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3,002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23 14:36
조회
17
추천
0
글자
12쪽

1권 (33)

DUMMY

로브소에서 멀지 않은 '미프'. 로브소에서 멀지 않다는 말은 로브소와 똑같이 마겐노하에서는 지독한 거리였었다. 하필 그곳이 행선지니 말 냄새가 묻는 건 그만 받아들였다.

임무 자체는 길게 걸리지 않았다. 로브소에서의 임무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미프이란 동네에서 어떤 장소에 어떤 행위를 벌어야 있는지 제대로 임무표에서 가르쳐주고 있어서 난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유일하게 한 걱정 하나는 이번에는 진짜 잠입이었다는 것이다. 로브소에서는 잠입을 가장한 몰살극이었다마는, 여기서는 비밀 기지가 아니고 민간 저택에 숨어들어 비살상을 필수로 정보만 입수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임무도 만만치 않게 추상적이었다.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있었다. 정보의 정확한 형태를 몰라 잠입해서 정작 찾을 수 없으면 어떡할지부터 고민했다. 내가 멋대로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단 점에서 난이도가 올라갔다. 살수 중엔 잠입 전문이 없나, 결코 내 적성은 아니었다.

로브소 때보다는 금전적인 준비는 필요없었다. 냄새라는 문제도 해결해야 했고, 더불어서 잠입이란 점에서 나는 내 발소리에 자신이 없었다. 고요한 도중에 청량한 발소리를 낸다면 얼마 안 되는 경비라도 최소 귀신이라고 의심을 할 터였다.

여기에서도 나다운 해결책으로 블루드를 승부수에 걸었다. 폭발적인 분사로 멀리 날아가는 것과는 달리 조용히 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했다.

일명 '서핑'이었다. 서핑 보드 비슷한 걸 발 밑에 생성하고 그 보드 밑으로 분사하는 식으로 날아보았다. 그냥 제자리에서 나는 것은 괜찮았다. 그 상태로 어디로든 움직여야하는 부분에서 조그마한 조절이 균형을 무너뜨렸다.

그걸 실험하던 게 하필 여관에서라 한 번 크게 넘어지고 여관주인에게 사과를 했다. 내가 다칠 뻔했는데 사과하는 게 이상할지라도, 넘어질 때 블루드로 내 몸을 보호해서 바닥이 부서질 수도 있긴 했다.

부서진다면, 그 경우에는 돈으로 해결하는 방안도 있겠으나, 웬만해서는 얌전히 지내도록 했다.

하지만, 서핑을 본 임무에 활용을 전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소리는 죽일 수 있어도 빛은? 블루드가 발광체가 아니라도 자칫하면 도깨비불 등의 괴담으로 번질 수 있었다. 연습한 보람은 당장에 없었다.

그리하여 임무에선 블루드 자체를 활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부딪쳤다. 제 발로 발소리를 죽인 채로 저택을 돌아다니며 원하던 목표물을 습득했다. 임무표를 보고는 긴가민가 했지만, 실제로 봐서 놀랐었다.

목표물은 금화 한 닢이었다. 이 금화에 어떤 큰 의미가 있는지 아는 것은 쓸모가 없어 가져오기만 했다. 마겐노하로 돌아갈 동안에도 금화에 대해선 신경도 안 썼다. 그나마 든 생각은 이걸 팔면 내 봉급보다 훨씬 많은 자금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여기."

"보이거든?"


할 수 없이 로브라 부를 수밖에 없는 사람은 로브를 쓴 상태로도 금화를 잘 보는 것이었다. 내가 손수 사각이라 생각될 만한 지점에 금화를 놔두고 있었는데도 말이었다.


"보는 방법이 있는 건가?"

"눈 같은 작은 걸 남이 보기는 어렵지만, 작은 게 남을 보기는 쉽단다?"


아마도 로브가 완전히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돌려말했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마술이었으니, 블루드도 있는 마당에 의심할 법해도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런 술수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면, 내가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임무 수당을 주러오는 거지?"

"알아서 뭐하게? 괴상한 짓 하려고?"


강제로 못 나가게 막은 일을 가지고 이리 공격적인 태도였다. 평소의 행실 때문에 생긴 오해여서 이에 대한 묵비권이 곧 긍정이었다.


"아니···."

"알려줄 이유도 없지."


이름 마냥 무적의 권리를 이용해서 빠져나가려는 줄 알았다.


"왜냐면 알 수 있는 수단은 아예 없으니까."

"어? 그러면?"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듣나?"

"아는 것처럼 난 머리가 나쁘잖아."

"매일 시간 날 때마다 방문하는 거지, 그 밖에 더 있겠냐?"


그게 진실이라면 가엽기도 했다. 그렇다면 옆 방의 주인들도 언제 올지 몰라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매일 몇 명 분의 돈주머니를 들고 다녀야 하는 건지, 로브의 고난이 상상이 갔다.


"비효율적이지 않아?"

"안 왔을 거라 생각하고 가지 않는 거야말로 본부에선 시간낭비지. 한시라도 너네가 가져다 온 정보들을 입수하고 다음 대상을 등록하는 게 본부의 일이지. 별로 나는 이 일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있어야 본부가 돌아가는 걸 가볍게 여길 수는 없지."

"자긍심이 대단하네."


로브가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다만, 약간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면 똑같이 옆방에서 지내다가 돌아올 때 본부에 전하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없지."

"안 되나?"

"지내도 되겠지만, 난 너처럼 봉급을 받고 일하는 게 아니거든."


미세하게 보이는 목덜미에 목걸이가 없는 것을 보고 동급인 줄 알았다.


"간부로 취급이 안 되는 거야?"

"난 병사였던 적도 없어. 고용당한 거지."


불행함의 척도를 내가 전지전능한 신처럼 오차없이 구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난 나만의 세상을 개척해나가는 침략가 콜롬버스인 척하는 망상가 돈키호테였다. 개척이라 해도 흙으로 만든 두꺼비집 두께의 영토는 어이없을 만했다.

전반적으로 행복한 인생 따위 망상만으로 채우기에는 더러 있는 침략가들에 의해 깨지기 마련인 걸, 내 인생은 무시하고 남의 인생에 간섭하려 했다. 이타적인 것 같으면서도 이기적인 놈이라 이 때의 행동은 변질되기보다는 첫 단추부터 약속되었었다.


"그래도 욕심나지 않아?"

"뭘?"

"자금을, 좀 보탤 수는 있을 것 같긴 한데, 원하는 거 없어?"

"···참나."


자비를 베풀려는 내 입장에서는 전혀 그럴 거라고 짐작조차 않았었다.


"불쌍해서 그러는 거라면, 네가 자만하고 있는 거잖아. 정 자기 일터가 그렇게 자부심이 느껴지면 본인 선에서 끝내야지. 나한테까지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것에 내가 고맙다고 할까? 누구는 그러겠지. 그러나 마치 진정한 친절이라는 것처럼 연기하지 마."


되려 최대한 온화하게 된 욕 한 바가지를 받아먹고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명예든 그깟 돈이든, 난 어떤 것이든 만족하면 욕심 따위 없어. 넌 안 그런 거야?"


보통은 내가 말을 못하는 상황이면 무시하고 지나가도 될 것을, 굳이 로브는 기다려주고 있었다. 나와 담판을 짓겠다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끝까지 말하지 않은 채로 로브를 붙잡겠다는 심산은 안 들었다.

발휘된 본심으로 로브의 정성에 응해주었다.


"내 주변인들이 불행한 건 싫고, 난 네가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그거 대단한 착각이네."


더할 나위 없이 종지부를 찍기에 적절한 말을 마치고 로브는 떠났다. 아예 나만의 배려가 안 통하는 상대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만큼 내가 물렀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입으로 물질만능주의가 아니라는 이가 해줄 수 있는 게 물질밖에 한정되어 있다는 슬픈 이야기이기도 했다.




다렌과의 약속, 편지 건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던 게 아니었다. 마땅히 쓸 게 없었던 게 문제였다. 당당히 구라를 칠 때는 치안부대를 상상해서 쓰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매우 생각이 없었다.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편지의 내용을 채울 수가 없었다. 치안부대에 갔다고 해서 내가 했던 일들의 내용을 꼭 적을 필요가 없어도, 최소한의 언급조차 나는 하기가 두려웠다. 과연 꼬투리를 안 잡힐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틈만 나면 치안대를 구경했다.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꾸미는 건 염치만 없으면 가능할 일이었다. 그대로 실행에 옮겨 치안대를 감시하듯이 했다.

감시하듯이 해서 문제였다. 평소에 눈치들이 예민한지 계속 응시하는 내가 거슬렸는지 나에게 걸어오더니 약한 취조를 하고 갔다. 원래 결백한데 트집 잡히는 게 제일 떨리는 거라 어떻게 보면 진짜 속내가 검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었다. 다행히 붙잡히지 않고 넘어갔다.

마침 일어난 일인 걸, 잘 활용하기로 했다. 편지에는 내가 미심쩍은 행인을 오인취조했다고 적었다. 앞으로도 이런 허당 캐릭터로 밀고 나가야 할지 고민했지만, 이대로 편지를 부쳤다.

한참 자유의 시간을 가지다 보면 여러 짓거리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곤 했다. 특히나 가장 형편없었던 짓거리는 주점에 간 일이었다. 왠지 몰라도 주점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이 나이에 술을 마셔 본 적이 있긴 해도, 정작 주점은 불법으로 하기에는 내 신장이 걸림돌이었다.

여긴, 신분증의 나이가 딱히 의미가 없었다. 법적으로 19세 미만에게느 술을 판매하면 영업정지처분을 받는다는 개념이 없어 내가 들어가도 괜찮았다.

괜찮다 할 뿐이지, 내 경우에는 문제되는 건 후천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들어가자마자 천대받는 상황에 대해 따지니 이유는 간단했다.


"주문 안 받는다."

"다른 사람들은 받고 있는데요?"

"눈치도 없냐. 휴먼은 나가라고."

"아, 그럼 나가죠."


로브의 의미에 돌아보게 되었다. 그 로브가 로브를 쓰는 이유는 백발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어디까지나 약점으로 잡힐 수 있는 부분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비겁한 것 같아도 부당하게 숨기지 않으면 안 된다면 비겁하단 말이 비겁한 것이겠다.

내가 휴먼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말지. 엘프나 휴먼이나 귀만 빼고 보면 다른 건 없었다. 이 체형에 로브만 쓴다면 휴먼으로 알까, 엘프로 알까. 나도 로브를 쓰기로 했다.

로브를 쓰는 것까지는 좋았다마는, 사실 이 세계의 주점이 나와는 전혀 안 어울려서 빠져나왔다. 역시 화학이 기똥차게 퇴화되어 있는 나머지 술 농도를 버틸 수가 없었다. 기껏 맥주가 한계인 나에겐 주점을 멀리하게 되는 계기였다.

곧 가을이니까, 멀지 않아 많이 활용할 거라고 로브를 산 것에 후회하진 않았다.




심심해 죽을 지경인 한밤은 오히려 잠이 오지도 않았다. 그 로브가 찾아오지 않은 지 사흘이 지나려던 때라 따분해서 침대에서 뒤척이기만 했다.

외로운 건 개성 따라 참을 수 있어도, 지루한 건 만인공통인 듯했다. 이쯤에서 늦은 밤이라도 그 로브가 찾아오면 좋을 거라는 상상도 했었다.

아니면, 찾아오지 않을 경우에는 뭐하고 있을련지, 이런 상상으로 이어가기도 했다. 자고 있을 거라는 게 흔히 드는 생각이라 별 거 없긴 했다.

좀 더 범위를 확장했다. 편지를 받았을 다렌은 어떨까. 그러고 보면, 내가 다렌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어도 내가 답장을 못 받지 않나.

이런 상황은 사리나 님도 비슷하지 않았나. 이러니까 사리나 님의 뒤를 캐고 싶다, 는 전개로 괴상망측한 전개로 흘러갔다.

서서히 내가 몽롱해진다는 증거였다. 슬며시 눈에 감겨 내일을 만나러 가려 했다.


"하하하하하하하!"


언제나 소음은 때 아닐 때 나타나야 소음이었다. 의문의 불청객에 정신이 번뜩여서 다시 잠을 청하기에는 상태가 안 되었다.

옆 방에서 들려온 경쾌한 웃음소리는 나를 웃게 할 수 없었다. 그냥 한 번을 끝으로 그만뒀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크크큭, 크하하하하하하!"


전혀 알지 못하는 상대이지만, 그렇기에 더는 못 참았다. 인정이나 배려가 들어갈 수 없는 처치곤란한 공해를 일으키고 있기에 방에서 나섰다.

옆방이라는 점에서 나와 똑같은 살수, 전혀 이름도 몰랐던 동업자의 만남에 반가워야 했다만, 이렇게 된 이상 얼굴 붉히는 게 기정사실이었다.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1권 (44) 20.07.09 65 0 13쪽
43 1권 (43) 20.07.07 17 0 11쪽
42 1권 (42) 20.07.06 18 0 12쪽
41 1권 (41) 20.07.03 18 0 13쪽
40 1권 (40) 20.07.02 15 0 12쪽
39 1권 (39) 20.07.01 17 0 12쪽
38 1권 (38) 20.06.30 15 0 12쪽
37 1권 (37) 20.06.29 16 0 12쪽
36 1권 (36) 20.06.26 14 0 11쪽
35 1권 (35) 20.06.25 18 0 12쪽
34 1권 (34) 20.06.24 19 0 12쪽
» 1권 (33) 20.06.23 18 0 12쪽
32 1권 (32) 20.06.22 18 0 11쪽
31 1권 (31) 20.06.20 23 0 12쪽
30 1권 (30) +1 20.06.19 36 1 11쪽
29 1권 (29) 20.06.19 20 0 12쪽
28 1권 (28) 20.06.19 17 0 11쪽
27 1권 (27) 20.06.19 20 0 13쪽
26 1권 (26) 20.06.19 18 0 11쪽
25 1권 (25) 20.06.19 19 0 12쪽
24 1권 (24) 20.06.19 21 0 13쪽
23 1권 (23) 20.06.19 18 0 12쪽
22 1권 (22) 20.06.18 17 0 12쪽
21 1권 (21) 20.06.18 20 0 11쪽
20 1권 (20) 20.06.18 18 1 11쪽
19 1권 (19) 20.06.18 18 0 11쪽
18 1권 (18) 20.06.18 17 0 11쪽
17 1권 (17) 20.06.18 18 0 11쪽
16 1권 (16) 20.06.17 18 0 12쪽
15 1권 (15) 20.06.17 18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