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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99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8 12:28
조회
17
추천
1
글자
11쪽

1권 (20)

DUMMY

팔려나갔다는 건 어떻게 봐도 좋은 의미는 아닐 터, 괜히 내가 부모 운운하는 바람에 흉터만 번지고 있을 거라고 풀이 죽었다.


"그랬습니까···."

"그리 미더운 사람들도 아니었어. 썩 마음에 안 들었던 때에 마침 나를 돈 주고 팔아넘기니 전혀 정감이 들지 않았어. 돌아가봤자 여기나 거기나 똑같을 걸, 차라리 지금을 잘 살자고 후련하게 지냈어. 좋지 못한 과거지만 입에 담으면 구역질이 날 만큼은 아니지. 고아로 태어나서 이 정도면 적당한 거야."


뭐라고 말해야 했을까. 사람의 속내는 모르는 거라고 겉으로는 태연하면서도 속으로는 슬퍼했을지 어리숙한 관찰력으로는 그걸 알아내기란 불가능했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령 알아낸다한들 내 인생이 남들보다 파란만장하거나 멀리 가지 않아도 사리나 님의 과거만큼의 설들력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런 이야기만 하니까 심심하지?"

"진지한 주제를 가지고 심심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표정이 그렇잖아."

"제가 말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럼, 테즈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해 볼래?"


돌연 피어오른 나만의 에세이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정 형편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사리나 님의 다른 뜻으로는 내가 살던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여 여러모로 이해가 안 될 배경지식에 관해서는 내 표현력의 한계까지 다 써가면서 어떻게든 듣기에 차질이 없도록 하였다.

은근히 나도 수다쟁이인 게, 일일이 말할 게 연쇄하여 떠올리는 주제라면 한참을 입을 쉬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게 사리나 님이 상대여서 그런 건지 갈 수록 내 감정은 흥분되는 것만 같았다. 일방적인 설 풀기에 불과하다만 한편으로는 상담이기도 한 일이었다.

단지 내 인생을 경청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생기를 나에게 불어다주었다.


"심심하진 않았겠네?"

"심심하고 싶었습니다."

"여기는?"

"힘들죠."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겠네."

"사리나 님."

"그런데, 벌써 밤이잖아?"


그 말에 시계는 없지만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심각하게 미약한 걸 깨달았다. 그나마 남아있던 석양은 철수하고 어느새 달의 시간인 것이었다. 다름 아니라 나만 떠들었던 시간들이었기에 당황할 따름이었다.


"이만 자러 가야지?"


미련이 남은 나는 사리나 님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다음에."


멀리 시야에서 사라지는 사리나 님을 붙잡지 못하고 가만히 책상에 앉고 있었다. 사실 가지 않았어도 앞서 사리나 님의 이름을 부른 것은 딱히 의미란 없었다. 먼저 이름만 부르고 막간을 이용해서 주제를 어떻게든 만들려고 했지만 바보 같은 발상이었다. 이것에 속내라 할 고도의 설계는 없었다. 비이성적인 판단의 표본이었다.




다음이라 하였던 사리나 님의 약속은 구두상으로라도 무기한이었기에 만나는 걸 고대하다가는 늙어죽을 게 빠를 것 같았다. 실은 몇 번이고 뒷모습은 목격되기에 아직 성에 잔류하고 있다는 것으로 안심을 할 법도 했는데,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엔 자발적으로 지식을 위하여 서재에 찾아갔을지 몰라도, 한 번 그 맛을 보고 나면 부가적으로 사리나 님을 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헛된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만큼 괴로운 건 나였다.

11일 차가 되어서는 사리나 님의 부재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늘 똑같은 심정으로 서재에 있던 나는 라데르나 토넴 말고는 없을 줄 알았던 거구의 등장에 책에서 시선을 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서재에서 보지 못한 사람이었으며, 특히나 가까이서 실물로 보는 건 생애 최초였기에 신기함에 빤히 쳐다보았다.

켄타우르스, 공부를 하면서 이런 종족이 있다는 건 들었지만 생각보다 컸다. 아니, 말을 상상하면 그다지 큰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말의 몸통에 인간의 상체를 이어붙였다는 것만 해도 말과 비슷하거나 말보다 아득히 클 텐데 내가 의자에서 일어선다고 해서 대등할 높이가 아니었다. 앉아 있었기에 더했다.

높이는 높이대로 굉장했다만, 더욱 굉장했던 것은 켄타우르스의 의상이었다. 상의는 휴먼의 상의대로 입지만은, 하체 부분=말 몸통 부분은 어떻게든 그거를 가려야 하니 도무지 입는 방법을 모르겠다마는 하체를 뒤덮는 바지 같은 걸 입고 있었다. 거의 내 신경은 여기에 다 쏟고 있었다.

그나저나 심상치 않게 내가 쳐다보기 전부터 나를 먼저 응시하고 있었던 상대였다. 이럴 때에 생기는 불안한 마음은 직감으로 항상 틀리지 않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네가 테즈냐."


한참 기억을 헤집어서 내가 이 사람과 접촉했고 잘못한 적이 있는지 고민해보았다.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한 일이 없다는 걸로 결론을 내리고 당당히 대답했다.


"네."

"부탁 때문에 찾아왔다. 따라와라."


무슨 부탁인지는 당장 말해주지 않고, 제멋대로 나가버렸다. 따라오지 않으면 나에게 불이익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니 이에 이끌려버렸다. 라데르를 만났을 때랑 비슷했다. 이것도 습관이라고 자각은 했지만은 도무지 머리대로 몸은 움직여 주지 않았다.

서재에서 멀리 떨어져 라데르와 같이 훈련을 하는 교정과는 전혀 다른 공터로 오게 되었다. 길을 잃지 않도록 오면서 나름 길을 기억해두었다마는, 일과 하나 뛰는 것보다 훨씬 긴 이동경로 탓에 되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은 안 섰다.


"어떤 부탁인지 말씀해주셔도 되지 않습니까?"

"사리나가 부탁했다."


사리나 님의 이름이 나오자 가슴이 뭉클해졌었다. 그러나 곧바로 냉정하게 사리나 님의 부탁이란 말에 몹시 긴장하게 되었다. 중재하는 폼새가 여간 보통 일은 아닐 거라 추측했다.


"네가 블루드를 발현하는 걸 도와달라더군."


의외로 정상적이고, 내가 바러단 바였다. 말에 매혹당해 즉시 승낙할 뻔했다. 그래도 라데르가 당부해서 체력부터 해결하고 블루드를 준비하자고 했던 말이 기억 나서 담당 교관을 배신할 수 없단 심정이 잠깐 들었다.


"교관 님이 아직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 물론 네 교관한테는 허락을 받고 오는 길이다."


그럼 내게 걸림돌이 되는 점은 없었다. 아직 무리라면서 안 가르쳐주더니만 남에게 떠넘기는 거 아닌가요, 교관 님?

뜻밖의 행운에 무척 설레었다. 선행학습을 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을 생존기술이라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임할 태세를 갖추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바로 가르쳐 준다고는 안 했다."


그 좋던 기분이 김 빠지는 한마디에 되물었다.


"그 전에, 배울 게 있습니까?"

"넌 블루드가 뭐라고 생각하냐?"

"생존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장에서 살아남긴 위한 생존기술이긴 하다만, 엄연히 병법으로 불리는 이유는 적과 싸우는데 특화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이지 알고는 있나?"


별 사고가 필요 없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질문의 의도도 알아차린 부분이었다.


"적을 죽이는데 용이하다는 말 아닙니까."

"적을 죽이는데 용이하다면, 죽어도 적을 죽이는데만 써야 하는 게 한 쪽 편에 선 입장에서는 당연하겠지. 진검을 들 때에도 똑같이 듣겠지만, 특히나 블루드라면 확고하게 해야겠군. 너는 적과 아군을 확실히 구별해서 블루드를 쓰겠느냐?"


설문지 같은 형식이라 내가 할 말은 오로지 하나였다.


"네."

"별로 진심이라 생각되지 않는군."

실제 나는 진심이었다. 진심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진심이라고 받아들일지 단순하게 목소리만 높였다.

"네!"

"······."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실패라는 뜻이었다. 기껏 기회를 어덨다고 좋아할 처지가 아니었다. 꽤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해 몹시 불쾌해졌다.


"맥락이라도 가르쳐 주면 안 됩니까?"

"···일각 안에 대답 못하면 내일 다시 보겠다."


매정하게 조건이 더 늘어나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였다. 어찌 보면 일각, 15분이니까 널널하다고 볼 수는 있어도, 조금만 있어도 5분은 금방 지났다.


"적을 몰살하여 승리를 가져다주겠습니다."


라는 내가 오글거리는 발언도 하고,


"아군의 안녕을 위하여 이롭게 쓰겠습니다."


라는 당연한 소리도 내뱉고,


"반드시 승리해서 평화를 쟁취하겠습니다."

"평화는 쟁취하는 게 아니다. 전쟁한 이상 평화는 없다."


라는 심기를 건드리는 소리도 하며, 현상 유지 또는 악화로 이어졌다.

내가 시간을 재기로는 일각에 가까워졌다는 판단이 나왔다. 그 말은 곧 이 사람도 일각이라고 외칠 것 같다는 뜻이었다. 시간을 어떻게 재는지는 모르겠다마다는 적어도 기계장치는 어디에 봐도 없으니 머릿속으로 재고 있을 거였다.

안 되겠다며, 각오라 하기에는 거리가 영 먼 진심이나 내뱉었다.


"공적을 독점하고 싶습니다."

"그래."


밋밋한 답변에 순간 이게 합격인지 몰랐다.


"어, 된 겁니까?"

"괜히 이타적이라고 어필하지 말고 본심을 얘기하면 되는 거다. 그것도 각오다."

"하지만, 어떻게 아신 겁니까?"

"거짓말이 어색하다는 자각은 안 드는 건가?"


그걸 자각해서 알았으면 내가 의아해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사실에 내가 지나치게 둔감한 건지, 이 켄타우르스가 지나치게 예리한 건지 분간이 안 갔다.


"약속대로 블루드를 가르쳐주겠다."


한가지는 명확했다. 어쨌거나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끝내 얻었다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내가 거짓말을 못한다는 충격에 그리 감정이 승천하지는 않았어도 기뻐할 노름이긴 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걸 받아라."


그는 상의 품 안에 있는 베개를 건네주었다.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닐 테고 아마 이번을 위해서 가지고 있던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왜 베개를 내가 받아야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그걸 나처럼 품 안에 넣어라."


일단 말한대로 했다. 전혀 의심도 없이 실행을 했다.


"그리고 긴장만 해라."


긴장이란 게 일종의 감정인 걸 일부러 긴장하라고 하면 할 수가 없다, 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일종의 감정이기에 그게 무슨 뜻인지 진즉 알아차렸어야 하는 걸, 정신이 바짝 든 때에는 늦었었다.

푹, 거리는 효과음이 배에 전달되어 나는 날아갈 듯 하면서도 베개 덕분에 날아가진 않았다. 다만, 베개가 베개지 에어백 수준의 충격 완화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실성할 만큼의 얼얼함에 노려보기는 커녕 주저앉았다.


"상태가 어떠냐."


겉으로 보는 상태만 해도 내가 제대로 진단할 상황이 아닌 걸 알 텐데도 그런 질문을 하였다.


"정 이게 블루드를 배우는 방식입니까."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

"이러다가는 뼈도 장기도···."


숨이 차서 말을 다 못 이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절대 멀쩡할 거다. 애초에 내 주먹이 닿지도 않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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