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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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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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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7.0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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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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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권 (43)

DUMMY

이젠 멀리 적국의 최심부까지 보내려는 본부였다. 임무 수행지는 무려 남사르, 사리나 님의 고향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지명이라 보자마자 나는 전재산을 챙기고 나섰다.

전선이면 걸어가도 좋겠지만, 전국지도가 축적이 체감상 1:60000인 걸 감안하면 어처구니 없는 경로였다. 말을 타고 가서 국경을 넘고, 또 다시 말을 빌려서 타야 하는 역겨움은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그 1:60000도 양피지 5장이라 지도를 만든 사람도 대단했다. 집단지성이 아니고서 만들 수 없었을 지도다.

그간 여관에서 지내는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문원을 아득히 뛰어넘는 일정이었다. 지나친 여관만 몇 곳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얼떨결에 여관 일주가 되어버린 마당에 진귀한 여관이 하나 있었긴 했다. 어쩌면 적국의 문화를 대변하는 여관이었는지도 모른다.

전혀 보지 못했던 한글이 써져 있는 여관이었다. 뭐라고 할지, 너무 이국적인 느낌? 이국적이라기에는 우리 동네에 흔했던 간판이었다. 정자로 또박또박 알아보기 쉽게 써져있는 한글 간판, 여관에도 똑같았지만 조금 달랐다.

여기에서는 아무래도 한글이 외국어니까(문자만 다른 거지 언어는 똑같다만) 한글이 큼지막하게 써져 있는 밑에 이곳 언어로 발음이 적혀 있었다. 나로서는 여관 밑에 여관이 써져 있는 개그였다.

그걸 징조로 하여 남사르에 가까워질수록 한글 사용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었다. 내가 촌스러워서 미칠 노릇이었다. 제발 그만 해줘, 라며 가슴 졸이며 빌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통 마을 체험 학습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남사르에는 기와집이 있었다. 집마다 쳐진 벽도 기와가 위를 덮고 있고, 도로는 간소하게, 심지어 연못 위에 각루가 있었다. 난 다른 세계로 간 게 아니고 타임머신을 탄 줄 알았다.

남사르의 여관도 기와집이었다. 그 지붕 밑에서 신발을 벗은 뒤, 한지문을 열고 들어가 고요히 잠을 청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 가슴에 파고든 기분이었다. 적어도 따스함은 아니었다. 대신 수치심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의 감정이었다.

그래도 완전히 전통 마을 그대로의 풍습은 아니었다. 이곳 세계에도 고유의 것이 있어 아침밥만은 모닝빵에 고기를 푹 끓인 이름 모를 국이었다. 주방을 살펴보니 아궁이 말고도 제 맛대로 개량되어 화덕도 있었다. 마치 온돌 때문에 아궁이가 있는 형태였다.

설마 요새까지 산성이려나 싶어도 남사르 전체가 기와집이 아닌지라 요새도 늘 보던 것처럼 평범했다. 궁이었으면 사극에 나온 대로 잠입이 쉬울 것이었으나 지붕이 내리깔려 있는 한 버거웠다.

이번 임무는 요약하면 암살이었다. 그것도 일개 간부도 아닌 장군급을 암살하라는 대단한 임무였다.

갈수록 임무 설명이 간략해지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알 수 없어졌다. 왠지 암살 대상이 남사르에 있다더라, 하고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건지, 요새에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민간인들에게 수소문해서 의심받으라는 말인가? 불평불만이 있어도 결국에는 꾹 참았다.

설명으로는 그저 죽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번지르르한 서론을 제외하면 그랬다. 굳이 암살이라는 것은, 들키면 내가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말을 타고 다시 국경까지 가야하는 것을 추격대가 오기라도 하면 도망이 귀찮아지는 상황이었다.

들키지 않아야 한다, 이걸 뇌리에 각인시켰다. 꼭 그래야만 일이 잘 풀릴 듯했다.

대상을 찾아야 하는 마당에 과감히 요새에 잠입을 시도했다. 고립된 경비 하나의 옷을 강탈해서 입었다. 사살할 때의 소음이나 시체는 걱정이 없었다. 블루드 점막을 입에 침투시켜 폐를 다 박살낸 다음에 시체는 토막내어 숲 속에 버렸다. 또, 겨울이라 입에 덧입어도 덥지는 않았다.

여기에 덮친 격으로, 실내 구조가 날 순조롭게 만들었다. 문마다 푯말이 있어 어떤 방인지 써져 있었다. 안 적혀 있는 것들은 계급이 낮은 사람들의 방이거나 다용도실 정도로, 식수실, 단련실, 화장실 등 기능 있는 방들부터는 무조건 푯말이 있었다.

그렇게 찾아온 대장군실. 문장식부터 비범했다.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가 강한 두터운 용무늬였다. 문짝도 두터워서 단순히 귀를 대는 것으로는 안에 있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암살이라 100% 신중하고 싶었다. 대장군급이기도 해서 졸개들처럼 곱게 안 죽을 것을 소란이 일으켜질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참는 게 더욱 내 성격상 안 맞았다. 일단 병사로 위장했으니까 마주치더라도 당황할 것이고, 그 사이에 결판을 내면 된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끼이익, 장난 아닌 무게의 대장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아쉽게도 암살 대상은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깔끔하게 의자까지 책상 안으로 밀어넣고 부재중인 대장군의 행방은 다음으로 기약했다.

우선 부가적으로 따로 책상에 정보가 모여져있는지 확인해보려 했다. 가져가면 본부가 좋아할 것 같은 정보, 혹은 현상황에서 대장군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정보가 있는지 의자에 앉아 책상들을 뒤져보았다.

그 의자는 후광을 위해서인지 뒤에 큼지막한 창문이 있었다. 거의 전신을 햇빛으로 물들일 수 있는 크기였다. 단지 후광만을 위해서라기에는 외부에 쉽사리 위치를 노출당할 수 있는 구조라서 그다지 달갑진 않았다.

그런 구조에 관해서는, 대상을 가리는 게 아니었다. 대장군이 될 수도 있고, 이 자리에 앉는 누구나 그럴 수 있었다.


의자에 앉고 있던 나는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바닥에 누울 뻔하다가도 다리를 여러 번 휘저으니 겨우 서있는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다.

방금 저평가하였던 후광용 창문은 금은 가 있지만 깨져서 무너지진 않았다. 미세하게 난 구멍을 중심으로 균열이 심하게 갈라져 있어 곧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낌새였다.

하찮은 유리 걱정을 먼저 한 후에, 뒤늦게야 내 손이 무조건반사로 뒤통수에 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촉촉한 감각에 보지 않아도 알 것이었지만, 직접 눈 앞에 가져오는 것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흥건한 피가 묻어 있었다. 통각도 눈치가 없었다. 시각을 이용해서 확인하고 나서야 제 기능을 가동시켰다. 삽시간에 달아오르는 뒤통수의 열기와 통증에 버텨 선 자세를 일부러 무너뜨려 바닥에서 고통을 호소했다.

뒤늦게나마 전투 태세라는 걸 알고 전신무장에 돌입했다. 또 어디서 탄막이 날아올지 모르기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아까는 장거리에서 창문을 향해 저격헀다면, 내가 은폐된 이상 밑층에서 수직으로 올라가는 탄막을 마구 발산시켰다. 탄막들이 가늘어서 층을 붕괴시키지는 않아도 위력은 어마무시해서 내 무장에 도탄되는 소리가 만개했다.

최단 루트, 그것은 후광용 창문으로 탈출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곧 부셔질 창문이었기에 전신무장인 채로 돌격해 뚫어버렸다. 그러고는 제트 엔진으로 공중을 통해 남사르에서 달아나기로 했다.

이미 부상을 당한 이상 교전은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블루드를 발산할 때마다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지혈도 못한 채 달아나는 거라 이러다간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평상시에 방어막을 두르고 있지 않았다면 즉사였을 것이다.

오랜만의 부상이었다. 전신무장을 배운 후로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뒤통수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전신무장 안을 붉게 적시고 있는 현상이 신기했다. 이대로 내부를 피로 가득 채워 익사한다는 엉뚱한 상상도 했다. 그 전에 과다출혈을 죽는다는 게 반론이었다.

편히 부상자라고 도망갈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부상이라는 걸 확인한 사냥꾼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사냥감도 없는 것이었다. 기어이 추적을 하러 들었다. 여전히 탄막은 쏘아대었고, 위협사격 및 예측사격을 동시에 하여 완전히 몰이하려고 들었다.

그런 건 별 거 아니었다. 위력이 강하다고 칭찬을 해도 전신무장을 뚫지 못하는 그들의 탄막은 유효하지 못했다. 그들 자신도 온전히 탄막만으로는 무리라고 계획했을 터였다.

그렇기에 내 시야에 들어온 사냥꾼 둘은 예상 범위 밖이었다. 나타날 거라고 기대조차 안 했던지라 조우한 순간 멈춰서기만 할 뿐 나는 어떤 대응도 안 했다.

그럼 사냥꾼들은 선공하는 게 정석이었다. 거대한 블루드 대검으로 앞선 사냥꾼이 내 전신무장을 향해 휘둘렀다. 뚫릴 거라고 느꼈다.

하지만, 형편 없이 막혔다. 오히려 탄막보다 위력이 약했다. 이걸로 뚫릴지가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사냥꾼은 여러 번 휘둘렀다. 박히는 느낌도 없는 쓸데없는 공격이라 무시했다. 제 가던 도주 경로를 향해서 재추진을 했다.

그제서야 잘못되었다는 게 보였다. 제트 엔진을 아무리 써도 내 몸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앞만이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발 밑을 쳐다봤다. 전신무장의 진한 색으로 가려져 어설프게 봐서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땅에까지 뻗어있는 의문의 줄기. 줄기라고 해서 땅이 뿌리인 것은 아니었다.

바로 전신무장에 뿌리를 박고 땅에 뻗어있던 것이었다. 대검으로 휘두른 게 씨앗을 심으려고 전신무장을 미세하게라도 흠집을 낸 속셈이었다.

나머지 구경하고 있던 사냥꾼은 내 구속을 보고서는 위에 겹겹이 바위들을 쌓기 시작했다. 블루드로 된 거대한 바위들, 운석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나를 짓누르는 그 무게는 도저히 발로나 제트 엔진으로나 감당이 안 되었다. 바위만이 아니고 나를 묶은 뿌리가 같이 내려주려고 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전신무장과 함꼐 추락한 나는 아무리 제트 엔진을 써도 발버둥칠 수 없었다. 가시나무나 와이어, 그런 공격기술로 뿌리를 해치우면 될 것 같은 쉬운 해답이지만 점점 까마득해지는 의식에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감지했다.


"포기해라."


대검 사냥꾼이 눈앞에 서성거렸다. 웃긴 소리였다. 포기하든 안 하든 죽일 것은 똑같은데 감히 포기할 리 없었다. 통증 때문에 반박하는 말을 일절 할 수 없었다.


"와 씨, 피 흘리는 거 봐라? 이거 안 뚫어도 알아서 뒤지겠는데?"


그 말에 내 상태를 확인했다. 피가 흘러갈대로 흘러 신발 속을 적시고 있었다. 쇼크사는 최대한 면하고 싶어 이제서라도 블루드로 뒤통수를 틀어막았다. 다리 절단된 것보다는 낫다는 각오로 통증을 감내했다.


"이대로 말라죽여도 되겠지, 만! 내가 죽이는 거 아니면 성에 안 차거든?!"

"자문자답도 적당히 해라."

"그거야 내 맘 아니냐?!"

"알았으니까 닥쳐."

"닥치는 것도 내 맘이지~"

"그 성격만 고쳐라."

"재미없게시리 왜 그래야 하지?"

"그래, 알아서 혼자 잘 지껄여봐라."


그러자 불똥이 나한테 튀었다. 노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떻게 죽여줄까? 토막 내어 죽여줄까? 터뜨려 죽여줄까? 꼬챙이로 만들어서 죽여줄까?"


가뜩이나 블루드에 지혈되는 뒤통수가 자극되어 미치도록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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