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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52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7.09 14:14
조회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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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권 (44)

DUMMY

"어이, 대답 좀 하라고? 안 들리냐?"


'안 들리냐',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느꼈다. 전신무장은 특성상 외부의 말귀는 웬만해서 안 들리는 게 정상이었다. 내가 내는 소음이라도 전부 매트리스에 주먹이라도 쳐는 듯한 둔탁한 미음으로 교체되어 들려왔다.

현재는 그런 거 필요 없이 저 놈들이 어떻게 노닥거리는지 가라지 않고 들려왔다. 그 말은 즉슨, 내 전신무장의 견고함은 사라졌다시피 한 것과 더불어서 거의 나는 맨몸이란 소리였다. 이대로 뿌리만 푼다면, 나는 녀석의 말대로 셋 중에 아무 방법으로도 죽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다행히 거기까진 생각이 못 미치는 둘이었다. 내가 들은 척이나 대답도 안 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과학 상식이 부족한 시대상 애초에 그런 논리가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었다.


"늦어! 빨리빨리 다니세요, 다들?!"

"어쩌라고. 공헌은 내가 제일 클 걸?"


개 우리에 갇혀 팔려나갈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둘에서 시작해서 7명까지, 나를 중심으로 둘러싸는 사냥꾼들의 모임이 이루어졌다.


"하, 구속한 건 나거든?"

"내가 대가리를 안 뚫었으면 잡히지도 않았어, 도둑놈아."

"쫄보라서 한 발 쏘고 멀리서 통하지도 않는 거만 갈기던 주제에 공헌 염병하네!"

"한 명한테 공헌을 몰아줄 순 없다. 모두 다 잘했다. 작전대로 유인한 다음에 구속한 것일 뿐, 칭찬 안 할 사람은 없다. 그만 인정해라."

"아저씨는 빠지고, 모두 다 잘했다고? 아무튼 내가 전반적으로 핵심인 전략에서 어디서 공헌을 가르채려고 하고 있어?"

"흉측한 오판이군."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말싸움은 돌아가서 해!"

"아니, 돌아가서 하지도 마."

"그래, 여기서 결판을 내자. 다수결로 하죠.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면 손 들어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중년 남성의 말에 공감했다. 지나치게 개판이었다. 이대로 시간 끌 필요없이 얼른 해치우면 안 되는 건가, 안절부절하며 나한테 신경 써주기를 기도했다.

결코 자포자기는 아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자포자기였다. 마음먹고 지혈하고 있기는 하나 절대 살이 아물어들지 않는 이상 실혈은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블루드를 해제한다면 그대로 피가 폭포 줄기처럼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 전에 나를 공격한다=뿌리를 해제한다, 는 공식을 이용하여 도망칠 궁리만 희망차게 하였다.


"난 못 고른다."

"빠져도 돼요. 어차피 짝수여도 결과는 뻔하잖아요."

"누가 못하는데 그걸? 역할 한 번 잘 맡아서 참 좋으시겠다. 방심한 뒤통수에 후려갈긴 게 대수냐? 그러셨으면 즉사시컸어야지 내가 쫓게 만들어?"


여기서 위압감이 드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아, 할 거면 말을 해."


목소리의 주인 옆에 있던 복면은 투덜대더라도 귀가 먹먹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귀도 안 막았으면서 멀쩡히 서 있었다.


"소강 상태는 멀었다! 잘한 것을 논할 바에야 현재 못한 것을 염두에 둬라! 적은 살아있다! 확실히 죽이기 전까지는 결산하는 건 이르지 않은가! 누가 더 얼마나 기여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죽여야 하는 게 중요한 거다! 알겠나!!!"


마지막은 말다툼하던 둘에게 윽박지르는 것이었다. 어지간한 화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제 아무리 화내도 내가 저 정도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본래 저 사람의 성량이 높다는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이제야 나를 공격하려 드는가, 약간 희망적인 면모가 보이기 시작하려 했었다.


"이제 죽이려는 마음가짐이 든다면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네."

"어떤 제안입니까?"


딱 봐도 귀찮을 것 같은 인상의 중년 남성에 거들어서 그 중년 남성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원로가 화두에 섰다. 중년 남성은 금세 목소리가 잠재워졌다.


"이대로 속박을 풀지 않은 채로 대기만 해서 서서히 죽어가도록 만들고 싶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중년 남성은 중립적인 말을 하면서도 내심 찬동하는 억양이 섞여 있었다. 둘 다 안전주의에 찌들어있는 사람인 듯했다.

그러자 열혈적인, 비교적 꼬맹이인 둘은 몹시 반발했다.


"제가 못 미더워서 그런가요? 화력이 부족할까봐?"

"다 잡아놓을 걸 보면서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이게 무슨 가축이야? 절여놓아서 먹게?"

"한결 같네."

"뭐?"


복면이 꼬맹이 한 명의 심기를 건드렸다. 여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예의라도 지키더니 복면에게만은 예외였다. 복면이 꼬맹이들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낮다는 걸 추려낼 수 있었다.


"제일 한 거 없는 주제에 날 무시하는 거냐?"


그러자 복면 옆의 중년 남성이 그 꼬맹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게 참 가관이었다. 맞을 걸 각오하고 꼬맹이가 블루드를 쳤지만, 그걸 블루드를 두른 주먹으로 중년 남성이 뚫었다.


"진짜 한결 같다!"

"먼저 한 건 저쪽인데!"

"난 네가 추후에 선배가 될 수 있단 사실이 너무나도 두렵다!"


과감하게 돌직구를 날려보낸 중년 남성이었다. 한두번 날린 솜씨가 아니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닐 터, 꼬맹이도 반발했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만큼 절망적이진 않을 걸? 이 망할 세대보다는 나을 거다."

"그게 이유를 안 듣겠다는 것의 이유냐?"

"까짓 거 지껄여보던가."


혈전은 냉전으로 하향되었다. 나한테 긴장 상태로 보이는 게 저쪽에서는 그나마 평화로운 것인지 그대로 화제가 재개되었다.


"함정을 파놓았을 때 머리에 관통은 아니더라도 부상을 입었다는 걸 목격했네. 그 후에 아래층에서 근거리로 탄환을 쏘아대었네. 그러나 저게 전개된 순간부터 우리의 공격 자체가 무효화 되었네. 속박은 가능하겠다만, 이 이상의 피해를 입히는 게 가능하다는 건 보장할 수 없네."


그러니까 뚫리지만 않는다는 소리였다. 내가 상처를 재생할 수 없다는 건 같은 인간이라면 알 터였다. 그리고 같은 인간이면 피를 많이 흘리면 죽을 것이었다. 속박을 한 채 방치하면 죽는다는 것만큼 자원이득도 없었다.


"개소리."


아마 또래인 나이라도 전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저 꼬맹이만은 나의 원군이었다.


"가만히 기다리는 게 그딴 이유라고?! 서서히 죽어간다는 건 저것도 치명상이라는 거 아니겠어?! 치명상인 상태를 못 죽여서 이 모양이라고?!"

"그 치명상인데도 유효한 공격이 안 들어갔다는 말이네."

"요리도 정도껏 해야지. 어느 정도 묵혔으면 된 거 아니야?"

"안정적인 방향으로 가자는 거지 모지리야."

"그럴 거면 집에나 돌아가라."

"하, 돌아갈 건 너지. 너만 반대하는 거 같은데~?"


그 꼬맹이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시선을 파악하였다. 분위기를 읽을 줄 알면서도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정말 단체 행동으로는 최악인 인성이었다.


"아, 그래서, 다 나만 돌아가면 좋겠다는 건가?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내 의도를 알아서 실행시켜주는 꼬맹이에게 찬사를 보내주고 싶을 심정이었다. 온몸에 느껴지는 압박이 느슨해졌다. 위의 바위 때문에 억척같이 무거운 느낌이었지만 뿌리가 전신무장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내가 알아서 하면 되니까."


모두의 의사를 무시하고 뿌리를 풀어서 나와 맞붙겠다는 말이었다. 다시 한 번 대검을 소환하는 게 그런 의사였다.


"뜨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순조로이 풀리고 있어 제트 엔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애써 표정을 숨겼었다. 이것이 나에게 좋다는 걸 전혀 들키지 않도록 제트 엔진을 쓰기 전까지 미동도 않았다.


"돌아가든 안 돌아가든 방해는 못하지."


희망을 접혔다. 상식 안이라서 그다지 놀랄 건 없다고 생각했다. 꼬맹이만 블루드로 속박시킬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었다. 속박이 느슨해지는 걸 보고서 틈도 주지 않고 나를 속박시켰다.

하필이면 그 속박수단이 사슬이었는 것이었다. 트라우마로 펼쳐진 지난 날의 사슬로 날려보내진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를 갈았다.

누가 사슬인지 알 수 없었다. 전부 모션 없이 블루드를 다를 줄 아는 경지인지라 제대로 주의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말을 꺼내고 있는 인물이 복면이었으니 아마 복면의 사슬이라 유추했다.


"차라리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모를까. 방해되니까 돌아가는 게 나아보이기도 하고?"


꼬맹이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럴 만도 했다. 사슬의 주인이라면 자신감이 넘칠 만했다. 사슬에 날려보낼 때만 해도 내 무게는 별 거 아닐 거라 여겼을 것이었다. 설령 그게 본심이 아닌 것을 알고 있더라도, 머리에 부상을 입은 내가 그 때의 나보다는 전투력이 떨어지는 건 확연했다.


"잠자코 기다려라. 허튼 짓하면 그 때는 똑같이 너를 구속할 거다."


중년 남성의 경고에 꼬맹이는 위축되었다. 나의 원군은 이대로 사라진 것이었다.

그렇게 사슬로 속박하고서는 아예 그 위에 누가 커다란 손바닥을 구현하여 나를 움켜쥐었다. 주변에는 커다란 장벽을 쳐 이중삼중으로 나를 못 나가게 막으려고 애썼다.

경건하게 그들은 침묵한 상태로 지켜보았다. 내 임종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임종은 죽어달라는 마음으로 보는 게 아니지 않은가. 고이 잘 가라는 마음은 온데간데 없었다. 내가 빨리 죽는 게 더 간절해보였다.

염원대로 죽어간다는 걸 체감했다. 피가 고일대로 고여 한순간 정신줄의 한가닥이 끊어지는 감각을 몸소 받아들였다.

이젠 뒤통수가 문제가 아니라 코피도 터졌다. 나올 구멍이 없어서 그쪽으로 나오는 듯했다. 그래서 간신히 블루드를 살짝 풀어 상처 부위에 피가 흐르도록 유도했다. 그래야 조금 살만했다.

머리는 응고가 늦는 건지 다른 부위의 구멍이었으면 버틸 만도 했을 것인데, 피는 멈출 기세가 없었다. 여기서 끝이라는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시간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기 전에 후회되는 일들이나 열심히 생각하리고 했다. 사리나 님은 당연 맨처음이었다. 만나지도 못하고 이대로 끝내는 것은 아쉬웠다. 짝사랑이긴 하지만, 이제 와서는 사리나 님이 전혀 나에게 연심이 없었기를 바랬다. 그러면 내가 없어지더라도 슬퍼하지 않을 거 아니었나.

하연, 사리나 님을 찾으라고 보냈지만 돌아오기 전에 내가 죽어버리면 그 누나는 어떻게 살까. 꼭 내가 돈을 쥐어주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머리로는 별 탈 없이 살 수 있을 것이었다. 난 조력자인 거지 그녀에게 은인까지는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없어도 그만일 거 같았다. 저 꼬맹이처럼 내가 세상의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뚝심은 없었다. 제멋대로도 현실적인 선에서 해본 꼬맹이였기에 후회되는 일이라 해봤자 그리 남는 것도 없었다.

이름을 남기냐 가죽을 남기냐, 수많은 조연 중에 한 명이라고 체념하니 마음이 단칼에 정리되었다.

희미해져가는 정신에 종종 1초 전이라도 생각을 했는지 까먹었다. 그래서 화제가 바뀌기도 하고, 바뀌었는지도 알 수가 없는 흡사 금붕어 상태였다.변치 않는 생각은 오로지 내가 얼마 안 남았다는 거였다.

저항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다. 벗어난 자신이 없다는 게 아니라 벗어나서 살 수 있다는 자신이었다. 어딘가 치료받을 거라는 기대조차 못했다. 죽는 편이 낫다는 암울한 마음가짐으로 전신무장 속에서 숨을 서서히 거두어갔다.

의식의 저편에서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내심 기대했다. 현세에서의 나는 내세 혹은 전생을 기다리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서서히 눈을 감아가도록 내 눈꺼풀을 무겁게 하였다.




헐레벌떡 일어났다. 일련의 사건들이 꿈인 것 마냥 나는 놀란 상태였다. 너무나도 이상했다.

전신무장에 갇힌 채로 잠 아닌 잠에 들었던 내가 포단 위에 올려져 있는 채로 잠들어 있었다. 이건 이상했다. 실은 사냥꾼들이 나를 죽이는 게 아닌 생포가 목적이었다는 걸로 밖에 설명이 안 되었다. 그러면 앞에서 했던 말들은 나를 속이기 위한 연기였나 싶었다.

애초에 연기할 이유가 없었다. 도망칠 수 있다고 신신당부하던 녀석들이 생포로 바꾼다고? 만약 지금 내 몸에 이상이라도 있었으면 그럴 법도 했지만 블루드를 기동시키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구속이 없는 상태인 나는 자유의 몸이었다.


"일어났네."


익숙한 목소리라 더욱 상황 이해가 힘들어졌다. 그럴 리는 없다며 되뇌이면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뭐라 할 것 없이 내가 아는 백발의 엘프는 로브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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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1권 (32) 20.06.22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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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권 (26) 20.06.19 17 0 11쪽
25 1권 (25) 20.06.19 16 0 12쪽
24 1권 (24) 20.06.19 2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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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권 (22) 20.06.18 16 0 12쪽
21 1권 (21) 20.06.18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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