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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62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8 00:31
조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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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권 (17)

DUMMY

그 손이 흔한 접촉사고였다고 믿기는 어려웠다. 내가 서 있었던 곳까지 밀어왔기 때문에 의도적인 행위였다.

난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하여 반쯤 포기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반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서 발만은 난간에서 안 떼고 있었다.

그러자 이게 무슨 밀당이라도 되는 건지 사리나 님의 날 밀었던 손이 내 팔을 붙잡았다. 간신히 떨어지는 것은 아직 면한 모습이었다. 공교롭게도 면한 거지 사리나 님이 날 끌어올리지 않아 여전히 위기인 건 마찬가지였다.

잃어버린 정신이 귀가본능으로 돌아와 나는 겨우겨우 내 의사를 말할 수가 있었다.


"뭘, 뭐하는 겁니까?!"

"필사적으로, 라고 했잖아?"

"죽게 생겼다고요!"


긴박한 나머지 '습니다'라는 어미를 조합할 수가 없었다. 원래 그게 내 말투가 아니란 소리였다.


"전장에서도 죽게 생길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야."

"그렇다고 지금 죽이려는 건-"

"살고 싶어?"

"······."


이게 뭐라고 고민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좀 전에는 죽고 싶다던 사람이 살고 싶다고 태세전환을 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하자면,


"살고 싶어요."


처절하게 이런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사리나 님은,


"그래. 그렇게 살고자 해야 살 거야."


나보고 살 거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곧 이런 뜻이기도 했다.

'내가 살려주는 것은 아니다. 네가 스스로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사리나 님의 손은 내 팔을 놓아주었다. 놓자마자 빨려들어가듯 내 몸은 밑을 향해 고속 운행을 시작했다.

제 아무리 높이 쌓은 성벽이라 해도 높이가 얼마나 될까. 해봤자 10층 높이라고 치면 떨어질 때는 낙하산을 펴지도 못할지도 모르겠다. 평생 낙하산을 만지작거리지도 못한 걸 그딴 걸 어찌 아는가.

혹시나 번지점프라 해서 허리에 안전장치라도 걸려있기를 빌었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희망은 내가 생각해도 웃겼다. 내가 죽는다는 데에 웃음이 나오는 것도 신기했다. 번지점프는 내가 죽지 않을 거라 믿으니까 스릴을 느끼는 거지만, 이건 살고자 해도 죽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스릴 따위 온몸의 털이 서지도 않은 게 단 1도 없었다는 거였다.

하필 사리나 님을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켜놓아서 얼마 뒤에 땅에 박아 으스러지는지 예상 시간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곧 죽을 거라는 인상만으로, 얼마 안 되는 체공 속에서 주마등으로 사고회로의 작동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땅에 부딪치는 순간 뇌가 까맣게 정전이 될 거라고 잔인한 상상으로 내 최후를 엿보았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말고 긍정적이게 생각하면, 뭐가 달라지려나? 살고자 하면 살거라는 건 우리나라의 위인을 부정하는 말이다만, 그것 때문에 그 말이 싫은 게 아니었다. 살고자 해도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해도 죽을 것인데, 솟아날 구멍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건 나와 타인의 생존 경쟁이 아니라 홀로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개념과 싸우는 일이었다.

여기서 살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제 아무리 땅에 구멍이 움푹 파인다고 해도 더 깊게 쳐박힐 걸. 땅이 충격을 완화할 정도로 푹신했으면 좋겠다, 는 건 물질 자체를 바꾼다는 터무니없는 일이니 철회했다. 애초에 살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철회하는 게 좋지만, 만약의 만약이었다.

단 하나만 변화시켜서 살 수 있다면, 날 땅에 닿지 않게 하는 것 정도로. 어떻게는 몰라도 닿지 않는다면 살 수 있을 거라 굳건히 믿었다. 곧 그다지 길지 않은 뒷머리가 흙과 교감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이젠 그 긴 주마등도 막을 내리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애써 더욱 더 시간을 늘려가며 이런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살고 싶다고 애원해도 과정 없이 결과만 바라는 소원은 양심이 없었는지도 몰랐다.

구체적으로 접근했다. 날 이 땅에 닿게 하지 않게 해야 한다. 살고 싶다는 소리를 그렇게 치환해 보니 필사적으로 멋진 상상을 하나 하였다.

로켓처럼 뒤로 분사해서 위로 날아가면 당장을 안 죽을 거라는 기가 막힌 비현실적인 상상.

이미 이곳에 있는 이상 비현실인 것은 둘째치고, 살고자 하니 나는 그래야 한다는 자급자족의 세뇌로 머리통이 땅에 부딪치는 것을 심히 거부하였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은 찾아왔다. 눈을 바로 전에 질끈 감았다 쳐도 고통은 어쩔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고통을 감내하고 이런 사고를 하고 있단 것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이걸 살았다고 기적이라 했어도 무방했다. 아니면, 살았다고 착각할 정도로 재빨리 저 세상으로 하이패스를 했는지 그것도 의문이긴 했다. 무조건 죽을 각오였고, 그만큼 죽는다는 것이 기정사실이었기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죽었거나 혹은 죽음에 가까운 봉변을 당했다고 하기에는 내 몸은 의외로 멀쩡하단 걸 자각했다.

그리고 더욱 이상했던 건 떨어질 때 느꼈던 옷의 나풀거림과 바람이 오히려 그 이상으로 내 몸을 훑고 있었다. 마치 아직도 떨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나의 각오를 조롱하는 듯했다. 실은 죽는 게 아니었다고, 정말 번지점프의 안전장치라도 있었던 건지 속는 셈 치고 눈을 떠보았다.

전혀 믿기지 않았지만, 나는 정확히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제대로 내 머리카락이 땅에 닿을 거라고 경고했던 것과는 달리 몸은 공중에서 잘 놀고 있었다.

아니, 놀고 있었다기에는 공중에서 버려진 풍선 마냥 방치되어 있었다. 아니, 그보다 그냥 공중이라기에는···

밑을 쳐다보면 내가 있던 망루가 사람만한 크기로 변해 있었다···

뭐지 이건, 이란 생각은 아주 잠깐 들었고, 곧 이어서 나는 절규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죽는다. 어디에 쳐박히든 아까는 웬만해서 죽겠지만 살 수도 있다고 만에 하나 가정할 수 있었지만, 이 정도면 뼈가 분쇄되는 건 물론이고 사지가 뒤틀리는 건 기본 옵션이었다.

현명하게 왜 여기로 올라온 건지 원인을 규명하는 건 정신이 없어서 안 되었다. 낙하 속도는 보다 빠를 것이고, 낙하 시간은 그만큼 더 늘어났겠지만 주마등 같은 일은 당장 일어나지 않아 겁만 잔뜩 먹었다. 뒤로 떨어지느냐, 앞으로 떨어지느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당장에는 의외로 아직도 위로 날아가고 있던 내 몸은, 어느덧 최고 도달점에 다다랐다. 이제 떨어질 거라고 생각을 멈추고 있었다.


"휴우··· 무진장 세잖아?"


멀리에서 들어오는 것 같은 말귀는 아니었고, 그것은 내 배후에서 들려왔다. 무선 이어폰이라도 꽂혀 있는 건지 시대 착오적인 생각으로 시작하였다.

그게 아니라면 공중에 사리나 님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게 가능하겠냐고, 내가 어떻게 이런 높이에까지 왔는지 따지면 별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을, 말이 안 된다면서 뒤를 보았다.


"···사리나 님?"


말은 그렇게 해도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리나 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리나 님은 덤이었고, 아득히 뛰어넘는 면적으로 시선에 가득 들어온 것은 사리나 님과 이어져 있는 거대한 푸른빛의 날개였다.

하피의 그런 날개가 아니었다. 형태가 있는 것 맞지만, 홀로그램처럼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기운의 날개, 마법같은 것이었다.


"살고자 하니까 살았잖아?"


내 겨드랑이를 잡고서는 사리나 님은 고속하강을 했다. 물어볼 것을 정리못한 상태라 내 입은 벌려져 있되 말 없이 공기 새는 소리만 내었다.

다시 그 성벽으로 나를 내리고 착지한 사리나 님의 날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볼수록 마법같은 연출이었다.


"다시 또 죽을 뻔하긴 했지만, 산 건 산 거니까 괜찮은 거려나?"


발이 땅에 닿았더라도 지능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내가 뭘 물어봐야할지 그만 과부화되고 멈춰버린 사고 때문에 멍한 표정으로 사리나 님을 보았다.


"어디보자, 일단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줄까?"

"네."


대신 사리나 님이 내 질문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덕분에 생각을 멈추고 들으면 될 거라고 수동적인 판단을 하였다.


"싫어!"

"네?"

"암만 그래도 내가 설명은 못해서 말이야. 들을 거면 담당 교관한테서 들어."

"아···."

"흐아암~··· 다음에 보자!"


하품으로 피곤함을 표현하면서 사리나 님은 쫓기듯 도망쳤다? 탈출했다? 기막힌 살인미수 행위를 벌인 당사자의 도주를 허용할 수밖에 없던 나는 강제로 약간 허탈한 기분을 만끽하게 되었다.

하여튼 나는 불면증에 가까운 의문을 갖게 되었고, 피곤함은 전염되어 나 또한 라데르의 방에 돌아가자마자 뻗어버렸다. 라데르의 코골이는 엄청났지만, 이를 상정해도 내 피곤함은 혼을 빼낸 듯한 수준이었기에 감히 이와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깨어날 때는 평생에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방법으로 깨어났다. 눈을 뜬 때의 상황이란 라데르가 내 몸을 의자에 앉힌 채로 내 머리위에 물 바가지를 붓고 있었다. 놀라서 먹어버린 맹물에 목이 막혀 퀙퀙 거리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생각 이상의 피곤함 때문에 정신이 들어와도 몸이 제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언제 잔 거냐."

"자정은 훨씬 안 넘겼어요."

"몇 각 정도 지났냐."

"이각, 정도일 거예요."


조금 내 상태를 보더니 라데르는 이렇게 판단했다.


"보통 훈련이 힘들다고 그러지는 않을 텐데.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잠결에 잊어버리고 있던 사리나 님의 조언이 생각 났다.

'들을 거면 담당 교관한테서 들어.'

조언을 실천하기 위해 어렴풋이 내가 쓸 수 있는 표현을 총동원해서 내가 겪었지만 내가 잘 모르겠는 의문투성이인 상황을 최대한 라데르에게 잘 전달해주었다. 사리나 님을 만났고, 사리나 님이 나를 성벽에서 밀쳤고, 내가 떨어지다가 하늘로 날아올라갔고, 사리나 님이 허상의 날개를 달고 나를 내려다 주었던 상황까지 일거수일투족 말이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도대체 그 날개라던가, 뭔가요?"


내가 궁극적으로 알고 싶은 사항을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상황 설명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던 라데르는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네가 말한 긴 이야기 마냥 어차피 내 대답도 길어질 거다. 그렇다면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여기서 역 질문을 할 줄은 몰랐기에 난 몽롱하게 책임을 전가했다.


"···글쎄요."


라데르는 보란듯이 말해주었다.


"밥이나 먹어야지."


그러니까, 결국 자기가 배고픈 것을 그렇게 돌려말한 것이었다. 솔직히 나도 배가 안 고픈 것은 아니었기에 뒤따라간다는 것 자체가 이를 동의한다는 표시였다. 이리 해학적인 인성이었는지 잠시 라데르에 대한 견해를 바꿀 필요가 있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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