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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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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4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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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권 (29)

DUMMY

분대에 들어온 새로운 3명은 역시 나이가 많았다. 평균 20세라는 어마어마한 나이 차에 내가 분대장이긴 했지만 평소 행실에 있어 강압적일 수가 없었다.

신장도 내가 열등하기에 위를 쳐다보며 명령을 내리기란 껄끄러웠다. 사실 본래 다스리는 것에 있어서는 최악이라 나이나 신장이 차이 나지 않아도 비슷했을 것 같긴 했다.

그럼에도 3명과 비교해서는 한없이 블루드 사용에 있어서는 존엄이었다. 계급도 마찬가지로 약속된 1주가 지나서 계급장은 세모 1개가 되었다. 나머지 3명이 하급 1계라 평균을 깎아먹는 건 그다지 분대장으로서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꼭 과거의 업보를 청산하기 위해서 이 나이 많은 후임들에게 죽이는 법보다 사는 법을 가르쳐야만 했다. 여기서는 강압적이어야만 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고민하는 게 치졸한 것이었다.

내가 성장하기 이전에 분대원들이 스스로 공격에서 살아날 수 있는 힘을 지닐 때쯤에야 한 시름 놓을 수가 있었다. 거기까지 가는 데에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긴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나흘 동안의 스파르타 교육으로 나와 똑같은 방어막을 발현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죽도를 들어 내려찍으면서 파괴시험까지 다 거쳤다. 아니면 내가 예리도를 낮춘 건블레이드로 내려 찍기도 하고 신중하고 신중했다. 한 번의 방심이 수십 년의 시간을 날려보내는 장면을 봤기에 스트레스 장애라고 해도 전혀 고칠 마음은 없었다.

나도 살상 기술 연구는 중단하고 남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았다. 방패를 날려보내어서 씌울 수는 없고, 영거리에서는 내가 방어막을 크게 만들면 되었다.

근거리라고 치면 전선처럼 내 몸에서 이어나가는 게 필요했다. 발로부터 지면을 따라 이어지는 실을 만들어서 임의 지점에 막고 싶은 방향으로 방어막을 피어오르듯 발현시키는 방안이 하나 있었다.

한계는 있었다. 돌발적인 상황에선 선이 없으면 발현까지 시간이 걸렸다. 제 아무리 단련해도 빨라봤자 1초는 무조건 넘기기에 그 정도면 탄환이 도착하기까지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차라리 그 전에 적을 죽이는 게 빠를 것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달려가서 방어막을 펼쳐 대신 맞을 수는 없을지 생각했었다. 별 헛된 상상은 아니었다. 그 상상력이 날 성장하게 만들었다.

방어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달려간다'는 방법에 착안했다. 이론은 간단했다. 발포 때 블루드를 폭발시키는 것처럼 내 몸을 탄환처럼 취급해 로켓처럼 후방 분사로 날아갈 수 있을 거라 보았다. 폭발보다는 분사가 주변 피해도 적을 거라고 화력을 약화시킨 것이었다.

언제나 이런 것은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만, 얼마나 적절히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다른 말로 출력 조절이었다. 감각만을 활용해서 거리감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해서 거리에 따른 분사량과 분사시간, 장애물과 기후 등의 특수조건까지 고려해야 했기에 무척 어려웠다. 심화 과정에 들어간 당시에는 아군을 지키기 위함이란 목적은 온데간데 없고, 이동기라는 명목만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호위에 하등 도움이 안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기술의 도움으로 새 분대의 데뷔전에서 방어막을 펼친 채 백병전에서 맞고만 있던 한 명을 구출했다. 분사로 날아가서 적과 아군 사이를 쉴드건으로 가로막은 다음 한 4명, 5명 되었던 적 분대에게 발포해서 상황을 종료시켰다.

방어막도 못 치는 상대라 반격이라도 했으면 제압이 가능했을 테지만, 내 견해랑 초보인 새 분대원을 비교하는 건 잘난 체가 맞아 격려나 해주었다.




다렌의 경우에는 내가 부대장에게 부탁한 대로 취사병이 되었다. 취사병이란 족속이 주방 안쪽에 있는 신분인지라 평소에는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핸드폰이라는 원거리 연락 수단이 있는 것이 아닌지라 주방 안까지 찾아가지 않는 이상 다렌과 만날 수가 없었다. 임무가 바뀌면서 저절로 다렌도 방을 바꾸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다리 없이 어떻게 목발으로라도 생활하는가 싶었더니, 나무로 만든 임시 의족이 끼워져 있었다. 임시라는 이유가 의족이라기에는 관절부분도 없고 뻣뻣한 나무막대기에 발판만 부착한 거라서 해적들이 차는 그 의족 형상 같기도 했다. 그래도 빈번히 움직이는 게 버거운지 블루드를 써서 발을 발현해서 걷는 게 보통이었다.

참고로, 이 때는 부대에서 나를 군법으로 통제하려고 들지 않았다. 다렌네가 가르쳐줬던 용어를 활용해서 전투 공헌도로 짬이 찼기 때문에 주방을 넘나드는 건 권한 범위 안이었다.


"오늘 밥은 뭐죠?"

"싱거운 된장국."


큰 돌덩이를 의자 삼아 앉아 큰 대야 속 감자를 하나하나 집어 껍질을 까고 있었다. 싹이 난 것들은 큼직하게 싹 부분을 잘라 양심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할 만한가요?"

"매일이 지겹고 뒤질 것 같지만, 폭발에 휘말려 진짜 뒤질 뻔하는 것보다는 낫지. 네가 더 위험한 일 아니야?"

"걱정했나요."

"그렇네. 적을 요리하고 다니는데 위험한 건 아니겠지."

"저는 괜찮죠."


그렇게나 여유롭기에 한가로이 아군만 신경 쓰는 전투광이 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정작 지키는 분대원들보다는 다렌과 얘기하는 빈도가 많았다.

여전히 나는 유감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고, 새 분대원들의 경우에는 동료보다는 제자이거나 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유일하게 이 세계에 살아있는 동료는 다렌이었기에 앞으로도 일과 외에는 주방에 찾아갔다.

매번 화제를 바꿔가며 대화하는 것도 힘들어서 어쩔 때는 딱히 말은 없지만 주방에서 한참 있다가 돌아간 적도 있었다. 특히나 전투가 있을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는 더욱이 그랬다.

이런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다렌은 그 날 어떤 기분이었나요?"

"음, x같았지?"

"병실에서 들었었죠."

"그것밖에 감정이 교차되지 않았다면, 그건 허세지. 나도 너처럼 비슷한 죄책감이 들었었지? 내가 빨리 반응해서 밀치고 막아섰다면, 어차피 똑같이 다리만 잘리고 살아있었을 거 아니야?

블루드로 지혈을 해서 그런지 병균 감염이라던가 그 지x이 나지 않아 멀쩡히 살이 붙어있으니까 결과론으로는 내가 잘못한 것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었지. 또, 내가 그 녀석들의 몫까지 산다는 것은 어떤 방식인지 고민해보았지.

그냥, 별 거 없는 거 같아. 녀석들의 죽음이 아니라 내 삶이. 까짓 거 살아있고 살아간다는 건 살고 싶다는 게 아니라 죽기 아니면 살기라서 양자택일 중 재미있을 쪽에 붙는 거야. 이러다가 진급해서 주방장이 될 수도 있을 테고, 얼마나 즐거운 상상인지 공감하잖아?"


다렌의 순리를 따라서 재미있을 수 있는 내 삶은, 마침내 중급 3계까지 진급하게 되면서 그 재미라는 것에 도달하게 되었다. 어느덧 목걸이를 벗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 실감으로 다가와서 기쁘기도 하고, 그 사이에 우리 분대원을 끝까지 지켜냈다는 사명을 완수함에 따라 나의 죄값을 다 치른 듯한 인상이었다.

이렇게 안 해도 진급이 되는 것은 알았다마는, 일개 병사로서의 마지막 전투에선 나는 날뛰었다고 표현해도 될만큼 흥분해 있었다. 신기술인 '작살'에 와이어를 휘감아 적진에 날린 다음 와이어를 선풍기 날처럼 회전시켜 도륙내는 융합기술을 선보였었다.

암만 봐도 건블레이드에 가시나무를 장전해 발사하는 게 가성비가 좋긴했다마는 가능하단 것에 의의를 두어 보여주기식 공적을 올렸다.

며칠 뒤, 부대장이 부른다는 소식에 나는 확신했고, 하급 3계가 된 형들인 분대원들은 나를 축하해주었다. 여기보다 더 지옥같은 곳에 가라는 저주로 위장한 찬사를 보내면서 부대장실까지 배웅해주었다.

들어간 부대장실에서 날 맞이한 것은 진급식이 아니었다. 진급 사실은 확정이 맞지만, 그보다 중대한 작업이 남아있었다. 부대장과 같이 차를 마시는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자네는 아마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많이는 잘 모를 거라 보고 있네. 그래서 이렇게 시간을 뺏은 것이니 양해를 부탁하네. 휴먼인 자가 목걸이를 벗는다는 건 전쟁이 시작된 후로부터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네. 다만, 휴먼인 자가 지휘계통에 들어갔다는 건 전례가 없긴 하다네. 그래도 전장에서 수많은 동족을 죽이고 수많은 이족(異族)을 살린 자네로는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휴먼이 지휘계로 간다면 반발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지휘관이 되고 싶지 않다는 바램도 있어서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다. 어렴풋이 휴먼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었기도 해서 차분하게 응했다.


"법령으로는 제한된 것은 없다만, 눈치가 있으니 만일 자네가 지휘계로 간다고 하면 엄연히 권한을 준 나나 자네나 필히 내부의 적을 주의해야 하겠지."

"알아들었습니다."

"모든 지휘계통 지위를 제외하고 살펴봤다네. 어······ 정말 얼마 없다네. 웬만하면 포상금을 쥐어주고 제대하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수준이네. 그래도, 정말 얼마 없으니 이 중에서 희망해보게나."


부대장이 건네준 자필서에는 4개의 직책만이 나열되어 있었다. 위에서부터 '광산지원', '치안부대', '살수', '호위대'. 나머지 3개는 의미를 알겠어도 '살수'는 잘못 읽었는지 다시 읽었봐도 살수라서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살수가 뭡니까?"

"눈썰미가 있는가 보군. 그나마 4개 중에서는 살수가 인식상의 지위로는 차이나게 가장 높다네. 그러나 나라도 살수가 첩보원들을 처리한다는 임무라는 것밖에 잘 모른다네. 살수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고 내가 천서를 써주고 통과 세례를 받아야만 할 수 있는 희귀한 직책이기에 위험부담이 있다네."

"통과를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위험부담이 있다고 해서 목숨이 담보라는 식의 이야기가 올 줄 알았다.


"가차없이 나머지 3개 중의 하나로 결정되어버리네."


통과를 못하면 비밀을 알게 된 도전자를 처분한다는 명분이 있을 줄 알았다. 그리 만화같은 발상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면, 도전을 하는 것에 부담이 없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군. 어차피 지휘계통이 불가한 휴먼이니 기회는 한 번뿐이라도 살수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써주겠네."


괜히 속을 뻔했다. 종족차별을 받는 휴먼이라 다행인지 살수라는 직책명 자체가 의미불명인 곳에 도전하는 게 부담감으로는 중학교에서 기말고사를 보는 듯한 수준에 달했다.

다만, 부담감은 다른 곳에 있었다.


"대신 살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들만 아는 거네. 일반 병사들한테는 얘기조차 하지 말게. 조심스레 공적이 많은 자네에게만 할 수 있는 기밀이라네."


심란한 마음가짐으로 방으로 돌아간 나는 몇 번이고 물어보는 직책에 대한 질문에 기계처럼 치안부대에 간다며 거짓말을 했다. 어느 부대에 가는지도 모르고 범죄를 잡아드리는 경찰 같은 역할이라고 억지로 대답했다.

이는 역시 다렌에게도 평등했다. 진술을 똑같이 해야 의심을 안 받으니 치안부대라고 직책을 설명했다. 제 아무리 전 부대장이어도 내 거짓말 솜씨에는 헤어나올 수 없어서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 이건 나도 예상을 못해서 괜히 죄책감이 들었었다.


"나중에 편지라도 보내줄 수 있으면 보내줘라. 너까지 가면 심심해서 뒤지겠다."


이 말에 쓸데없이 진지하게 긍정해버렸었다. 기필코 편지를 보내야만 하는 몸이 되어버린 나는 철회할 시간도 없었다. 부대장의 부름에 따라 마차에 탑승해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왔던지라 머리 아프지 말라고 명상하면서 이동 중에 잔념을 차근차근 비워나갔다. 비운 자리에는 미지인 살수라는 세계에 대한 오만 근심이 대신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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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1권 (32) 20.06.22 17 0 11쪽
31 1권 (31) 20.06.20 22 0 12쪽
30 1권 (30) +1 20.06.19 3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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