꺼두고 일반인처럼 말에서 떨어지면 다친다는 걸 받아들였다.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승마를 배우는 데까지 이틀이나 걸렸다. 이틀만에 정식으로 배우는 건 무리가 있었다. 어떻게든 타기만 하면 되는 방향으로, 즉 야매로 다 배웠다. 무리없이 혼자서 말을 탈 수 있긴 했다.

승마가 가능하게 됨과 동시에 걱정이 든 게 있었다.

말의 똥은 치워야 하나.

'어떻게 치우는지', 방법을 물은 게 아니라 '치워야 하는지', 여부를 물었다. 내 시대의 에티켓에는 배반되는 내용이다만, 승마 선생님께서는 "주워가는 사람이 있다." 고 딱히 치울 이유는 없다고 했다.

덧붙여서 내가 직접 모아서 갖다주면 보상은 있냐고 했더니, '보상은 받는 사람의 기분'이라고 했다. 결론은 내가 안 치워도 된다는 소리였다.

가르쳐 주신 마굿간 주인분께는 두둑히 사례를 드렸다. 말값에다가 사료값에다가 교습비용까지, 운수 좋았던 그 주인분은 지금도 부유하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 모든 것은 임무에 기한이 없어서 가능했다. 목적 자체에 기한이 붙어있는 게 아닌 이상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상관이 없었다. 하필 임무의 주 목적이 정보 수집이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편안했다.




남쪽에 있는 '로브소'라는 지방이 임무의 근원지였다. 대충 로브소에서 비밀 집회가 있다는 정보를 상세하게 나열해서 임무표에 적어놓은 게 다여서 그냥 바로 온 것이었다. 깊은 해석 없이 단순한 논리로 내가 판단했다.

가긴 했지만, 초행에 베테랑처럼 유연한 계획을 잡을 수가 없었단. 일단 마굿간에 말을 맡겨놓고 생각해보자는 식이었다.

지겹도록 마을 전체를 순찰하는 노가다는 별 볼 일 없었다. 하고 나서도 느낀 것이 못 보던 이방인이 아무런 일도 안 하고 돌아다니는 건 필히 수상해 보일 거라 생각했다. 이미 낙인 찍혀도 무방했을 터였다.

비밀 집회라기에 아예 음지들을 모조리 조사하는 노가다도 뛰어보았다. 임무와는 관계 없는 지식이 하나 늘긴 했다. 촌이라도 수상해 보이는 위치에 주점이 있을 수 있다, 는 사소한 지식이었다. 본전이 아니라서 역시 개고생한 셈이었다.

이러다간 평생 이 마을에서 굶어죽겠다는 경각심이 들었었다. 심히 초조했었다. 매수하자는 방안도 말 하나에 쓴 비용만 생각하면 택도 없었다. 게다가 경제 사회는 1도 모르니까 얼마가 매수에 적당한지도 아는 게 없었다.

있는 게 몸밖에 없어서 몸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탐문 수사는 지겹도록 유효하지 못했던 경험을 살려 잠복으로 전환했다. CCTV라도 있으면 여러 곳을 한 몸으로 감시할 수 있었을 것을, 없는 것대로 노력은 다했다.

전등이란 게 없는 시대라서 달빛이 생각 이상으로 환했다. 밤에 불빛 없이 잠복하면 아예 안 보일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하기야 내가 예상한 것들이 웬만해서 적중한 적이 없었다. 예상의 예상과 똑같이 맨눈으로도 숲을 거닐 수 있을 정도라 숨기도 잘해야 했다.

그래도 차마 풀에 뒤덮여 위장한다는 건 하기가 싫었다. 너무 천연인 자연이라 벌레를 좋아하지 않은 나에게는 그건 무리였다. 적절히 아무 엄폐물에나 숨었었다. 안 들키면 장땡이었다.

그리고 맨눈으로 걷는 나그네 둘이 나타났다. 아라크네 둘. 어렴풋이 본 바로는 마을의 주민인 2명이 맞았다. 야밤에 불빛 없이 걸을 수는 있다고 해도 내가 들키면 수상해 보일 것처럼 그들 또한 수상했다. 횃불 없이 가는 것을 근거로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결과로 단정지을 순 없어도 미행해 볼 가치는 있었다.

가치가 아니라 미행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잠복의 의미란 없으니까, 저 둘의 결백을 보는 편이 애매한 추정보다 나았다.

서로 대화도 않고, 의사를 밝히지도 않고, 그럼에도 제대로 목적지는 있어보이는 둘은 바위 무더기 앞에서 멈췄다. 전혀 의심을 않는 듯했다. 주변을 경계하는 움직임은커녕 곧바로 바위를 옮겨서 숨겨진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닫는 장치가 있는지 둘이 사라지고 바위도 원위치로 돌아갔다.

뜻밖의 행운에 이 다음의 행동에 대한 확신이 안 섰다. 임무의 최종목표는 비밀 집회의 존재 여부 파악 후에, 있다면 그들의 정보들을 캐내는 것이었다. 몰래 둘을 고문한다는 방법도 있긴 했다마는 매뉴얼 상에 존재하는 방법이 나와 어울린다는 건 아니었다. 모순되긴 해도 고문은 내가 하기에는 정신적으로 힘든 방법이었다.

놀랍게도 여기에선 미행한 둘을 따라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3분 정도 지났으니 괜찮을 거란 나만 편한 논리를 들이밀었다.

커다란 개미굴 같은 구조에 길을 잃을 걱정부터 했다. 길을 잃는 이상 블루드로 지상까지 뚫어버리겠다는 최후의 수단을 고려했다. 그 전에 뭐라도 성과가 있어야 가능한 수단이라 인기척이 느껴지기 전까지 갑갑해도 참고 돌아다녔다.


"뭐야?!"


찾기가 아니고, 반대로 내가 들켜버렸다. 질문에 대답할 변명거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절 모르십니까?"


당당히 결백한 척, 두루뭉실한 대답을 꺼내보았다.


"침입자다!"


이따위로 일을 저질러놓고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정면으로 들이박은 내 잘못이라, 한 번 시작된 "침입자다!' 외치기 릴레이는 막을 수 없었다.

최선의 선택으로, 본능이 앞서 일단 먼저 나를 발견한 작자에게 자그맣게 블루드 탄환을 발사했다. 이걸로 죽을 줄 알았다.

그러자 그 작자는 방어막을 펼쳐 손쉽게 막아버렸다. 가소롭게 과소평가 했다만, 나름 이 놈들도 블루드 사용자라는 걸 안 순간 조그맣게 충격을 먹었다.

이상할 점은 아니었다. 첩보 활동을 할 거면 블루드 미사용자를 데려다가는 개죽음을 당할 것이니 최소 자기방어는 가능할 적성자만 모일 게 정론이었다.

따라서, 난 가차없이 건블레이드를 꺼내기로 했다. 탄환을 더 발사할 필요 없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는 방어막 속으로 그 작자를 썰었다. 방어막이 사라진 것으로 즉사했음을 확인하고 지나쳤다.

항상 건블레이드를 근접전으로 사용할 때마다 피가 묻어있는 게 실허 다시 재생성하곤 했다. 병사 시절 두 번째 전투부터 그래왔지만, 특히 이번이 절정이었다. 개미굴 수준으로 복잡한 만큼 코너에서 마주치는 게 빈번했다. 탄환을 쏘기보다 휘둘러서 죽이기가 더 빨랐다.

갑자기 라데르가 그리웠다. 그토록 애먹었던 발검술을 익힌 덕분에 이리저리 다양한 상황에서 건블레이드로 썰기가 쉬웠다. 정작 발검술 외에는 못 썼다는 게 슬픈 현실이었다. 검술이란 것 자체가 한 번 뚫으면 그만이다만 발검술에서 끝난다면 시시한 건 인륜 배반적인 행위를 떠나서 동감이 됐다.

이 중의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은 분명 있었다. 중간에 발검술만으로 뚫리지 않는 방어막을 지닌 상대가 나와서 조금 뒷걸음질 했다. 그걸 보고서 대장은 반격의 기회라 엿보았는지 주먹에 블루드를 쥐어짜내 복싱을 구사하여 타파해보려고 했던 듯했다.

내가 어쩌려고 그런 공방전에 응해야 하는지, 발검술 건블레이드로 안 되니까 바닥에 가시나무를 뿌려 온몸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윽, 지독하다."


내장이 흘러나온 걸 봐서야 잔인하다고 느꼈다마는, 학살극은 그대로 진행했다. 가능한 급소만 노려 생각보다 깨끗하게 처리하려 했다.

기껏 일을 다 끝내고 나서 돌이켜보았다. 아무리 살수의 임무 해결 방식에 제약이 없다지만, 몰래 들어가서 정보만 입수하려는 태도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란 식으로 죄다 죽여버렸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수습할 수단도 없어 의자에 앉아 상황만 정리했다.

가까스로 양피지에 담긴 정보를 빼돌리려던 잔당도 이 개미굴 내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다 처리했다. 이 밖의 문제는 아예 없는가? 양피지에는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얼룩이 없는가? 내 정체를 아는 이는 없는가? 다행히 세 개의 항목 전부 맞아떨어졌다. 내 신분증을 함부로 본 적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얼굴 정도 기억하는 이는 이 마을에 수두룩하겠지만, 두 명의 실종 소식과 이방인의 출몰은 괴담으로 써먹기 좋은 소재로 남아있을 거였다.




마겐노하로 돌아오긴 했다. 하지만, 가져온 양피지들은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민을 했었다. 임수완수를 위해선 이 양피지들은 보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임무를 보낸 저들이 과연 내 소식을 알기나 할지 염려된 상태로 있었다.

밤까지 가만히 있어도 아무런 타개책이 없어 잠이나 자려 했었었다. 매우 예민한 밤귀 때문에 난 편히 자지도 못했다. 복도로 내 방에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라데르와 한 방을 쓰면 저절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발소리가 내 방을 목적으로 하는지 알 수 있는 게 특징이었다.

서서 누가 나에게 볼일이 있어서 오는지 경계했다. 최악은 로브소에서 뒤를 밟은 작자들일 경우라 문에 다가가진 않았다.

똑똑똑

그러나 당당히 노크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누구시죠?"


대답은 없었지만,


덜컥


내 질문을 무시하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제 아무리 잠금 장치를 안 걸었다지만 무례해 보여서 잔소리라도 했다.


"아니,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시면···."


상대는 두터운 로브를 쓰고 있어 얼굴조차 알 수 없었다. 무례한 상대지만, 내가 로브를 벗겨 얼굴을 확인하는 것도 무례한 일인 터라 감히 못했다.

알 수 없는 정체는 다름 아니라 내가 공수해 온 양피지를 찾아 집어 들었다. 등가교환으로 로브 속에 숨겨두고 있던 큰 동전 주머니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벙 찐 모습으로 문을 다시 친절히 닫고 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못했다.


"안 되는데···."


제대로 어미도 완성 못한 문장을 끝내 다 내뱉었다. 기분이 나쁘다가도 아무렇지 않아도 될 듯하고, 어정쩡한 감정에 휘둘린 나머지, 속 편하라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게 살수의 임무 보고 방식이구나, 라고 결국에는 납득했다. 또한, 내가 부재중일 때 임무표를 던져준 사람이 저 사람이구나, 라고 며칠 전의 미스터리가 해결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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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1권 (33) 20.06.23 17 0 12쪽
32 1권 (32) 20.06.22 1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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