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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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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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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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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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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권 (30)

DUMMY

정보화 시대의 교통 수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바퀴라는 것에 이끌리는 감각이 오랜만이라 그만 잠들어 있었었다. 도착 후에 마지못해 깨우는 마부의 손길이 아니었으면 해가 내려가는 걸 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곳은 '마겐노하'. 다름 아닌 국가로 불리우는 이 진영의 수도였다. 서재에서 찾아봤을 때는 책 자체가 전쟁 전에 집필되어 잘 사는 주요 도시 중 하나라고 적혀있었지만 현주소는 수도다.

수도여서 잘 발달되어있다기에는 수도의 역사는 오래 지난 게 아니라서 잘 살기 때문에 수도가 되었다는 편이 올바른 인과관계다. 앞으로도 수도라 불리운다면 머지 않아 이촌향도도 바라볼 도시일 거였다.

수도인 만큼 병사들의 거점일 성의 규모는 장난이 아니었다. 대문부터 과할 정도로 높고 넓어서 트로이의 목마도 거뜬히 지나갈 수 있을 포용감을 주었다. 대문이 그러면 성 전체 구조는 비례해서 클 수밖에 없었다. 가장 높은 첨탑이 올라가는 것도 힘들어 보이기까지 해 이 세게의 건축학은 미래가 창대할 거라 감히 함부로 주장해도 좋았다.

그러나 가뜩이나 칭찬하고 압도 당했다는 표현 비스무리하게 한 것 치고는, 실상이란 먼지도 안 턴 복장과 군화로 카펫 위를 멀쩡히 지나갔었다. 성스러운 자리인 건 알겠다마는 상도덕이 있다거나 귀빈스러운 자태 따위 하나도 없는 일개 병사의 마음가짐이었던지라 당시엔 별 감흥이 없었다. 사실, 지금 봐도 반성할 것까지는 없다고 느끼는 중이다.

일종의 살수 면접 시험을 보기 위해 마부의 안내만 따라가던 나는 신기해 했다. 막상 그 높다란 성채에서 간 곳이란 현저히 낮은 지하로의 길이었는데, 위로도 높고 아래로도 깊으면 도대체 얼마의 자원이 투자되면 이 성이 만들어지는지 가설을 하나 세웠다.

분명 블루드가 소리 소문없이 잊히기 전 고대 시절에 건설했을 거라고, 그게 아니면 타당하지 않았다. 그래도 건축학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라, 광학은 형편없어 내려갈수록 빛이 부족해진다는 것이 체감될 정도로 등불에 의존하게 되었다.

마부의 안내가 끊긴 아치형 문 앞, 웬만하면 종족 공용으로 크게 설비되는 것과 달리 이건 딱 인간까지만 통용되는 크기였다. 마부는 등불을 쥐어주고 돌아가고, 여기서부터는 나만의 영역이었다.

문을 열고 한 명의 드워프가 취조실처럼 앉아있다는 걸 확인한 후에 들어갔다. 시험이냐 면접이냐, 어느 것 하나 자신이 없어도 주눅들지 않은 전심전력의 상태였다.


"신분증을 보여줄 수 있나."


말 없이 가슴 주머니에서 꺼내 상대에게 보여주었다. 단지 보여주었을 뿐이지만, 거의 뺏기듯이 상대가 낚아채서 별 수 없었다. 만지작 거리더니 다시 돌려주었다.


"위조가 아닌 건 알겠다."


당시 난 신분증도 진위를 가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무식하게 내가 모른다고 해서 , 저 드워프가 이런 걸로 거짓말 했을 리는 없었다.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왔는지는 알고 있고?"


무척 공격적인 억양이었다. 조심스레 존댓말로 시작했다.


"살수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받기 위해서-"

"간단명료하게."


삐걱거리며 수정했다.


"예, 검증 받으려고 왔습니다."

"블루드를 써봐라."

"···있는 전력 그대로 말씀이십니까?"

"자기어필은 서류상으로 충분히 봤다. 그리고 그 잘난 블루드로 전력을 다해 쓰면 이 공간이 남기는 하겠나."

"경솔했습니다···."

"작게 뭐든 내놓아봐라."


작은 거, 라고 해서 살상력이 없는 연필만 한 막대기를 발현했다. 신분증처럼 슬며시 앞으로 내미니 그걸 또 집어갔다.


"대단한 밀도야. 암살에도 어울리는 재능이다."

"암살에도 어울리는 재능···."

"들은대로가 맞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칭찬이라 기고만장해질 수가 없었다. 전쟁통에서 사람을 잘 죽이는 재능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평생 사람을 계속 죽이지는 않을 거기에 유일한 재능이라 하면 씁쓸할 수 있었다.


"재능만으로는 최상급. 전장에서 적을 쓸어버리는 건 부피만 커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그런 놈들이 전부 작은 물체를 견고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거든. 그냥 이것으로 끝내고 고용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단 말은 남아있는 절차가 있다는 뜻이었다.


"테즈, 네 자신이 적에게 붙잡힌다면 어떻게 할 거지?"

"저항하지 않겠습니까. 빠져나온다거나, 그럴 것 같습니다."

"좋아. 자결한다는 멍청한 답변만 안 하면 되는 거였다."

"아···."


다른 건 몰라도 자결한다는 선택지는 전혀 생각 안 했다. 죽어야되는 이유가 없다는 전제에서 내 몸을 우선시하는 극도의 이기주의라서 꿈꾸지도 못했다.


"다음, 적 중에서 자신보다 강한 상대가 있으면 어떻게 임무를 수행할 건가."

"기만하면서 기다리다가, 뭐,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이런 식상한 질문들은 부질없어 보이는군. 더 질문할 필요 없이 합격처리해도 무관해."


도저히 어려운 시험이라기에는 마치 진실게임을 하는 것이상도 아니라서 미묘했다. 합격이 된 것은 희소식이라도 정 궁금증을 못 참았다.


"질문의 의도가 뭡니까?"

"의도, 네가 허황된 명예욕에 가득 찬 망나니인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종자인지 가려내는 거다."

"그걸 말로만 해도 되는 겁니까?"

"네 말도 합리적이다. 말로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허언만 늘어놓는 불순한 것들과 엮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네 녀석의 경우에는 꽤 신빙성이 있다. 전멸한 분대에서 홀로 남아서 몰려오는 적을 후퇴시킨 장본인이란 기록이 있거든. 안 그런가?"


감정이 앞섰으면 대판 싸웠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감정이 앞섰다고 해도 저걸 부정하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을 욕하는 것이었다. 틀린 말이 없는 진실에 수긍했다.


"다른 기록은 다 제쳐두고도 이 기록만 두고도 역량을 알 수 있지. 아예 안 된다는 생각으로 분대원을 곁에 두고 투쟁한 것은 아니겠지? 만약 자포자기였다면 도망쳤을 테지만, 지키거나 적을 쓸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의 확신은 있었을 것이니 지피지기를 확실히 하고 있단 뜻이지 않나?"


분노도 반이 있었던 상태였으나, 말마따나 자폭으로 감행한 일은 아니었다. 가능성을 엿보고 있었기에 실행한 게 맞았다.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합격은 아까 말했듯이 빈말은 아니었다. 그 후로 이 드워프는 나에게 살수의 임무들에는 무엇이 있고,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 임무는 기본적으로 첩보원들을 잡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너무 다양하고 복합적이라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다.

알아야 할 것들에는 은어, 암구호, 임무 외적으로도 필히 구하면 좋은 요소들, 예를 들면 명령서 등이 있다고 전해주었다. 거의 시험은 서론에 불과했고 이것들만 듣는 데에 몇 배는 더 오래걸렸다. 블루드에 재능이 있다고 해서 내가 그다지 한 번 들으면 척척 외워버리는 지능형 천재는 아니었기에 되묻는 일도 잦았다.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불이 적은 캄캄한 방에서 내용을 요약한 종이를 써서 나에게 주었다. 이 드워프의 노력을 보면 나를 놓치고 싶지 않단 게 잘 전달되었다.


"살수란 어지간해서는 머리가 좋아서 되는 놈들보다 요령 좋게 일을 거침없이 하는 놈들이 대단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필수 사항들을 아예 못 깨우칠 만큼 장애인이 아니라면 나 같은 전투력을 지닌 인재가 괜찮다는 얘기였다. 뚱딴지 같지만, 레크레이션 성향이 강하다는 마음의 소리가 있었다.


"이쯤에서 이만 끝내도록 하겠다."


드워프가 자리에서 뜨는 때에 가까스로 나는 하나를 물었다.


"하나만 제가 물을 수 있겠습니까?"

"곤란한 질문만 아니면 대답해주겠다."

"사리나라는 사람이 살수에 있습니까?"

"살수에 어떤 이름들이 있는지는 살수끼리도 비밀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사리나란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살수 쪽의 이름은 아닐 거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직책이 얼마 안 된다는 사실에 근거했다. 아쉽게도 살수는 아니었다. 재회를 바라기도 하였지만, 우선 필요했던 것은 사리나 님의 정체였다.

동족인 것은 확실하게 본인 입과 라데르 등의 내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도 동일한 증언을 했었기에 틀림은 없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사리나 님의 직책 때문에 뒤를 밟는 것이 불가능했다.

기껏 간부급 이상이 되었지만 정작 쫓는 이의 자취가 희미해서 권한 따위 무용지물이었다.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나랑 똑같은 특수병과 출신이었다는 자기고백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의문은 또 잠들게 되었다.




그 드워프는 곧 나를 개인실로 데려다 주었다. 이런 으리으리한 성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전체적으로 살수란 한곳에 머무는 경향이 적기 때문이다.

개인실의 존재 의의는 봉급을 주는 곳, 그리고 잠시 눈을 부치는 곳, 고작 이 정도다. 임무를 받는 즉시 어떻게든 완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므로 감히 눌러붙어 쉬는 것은 직무태만으로 제명당하기 쉬운 방법이다.

그리고 그 봉급이란 것도 작전 자금도 함께 포함해서 주는 것이라 임무를 무얼 받는가에 따라서 저금되는 것도 천차만별이다. 정 부족하면 본부에 전보를 날리라고까지 드워프는 가르쳐주었었다. 즉, 그다지 부유하기 좋은 직책은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그래도 3일 동안은 유유자적하게 휴식을 취했다. 남의 통제에 따라서 일과를 강제로 하지도 않는 것 자체가 흡족했다. 멋대로 낮잠을 자거나 결식을 하거나 방 안에서 블루드를 쓴다거나, 모든 게 자유였다. 가만히 있다 못해 입단금으로 받은 돈으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시내로 나갔었다.

처음으로 보는 사회였다. 다시 라데르가 교관이던 시절로 회귀한 것처럼, 실속 없는 무성한 소문이 아니라 거리에는 인간이 없었다. 스멀스멀 약간 살의가 느껴지기도 했다. 살의의 출처는 명확하지 않았다.

이건 특정한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드는 게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이 거리 전체가 나라는 인간이란 존재를 반기지 않는 기분이었다.

마음에 들었던 하나는 돈을 주면 종족이 어떻든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싫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돈만 있으면 살 수는 있겠구나 싶다는 게 보였다. 그러나 막연히 좋아할 수는 없고, 물질만능주의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 나로서는 어지간해서는 한계가 있을 거라 맹신하진 않았다. 경계는 필수였다. 그래서 성에서 나가는 건 평상시에는 삼가기로 했다.

외출에서 돌아온 방에는 책상 위에 빼곡한 임무표가 올려져 있었다. 무단 주거 침입인 건 별로 신경 안 쓰고, 방금 돌아왔지만 곧바로 나가야 하는 상황에 첫 임무부터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또 상점가에 가야만 했다. 동전들을 들고다닐 주머니에 의복이나 도구들을 챙길 배낭, 들고 볼 지도까지 상식만으로도 챙겨야 할 준비물이 많다는 걸 이제야 깨우쳤다. 사명감보다는 배낭여행을 간다는 느낌으로 방에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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