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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71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7.01 14:46
조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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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권 (39)

DUMMY

이름은 알고 있었다. 건네 준 인식표에서 확인한 결과, '가크'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는 밝힐 수 있었다. 나도 어찌 그 이름이 구린지 이해가 되기에 그닥 이름으로 부르고 있진 않았다.

누나라고 부르는 건 여전하겠지만, 예의상 이름을 물었다.


"'하연'이라고 불러."

"그거, 실명이죠?"

"실명이 여기선 더 가명 같잖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래서 나도 실명으로 통성명을 했다. 나는 반대로 실명 쪽이 쪽팔려 굳이 수기하고 싶진 않다.

엇갈린 대련 약속에 의해 하루 심심할 때마다 하연에게 찾아갔다. 다시 국경을 땅 파서 넘고, 하연이 승마에 고통받는다고 말을 거의 꺼내지 않아 묻지 못한 정보가 쌓여 있었다.

우선 한 가지 내가 부주의했던 사실에 대해서 확실히 하기로 했다.


"그 혹여나 누나가 이곳에 잠입하기 위해서 계략을 쓴 것이라면 그 때는 전혀 봐줄 생각이 없거든요? 혹여나 누나가 이곳에 잠입하기 위해서 계략을 쓴 것이라면 그 때는 전혀 봐줄 생각이 없거든요? 그렇게 나오면 솔직히 제가 되려 스파이가 되는 상황이니 암울하겠지만, 죽기 전에 무조건 죽일 거예요?"

"그런 계획 따위 없어. 물론 내 신변을 협박당하는 날이 온다면 그럴 수 있겠지. 거기까지 가기 전에는 최선을 다해서 반항할 예정이야. 그나저나, 너와 붙어 본 이상 네 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게 훨씬 불리할 거라는 거 의식하고 있으니까 더욱 안 그럴 거야."


내가 강하다는 말을 저렇게 표현하는 게 한두명이 아니라서 별 감흥이 없었다. 들었던 것 중에 최고의 칭찬이라 할 수 있지만, 하나같이 강하에 대해서, 잠재력이나 성장력이나 지구력이나 다 좋으면 치트 캐릭터가 된 것 같아 오히려 반감이었다.

어디와 견주어도 내가 압도적으로 셀 거니까 붙는다. 이기는 게 내 편이라 할 말이 없었다. 일종의 복종의 의사였으니 순진하리만큼 대답에 어울려주었다.


"레인저도, 나름 정예부대 아닌가요?"

"살수인 너하고 형식적으로 다른 부분은 거의 없어. 단지 다른 것은 살수가 한 명의 엘리트를 출격시키는 거라면, 레인저는 소수 정예로 편성되어 다녀. 최소 3인, 최대 6인도 있어. 일단 나에게서 다른 부대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것은 불가능해. 부대원끼리는 소통이 필수인 반면에 부대끼리는 소통이 단절되어 있듯이 하니까. 지금 다른 녀석들이 어떤 작전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어디서 작전 경로가 누출되었는지 감은 안 잡히나요."

"잡혔으면 기습을 안 당했지. 기습이 아니어도 졌겠지만서도. 즉시 철수가 아니고 대응한 순간부터 잘못됐으니까."

"제가 인상이 그리 위협적이진 않죠."

"아니, 팔이 절단된 걸 보고 튀었어야 했다고."


대련 말고는 내가 했던 전투에 대해서 리플레이를 안 하는 습관 때문에 착각했다. 기습 때 내가 적은 맞지만 하룻강아지인 척을 한 게 아니었다. 작살&와이어로 위력을 선보였기 때문에 우습게 보여도 실속이 독기가 가득 찬 걸 눈치챘을 것이었다. 오인이었는지 명령 실책이 크긴 했다.

과거를 들먹이는 건 이쯤에서 마쳤다.


"이제 뭐하실 건가요?"

"뭘 할까?"

"···그거 저한테 물어보신 건가요?"

"뭘 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라니까."

"제가 뭐 답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닌데요."

"간단히 네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진정 조수를 자처했다. 이 일은 위험하다. 아니면, 강하게 밀고 나가 당신은 민폐다. 혼자하는 게 낫다. 이런 말들이 생각나긴 했다만, 전부 진심은 아니었다.

아무렴 하연이 나보다 살수의 일을 못할 거라고 볼 수가 없었다. 든든한 연륜 있는 조력자란 점에서 하연과 동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동행이야말로 나에게 옳은 일이었다. 레인저나 살수나 규모의 차이지 하는 일은 다른 게 아니다 보니 하연 쪽이 베테랑인 것은 맞았다.

난 어떻게 보면 살수라기보다는 전투광이었다. 쟁취하는 게 아니면 못해먹을 정신 장애를 겪는다는 뜻은 아니고,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임무면 일이 서툴렀다. 더 나아가서 젅투가 일어난다한들 그 전의 일처리가 절망스러울 정도로 서툴렀다.

욕을 들어먹기 일쑤였다. 거짓말을 잘 못한다는 건 둘째치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운 점이 아닌 걸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새 임무를 언급할 것까지 없었다. 하연과 조우하는 임무만 해도 지적할 게 산더미였다.


"문원에서 몇 밤을 지냈다고?"

"두 밤이었죠. 문제가 되나요?"

"두 밤 동안 뭐했는데."

"마을을 순찰 돌면서 외부 풍경까지 감시하고 있었죠."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진 않았고?"

"그건 모르겠는데요."


그 말을 하자 하연의 분노가 등짝 스매쉬로 다 표출되었다. 살의는 없어 방어를 하려다가도 말았다.


"망나니야."

"네···."

"문원에 두 밤이나 그러고 있었으면 얼굴 알 사람은 알 거잖아?"

"네."

"거기에다가 문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우리와 조우했지?"

"네."

"시체를 들키지 않아도 우리 경로를 추적하다 보면 문원에서 정보를 캘 수 있을 지경이거든?"

"아."


한 번 더 등짝 스매쉬를 날렸다. 여타 다른 임무들에 대한 꾸지람도 저런 화제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부주의하게 추적당할 수 있는 구석을 만들어놓은 것. 집단의 불이익을 따지기 전에 당장 내가 위협받을 수 있는 미래가 있다는 것이었다.

전투 실력만 갈고 닦아서 그런 거 몰랐다고 하려니 또 맞을까봐 대꾸조차 안 했다. 하연이 내 조수인 줄 알았더니 내가 하연의 조수가 된 기분이었다. 정작 임무를 받는 쪽은 나인데, 하연이 머리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 내 역할은 도구였다.

분명 옳은 일이긴 해도 학생 때 숙제를 받는 것처럼 임무도 그렇게 되었다. 깐깐해진 조건을 매번 부여받게되어 내 일상이 깨져버렸다.




잠시 잊고 있던 로브의 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다.

로브가 싫어한다고 해도 내가 로브의 고향에 갔다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던 사실이었다. 하연에게 얘기한 대로 무려 두 밤이나 있었던지라 아예 지나쳐갔다고 하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내가 손수 먼저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가기 전에 로브가 안부를 물어봐달라고 하지 않아서 난 문원에서 지낼 동안 지나가던 행인에 불과했다. 주민들과 돈독한 사이를 만들 정도로 사교성이 짙지도 않다.

물어본 것은 내가 아니라 로브였다.


"마을은 어때?"

"마음에도 없는 곳 아니었어?"

"마음에 없으면 안부도 물을 수 없나?"

"고립되어 있어서 활기차진 않더라."

"그 전에도 활기차진 않았지."


암담한 말을 꺼내 싸늘한 공기가 더 싸늘해졌다. 학습된 게 있었기에 여기서 함부로 부모님 운운하는 건 지양했다.


"아마도, 전쟁이 끝나더라도 살 만하다고는 못하겠다."

"일어나기 전에도 답이 없었어."

"그런데, 누가 선동한 거야? 선량해 보이던 사람들이 휴먼만 보이면 기겁하더라고? 전쟁통이긴 해도 돈만 주면 거들어주는데, 그리 종교 같은 게 있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

"나 같은 백발의 노인네는 못 봤어?"

"노인은 못 본 것 같았는데."

"뒤졌거나, 뒤지기 직전이라 안 보였겠지."

"그 사람이 주원인인가?"

"난 그렇게 보고 있어. x신들이나 x신 아닌 놈, 년들 모두 그 말 때문에 전선을 향해 마을에서 떠나갔지."

"아닌 사람들은 왜?"

"안 가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거든. 너도 나도 싫은 마음인데도 안 따르면 짐승 취급을 받으니까. 인격을 존중받고 싶었으니까."

"너도?"

"나도."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의아해 했다.


"도망치면 그럴 필요도 없지 않나?"

"똑같은 생각이네. 도망쳤으면 되었지, 군에 들어갈 이유는 없었지. 그래도 이런 나쁘지 않은 직업이면 노려볼 만도 하겠지.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몰랐지만."

"봉급이 없는데도?"

"없는대로 대우를 해주니까 떠날 수가 있어야지."


로브의 무표정은 버릇인 듯했다. 만족한다는 말을 하면서 그다지 얼굴의 기색은 변화가 없었다. 진짜 마음에 드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도청기라도 있어서 억지로 저렇게 말하는 게 아니고서 나로는 따라하기 힘들었다.

나로는 이해하지 못할 로브의 태도에 내심 궁금해졌다.


"잠시 실례할 수 있을까?"

"뭘?"

"도청기가 있는지 수색만 해보게."

"도청기? 가 뭔데? 수색한다고? 응?"


좋은 쪽으로의 표현력은 절망적이나 당혹스러움은 예술적으로 잘 드러났다.

그나저나, 나는 미숙한 것보다 멍청이에 가까웠다. 도청기가 실제로 있다면 도청기라는 말을 꺼내면 안 될 것이었다. 세상에 착용자의 말만 들리는 도청기가 어디있다고. 그런 발명은 이전 세계에도 없었으며, 발명할 필요성도 없다.


"숨을 참고 있어봐."

"아, 그래···."


블루드로 점막을 생성해내어 로브의 몸을 감쌌다. 하연에게 점막을 배운 게 맞았다. 그러나 점막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평소에 방출했던 블루드 중에서 가끔씩 블루드와 내 몸이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특히나 전신무장이 대표적인 예였다. 갑옷처럼 입고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피부와 밀착해 있으니 당연한 거라 여겼다.

이는 그나마 과하적으로 설명하면, 블루드가 내 신경과 연결되어있는 게 맞았다. 시험 삼아 블루드를 피부 속으로 잠기게 하려하니 안 될 것이 없었다. 유동적인 액체처럼 나를 주인이라 인식하고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자그마한 숨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그 상태로 위를 두껍게 덮으면 그게 전신무장의 근간이다.

점막을 전신 신경에 연결한 채로 하면 대충 기계 장치가 있는지 판별해낼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오버 테크놀로지라 있을 리가 전무하긴 했다. 딱히 그런 감각은 들어오지 않아 결론을 내리자마자 점막을 제거했다.


"···별 이상한 공간에 있는 줄 알았네."

"무리했나···."


맨살로 당해 본 적이 없기에 걱정이 되었다. 남의 의도로 전신이 만져지는 감각이라면 불쾌하기 짝이 없을 거라는 이성적 판단이 최대였다.


"그걸로 어떻게 안다는 거야? 그게 너하고 촉감이 공유가 되는 거야?"

"그래서 수색을 할 수 있는 거지."

"······."


로브는 정말 좋은 쪽만으로의 표현력은 절망적이었다. 그 밖에는 대역 배우로의 자질이 있을 만큼 표정이 내게 말을 건네는 듯이 로브의 감정에 통달하게 되었다.

일시적인 혐오감, 그게 뇌리를 스쳤다.


"간접적으로 내 몸을 만졌다는 말이 되는 거잖아?"


아, 그렇게 되는 건가, 라고 태연하게 반응하려 했었다. 그간 멍청이의 면모가 있었으니 뜻대로 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이게 언어 핕터에 1차로 거른 것이었다.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양심이 힘 실어 순식간에 들어선 2차 필터에는 변태로 오해받을 것에 대해 변명이 주구장창 들어왔다. 3차로 가서는 내 윤리를 들먹일 수 있는 사과들의 집단이 지배하고 있었다.


"내가 상x신이었네. 도무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로브가 이 문화를 알지는 모르겠다만,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밑으로 박았다. 절도 상습범이었다마는 성범죄에 관해서는 절조가 있는 사람이라 그랬다. 어느 세상에서든 듣기 싫은 말이 변태이기에 어쩔 수 없는 처신이었다.


"···농담이야. 도청기가 뭔지나 설명해줄래?"


아무 일도 없었다, 는 결론으로 이 해프닝은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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