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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97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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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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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권 (26)

DUMMY

우유부단한 우리 분대는 일제히 서로 말하지 않아도 나무 뒤를 찾아 헤맸다. 4명뿐이지만, 너무 다급한 나머지 두 명씩 한 나무를 맡아 숨었다.

제일 굼떴던 나는 벌을 받는 셈으로 나무에 먼저 붙은 한 명을 아늑하게 하려고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안전하도록 최대한 웅크려서 방어막을 펼치고 있었다.


"우산처럼 할 수는 없나?!"


그렇게만 된다면 나만 방어에 전념하고 나머지가 공격을 하면 되긴 했다. 다만 망상이었다. 제 몸 보호하기도 바빠서 입을 열 수도 없었기에 역시 안 될 듯했다.

화살비가 끝나자마자 나도 같이 태세를 전환해 수류탄을 날려보냈다. 적들도 제대로 위치를 식별 못했으니 화살비를 쏘아댄 것일 테니 이판사판이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제대로 정면에서 싸울 자신이 없으니 둘 중 아무나 죽으라는 초강력 소모전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정황상 우리가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화살비의 경우에는 나무가 안 뚫리는 것을 보면 수류탄과 비슷한 화력인 걸, 수류탄의 이점은 투구 거리에 따라서 유효각이 매번 달라지니 일방향인 화살비와는 유동적이었다.

몇 번이고 던지고 나니 주변이 고요해진 걸 알 수 있었다. 물리쳤다, 고 말하는 건 긍정적이다 못해 성급한 판단이고, 이 경우에는 다 같이 모여 의논하는 수밖에 없었다.


"끝났나?"

"시체 수를 확인해야 끝나지."

"멋대로 허위 보고를 할 순 없잖아."


의논이라 해도 난 한참 다른 3명보다 어리다 보니 말을 섞을 수가 없었다. 어찌저찌 해서 결론은 시체를 확인하거나 잔당을 처리하는 방향으로 갔다.


"앞장 설 수 있겠니?"


엄연히 나는 고기방패가 되는 것에 동의하는 바였다. 그래도 이 넷 중에서는 가장 튼튼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화살비 같은 거라면 맞아봤기 때문에 두렵진 않았다.

잔당이 있더라도 차라리 전방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후방에서 나오면 내가 보호해줄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그대로 도미노처럼 3명이 죽는다면, 그냥 그런 생각을 않기로 했다.

하지만, 잔당보다도 끔찍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하필 그 짧은 전투 중에 보이지 않았기에 다행이었지만, 이제 확인해야 하는 건 부상입은 것도 아닌 진정 의식이 없고 생명 활동도 끊긴 벌레 먹히지도 않은 순수한 생 시체였다는 것이었다.

생 시체? 죽은 것인데 생이라 붙인 것부터 내 가치관이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무슨 사람 시체를 생고기처럼 표현하는 게 잔인하다고 자각한다.

그래도, 생고기 역시 가축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자비한 포식처럼 보이기야 할 테니, 포식자와 피식자의 입장은 공감할 수 없는 장벽이 있는 것은 맞는 듯하다.

다시 과거의 나에게로 돌아가서, 꼭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은 하찮은 변명이자 도피일 테고, 우리의 공격 때문에 죽어버린, 죽일 수밖에 없었던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타 종족도 아닌 시체의 정체가 인간이었으니까 저절로 구역질이 나올 뻔했다. 하도 오랜 시간 먹은 게 없어 식도로 타고 올라올 건 체액 말고 없었다. 괜히 시체에 토사물을 끼얹을 수 있었다.

나무가 참 대단하긴 했다. 사람은 이리 구멍이 숭숭 뚫려 의지 차이가 문제가 아니고 죽기 일쑤였는데도 끝내 한 그루도 쓰러지지 않은 걸 보면 사람보다는 훨씬 튼튼한 게 맞았다. 뉴스만 봐도 교통사고 사례에 괜히 멀쩡한 나무가 있는 게 아니니까 상식을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생각했다.


"피 보면 안 되는 알러지라도 있는 거니?"

"이게 당연한 거지."

"처음 시체를 본 사람의 정상적인 반응이잖아."

"난 헛구역질은 하지 않았다."

"좀 쉬고 있어."


그 뒤로 전멸했다, 는 클리셰 따위 없었다. 체력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으로 단시간에 치명상을 입은 나는 총 5구의 시체를 확인하고 올 동안 그 첫 시체 앞에서 앉아 있었다.




당시에만 충격적이었고, 나름대로 잘 극복하고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다고 믿었다. 믿음의 힘인지, 내가 우울하다거나 그런 기분은 없었다.

그런데도, 내게 다렌이 다가왔다. 나머지 두 명이 씻기 위해 방에서 없던 때였다.


"다시는 남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그래도 고민 거리라는 게 있어?"

"딱히 없어요."

"그러면, 반대로, ···남을 죽여야 하는 이유가 있어?"

"···제가 죽기 전에 먼저 죽인다는 마인드죠."


'마인드'를 못 알아 들을 거라는 걱정을 순간 했었다. 상대는 나랑 똑같은 피소환자(앞으로 소환된 사람을 이렇게 부를 거다)인 걸 걱정하는 게 사치였다.


"웬만해선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게 자연스럽지."

"죽고 싶으면 싸울 이유는 없죠."

"그 뭐, 강한 상대를 만나서 생을 끝내고 싶다는 설정은 우리가 보기엔 우습겠지?"

"전혀 이해가 안 가죠."

"그런 설정 중에 강한 상대를 만난다면서 약한 상대는 살육하는 모습이 빈번한 게 참 어이가 없지."


이 말들은 서론에 불과했다.


"이대로 계급이 올라간다면 뭘 할 거야?"

"계급이요?"


그동안 훈련 등의 갖은 고생으로 계급이란 걸 잊고 있었다. 내가 목에 걸고 있는 걸 과장 보태어서 1달 지나서야 다시 의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렌의 것도 같이 의식했다. 마침 그의 계급장은 세모 1개였다.


"벌써 거기까지 가셨어요?"

"살다 보면 이런 거지. 묵묵히 제 임무를 수행하고 끈질기게 이 침구류에 눌러붙어 있으면 언젠가 이렇게 되어 있더라."

"얼머나 걸리나요?"

"한 10번 정도 전투하다 보면 이렇게 되···지만,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지. 왜 이리 진급이 빠르겠어? 당연히 뎅강 죽어버리는 인원이 많으니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우리가 운이 좋은 거야. 1명은 운이 안 좋아서 그 자리로 못 돌아왔고."


별 감정이 안 들어간 게 마음을 빨리 정리해버린 상태였던 다렌이었다.


"혹시··· 계급이 높아지면 혜택이 있나요?"

"음···."


애써 고민하는 게 그냥 없는 듯했으나 이렇게라도 말했다.


"남들이 '짬'을 알아준다고 하는 정도밖에 없어."

"뭐라고요?"

"짬, 못 들어봤어?"

"네."

"보고 '오래 살았구나'하며 지나갈 거라고만 알아둬."


뒤에 제대로 '짬'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서는 군필자들의 은어라고 알아두고 내가 직접 쓰진 않았다. 여기도 군대이긴 하나, 우리만 아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다른 데에 쓸 수도 없고, 간간이 우리끼리 쓰도록 하였다.

그건 그렇고, 핵심으로는 목걸이를 찬 계급에서는 일단 아무 헤택이 없다는 뜻이었다. 최소가 목걸이를 벗어던져야 한다는 뜻으로 다렌이 가르쳐 준 계산으로는 20번의 전투에서 살아나가야 자금이든 자유든 생긴다는 고급 정보였다.

자유 면에서는 과연 어떤 직책을 받을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 모르겠으나, 그런다 한들 내가 여기까지 살아온 이유를 배반할 수 없긴 했다. 그래야만 사리나 님을 다시 볼 수 있을 희망도 생길 것이기에 진급이나 생존이나 둘 다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도대체 편지는 언제 마저 읽을 수 있을지, 나 혼자만 방 안에 오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을 때 읽으려니 열흘 이상 서랍장에 방치 중이었다.




위 사건과는 이틀 뒤, 첫 전투가 끝나고는 사흘 뒤에 특수병과 전 병력이 집결돼서는 부부대장이 '진급 시험을 볼 이가 있냐'고 고했다. 난 전혀 진급 시험에 대해 들은 적도 없어 드는 손이 부쩍 많아져 가고 있을 때 멍하니 있었다.

그 때, 다렌이 내 의사는 묻지 않고 멋대로 내 손을 들게 했다.


"왜죠?"

"넌 볼 만하거든."

"빨리 우릴 따라와라."


진급 시험의 실체는 이러했다. 인재 양성에 있어 정성적으로 하여금 보다 형평성 있는 계급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렇다고 했다. 시행 의도가 뭐든 간에 시험을 요약하자면 블루드 사용자 중에서도 재능이 있는 사람이 낮은 계급에 있는 걸 구원해주는 것이었다.

시험을 보는 계급은 형형색색이었다. 나처럼 아예 최하급이거나 아니면 세모 2개인데도 보거나, 시험에 대한 열풍은 대단했다.

준비도 없이 나간 나는 뭘 할지 몰라서 수류탄 말고 4인방 중에서 나만 하는 방어막이나 보여주었다. 부부대장을 포함한 심사위원들은 영문 모를 미소를 짓고 다음 차례를 불렀다.

그리고 눈 떠 보니 나는 1계급 특진을 하였다. 솔직히 합격이 될 줄은 몰랐다. 아마 최하급이라 수준을 낮게 잡은 듯했다. 다른 참가자들의 쇼를 보자면 나는 보잘 것 없다고 여겼지만, 아무래도 세모 계급장이었지 않나, 본 적은 없어 심증만 넘쳤다.

내 특진을 행운이라 여겨 결코 안주할 수가 없었다. 높은 계급에 갈 수록 저래야 한다는 걸 눈으로 똑똑히 봤기에 이은 일과 시간에도 전력을 다해 아이디어를 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발현된 칼이 한 번의 신축만으로 바닥을 깊고 얇게 가르는 기행이었다. 진급 시험이란 것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동기는 확실해질 수 있었다.

그 중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한 작품이 있었다. 통칭 '건블레이드'였다. 가장 좋아했던 가상의 무기였기에 여기서도 구상을 해보자는 욕구였다. 취지는 검이라 해서 근접전을 위해서가 아닌, 첫 전투를 떠올리며 확인사살을 위함이었다.

풀숲 같은 엄폐물이 있는 지형에서 많이 일어날 것이므로 풀을 헤치는 용도로도, 아니면 정말 뜻밖의 근접전을 하던지, 그래도 핵심은 블레이드가 아닌 건이었다.

한 가지 가설을 해보았었다. 수류탄이 무수한 탄환이 서로 튕겨져 나가 터지는 것처럼 작동하는 원리라면, 정말 그런 물리가 정말 작용한다면 한 탄환에 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 폭발하듯 받는다면 그만큼의 값을 할까. 그렇게 모두에게 말을 해도 먼저 발현을 성공하는 건 나였고, 내가 실험자였다.

일단 블레이드는 집어 치우고 총신의 형태를 만들고 총신 안에 블루드 집합체를 형성했다.(어떻게 했는지는 오로지 감이라서 정확한 설명이 불가하다.) 다른 손에 블루드 총알을 생성해서 총구 안으로 집어넣고 나무의 밑동에 총구를 밀착했다. 총알이 굴러떨어지는 것까지 감안해서 살짝 두께를 꽉 끼게 만들었었다.

의식으로 블루드 집합체를 터뜨리면 되는 것이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걸 신호로 하여 타이밍을 쟀다.

푸쾅!

일반적인 사격 소리와는 다르게 화약이 터져버리듯이 훈련장을 뒤덮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다렌 외 2명은 귀를 막고, 멀리 구경하지도 않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그 사이, 나는 충격에 못 이겨 뒤로 튕겨나가고 총신은 내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제 형태를 유지 못하고 산화되었다. 총신의 최후를 보고 난 나는 땅바닥에 쳐박혔다. 이래서 라데르가 체력을 강조했다는 게 맞딱뜨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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