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55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7.03 19:47
조회
17
추천
0
글자
13쪽

1권 (41)

DUMMY

멋진 성이긴 해도, 촘촘하게 설계되어있어 한편으로는 싫었다. 숨이 트일 수 있는 야외 공간이 무척 적었다. 본래 밖에서 눈사람을 만들어야 했겠지만 꾸며진 정원도 눈에서는 피신시켜줘야 하기에 유리 천장으로 가로 막고 있어 눈과는 조우할 수가 없었다.

그 밖에, 눈사람에 맛들린 이유나 방 안에까지 눈을 가져온 이유나 설명하려고 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이리저리 여가를 어떻게 지낼지 고민해 본 결과이긴 했다.

혼자 놀거리가 없었다. 이곳은 서재가 개방적이지 않아서 책을 보는 것도 허락치 않았다. 환경이 이렇게 만들었다, 고 주장할 권리 한 장 정도는 있어보였다.


"눈사람이 저거야? 눈은 왜 여기에 들고 온 거야? 녹으면 어쩌려고? 그리고, 눈 때문인지 몰라도 여기 너무 추운데?"


단번에 4개의 질문을 던진 로브에게 4개 전부 답할 마음은 없었다. 내가 솔깃한 거 하나, 눈사람의 정체에 대해 답변하기로 했다.


"이게 하체고, 이게 상체, 그리고 이게 머리. 이렇게 해서 눈사람."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설명해주었다.


"어딜 봐도 사람같진 않은데?"

"그건 에의상 봐줘."


사람 같진 않아도 눈사람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되는 형태를 보고 틀렸다고 주장하기 힘들었다. 눈사람은 눈사람인 걸로 양해를 구했다.


"그런 걸 만드는 게 재밌어?"

"손맛이 있긴하지."

"손이 언다고."


언다는 말에 로브의 손에 장갑이 없는 걸 보았다. 내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전해주었다.


"해볼래?"

"낀다고 안 얼 것 같진 않은데···."


,라고 말하면서 장갑을 착용했다. 방 바닥에 쌓인 눈을 한 움큼 쥐더니 내 눈사람을 보며 견적을 잡고 있었다.


"너보다 큰 걸 만들 수 있긴 해?"

"굴리다 보면 커지거든."

"나도 알아."


로브는 작은 눈뭉치를 바닥에 대고 굴렸다. 놀음을 하려고 온 게 아니라는 자각이 들었을지 몰라도 제대로 굴리려고 안달이긴 했다. 좁은 방의 행동반경을 고려해서 내가 침대 위에 올라가는 것으로 도와주었다. 그래도 방관에 지나지 않았다.

오래 가는 근성은 없었다. 대충 굴려보고 커진 사이즈를 보며 결론에 도달했다.


"귀찮아. 오래 걸려."


냅다 던질 수도 있던 눈덩이라도 고스란히 발 밑에 내려놓았다.


"···저걸 손으로 다 했다고?"

"저것까지 블루드로 하면 재미없지."

"그럴 줄 알았는데."

"아침부터 하면 가능하긴 하지."

"이제 치울 거잖아."

"눈이니까."

"아깝긴 하다."


임무를 전달하러 온 이상 곧 내가 떠날 거니까 저 눈사람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은 거였다. 장정 약 한나절이란 시간을 따라 완성된 걸작은 아무리 공을 들여도 눈이었다. 이대로 방 안에 있으면 녹아 죽을 운명이었다.


"임무가 더 중요한데 보내줘야지."

"밖에 놔두면 살아있지 않을까?"


제작자가 포기한 시점에서 관람객이 살리려는 방법을 모색했다. 눈사람이란 개념을 모르고 있던 로브가 언제부터 눈사람의 안위를 걱정했다고 살리려는 의도에 감명받았다.


"살 순 있지."

"그렇게 하면 안 될까?"

"그러자."


로브의 소망대로 방 안의 눈사람을 성 밖으로 옮겼다.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끔 설치하려니 성 뒷편이 적당했다. 맨손이 아닌 블루드로 옮기는 만큼 인적이 드문이 필요하긴 했다.

마침 밖에 나온 겸 나뭇가지도 꽂아 팔을 만들어주려고 했지만, 그 전에 얼굴이 구현이 안 되어서 어색했다. 민장식인 채로 방치하기로 했다.




본부도 적립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건대 내게 어떤 임무가 어울리는지 아는 듯했다.

닥치고 다 파괴하라는 임무면 충분했다. 한 번 국경을 넘는 게 어려웠지 점차 그냥 인간 병기로 쓰임새를 전향하는 모양새였다.

아예 전투 지원이 아니고 적 전초기지를 묵살시키라는 임무를 받게 되었다. 그리 상관은 없다만, 하필 때가 이 모양이니 귀찮은 게 늘어난 상태였다.

돈도 쥐어주며 보낸 하연의 수중에는 미니 망원경도 있었다. 나보단 염탐을 많이 할 것 같으니 한 조치였지만, 내가 임무에 필요로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장과 요새를 들이닥치는 일은 위협도의 차이가 있었다. 전장은 적이 어디에 있는지 공중에서 관찰하거나 할 수 있어도 요새는 그렇지 못했다. 은폐가 엄폐보다 못하더라도 전력을 숨기고 회피에는 일가견이 있는 전술이긴 하다.

요새 전체를 통째로 날리고 싶어도 묵살이 파괴행위를 뜻하지는 않았다. 잘 구축된 전초기지는 아군의 수중에 들어가면 유용한 구석이 있기에 내가 할 일은 오로지 그 안에 있는 적만 사살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짜증이 났다. 내가 보기엔 비효율적인 방안이라 임무표를 무시하고 쓸어버리고 싶었다. 고분고분 임무표에 맞춰 살며시 요새에 들어가긴 했지만, 수가 틀리면 요새의 전신을 잿더미로 만들 작정이었다. 보고서에는 어찌 그랬는지 변명을 적고 말이다.

그런데, 요새 입성부터 수가 뒤틀렸었다. 뭔가 이상하단 육감이 들었지만, 제대로 육감을 현실화시킬 수단이 바로는 없었다. 요새를 좀 더 둘러본 후에 논리를 펼치려고 애썼다.


인생이 항상 내 멋대로 되는 것이 아닌지라, 마치 내 생각을 읽었단 듯이 방해하는 위화감의 바람소리에 전신무장을 가동했다.

퉁퉁퉁퉁퉁퉁-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격이었다. 시동 소리만은 별 거 아닌 탄환이었지만, 진짜 날아오는 포탄들이었다. 그다지 복도가 폭이 넓지 않다지만 복도를 가득 채우는 면적의 포탄이 연속으로 들이박았다. 도탄도 되기 전에 폭발력 자체를 다 흡수했다.

내 몸은 상하지 않다지만 이래서는 본부가 당부한 요새를 비파괴하여 묵살시키는 건 불가능해졌다. 자신들의 기지를 희생시켜서까지 나를 좌절시키겠다는 의지라면 내가 곤란해졌다. 독심술이란 의심이 짙어졌다. 블루드도 있음에 그런 것도 금술로 있을 수 있었다.

벗겨질대로 벗겨진 복도는 어느덧 밖이 보일 만큼 내구도가 닳았다. 그 사이로 보이는, 이 성의 상황을 대표하는 풍경은 놀라웠다.

아무도 없었다. 이미 이 성은 빈 성이었다.

단지 나를 잡으려고 온 사냥꾼들이 득실될 뿐, 그 사냥꾼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함정이었다. 요새 하나를 날려버릴 작정으로 거짓 정보를 흘리고 나를 잡으려는 데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이었다.

가히 놀라웠다. 요새와 내 목숨값을 저울질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겨우 사람 한 명의 목숨을 요새와 맞바꿔먹는다는 게 이상했다.

그나마 이해를 하자면, 내가 오면 어차피 먹힐 테니 화전전술처럼 요새를 버림패로 취급했다고 할 수 있었다.

닳은 부분이 많아지더니 급기야 제 무게를 못 버틴 천장이 밑으로 내려앉았다. 전신무장인 채로 걷는 게 안 될 만큼 무거워진 탓에 기왕 무너질 거 블루드를 방출해 주변을 소각했다.

내가 방출한 블루드에 내 시야가 흐릿한 사이, 어깨에 양날도끼가 박혔다. 튕겨지지 않고 박혔다. 전신무장의 견고함과 비등한 예리도란 소리였다. 이번에도 레인저일 거라고 예상했다.

잠잠해지는 건 참을 수 없었나 보다. 눈앞에 대형 레이저가 날아왔다. 10초 동안 지속되어 자칫하면 밀릴 뻔했다. 아무리 안 뚫려도 땅에 뿌리를 박은 게 아니라 물건처럼 나뒹굴 뻔했다.

다음은 또 뭐였나, 설명이 안 된다. 사냥꾼들만 아는 공격들의 정체에 내가 알 방도가 없었다. 다 같이 합동해서 서로 안 겹치는 방향으로 기술을 구사하는데 동시에 구별하긴 힘들었다.

내가 알 수 있던 건 하나였다. 아무리 해도 안 뚫린다는 것. 양날도끼를 보고 무장의 강도를 더 높인 이상 지는 미래는 없었다.

어쩌면 레인저가 한 부대가 아닐 수 있었다. 15명 이상이 소모전으로 들어간다고 치자. 그러면 이길 가능성이 상대에게 있을까?

이건 몸풀기도 안 되었다. 안 보여서 반격을 안 하는 것과 더불어 따로 공격 방법이 있는데도 하품만 나왔다. 무장이 너무 두터워져서 소음도 귀가 멍해진 것처럼 작게 들려왔다.

수백의 탄막이 한순간에 끊겼다. 차례가 끝났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별 반격의 의사는 내게 없었다. 어쩌면 도망쳤을 수도 있단 나한테 편한 추측을 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차라리 보고서에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할지 고민했었다.

창, 팅, 창, 창, 창, 차-

순식간에 난 당황하게 되었다. 별 거 없을 줄 알았더니 전신무장을 향해 사냥꾼들이 사슬을 날리고 있었다. 아예 안 뚫리는 견고함을 역이용해서 칭칭 감았다. 셀 수 없는 퍼런 사슬의 구속으로 난 밖으로 내다볼 수 없었다.

감은 것에서 그쳤으면 뚫어버렸겠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내 발이 땅에서 떼어졌다. 전신무장의 무게를 이겨내고 사슬들이 내 몸을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온몸이 원심력을 느끼면서 전신무장에 부딪히고 있었기에 통각을 통해 잘 알았다. 밖에서 뚫을 수 없어 내부를 없애버리겠다는 거였다.

솔직히 이러지 않아도 소모전을 그대로 10분 지속했으면 내가 탈진해서 죽긴 죽었을 것이었다. 전신무장이 견고해진다는 말은 곧 내 숨구멍을 막는 일이라 자살에 가까운 행위였다.

아니, 다시 생각하면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답답해서 죽을 거였으면 그 전에 내 주변을 초신성으로 날려보내 숨을 쉴 수도 있었다.

한참 원심을 받은 후에 사냥꾼들은 이만하면 만족했는지 사슬을 풀었다. 전신무장이 포환이 되어 날아가는 속력은 관성이 생기기 알맞았다. 방금 돈 탓에 평형 감각이 둔해져 제 중심을 못 잡았다. 어디까지 날아갔는지 거리감각도 구제불능이었다.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은 신속 여행의 끝은 내가 땅에 박히고 나서 끝났다. 그래도 방심할 수 없어 전신무장을 안 풀고 있었다. 이것도 계략일 수 있다는 안전 심리였다.

헛짓거리였다. 완전히 맥박이 안정을 찾았을 때 적이 주변에 없다는 걸 알았다. 전신무장을 풀고 상황을 정리했다.

내가 아무리 말을 타고 뛰어다녔어도 전혀 감도 안 잡히는 지역은 지도로도 무리였다. 사냥꾼들의 의도인지 몰라도 조난이 되어버렸다. 다시 그 요새로 가서 결판 짓고 싶어도이러면 아무것도 안 될 터였다.

나침반도 없어 원하는 방향으로 쭉 가보기로 했다.

아마, 어디로 가든 웬만해서 아군의 진영일 것이었다. 사슬의 용도가 나를 처리하는 게 아닌 나를 멀리 보내려는 거라면 적어도 적군의 진영 쪽으로는 보낼 일이 없을 것이었다.

처음있는 임무 실패였다. 이전에도 임무 실패라 불리울 수 있는 사건들이 있긴 했어도 그건 견해가 다를 수 있어서였다.

이건 내가 임무를 실패하게 한 게 아니고 적들이 선수를 친 거였다. 탈환될 요새를 제거하면서 나를 제거하려 했지만, 어쨌거나 탈환될 요새를 제거한 것에서 난 돌이킬 수 없었다.

질 나쁜 사고였다. 어쩜 이리 운이 나쁜가 했다. 거짓 정보를 받아들인 정부 탓으로 다 돌리고 싶었다. 그래도, 놀다가 처치할 수 있는 상대를 놓친 내 잘못도 있었다. 쌍방의 책임에 을인 내가 뒤집어 써야 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무념무상이었다. 생각은 그렇되 어떤 걸 근심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그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내가 근심하는 게 있어야 하는지, 가 궁금했다.

사냥꾼들에게는 격퇴라 불리어도 엄연히 말해서 내가 진지하게 다시 쳐들어간다고 하면 못할 것 없었다.

그들이 날 멀리 보낸 것은 물리칠 수 없는 재앙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본부도 알고 있을 터였다.

얼마나 날 제어할 수 있는가, 모를 리는 없었다. 이 시국에선 나의 행방이 전쟁의 판도였다. 전선에 있는 병력이 있기 이전에 나라는 개인의 존재 유무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며, 누군가에게는 절망이었다.

약간의 나르시시즘, 개울가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느껴지곤 했다. 이대로 더 단련해서 살수를 때려치우고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하며 살아도 되겠다고 현실일 수도 있는 과대망상을 했다.

그리고 개울가에 비친 내 얼굴은 썩 웃지도 않았다. 왜냐 하면,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었다.

사리나 님을 찾는 게 최우선이었다. 나를 위한 방안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갈 길은 살수로서 마겐노하로의 퇴근길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1권 (44) 20.07.09 65 0 13쪽
43 1권 (43) 20.07.07 16 0 11쪽
42 1권 (42) 20.07.06 18 0 12쪽
» 1권 (41) 20.07.03 18 0 13쪽
40 1권 (40) 20.07.02 15 0 12쪽
39 1권 (39) 20.07.01 16 0 12쪽
38 1권 (38) 20.06.30 14 0 12쪽
37 1권 (37) 20.06.29 16 0 12쪽
36 1권 (36) 20.06.26 13 0 11쪽
35 1권 (35) 20.06.25 17 0 12쪽
34 1권 (34) 20.06.24 18 0 12쪽
33 1권 (33) 20.06.23 17 0 12쪽
32 1권 (32) 20.06.22 17 0 11쪽
31 1권 (31) 20.06.20 22 0 12쪽
30 1권 (30) +1 20.06.19 35 1 11쪽
29 1권 (29) 20.06.19 19 0 12쪽
28 1권 (28) 20.06.19 17 0 11쪽
27 1권 (27) 20.06.19 19 0 13쪽
26 1권 (26) 20.06.19 17 0 11쪽
25 1권 (25) 20.06.19 16 0 12쪽
24 1권 (24) 20.06.19 20 0 13쪽
23 1권 (23) 20.06.19 18 0 12쪽
22 1권 (22) 20.06.18 16 0 12쪽
21 1권 (21) 20.06.18 20 0 11쪽
20 1권 (20) 20.06.18 17 1 11쪽
19 1권 (19) 20.06.18 17 0 11쪽
18 1권 (18) 20.06.18 16 0 11쪽
17 1권 (17) 20.06.18 17 0 11쪽
16 1권 (16) 20.06.17 17 0 12쪽
15 1권 (15) 20.06.17 17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