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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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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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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7.0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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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권 (40)

DUMMY

다시 하연과의 기억으로 전환한다. 이 때는 하연이 말을 타는 것에 익숙해졌을 무렵이었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여전히 아프다고 투덜대는 것은 있었으나 쓴소리 하나 없이 탈 수 있게된 수준이었다.

아무렴 나도 아예 안 아프지는 않았다. 인간으로서 많이 고통에 노출되다 보니 저절로 나도 입 꾹 다물고 운전하는 것이었다. 의자에 오래 앉으면 종기가 생기는 것처럼 말 등에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면 헐어지는 건 다반사였다. 하연도 그 경지였다.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건, 보나마나 임무를 수행하러 가거나 완수하고 귀환하려는 길일 테지만, 하연이 매회 매번 꼼꼼하고 무뚝뚝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지루한 때는 있어 잠시 말에서 내려 쉴 때는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중간고사는 보고 왔니?"


심심하지 않은 건 좋으나 화제 자체가 판도라였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매번 고민해야 했다.


"네, 그리고 이곳에 와 버렸죠."

"몇 점?"

"그것까지 아시게요?"

"시험 얘기면 점수를 빼놓을 수 없지."


그렇다면 시험 얘기를 사전에 싹을 잘랐어야 했다.


"국어가 40점대였으니까. 대충 그렇다고 하죠."

"날라리였구나."

"지금보단 애였죠."

"지금도 애잖아."

"일로 사람 죽이고 다니는 애 봤어요?"

"그래? 애와 어른이 하는 일이 다른 걸로 간단히 정의내리고 있네. 애라고 해서 아예 사람을 못 죽이진 않잖아."


그리고 어른이라고 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연의 말에 찬동했다.


"뭐가 다른 거죠?"

"행동거지."

"예를 들어서요?"

"책에서 봤던 내용을 인용할게. 신사임당 4장과 온갖 신용 카드, 맴버쉽 카드들이 꽂혀져 있는 명풍 지갑이 땅에 떨어진 걸 발견했어. 어떻게 할래?"

"도덕성 문제인가요? 저라면 가져가죠."

"일단 가져가서 생각해본다는 거지?"

"그렇죠."


아니라는 듯한 낌새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 답은 이거였지. 주변에 CCTV가 있다면 경찰서에 전달하고, 아니면 몰래 숨겨 집에 가져가서 카드들만 토막내서 버리고 현금과 지갑은 내가 가진다."

"조금 소름이었는데요?"

"그건 그렇고, 책에서는 무슨 답을 내놓았는 줄 아니?"

"뭔데요?"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든 애나 어른을 정의할 수 없다, 였어."

"완전 낚시성 글이잖아요."

"성숙이라는 단어가 있잖아. 실은 그건 '어른이 된다'는 과정을 뜻하지 않고 성격의 변화를 나타내는 다른 말인 거지."

"어른이랑 성숙이랑 완전히 다른 건가요?"

"인과관계만 아니야, 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되니?"

"되긴 하죠."


말과는 다르게 뇌가 연결을 끊고 부유하는 느낌으로, 듣는대로 정보를 다 전달하지만 정리는 일제히 못하고 있었다. 알아서 정리해주기를 빌었다.


"성숙한다는 것은 복합적이긴 해도 현실적인 성격도 여기에 포함이 돼. 더불어서 이타주의도 섞여들어가. 성숙이라는 과정은 누구에게난 붙일 수 있는 게 아닌 거지. 저렇게 성격이 변화하는 사람들만을 성숙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책에서 설명해."

"맞지 않나요?"

"넌 꽤 고지식한 거야."

"그래요?"

"나와 같은 다양성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는 헛소리라 여겨져. 성숙이란 게 단 하나의 정해진 틀이 되는 것을 말하는 거라면 세상에 똑같은 20대나 60대더라도 성격이 다양한 게 설명이 안 되잖아?"

"성숙의 방법도 다양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렇게 믿었었어. 성숙 얘기에서 돌아가, 애와 어른의 구별에 대해 마무리 하자. 그럼 떨어진 지갑 질문이 구별을 할 수가 없다면 어떤 질문이어야 구별할 수 있을까?"

"바로 정답을 말해주세요."

"자식과 관련된 질문을 할 때야."

"아."

"형식만 놓고 봤을 때는 자식이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어른이라 할 수 있긴 하지. 자신의 피가 이어진 2대가 있다는 것만 해도 서열이 자동으로 올라가. 내가 사람은 다양하다고 믿잖아? 이 신념에서 한 가지 슬픈 것은 모든 유부남녀가 자식을 아끼지 않고 학대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만 신념이 되지. 즉, 성숙한다는 것은 자식을 위해서 힘써줄 수 있는 성격으로 변화한다는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던 거야, 그 책은. 누구든 자신을 어른이라 칭할 수 있어도 어른이 된다는 건 필히 '성숙한다'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야."

"오호."


유익하다 못해 하연의 인용에 홀린 듯했다. 평생 해보지도 않은 성숙해진다는 것의 관념을 들은 게 선교를 당한 것처럼 마음 한 켠에 다가왔다. 더 이상 어른이 된다는 말이 나이만 쳐먹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인식이 되지 않았다.


"너나 나나 어른이라고 절대 말 못해. 그렇게 따져서는 나도 아직 애야. 독신으로 살 거라서 평생 어른 소리 못 들을지도 모르고."


하연 또한 위의 정의 때문에 어른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보단 독신이라는 말에, 이미 독신이란 들어놓고도 나는 태연하게 이런 말을 했다.


"결혼 안 하실 건가요?"

"순환오류는 뭐야."

"네?"

"독신이 결혼을 안 한다와 똑같잖아. 아니면, 나보고 결혼이 좋다고 권유하는 거야?"

"그러게요.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반면, 나에게 결혼을 할 거라는 것에 자문을 하자면, 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너는?"

"할 생각이죠."

"설마 상대가 있는 거야?"


언제나 그립고 몇 번을 말해도 반가운 사리나 님이 당장 떠올랐다. 평소에 잊고 있는 게 아니었다. 서술이 없어도 자다가도 꿈에서 튀어나오는 게 사리나 님이었다. 다만, 이런 상사병 같은 서술을 백날 반복할 순 없으니까 오랜만에 언급이다.

하지만, 실제로 난 상사병에 접어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으로 목마르긴 했다. 반년이 지나도록 마지막 행적이란 게 벌써 너덜너덜 헤질대로 헤진 편지 한 통이 전부였다.

참고로, 그 편지는 상시 부적처럼 들고 다니고 있었다. 꺼내어서 하연에게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는 안 했다. 말로만으로 해결하려 했다.


"반년 이상을 못 만난 사람이고 짝사랑이긴 하지만요. 사리나, 라고 있어요."


'-님'이라고 어미를 붙이려다가 언급하는 것뿐이라는 걸 인지하고 그만두었다.


"훈련병이던 시절에 갑자기 등장해서는 저에게 블루드라는 걸 알려준 은인 중 한 명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솔직히 예뻐서 반했다는 게 정설이죠. 그것 말고는 별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아직도 사모하는 게 웃기려나요?"

"그건 문제가 되지 않지. 네가 뭘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알 바가 아니기도 해."

"냉정하네요."

"냉정해도, 내 방식으로 축복해주는 건데. 어떻게든 재회해서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그렇게 말해버리면 괜히 말한 게 후회되는데요."

"짝사랑으론 결혼은 못하잖아."


치명적인 돌직구였다. 만나는 것도 일이지만, 내 쪽에서 고백해야 한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전장에 나서는 건 서슴치 않아도 사랑 고민 앞에서는 주춤해지는 게 로맨티스트인가? 대화를 잇지 않고 나 혼자 고민을 이어나갔다.

이 평화로운 사이에 하연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런데, 이것도 웃긴 운명이긴 하네."

"무슨 말이죠?"

"사리나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거든."


당장 헤아릴 수 없는 청천벽력 같은 발언에 가만히 있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부터 뒤숭숭한 나였다.

현재로는 동료로도 모자람이 없는 든든한 누나이지만, 한 때는 임무의 대상이었던 적군이었기에 심히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어디서 들으신 거죠?"

"레인저 부대에서 들었었지. 정확한 내용은 몰라도 언급이 있었다는 것만은 알아."

"···."

"네 걱정이 뭔지는 알아. 레인저끼리 언급되었다는 것 자체가 사리나의 신변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전개잖아."


보지도 않고 낙담을 할 수는 없어도, 괜찮을 거라는 안일함도 불가했다. 사리나 님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어떻게 결론을 내릴 방도가 안 났다. 애써 기도하는 수밖에, 손을 모아 오므린 채로 떨림을 잠재우려고 했다.


"괜찮을까요?"

"장담은 못해."

"긍정적이게 대답 해주면 안 되나요?"

"···몹시 간절하긴 하는구나."


번뜩, 잔머리에서 떠올린 대책이 있었다.


"누나."

"왜?"

"이번 임무가 끝나고 대신 제가 임무를 줘도 될까요."

"예상은 가는데··· 들어는 볼게."

"사리나, 의 행적을 알아봐주면 안 되나요."

"그럴 것 같더라."

"무리인가요?"

"무리일 수도 있어. 군 관계자의 뒤를 쫓는다는 게 대단히 섬세한 일인 걸?"

"보수는 선불, 후불 다 해줄게요."

"보수가 중요하진 않아···라고 말하기에는 얼마나 줄 건데?"

"해주시는 건가요?"

"네 성심을 보고."


말은 그렇다지만, 어지간해서는 들어줄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맞선 상대를 찾으러 가는 수준의 유쾌한 일이 아닌 걸 알고 있음에도 하연의 내성이란 내가 논할 거리가 없는 선함의 모델이었다. 착하게 구는 거랑은 거리가 멀었다. 이게 이타주의인가, 애라고 자칭했지만은 나에겐 하연이 어른스러웠다.

단지 그럴 뿐이지 1순위는 사리나 님이었기에, 선을 그어 조수 이상의 관계는 일체 발전하지 않았다.




그냥 보내지는 않았다. 돈은 필수요소이고, 만약을 대비해서 살수의 암구호까지 전부 누설했다.

하연은 이거에 반대했었다. 내 커리어를 박살낼 수 있는 중대사항인 걸 해도 되겠냐고.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꼭 해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그러더니 금방 조용해졌다. 기밀누설 따위 내가 사리나 님을 찾는 일보다 중요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다만, 후회되는 것이 있었다. 리자드맨도 못 본 지 된 사이에, 하연도 떠나가버리면 내가 외로울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외로움을 안 타는 성격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허세였다.

그런 불안정 속에서 사리나 님을 고대하자면 더욱 애가 탔다. 긍정적이게 답하라던 내가 부정적이게 사리나 님도 잃고 하연도 잃으면 어떡하냐는 마음가짐으로 백날 살았다.

그렇게 살아도 상관없게끔, 임무도 첩보보다는 전투 지원에 비중이 갔다. 더 이상 안 볼 줄 알았던 전장에 가도 그립기는커녕 정이 떨어졌다. 노가다를 하는 기분으로, 혹은 영업사원의 발걸음으로 달려가서 훑고 지나가는 게 재밌지는 않았다.

적수를 찾는다는 의의도 안 들었다. 기술을 새로 개발하는 재미? 그런 것도 없었다.

만사가 귀찮으며, 안 그래도 내가 블루드가 고갈되지 않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서 똑같은 기술만 구사했다.

이른바 '초신성'이라고 전신무장한 상태로 블루드를 압축시켜 폭발시키는 기술이었다. 저들이 이를 보고 재앙이라고 한들 별 신경 안 썼다.

너무 사기적이기에 편했다. 가끔 오는 레인저 무리들도 이 반격의 틈도 없는 기술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폭발이 진행되는 동안 나 이외의 블루드는 무력화되고 웬만한 물질은 갈려나가 초토화가 되었다.

이러고 보면, 자화자찬이 아니라도 한 때 내가 부대의 괴담이 되었을 수도 있었단 추측이 든다. 부대에는 전혀 얼굴을 안 비추었고, 전신무장인 채로 다녀 겉으로는 블루드 덩어리 종족 불명의 유령으로 보일 테고, 말도 한 번 아무나 섞지 않아 괴담의 요건이 충족되어 있었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일상들이 따분했다. 내가 따분하게 산 것이지만, 진정 사리나 님 일편단심이 사리나 님 이외에는 흥미가 없게 만들었다.

그래도 항상 사람들이 난제에서 답을 찾아낸 것처럼 나 또한 조그마한 취미를 가졌었다.


"뭐해?"


내 방으로 온 로브에게 거리낌없이 말해주었다.


"눈사람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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