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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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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4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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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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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권 (21)

DUMMY

닿았을 텐데,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때린 척이라도 했다는 건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내 배는 묘한 감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확실히 말하자면, 이건 맞아서 생긴 통증이라고 보는 건 어려웠다. 그보다는 너무 시원했다. 혈관들이 뻥 뚫려서 초고속으로 온몸을 순환하는 것 같은, 부분적이지 않은 통증이었다. 그래도 유독 배 부근이 비교적 더 아프긴 했다.


"하나 묻고 싶군. 정말 1번밖에 못한 몸인가?"

"이번이 평생의 두 번쨉니다."

"다시 해보지."


이번에는 사전 권고를 하고 나에게 주먹질을 하려 했다. 내가 할 일은 똑같았다. 도대체 무엇이 발동 조건인지 모른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베개에 푹 파이도록 배를 대주었다.

의식을 하고서 블루드라는 것이 발현되는 것을 느꼈다. 극심한 정전기가 배를 강타하여 찌릿해서 그만 한순간 몸이 미동도 못하고 굳어버리는 현상이 있었다. 이게 바람직한 현상인지 여러 번 하라고 하면 불쾌해서 못 해먹을 정도였다.


"방위본능으로 발현되는 건 우연이 아니었나 보군. 그러면 평상시 상태에서 그냥 발현을 할 수 있겠나?"


따질 필요 없이 나는 즉답을 하였다.


"무립니다."

"그럴 줄 알았다."


그 말을 하고서 내 다리는 힘이 풀려 나를 풀썩 주저앉게 만들었다. 별 거 아닌 듯한 훈련인 줄 알았지만, 실은 몸은 정직하게 내 상태를 알려주었다. 블루드라는 것이 극도록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기술이라는 점, 라데르의 혜안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너를 평가하자면, 수동적인 발현 자체는 잘 성공한다. 좋은 재능이다. 보통은 몇 번이고 구타에 자극 받아서 겨우 약한 수준이라도 이끌어 내는데 비해 한 번도 맞지 않았는데도 꺼낸다는 것은 대단히 칭찬하고 싶다."

"체력이 부족한 겁니까?"

"아니, 체력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마는, 그게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다."


단번에 라데르의 혜안이 부정당하는 듯해서 속으로 사과를 해야만 했다.


"맞고 싶지 않다는 의식을 잘 알겠다마는, 과잉이다. 잘 성공하는 것은 좋아도 한 번 한 번이 묵직한 나머지 완급조절이 안 된다는 거다. 내가 블루드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 맨주먹으로 치는데도 말이다."

"훈련 방법이 있습니까?"


그걸 물어보는 건 참 생각이 없었다는 말이었다.


"계속 맞아야 하는 수밖에 없다."

"네···."


맞기 싫으면 어떻게든 블루드를 쮜어짜내라는 야만적인 교육 방침에 식겁해도, 인정하긴 싫어도, 그게 현명하다는 건 동의하는 바였다.

이 교육이 끝나는 조건은 단 하나였다. 내가 블루드를 사용 못하고 한 대라도 배에 직격을 맞는 경우. 그 주먹은 긴장을 하고 맞더라도 뼈가 성하게 있을 수준이 아니었다.

블루드의 사용에 따른 후폭풍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맞지 않는 편이 훨 낫다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어떤 것인지 잘 알게 되었다.




매우 바빠졌다. 비례해서, 매우 아픈 일과였다. 라데르와의 시간도 육체적으로 힘든 감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언제 끝날까 고민하게 만드는 정신적인 통증을 감내해야 한다면, 그 켄타우르스, '뤼펠'과의 시간이란 무조건 하루에 한 대는 맞아야 한다는 점과 거기까지 가는 데에 블루드를 사용하고 반작용을 받는다는 점에서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다.

11일 차부터 몇 날은 그런 몸 상태를 유지함에도 오로지 의지로 서재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는 그런 것도 힘들게 되었다.

금방 라데르와의 일과가 끝나면 뤼펠의 교육을 대비해서 허겁지겁 자는 데에 시간을 썼다. 그런다고 밤에 잠을 못 자는 건 아니었다. 블루드가 체력을 갉아먹는 양이란 얼마나 있는지 상관없이 다 탕진시켰다.

이를 덕분이라고 할지 밤잠을 이루는 데에 1분 1초도 지체하지 않게 해주었다. 잠이 아니고 쓰러진 것에 가깝긴 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변화는 라데르의 시간이 혹독해져갔다는 것이었다. 해봤자 한 기술 당 100회였었는데, 점차 10회씩 늘어나서는 문답무용으로 무조건 다 하도록 시켰다. 악착같이 시킨다고 해서 역시 악착같이 해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낮잠을 잘 수가 없으니까, 나에게는 낮잠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매일이 훈련 아니면 잠, 혹은 식사라는 일과가 반복되어 하나 소외된 게 있었다. 라데르나 뤼펠이나, 그다지 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스승과 제자로서의 정은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으나, 꼴에 한 지붕 아래인 관계에 내 몸 살기 바빠서 무시한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의식한 때를 보면 17일차로 벌써 반은 훌쩍 넘은 때였다. 28일차가 여기에서의 마지막이라고 했었으니 의외로 짧을지 몰라도 기껏 1:1로 집중 교육을 받는 이상 서로를 모른다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고 내 기준에서 바라보았다.

교육 시간이 아닌 때에 그럴 수 있는 시간 중 제일 적절한 시간이란 그거였다.

욕탕에 있을 때. 마침 17일차인 그 날은 라데르와 뤼펠이 같이 몸을 담그고 있었다. 둘 다 웬만한 거구라서 멀리 떨어져 입욕 중이었더라도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삼자대면을 시작하였다.


"대장 님은 교관 님이랑 친하시나요?"


대장 님이란 뤼펠이었다. 이곳에 체류하기 전 전선에 있었던 몸이라 내가 호칭을 그렇게 지정했다.


"여기에 와서 처음 보는 얼굴이다."

"나도 모른다."


라데르도 합세해 대답했다.


"아, 한 가지 소식은 들었다. 패퇴를 하고 온 지휘관 한 명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나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놀란 것은 하필 그런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미리 라데르의 머릿속을 알았다면 화제를 돌리고 싶었으나 흘러나온 말을 주워담을 수 없었다. 시비조는 아님에도 특유의 바실리스크 성대가 내뿜는 묵직함이 나에게 위압감을 가져다주었다.


"전략적 후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땅굴이다."

"그게 가능한 건가?"

"구세대 전장에 있었던 녀석에게는 먼 이야기인가."

"구닥다리라서 미안하다."


나는 온데간데 없고 라데르와 뤼펠의 만담으로 이어졌다. 듣고 있자니 서운한 것보다는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어 가만히 냅두었다.


"땅굴로 초소 곳곳으로 침투하면서 일대를 다 장악했다. 내 침소까지 기습해서 상황을 빠르게 알아서 다행이었다. 잔존병력 30명만 이끌고 목숨을 부지했다."

"신세대든 그딴 걸 누가 상상하겠냐."

"그럼에도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어느 누군가는 타이르더군."


이래 보면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이라서 말이 통하는 것이었다. 병사로서 매일이 승리의 함성일 수는 없어도, 아무래도 뤼펠은 책임 때문에 이곳에 있는 거라면 부상으로 전선에 서는 것을 박탈당한 라데르와 처지는 비슷했다.


"너 말이다."


뤼펠이 나를 향해 부른 것이었다. 호칭도 어찌 비슷했다. 라데르는 '야'라고 부르고, 뤼펠은 '너'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사리나 님 아니면 토넴뿐이었다.


"나중에 병력들을 지휘할 생각이 있나?"


언젠가는 그럴 거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지위가 높아진다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을 물려받아야 하는 의무도 생길 터였다.

그런데, 하필 눈앞에 있는 사람들만 봐도 썩 그럴 마음은 없었다. 차라리 밑의 수하로서 있는 것은 몰라도 지휘관이란 직책의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을 거란 담력은 여전히 욕망과 별개로 현저히 낮았다.


"아직은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휘관이 된다는 건 무척 힘들 일이다. 되는 것도 그렇지만, 되더라도 그 뒤에 자신의 책임에 자신을 가져야 하는 게 곧 지휘관의 일이다. 그만큼 이롭다고 한다면 끝까지 하는 거다. 나처럼 말이다. 아직 재배치를 안 받은 거지 하직 당한 건 아니다."

"언제 가십니까?"

"간다고 전령이 온다면 그 바로 다음 날일 거다. 확정된 건 없다. 예상으로는 1주는 더 있어야 될 것 같군."


적어도 내가 여기에서 사라지는 게 더 빠를 거라는 뜻이었다. 마지막 날까지 나는 저 사람의 주먹을 맞봐야한다는 게 좋으면서도 좋지 못한 일이었다.


"야."

"네."


라데르가 시비조로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비굴해진 마음과 반대로 자세를 바로 잡아 똑똑히 들었다.


"나에게는 '요'를 쓰면서 얘한테는 왜 '다'를 쓰냐."


뭔가, 입으로 내뱉고는 싶었는데 라데르가 알아들을 수도 있는 단어인지 구별이 안 가 일부러 안 내뱉었다. 꼰대 같다고, 괜히 말했다가 어떤 뒤끝이 있을지 가늠할 수 없어 참았다.

조금 틈을 주고 이해하고자 하면 공감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형식상으로도 뤼펠과는 달리 라데르가 담당 교관으로 되어 있고, 같이 있는 시간은 몇 배로 많을 텐데도 존댓말의 급이 오히려 낮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점이었겠다.

그렇다고 나에게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 교관 님이 친근해서 쓰는 것인데요."

"난 네가 친근하다거나 친밀하다고 느껴지지 않다."

"그런가요?"

"······."

"···알겠습니다."


이제 내가 '요'를 쓸 수 있는 상대는 사리나 님밖에 없다고 단정지으려고 했던 때였다.


"그냥 써라."

"네."


공식적으로 허락을 받은 나는 기왕 이곳에서 남발하기로 했다.


"교관 님도 맞아서 블루드를 쓸 수 있었나요?"

"그래."

"아프진 않았나요?"

"아프지 않게 때리면 발현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네가 특이한 거지, 그걸로 남과 비교하면 널 보고 뭐라고 하겠냐."

"잘난체겠죠."

"딴 데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잔소리는 뒷전으로 하고, 나는 무리일 수도 있는 부탁을 하였다.


"블루드로 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죠?"

"그건···."


말문이 막힌 라데르를 대신해 뤼펠이 알려주었다.


"모른다."


그러나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았을 것 같은 대답을 듣게 되어 호기심을 증폭되었다.


"네?"

"모를 수밖에 없다. 블루드는 갑자기 발명된 신 병기가 아니다. 고대부터 있었던 것을 다시 부활시켰을 뿐이다. 문제는 고대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이걸로 어디까지 가능했는지는 블루드 사용자 사이에서도 의문이다. 다만, 진정한 한계는 모르더라도 한계의 최소를 유추 해봤을 때···."

"네."

"···강을 가를 수가 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되물었다.


"뭐라고 했습니까?"

"다른 걸로 빗대면, 이 성을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강에서 멈추는 편이 추상적일 수 있었던 걸, 구체적인 비유로 제대로 들으니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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