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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86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7.11 02:56
조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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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권 (45)

DUMMY

"네가 왜 여기에?"

"기억이 안 나는 거네."

"뭔 일이 있었던 거야?"

"나야말로. 내가 아는 건 극히 일부에 국한되니까 별 도움도 안 될 거야."

"그래도."

"그럼 나부터 말할게."


로브에게로 몸을 돌리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

몸을 돌리 때 머리가 띵한 게 느껴졌다. 심한 두통은 아니었다. 그리고 두통 같은 내적인 고통은 아니었다. 내가 뒷머리에 구멍이 나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현실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갑작스러웠다.


"일단, 네가 왜 여기에라고 말한 거, 너는 이 장소를 아는 거야?"

"아니."

"그렇겠지. 부상을 입은 적이 없으니까."

"치료는 잘 된 거야?"

"살아있는 게 기적이래."

"사설 의원인가?"

"치료는 왕실에서 했고, 환자를 놔둘 공간이 없으니까 여기에 옮긴 것뿐이야."

"장소 얘기는 거기까지 하자."

"아파?"

"조금.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 걸지도."


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너, 머리에 그만한 구멍이 났는데 잘도 살아있으면서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 거 알아?"

"출혈을 어떻게든 막았으니까?"

"그런 말을 들으면 부주의해서 당한 것 같네."


이 정도에서 잡다한 화제는 떨어뜨리도록 했다.


"그래서, 치료를 받기 전까지 나는 어디에 있던 거야?"

"네 방."

"내 방?"


남사르에서 도망치는 도중이라도 그리 멀리 못 갔을 것이었다. 거의 남사르에서 마겐노하까지 횡단을 해서 돌아왔다는 게 신기했다. 의식을 잃은 도중에 귀가본능이라도 있었다고 하기에는 사냥꾼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내 상상의 범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복면이 사슬째로 또 멀리 던졌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정도였다.

그것도 치사율이 있는 부상을 입고도 무의식이 이 정도의 일을 해낸다고? 자력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어떻게 있었어? 침대에 누워 있던 거야?"

"누워··· 있긴 했었지. 맞아. 누워있었어."


영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우물쭈물 말하려던 걸 입에 다시 집어넣었다는 촉감에 재촉해보았다.

어렴풋이 데쟈뷰를 느꼈다.


"그냥은 아니었지?"

"뭐라고 해야하지? 불탔다, 고 하는 게 맞을 거야. 방에 들어가자마자 네 모습보다는 주변··· 방 전체에서 네 블루드가 난동을 피우고 있었어. 불꽃처럼 이글거려 진짜 불이라도 난 줄 알았어."


라데르가 했던 말과 일맥상통이었다. 그러나 라데르의 증언보다는 한 단계, 굳이 몇 단계라고 따지기도 우습게 발전해 있었다.

방 전체에 블루드가 퍼져 이글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둘 일은 아니지만 이를 해결할 대책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었다.

그나저나 육하원칙에서 하나 빠진 게 있었다.


"누가 날 옮긴 거야?"

"너랑 친한 사람."

"아."


역시 얼굴을 못 봐버렸다. 이 정도면 운명의 굴레를 인정해야 했다. 하루는 거뜬히 지났을 터, 밖의 시간은 저녁, 로브가 이미 성에 들리고 왔을 상황이었다.


"혹시, 언제 불꽃이 그쳤는지 알아?"

"치료 시작 때 그쳤어. 그걸 보고 깨어있는 줄 알았거든. 피를 빼내려고 할 때 블루드가 거두어졌어."


그건 의외였다. 제어할 수도 없이 마냥 불타오르기만 했던 훈련병 때의 모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블루드 자체에 의지가 있다고 하면 믿겠지만, 지금도 SF인 걸 SF를 더 끼얹으려고 하면 차라리 우주를 창조할 기세였다.


"평생 너 같은 사람 한 명 더 보긴 힘들 것 같다."

"그게 행운이었으면 좋겠지만."

"행운도 불행도 아니야."


행운이라고 해도 그닥 기쁘지 않았을 것이었다. 혼란함이 가득 차서 다른 감정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 배는 공복일지라도 감정의 공복은 한 톨도 남아나질 않았다.


"어디서부터 기억이 없는 거야?"


로브가 기억이 없어진 경위를 이해하도록 자초지종을 다 설명했다. 시발점은 대장군실의 들어간 때였다.

완벽한 이해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로브가 아무리 살수의 보고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해서 내 묘사를 따라가기란 고난이었을 터였다. 서로 같은 세계에 있더라도 보는 경치는 다른 걸, 듣는 로브도 흥미롭단 표정은 아니었다.

단지 알 수 있던 것은 눈, 코, 입이 전체적으로 무거워지고 있다는 통찰이었다.


"사실 넌 이미 죽었던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

"농담으로 한 건데."

"그래?"


뭐가 되었든 우리 둘의 정보로는 확인할 수 없는 미스터리였다. 실제로 로브의 말처럼 내가 귀신이라거나 죽었다가 되살아났다거나, 가능성은 열어두고 접근해보려 했다.


"하지만, 정말 네가 불사신이라면 그것대로 나쁘지는 않을 거 아니야?"

"불사신은 아닐 거야."

"만약에."


불로가 아닌 불사만을 바란다고 해도, 썩 나쁠 것은 없을 능력이다. 가령 오로지 불사만을 받았다면 모를까, 기본적으로 불사에 불사와 버금가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면 강제로 구속되어서 영원히 고통받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좋지."

"너 정도는 불사여도 괜찮겠지."

"그렇다면 난 부정할 수 없는 무적의 전쟁병기겠네."

"왜?"

"왜?"


반응이 의외여서 앵무새같이 물음을 따라했다.


"전쟁병기가 될 이유가 있어?"

"···할 말은 없네."

"그렇지?"

"성대하게 다른 일은 할 수도 있는 걸, 괜히 상상인데 마음을 좁게 먹었었네."


불사에 이런 전투력이면 살수라는 명목으로 묶여 있을 필요가 없었다. 정 역량을 원하는대로 넓혀서 나라를 새로 지어도 되는 몸일 테고, 뭔가 야망이란 야망은 그동안 인류가 못했던 걸 해낼 수 있을 자신이 들 것 같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난 불사가 아닌 몸이었다.


"불사라고 하기에는 머리 상처 하나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말이 아니란 말이지."

"맞네."


지독히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대었던 것이다. 별로 유쾌하지도 않고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걸로 로브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어지간하면 자신의 입지가 싫은 것이었다. 로브의 말마따나 그 일을 접어도 할 수 있는 건 없을 테지만 불만은 쌓여있는 듯했다. 직설로 얘기해도 내가 고자질하는 구실이 있어야 말이었다.

당시엔 이보다 일급 비밀이랄 게 하연 외에는 없었던 터라 입을 무겁게 하고 다녔었다. 환경상 입을 무겁게 해서 발설할 대상도 없어 무의미하긴 했다. 별 거 안 되는 로브를 위한 일 중의 하나였다고 본다.

연애 대상은 단언하여 사리나 님이었고, 로브는 딱 잘라서 친구 선상에 위치해 있는 상태였다.




그 후, 2주일을 임무 없이 지내게 되었다. 할 일이 없는 걸 제쳐두고, 2번 연속으로 임무를 실패하고 돌아왔으니 정직 처리가 된 줄 알아 걱정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봉급은 나왔다. 물론 추후에 임무 수행비로 쓰라고 주는 것 같았지만, 소강 상태일 때도 주는 게 나는 이상하다고 여겼다. 이는 로브도 마찬가지라 의심은 짙어졌다. 하지만, 주는 걸 그다지 꺼려하지는 않는 나라서 감사함은 과도하고, 묵묵히 다 받았다.

긴 시간인 만큼 용케 리자드맨도 생존신고를 겨우 나한테 할 수 있었다.


"뭐야?! 네가 머리가 뚫렸었다고?!"


보자마자 상처에 눈이 가는 리자드맨이었다. 그렇게나 나한테 상처는 있는 게 기이한 건지 뚫어져라 쳐다봤었다. 선을 지키는가 했더니, 바로 상처 부위를 눌러 내 고통을 듣고나서야 그 호기심을 끊을 수 있었다.

그에게도 일련의 사건을 다 설명했다. 머리의 상처를 볼 때 바로 내 걱정은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같은 살수라서 그런지 공감대가 있었다. 로브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심오한 사고가 감지되었다.


"그들이 두 번이나 매복해서 너를 노리려고 했고, 두 번째는 거의 성공했다··· 성공한 거 같지만, 넌 간신히 이곳에 돌아왔잖아? 실패한 건가? 혹시···."


조금 경계하는 듯하더니 금방 경계 수치는 적대 파라미터를 돌파했다. 리자드맨은 나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너, 자신을 증명시킬 수 있는 수단은 있나?"


나를 가짜, 변장한 적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아무리 내가 죽었어야 정상인 상황이지만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은 경계에 어이없었다.


"제가 가짜면 이런 얘기도 안 했겠죠."

"대련을 해보면 알 수 있겠지."

"그냥 대련이 하고 싶었던 거죠?"


참 질 나쁜 농담이었다. 나를 가짜 취급하면서까지 이런 전개를 원했던 것이다. 질 나쁘다고 해서 내게 안 좋은 기억이었던 건 아니다. 피식 웃었던 것은 확실히 기억난다.


"대련을 해보지 않아도 알고 있지. 네가 내가 아는 휴먼 살수라는 것. 가짜라면 아리송한 이야기 따위 꺼내지도 않았을 테지."

"다행이네요."

"문제는 이제 넌 어떻게 할 거냐?"

"어떻게라니요?"


로브와 똑같은 소리를 리자드맨이 할 줄 알았던 대목이다.


"상시 무장을 전개하는 것 아니고서는 기습을 대비할 수 없을 것 같다. 네가 한 수 위라도 물량에는 어쩔 수 없지 않나. 사공이 많아도 전부 전문가들이라면 배는 지름길로 가기 마련이지. 이번에 널 놓쳐도 다음에는 어떤 계략이 있을지 모르는 노릇인 거잖냐?"


리자드맨은 무조건 내가 살수를 한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갔다. 그래서 심란하지는 않은 대화였다.


"부상만 입지 않는다면 반격의 기회는 언제든지 있을 거겠죠."

"적국의 침입하는 임무면 더욱이. 일반적인 임무에도 최대한 경계해라."

"형도 조심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물론이지. 살수사냥꾼이라 해야 하나. 레인저들이라고 부르기에는 특성이 조금 달라."

"다른가요?"

"어쩌면 살수와 동급인 새로운 조직을 창설한 거라고 볼 수도 있지. 레인저들은 원거리 사격에 특화되어 있어 네가 말한 대검 꼬맹이와는 적합하지 않지. 나와 만난다면 노련함의 대결이겠지."

"한 명만 만난다면 말이죠."

"···정곡이네."


생략되어버린 게 있었다. 대련의 시작은 내가 리자드맨의 전법을 공부하는 데에 있었었다. 리자드맨의 경우에는 여흥이자 자기 자신을 수련한다는 식으로 매번 나와 맞붙었었다.

여전히 내 쪽이 심리전은 미숙하지만, 하필 내가 전신무장을 배운 이후부터는 리자드맨이 벽을 깨는 수련이란 명목으로 변해버렸다. 소위 살수사냥꾼들이 펼친 전신무장 공략전에서도 속박에서 그치고 뚫지는 못했다.

전신무장의 내구도가 어느 정도냐면, 리자드맨이 창을 제트 엔진으로 사출해도 박히고 끝일 정도였다.


"너를 걱정하기보다 내 목숨이 위태롭지. 항상 무적의 방패를 들고다니는 너와 달리 내 무기는 속도지. 재빠른 매라도 돌부리에 맞으면 추락하니."


무적의 방패, 방패가 무적이라는 거지 내 몸은 무적이 아니었다. 방패가 내 몸을 살린다고 해서 부주의가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를 것이었다. 야간의 범죄가 무섭다고 상시 방범용 스프레이를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애초에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2주가 되기 전에 리자드맨은 임무를 받고 떠났다. 그리 암울한 얼굴은 아닌 걸 보면 국내가 행선지인 듯했다. 나 말고 적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이가 있는지 의문이다만, 그럼에도 리자드맨은 '조심할 테고, 조심해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매일 보던 로브라서 2주가 지나도 임무를 안 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아 별 생각이 없었었다. 방 안에 들어오는 것에 신경도 안 쓰고 할 짓이 없어 침대 위에서 벽 쪽을 향해 누워있었다.

그걸 못마땅해 한 로브는 손수 내 몸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일어나."

"무슨 일 있어?"

"임무같은 거."

"임무면 임무지, 임무같은 게 있어?"


백문에 불여일견으로 로브는 품 속에서 꺼냈다. 평소와 같은 양피지였으면 이 말도 안 적었다.

생김새부터 남달랐다. 두 말 할 것 없이 편지봉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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