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72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9 00:30
조회
19
추천
0
글자
13쪽

1권 (27)

DUMMY

"제 힘 못 견뎌내냐?!"

"해보시면 알 건데요?"

"왜 해, 그걸."

"못하는 거잖아요."

"죽는다?"


저래 말해도 대뜸 머리를 쥐어박는 것 빼고는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정말 말투만 고쳤으면 인성이 바랐다고 할 수도 있었다. 다렌은 아니고, 다렌은 이와중엔 웃겨 죽으려고 하고 있었다. 엉덩이에 흙이 흥건히 묻은 것도 한몫했다.

마냥 내가 건블레이드를 연구하고 있었다고 해서 나머지 3인방들이 놀고 먹은 것은 아니었다. 계급은 높다지만 블루드에 있어서는 후발주자였었기에 생존성을 위하여 나에게서 방어막을 전수받았다.

잘난 체 같아도 실제로 그들은 나처럼 자유자재로 방어막을 구현하는 것까지는 못했다. 워낙 내가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게, 필히 분대 단위로 가르칠 이유가 없다고 이상한 논리를 펼쳤었다.

다만, 그래도 구현하는 것까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은 다른 전투에서 제대로 증명이 되는 교훈이었다.




적의 전진기지의 파악이 늦어진 것 때문에 우리는 지금에라도 기필코 그 전진기지를 파괴해야만 했다. 어차피 적들도 이런 공격 태세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가 문제겠지만, 별 볼 일 없는 작전으로 정면돌파를 시행했다.

그래도 무턱 대고 달려가는 그런 작전은 아니었다. 일단 포를 쏴서 참호들을 무력화시키는 방안으로 가져갔다. 적의 특성상 블루드로 무장해 있지 화약 무기는 배제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자기 집이 공격 당하는 걸 가만히 볼 수 없는 적들은 역시 블루드로 대항했다. 우리가 겪었던 화살비를 이번에는 대군을 대상으로 퍼부었다. 제 아무리 특수병과라도, 나를 포함해서 일반병과들이 치켜든 방패 밑으로 숨어버렸다.

방어막을 펼칠 수 있어도 점령전에 있어서 체력 보존은 절실했기에 떳떳하게 화살비 밑에서 맞아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정도 시선을 끌었으면 됐다고 판단한 지휘관은 전군에게 알렸다.


"우회기동한 아군이 곧 도착할 거다. 돌격해서 적을 유린해라!"


내가 일개 병사라서 우회기동이 있었다는 것까지 파악이 안 된 것인지, 아무튼 지휘관의 말을 믿고 전부 기지의 벽을 향해서 달려갔다.

달려갔다만, 어쩔 수 없이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켄타우르스들은 하체가 말이니까 당연할 테고, 몸집이 큰 녀석들은 보폭이 워낙 크니까 당연할 테고, 기껏해야 내가 비빌 수 있는 건 동족이거나 엘프들인데, 난 달리기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저절로 내가 뒤쳐지니 분대원들도 개인행동들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것도 못하고 전투가 끝날 수도 있다는 초조함이 들었다. 건블레이드의 유효 사거리를 믿고 저격을 할까, 급급해도 할 수는 없었다. 조준실력은 한참 믿지 않았고, 아무리 그래도 아군 피탄의 위험성을 무시하긴 어려워서 쉴 새 없이 달려갔다.

도착한 후의 상황은 난장판이었다. 천막들이 주를 이루는 시가전의 양상으로 가서 아군의 전열이나 적군의 전열이나 도통 알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든 보여주기 식으로 공적은 세워야하므로 아군이 안 보일 때까지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그러자 한 천막에서 우릴 향해 엄폐 사격을 했다. 함정으로 전 방위의 천막에서 집중 사격하는 거면 몰라도 고작 세 줄기는 날 뚫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몇 발은 뒤의 분대원드렝게 튀었지만, 방어술을 가르쳐준대로 활용해서 어떠한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당장에 건블레이드를 발현하여 그 천막을 절단했다. 단순 의도로는 천막만 절단할 생각이었다. 설마 천에 가까이 붙은 채로 사격을 있을 거란 예상은 못했다.

천막과 함께 그만 적의 쇄골 부분을 사선으로 깊게 그어버린 것이었다. 비명도 비명이나 갑자기 터진 피분수에 방어막으로 피에 적셔지는 걸 방지했다. 그리고 의외로 신기한다고 느낀 때였다.

피가 튕겨지는 게 아니고 방어막이 젹셔지고 있었다. 푸른 빛을 띠는 블루드가 빨갛게 물들어가는 광경이었다. 궁금해서 방어막을 소멸시켜 보니 피가 적셔진 모양 그대로 바닥에 쏟아졌다.

이에 지레 겁먹은 병사가 멀찍이 떨어져서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그 병사에게 건블레이드를 발포했다. 이미 명백한 살인미수 혐의를 지닌 상대의 이중잣대를 보고 봐주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구걸은 하지 않고 끝까지 나를 향해 사격하는 끈기 있는 1명에게도 똑같이 발포하면서 한 천막을 전멸시켰다. 탄환 삽입식이 아니라 아예 총신 안에 총알을 발현하는 장전식으로 바꿔 유용해진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다란네들은 그 사이 다른 천막을 털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뭘 더 할 수 없던 것이, 벌써 상황 종료가 된 전무후무한 완승의 전투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전투의 의의란 내가 사람을 죽여도 내가 죽인 후의 시체를 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있었다. 이 때부터 나의 싹은 샛노랬다. 한 번 충격을 겪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적응이 되는 부분인 건지, 내가 그동안 안 잔인한 척 살고 있었다는 건지.




사상자 5명 남짓 밖에 안 되는 아군 피해에 적 사상 규모만 해도 300명은 족히 넘어 부대 전체의 분위기는 흡족만으로는 부족한 상태였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이번 전투에서 공적을 제일 많이 쌓은 이에게는 1계급 특진을 시켜주었다.

딱 한 명이었기에 불 보듯 뻔했다. 세모 3개 계급장의 엘프가 주인공이 되었다. 거기서 1계급 특진이라 하면, 간부 급이 된다는 소리였다. 하루가 지나자, 목걸이를 떼 버린 그 사람은 떠났다는 소문만 들리고 앞으로 볼 수 없었다.

경쟁 의식은 불탔다. 불타올라 언제 나를 재를 만들어버릴지 몰랐다. 건블레이드에서 더 나아가 아예 공성전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도록 총신을 포신으로 만들어 대포로 발현했다. 기반이 비슷하니 기술로 정립하기에 용이했다. 그래도 확실히 거대하게 만드는 만큼 백병전에서 쓸모가 있을 거라고 보진 않았다. 어지간 해서는 난 백병전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높은 평점을 주지 못했다.

여러 가지 발명품이 있었다. 휘어지는 칼=곡도도 했었고, 전방위 사격을 위해 총을 이리저리 이어붙인 것도 만들었었다. 완전히 실용성이 없는 발명품들은 아니었다. 어지간해서는 제 밥값을 하긴 했다. 이것들이 버려진 까닭은 얼마 안 지나 내가 상위호환을 만들었다는 것에 있었다.

우선 곡도는 두 가지 형태로 진화되었다. 하나는 휘어지는 절단력 있는 물체라는 점에서 착안해서 그냥 '와이어'를 만들었다. 최초에는 실 형태만 되어 절단력은 처참했지만, 갈고 닦아서 어떻게든 절단력을 갖게 하였다. 나무 판자는 가볍게 자를 수 있을 때까지 노력했다.

하나는 제 맘대로 길이와 각도를 조절하여 한 명을 대상으로 확정 사살을 할 수 있는 무기, 어쩌면 더 상위호환도 있겠다마는 내가 부르기로 '가시나무'에 착안했다.

발현된 것을 변화시켜 살상하려고 한다면 조그맣게 씨앗 형태로 만든 블루드를 적 주변에 떨어뜨린 다음 급속성장 시켜 가시나무의 줄기와 가시를 관통시켜 죽이는 형태가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이러면 수류탄과 달리 두꺼운 구조물을 뚫어버리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마지막 후자, 전방위 사격을 위한 거로는 간단하게 방어막을 이용했다. 딱히 부를 명칭이 없어서 다렌네와 의논하여 '쉴드건'라고 붙였다. 단순한 결합으로 방어막에 총구를 붙여버리는 형식이었다. 건블레이드를 장전식으로 쏠 수 있는 만큼 총알을 넣을 총구만 있으면 되겠다는 상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밖에는 내가 발현이 미숙한 것들이나, 설계가 미흡한 것들이라서 따로 언급은 안 했다.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 법한 공격 기술들만 연마해서 공적을 세우는 데는 무리가 없어보였다.

나만은. 연구는 알다시피 분대 전체가 같이 했다. 문제는 위 모든 것들이 나만 성공시켰고, 나머지는 하다가도 체력 고갈로 금방 나가떨어졌다.


"무슨 네가 에너자이저냐?"

"하하하하~··· 적절한데?"


막상 틀린 말도 아니었다. 백만 스무개의 팔굽혀펴기를 하는 건전지와 그들이 보기에 나는 차이점이 없었다.

그러면서 의문은 있었다. 내가 체력적으로 막대한 것은 아님에도 이상하게 블루드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한계가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라데르들이 목격했다던 내 몸에서 블루드가 이글거렸다는 현상, 그것과 관련이 되어있을 거라고 막연한 추측만 했다. 그래봤자 부작용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장점만 보이는 현재로는 안일하게 받아들였다.

내게 있어서 그게 대가를 치뤄야 되는 일이든 동료들을 이끌어 가야 하는 입장인 건 변함이 없었다. 내 힘으로 나의 자유와 그들의 자유를 같이 쟁취하고 싶었다.




세 번째 전투는 우리 부대 특성을 고려하면 기행이었다. 방어 전선을 구축하는 게 보통의 일이나 어떤 바람이 불어서 다른 부대에 합병하여 점령전을 펼치기로 했다. 계곡을 지나 우회해서 적에게 우리의 동태를 들키지 않도록 열심히 행군했다.

골로 내려가기 전의 능에서, 적의 기지가 희미하게 보일 때쯤 쌍안경으로 확인하는 이가 있었다. 누군지는 모른다. 지휘관 측근으로 예상되는 인물이었다.


"경비가 삼엄하진 않습니다."


그 말에 근거해서 부대는 본래 계획을 변경하지 않고 이동하였다. 본래 계획이란 돌입 직전에 진을 펼쳐서 기지를 감싸는 전술뿐이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경로 자체가 대포를 가져올 지형이 못 돼서, 만약 전투가 시작되면 내가 대포를 발현해서 공성에 도움이 되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높게 솟은 나무들이 우거진 사이로 진군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무척 더우나, 한 번 불면 땀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기분이 들어 그다지 찝찝함만 오진 않았다. 전투를 벌이러 가는 길이 언제 즐겁겠냐마는, 무턱대고 혐오스럽다는 거 아니었다. 이런 폭풍전야 같은 시간이 없으면 사람이 인생이 얼마나 짧겠나.

그래도 다들 안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직전의 전투가 완승이었던 감각이 아직 살아있는 상태였다. 기세를 탔다고, 소위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런 판단을 하는 나도 방심을 안 하는 것은 아니고, 저들과 동일했다. 심지어 바로 옆에 동행하는 다렌네도 그랬다. 다들 오르막길을 가는 데에 그침이 없었다.

적습이 있다고 해도 진형은 잘 짜여진 상태였다. 간격을 유지해서 소산할 때에 걸리적 거림이 없도록 하면서 팔방 경계를 몇 발걸음마다 필히 하였다. 적어도 지상에서 오는 공격에 있어서는 언제든 대응할 수 있는 대형이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최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지 말아야 했었다.


"적이-"


다급한 외침은


퐝--!


이란 폭발음과 함께 사라졌다. 귀를 먹먹하게 만들어버린 폭발음에 웅성거리는 건 들리나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상황을 판단하려 해도 오감 중에 하나가 장애가 생겨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내 눈앞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의문의 그림자가 보였었다. 최소한 아군은 아니라고 제일 우선으로 판단하고, 그 다음으로 판단한 건 그 적군의 상태였다.

심지에 불이 붙어있는 채로 갑옷처럼 감싼 다이너마이트의 군대, 이건 엄연히 자폭 전술이라는 걸 깨달은 이상 본능적으로 몸 전체를 두껍게 방어막으로 떡칠했다. 갑자기 닥친 재난에 있어 여파까지 고려하여 블루드 방어막에서 한동안 안 나왔다. 심할 정도로 두껍게 펼친 탓에 과연 밖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신경도 안 썼었다.

청각이 어느 정도 돌아와서 남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해독이 될 때, 그제서야 나는 방어막을 풀었다. 한참 부대 전체의 상황을 보면 말이 아니었다. 여러 종족의 살점이 뒹굴거리거나 나무에 박혀있고, 나무조차도 온전하지 못해 쓰러져버려 시체, 생존자 구분할 것 없이 깔아뭉개고 있었다. 깔아뭉개져 생존자였다가 시체가 되었을 것도 있었을 거라 본다.

그와중에 하염없이 평화로운 태풍의 눈에 서 있는 나는 다렌을 보았다. 다른 2명은 보지 않았다. 사실 보지 않은 게 아니라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어디로 갔는지는 자문하지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렌은 살아있었다. 멀쩡히 살아있었으면 모를까, 꽤난 고통스러운 표정이며 눈을 질끈 감아 호소하고 있었으니 정상은 아니었다. 어딘가 문제인지 시선을 내려 보면 알 수 있었다.

깔끔하게 무릎 위까지 잘려나간 오른 다리, 다렌은 의지로 오른 다리를 블루드로 지혈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1권 (44) 20.07.09 65 0 13쪽
43 1권 (43) 20.07.07 17 0 11쪽
42 1권 (42) 20.07.06 18 0 12쪽
41 1권 (41) 20.07.03 18 0 13쪽
40 1권 (40) 20.07.02 15 0 12쪽
39 1권 (39) 20.07.01 17 0 12쪽
38 1권 (38) 20.06.30 15 0 12쪽
37 1권 (37) 20.06.29 16 0 12쪽
36 1권 (36) 20.06.26 14 0 11쪽
35 1권 (35) 20.06.25 18 0 12쪽
34 1권 (34) 20.06.24 19 0 12쪽
33 1권 (33) 20.06.23 17 0 12쪽
32 1권 (32) 20.06.22 17 0 11쪽
31 1권 (31) 20.06.20 22 0 12쪽
30 1권 (30) +1 20.06.19 35 1 11쪽
29 1권 (29) 20.06.19 20 0 12쪽
28 1권 (28) 20.06.19 17 0 11쪽
» 1권 (27) 20.06.19 19 0 13쪽
26 1권 (26) 20.06.19 17 0 11쪽
25 1권 (25) 20.06.19 17 0 12쪽
24 1권 (24) 20.06.19 20 0 13쪽
23 1권 (23) 20.06.19 18 0 12쪽
22 1권 (22) 20.06.18 16 0 12쪽
21 1권 (21) 20.06.18 20 0 11쪽
20 1권 (20) 20.06.18 17 1 11쪽
19 1권 (19) 20.06.18 17 0 11쪽
18 1권 (18) 20.06.18 16 0 11쪽
17 1권 (17) 20.06.18 18 0 11쪽
16 1권 (16) 20.06.17 17 0 12쪽
15 1권 (15) 20.06.17 18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