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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58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9 00:06
조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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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권 (25)

DUMMY

"다 왔네!"


멀쩡한 파논과 달리 도착하고 나서도 후유증에 시달려 멀쩡히 말에서 내리질 못했다. 엉덩이만 아픈 줄 알았더니 허리도 나간 것 같은 위독한 상태에서 그래도 나는 혼자서 걸어가야만 했다.


"난 간다! 부디 잘 해내라!"


초소 한복판에 던져주고 가버린 파논에게 애써 허리를 굽힌 채 손만 흔들어 인사했다. 손으로 붙잡고 억지로 허리를 펴려고 하면 되긴 했다. 통증이 가시는 건 아니라서 곧 다시 굽힌 자세로 돌아갔다.

엎친 데 덮친 격, 이런 웃긴 자세에서 초소 대장이라고 예상되는 인물과 만났다는 게 참 살고 볼 일이었다. '어디 아프냐'고 묻기에 사실대로 '말을 타고 와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니 '그럴 수도 있지'라며 납득해주었다. 이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개 병사 1명에게 전시이기도 해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는지, 나는 내가 지낼 호실로 바로 이동되었다. 그곳에서 짐을 풀라고 했지만, 짐을 풀라는 명령은 거의 의미가 없었다. 사물함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워 보이는 허름한 서랍장(심지어 밑판이 헐어있어 자칫하면 떨어지는)에, 차라리 라데르의 방에서 돌바닥에 자는 게 나을 처지로 그냥 흙바닥에 개인 시트만 깔고 그 위에 똑같은 시트를 덮고 자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낫다고 생각한 것은 방 구성원에 있었다.

그토록 애원하던 동족이 무려 3명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무지한 나라서 평범한 인사를 하면 될 줄 알았더니 갑자기 버럭 지르며 나를 갈구었다.


"오늘부로 무슨 부대에 편입하게 된 누구입니다, 이렇게 말해라!"


말대꾸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알아봐야 할 사항이 있어 질문했다.


"여기가 무슨 부대입니까?"

"까먹었냐?"

"못 들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동거인이 만류했다.


"들어와 앉아라. 몰라도 이상할 건 없지."


첫 인상은 나름 이 방에서 권위있는 자로 보였다. 나를 갈군 이도 진심으로 하는 게 아니었고 재미로 하던 거라서 아쉽다는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그 권위 있는 이는 나에게 자기소개를 시키는 대신 질문을 했다.


"이 세계로 넘어온 애니?"


다른 건 다 필요없고, 이게 가장 반가운 소리였다. 나이상으로는 전혀 맞지 않게 내가 너무 상대적으로 어려서 그렇다 할 말동무도 되지 못할 줄 알았지만, 단지 저것만으로도 성인 대열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보다, 동족인 것에서부터 다행이라고 여겼었는데, 여기서 똑같이 소환된 사람들과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부대에 온 것에 한이 없었다.

짐 풀기와 장비 받기를 쏜쌀같이 해서는 그들과 잡담에 들어갔다. 일단 부대 상황을 들은 바로는 보통인 편이었다. 전진 부대는 아니고 점령지를 사수하는 역할이라고 하여 그렇게 전력이 강한 편은 아니라고 하였다. 따라서 나 같은 풋내기가 들어오기엔 좋을 법한 부대라는 뜻이었다.

현실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게 하고, 따지고 보면 우리 입장에서는 현재가 현실이 아닌 것 같긴 하나, 예전 세계의 이야기로 돌입하곤 했다.

원래 본명이 무엇이었는지, 뭘 하다 이곳에 왔는지, 이상형, 취미, 마지막으로 본 최신 영화, 게임 이야기라던지 참 낯간지러워진 화제였다. 말을 하면 할 수록 그리워지다가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때문에 체념하는 장이었다.

그러다가도 현실, 정확히는 이전 세계의 이야기를 하긴 했다. 대표적으로 내가 살게 된 자리에는 원래 다른 사람이 있었지만, 이틀 전의 전투로 죽었다는 이야기에 나는 침울해졌으나 다른 동거인들은 충분히 단련이 된 듯했다. 그래도 아쉽다는 표정은 드러났다. 적은 인원 수만큼이나 생존율은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오래오래 같이 지냈던 사람인 듯했다. 그 사람의 공백을 내가 채운 것이니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렇다 할 물증들이 전혀 없었다. 남긴 것이 전혀 없었다는 소리다.

밥은, 끔찍했다. 사우스피나의 성처럼 하나의 반찬만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웬만하면 쌀밥만 먹는다고 기대를 포기하면 먹을 만했다. 그러나 그건 결코 영양이 있는 수준도 아니니까 먹으면 먹을 수록 내 건강이 해쳐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가끔 정기적으로 고기를 떠서 먹여주긴 하나, 인원이 얼마인데 배분량은 필히 작고, 더군다나 바실리스크 등의 거구의 병사들도 혼재되어 있어서 우리 같은 휴먼에게 오는 양은 더 적었다. 이 때만은 정량 배식을 찬성하는 바였다.

하나는 휴먼이라는 이유 때문에 편한 점도 있었다. 하필 적이 휴먼 천지인 것에서 종족적 불신이 드는 것인지 불침번을 서야 하는 계급임에도 휴먼이라는 이유에서 안 시킨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불순분자라 여기는 것에 그다지 반감을 들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이득이었다. 타 종족들이 우리를 멀리 하는 게 느껴지지만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일일이 참견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냉전 상황은 편한 상태였다.


특수병과라서, 전투를 상시 대비해야 하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일과가 하나 있었다. 3시간 동안은 초소 내 집회구역을 통째로 빌려서 블루드를 연습하는 일과였다. 이 시간 외에는 블루드 사용을 편의로든 비살상 목적으로든 금지시키고 있기에 유일하게 평시에 사용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뤼펠에게서 전수받은 것처럼 누가 블루드를 가르쳐주는 게 아니고, 오직 자유연습이었다. 이에 대한 취지는 3개월 전에 발탁된 것으로 정형화된 기술만 가르쳐서는 전력의 획일화가 진행될 뿐이라고 자유 연습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TMI로 기본 살상 기술은 특수병과로 오기 전에 며칠의 교육 기간을 따로 두어 가르친다고 하고, 우리 동거인들의 배경지식이 박식해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놈의 기본 살상 기술은 난 뤼펠에게서 전수받은 적이 없었다. 끝내 살상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고, 내가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만 받았기에 내가 동거인들에게 기본 살상 기술에 대해 물었을 때는 대충 이런 반응이었다.


"도대체 뭘 배우고 온 거야?"

"진짜 특이하네."

"교관이 초보였나?"


그래서 내가 배운 것인 전 부위에서 블루드를 발현할 수 있는 기행을 보이자,


"이 새끼 개천재였네!"

"선행 학습이었잖아?"

"가르칠 필요가 없던 거였구나."


곧바로 의심을 철회했다. 실제로 그들이 기본 살상 기술이라고, 손가락 총 자세로 블루드 탄환을 발사하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할 수 있어 내가 놀랐다. 더군다나 자세가 어떻든 의식하는 대로 블루드가 나아가 일반 총기처럼 조준사격이 크게 의미가 없었다. 명중률도 사용자의 기량이었다.

내 기량을 파악한 동거인들을 직후 신뢰의 증표로써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기술명은 별 거 없이 '수류탄'이었다. 그리고 발현 모습이나, 터지는 모습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수류탄의 형태였다.

하는 방식은 내가 하기엔 간단했다. 무수한 탄환을 서로 마찰이 가도록 진행방향을 설정하고 손바닥위에 발현시켜서 이를 감싸는 형태의 막을 씌우고 멀리 던져 막을 벗기면 파편 수류탄처럼 탄환이 백방으로 흩어진다고 했다.

초행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야 여러 개의 블루드를 각기 따로 설정하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줄 알았다. 이걸 창의력으로 만들어 낸 것도 대단하지만, 성공시켜 교과서적인 방법도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

나도 불타올랐다. 블루드로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동거인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나도 가르쳐주고 싶었다.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뭘 만들어야 했으니 금방 단기간에 끝낼 은혜는 아닌 듯했다.




부대에 오고서 1주 후에, 전투가 벌어졌다. 정확히는 바로 벌어지진 않았고, 정찰병의 첩보를 통해서 적의 진군은 눈치 챈 우리는 당장 방어 전선으로 행군을 하였다. 체감으로는 10km, 그 거리를 가는 데에 얼마 못 채우는 물통을 다 써버려서 전투가 끝나기까지 물을 못 마시는 채로 싸워야 했다. 도중에 강 혹은 시냇가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턱없는 바램이었다.

전투가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블루드의 우월성을 깨달았다. 미리 방어 전선의 참호들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삽이나 곡괭이는 어디까지나 블루드 미사용자의 몫이었다. 우리는 전부 날카롭게 발현해낸 블루드로 적어도 곡괭이들보다는 돌들을 잘 절삭하고, 적어도 삽보다는 많은 양의 흙을 파낼 수 있었다. 중세 갑옷을 낀 채로 설마 참호전을 벌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이쯤에서 밝히는 것으로, 동거인 중에서 권위있는 사람의 이름은 '다렌'이었다. 다렌은 참호 속에서 있을 때 이런 말을 해주었다.


"군대 미경험자인 꼬맹이에게, 눈 마주쳤다고 속사전을 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 들켰으면 안 들킬 때까지 숨어. 그 다음에 안 보이는 곳에서 네가 공격을 해. 수류탄만 던져도 되니까. 방어술이 있다고 해서 집중포화 당해도 살 수 있을 건 같지 않아."


온몸이 무겁고 심장도 두근두근 거리는 긴장 상태가 되어서 조심성이 강해진 줄 알았지만, 그래도 저 말에는 무조건 동의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대목은 당연하다고 느꼈지만, 자신감이라고 해도 되는 감정에 근거해서 내가 1:1 정면 승분에서 질 자신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적을 과소평가해서 그랬던 것인지, 이런 생각은 있었던 것 같았다.

적이 공격만 할 줄 안다면 공격과 방어를 겸비한 내가 반드시 승리하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발상이었긴 했다.

그 밖에 오만 생각들이 다 들었지만, 그건 전투 시작 전에 살아 생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을 다 풀어놓는 것이기에 별 쓸데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이제 와서 그 생각들을 들추려고 해도 기억날 수가 없다. 말할 수 있는 건 그렇게 하니 어느새 혼란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당혹감이었다.

전투의 시작은 웬만해서는 지휘관의 호령에 의해 있어나는 거다만, 첫 전투임에도 블루드끼리 부닥치는 경쾌한 소리에서 시작되었다. 효과음으로 차마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나를 포함한 휴먼들의 임무는 풀숲에서 우회하는 적들을 처단하는 일이었다. 제발 오지 말라고 대기하면서 서로 속삭였지만, 안타깝게도 고작 몇 분 뒤에 소원이 박살났다. 못 본 채 할 수 없는 대단한 움직임들에 숨죽이다가 다렌의 명령에 맞춰서 일제 수류탄으로 선제 공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적의 사상자가 얼마인지는 풀숲이라 당연히 몰랐다. 대신 반격의 탄환이 날아왔으니 생존자는 있었다.

아직까진 위치가 들킨 것 같지는 않아 제자리에서 우리는 또 다시 수류탄을 발현 중이었다. 적들의 제압사격이 전혀 위협이 되지 않고, 대신 그걸로 적들의 방향을 유추할 수 있어 어리석다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동거인들도 제 아무리 전투를 치뤘던 경험이 있다지만, 쉽사리 적들도 어떤 기행을 벌일지 예상을 하는 건 어려웠다. 우린 모두 수류탄을 쏠 각도를 위해 위를 쳐다보고 있었었다.

그 하늘에는 직선 탄환의 블루드가 아닌, 화살비처럼 우리들에게 내려꽂혀오려는 무수한 블루드가 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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