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973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8 23:57
조회
16
추천
0
글자
12쪽

1권 (22)

DUMMY

"그게 말이 됩니까?"


정녕 빈말이나 거짓말로 나를 놀리려는 작정이 아니라는 걸 몸소 직감했음에도 장난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보면 안다."

"보면 죽는 거 아닌가요?"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전장에서 소용돌이를 봤다는 주장하는 사람 중에도 살아서 목격담을 늘어놓기도 하니까, 못 살 건 없다고 본다."

"전사라면 그런 정신으로 가는 겁니까."

"나는 그런다."


터무니없는 전장으로 한걸음 내딛고 있다 하니 지릴 법도 하였다. 가까스로 그나마 남아있는 도덕으로 인해 욕탕에 실례를 하는 건 짐승의 도리라며 꾹 참았다.


"뭐든지 내가 죽을 위험이 없다는 완벽한 보장은 없다. 언제나 전투에 있어서 완승이라고 하는 건 우리들이 적들보다 현저히 적게 희생하고 이겼다는 것을 말하지, 아예 안 죽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난 저 재앙을 만나지 않아서 모르겠다마는, 투항도 죽음일 마당에 항쟁을 하는 게 어리석다고 보면 안 된다. 내가 죽을 걸 알더라도 말이다."


뤼펠의 연설은 훌륭했지만 나는 안 그랬다. 그다지 훌륭하고 싶지도 않고 어찌저찌 전장이라는 걸 긴장만 하면 제 살 길은 있을 거라 보았지만, 고작 실전이 아니고 말만 들었음에도 우스움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걸로 쫄았냐."


라데르가 직격탄을 날렸다. 뭔가 비웃으려는 뉘앙스라서 약간 악이 오르긴 했다.


"전장에 누가 투입되는가에 따라 다르지. 설마 적만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아군에게는 없을 줄 아냐? 어쩌면 이 말 발굽 형씨가 꽥꽥거리는 뜬 소문일 수도 있고, 아군에게도 그런 전력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은 없다만 소문에는 소문으로 맞받아쳐야 하는 거 아니겠냐?"

"말 발굽 형씨?"

"비늘 대가리라 부르던지."

"입담이 험한 사람이로군."

"그래서 보긴 했는가? 성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무시무시한 1인 병기를 말이지?"

"있다고는 들었지만, 실은 나도 본 적이 없다. '자게라'의 소속이었던 자가 적군에 있다는 소문도 있다. 뭐가 진실이고 허무맹랑한 유언비어인지 구별이 안 가기 때문에 한 번은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조건 믿으라는 강제는 안 했다."

"단순한 겁주기에 불과했냐."

"그 말도 맞다."


농담이라는 해프닝에 끝나긴 해도, 혹시 모르니 염두하라는 말은 잘 이해했다. 한 번뿐인 목숨이 걸린 일에 최악을 상정하는 건 결코 잘못된 일은 아닌 것이니 뤼펠의 조언은 뜻깊었다. 겁 난 건 다 사라지진 않았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나에게 전장에서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하나의 계기였다.




다음 날, 비가 내려 검술 훈련까지 실내로 바뀐 날이었다. 다행히 인간성은 있는지 비가 온다고 해서 밖에서 강제로 진행하진 않았다. 산성비가 아니라 맞아도 별 해악 없이 마셔도 무관한 빗물이라도 젖는 이상 몸이 무거워지는 일은 웬만해서 피하는 게 맞았다.

비가 내린다, 아니면 실내에서 한다, 둘 중 하나가 원인으로 작용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실내에서 한 것보다 백 번 강조해도 될 만큼 중요한 것이란, 사리나 님이 찾아왔다는 사건이었다.

늘어나는 횟수에 어쩔 수 없이 악으로 기합을 내며 젖 먹는 힘까지 다 짜내어서 한 기술을 다 완료하였을 때, 쓰러지던 찰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열심이구나?"


황급히 사리나 님을 목격하고 흉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간신히 벌떡 일어섰다.


"사리나 님?"

"뭐야. 네가 사리나인가?"


이제야 라데르가 사리나 님과 초면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째서 온 거지?"

"테즈와 이야기해도 될까요?"

"···해라."


당돌한 습격에 라데르는 쉽게 허용을 해주었다. 내 마음을 알 리는 없고, 그래도 고마웠다.


"앞으로 10일 정도 남았나?"

"정확하시네요."

"10일 정도 더 있을 수 있으면 좋았는데, 아쉽지만 오늘 다른 데로 가서 작별인사하러 온 거야."


즉시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정신적 지주 중 하나이며 영향력이 큰 사람이 오늘 부로 이 성에서 없어진다는 것에 심신 전체가 꺾어진 상태였다.


"가야만 합니까?"

"내가 선택해서 할 수 있었으면 안 갔을 거야. 확실히 내가 받은 게 명령이니까 가야 하는 거지. 별로 만난 시간도 오래 안 되었는데, 실망감이 큰 것 같네?"

"··· 어디로 가시는지···."

"안 돼. 이런 건 말하는 게 아니거든.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알려줘도 찾아오게? 아마 병사로 발탁되어도 내가 있는 곳으로는 못 올 거야."


하나하나 내 희망을 부셔버리는 발언에 더 이상 말도 못 하였다.

그러나,


"작별이 평생 작별은 아니잖아? 언제든 살아만 있다면 만날 기회는 있을 거잖아? 급한 마음에 전장에서 공적을 세우겠다고 자만하거나 자진하지는 마. 공적보다도 목숨이 더 소중한 거니까. 작전이 잘못되었다, 고 싶으면 지휘관에게 대들어봐. 추천하는 방법은 아닌데, 그 정도로 노련한 수준이 되면 그런 것도 공적에 나름 반영이 되니까 하나 알려주는 나만의 기법이야. 부디 생존자라도 되어 있어줘. 알았지?"

"알겠습니다."

"잘 살아야 해."


사리나 님은 웃으면서 대화를 끝마치고 금세 사라졌다. 저걸 보며 억지 웃음이다, 비즈니스 관계다, 이런 걸 늘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단순 일방적이며 뇌내망상이라고 생각을 들었지만, 이걸로 사리나 님을 짝사랑하는 게 맞다고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나를 걱정하는 것에서 지나지 않은 조언이었다.

딱히 나를 사랑한다, 낮게 불러 좋아한다는 개념에서가 아니고 내가 꼬맹이라서인지 동족이라서인지, 이를 통틀어서 동정이라는 부류의 개념에서 나보고 진심으로 살아달라고 하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차인 것은 아니잖아? 라는 요상한 판단이 들기보다는, 중2병이 들 시기의 나는 의외로 현실적으로 훈련에 대한 무한한 무기력함을 잠재웠다. 짝사랑 대상이 떠나면서 살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게 이렇게나 심금을 울릴 줄은 전혀 몰랐다.


"교관 님, 저는 재능이 있나요?"

"검술과 무술은 꽝이다."

"백 번 이상 반복하는 노가다 말고는 방법이 없나요?"

"나만의 교육과정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욕심을 부리고자 하진 않았다. 기껏 제 분량도 채우기 힘든 마당에 여기서 좀 더 훈련의 강도를 높여달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의 이유였다. 정말 이것 말고는 나를 단련시킬 수단이 없다는 건지 묻고자 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전심전력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각오하는 바였다. 재능이 없다면 더욱이나 그래야 했다. 결단코 라데르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나를 강하게 키우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런다고 힘든 훈련이 반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숙명을 받아들이니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지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22일차의 밤, 달빛이 첨탑 위에 꽂힐 무렵(대략 9시쯤)에 끝나는 게 보통인 뤼펠과의 훈련은 오래 진행되었다. 이유는, 내가 계속 하고자 해서였다. 끄덕없다고 몇 번이고 대답을 하자 뤼펠은 그 뒤로 아무 말 없이 훈련을 속행했다.

뤼펠의 주먹이 먼저 항복을 하는가, 내 블루드가 소진을 다하느냐의 승부였다. 매일이 그렇긴 했다. 결국 내가 맞아야 훈련이 끝났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맞아도 아프지 않아서였다. 아픔에 익숙해졌다, 는 아니었다. 아무리 맞아도 헤비급 이종격투기 선수의 주먹은 같은 선수끼리도 아픈 법인 걸 감히 내가 안 아플 리가 없었다.

튕겨내는 건 아님에도, 그렇다고 뤼펠이 힘을 조절하는 건 아님에도, 상당히 약한 위력만이 내 배를 타격했다.

추측하건대, 블루드가 다 소진된 게 아니라 조절해서 내가 안 아플 정도로 방어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추측을 즉석에서 할 정도로 나는 여유로웠다.

스스로 이젠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싶을 무렵에 뤼펠이 먼저 말을 걸었다.


"베개를 빼라."


묵묵히 나는 베개를 뺐다. 그리고 가차없이 뤼펠은 때린다는 말과 틈을 주지 않고 배에 주먹을 날렸다.


"윽···."


진정 맞았다면 소리조차 못 내고 숨 쉬기 바빴을 거였다.

즉, 나는 베개 없이도 주먹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다.


"맞아서 배우는 건 다듬기만 하면 되겠군. 한 번 자의로 발현해봐라."

"아무거나요?"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아무런 힌트도 없었다. 아마 맞을 때에 블루드를 발현한 감각을 그대로 활용하라는 게 들을 수 있는 힌트의 한계이겠거니와, 그런다고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답은 스스로 찾아야 했다.


"읍!"

어딜 기준으로 잡아야할지 몰라서 있는 힘껏 온몸에 긴장을 들게 하고 혈관을 쥐어짜듯 하였다. 이런 야매로 감히 될 거라고 생각이 안 들었었는데···

서걱


"······?"

"······?"


'서걱'이라 들려와서 어딘가 베였다고 생각했더니 내 몸에서 통증이 있는 부분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내 몸은 아닌 내 옷이었다.

통풍이 잘 된다고 하더니 옷이 난도질 당해 있었다.


"너···."

"네···."

"지치는 걸 모르나?"

"칭찬입니까?"

"아니면 뭐겠나."


당황한 뤼펠을 보며 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상태로 자만해서는 안 되는 건데, 머리로는 그렇게 이해해도 흥분해서 진정하려고 심호흡을 여러 번했다. 그래도 주체를 못하겠어서 그냥 웃었다.


"시기 치고는 성장이 엄청 빠른 편이다.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전장에서 비교해 보면 너무 미숙한 편이다. 환호는 하되 그걸로 적이든 아군이든 남을 업신여기지 마라. 조그맣고 조그마한 방심이라도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네!"


나는 재능이 없어, 라고 여기던 어린이가 잃어버렸던 동심을 되찾아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들먹이는 추한 장면이었다. '네'라고 하는 건 겉치레일 뿐, 이 상황에서 이 어린이에게 조그맣고 조그마한 방심이 과연 절대로 없을 수가 있었나.

돌이켜 보면 그러지 마라고 하고 싶어도, 인생의 필요악인 걸 뜯어말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가 되면 부서질 거라고 미래에선 성장의 발판이라 긍정적인 견해였다.




마지막 날, 라데르는 3일 전부터 대련 형식으로 훈련 방식을 바꾸더니 결국에는 알아서 이겨보라는 시험을 나한테 툭 던져주었다.

시험 시간은 이길 때까지, 그러니까 나에게는 라데르가 짜증나서 그만두자고 할 때까지라고 들렸다. 형평성이 안 맞아도 1:1 교습에서 어쩔 수 없이 각오 크게 먹고 달려들었다.

묘사를 할 필요 없이 처참하게 나는 두들겨 맞기만 했다. 내가 검술을 할 줄 아는구나, 에서 그쳐, 검술로 상대와 겨루다간 뒤질 확률이 높겠구나, 라고 단정지었다.


"끈기와 체력은 제대로 단련되었다고 생각하냐."


애초에 라데르는 검술로 내가 이길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안 한 것이었다. 그다지 상심하진 않았다.


"저희가 1시간 동안 했나요?"

"아니, 2시간이다."


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4시간이라도 하려고 했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인 것 같다."


라데르는 흘깃 위를 쳐다봤다. 뒤로 돌아 나도 라데르가 바라보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창이었는데, 토넴이 그 사이로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끝났니?"

"예."


라데르의 고분고분한 태도는 오랜만이었다.


"따라 와라."


수미상관인가, 첫 날과 비슷한 래퍼토리에 이곳에서의 생활이 끝나간다는 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1권 (44) 20.07.09 65 0 13쪽
43 1권 (43) 20.07.07 17 0 11쪽
42 1권 (42) 20.07.06 18 0 12쪽
41 1권 (41) 20.07.03 18 0 13쪽
40 1권 (40) 20.07.02 15 0 12쪽
39 1권 (39) 20.07.01 17 0 12쪽
38 1권 (38) 20.06.30 15 0 12쪽
37 1권 (37) 20.06.29 16 0 12쪽
36 1권 (36) 20.06.26 14 0 11쪽
35 1권 (35) 20.06.25 18 0 12쪽
34 1권 (34) 20.06.24 19 0 12쪽
33 1권 (33) 20.06.23 17 0 12쪽
32 1권 (32) 20.06.22 17 0 11쪽
31 1권 (31) 20.06.20 22 0 12쪽
30 1권 (30) +1 20.06.19 35 1 11쪽
29 1권 (29) 20.06.19 20 0 12쪽
28 1권 (28) 20.06.19 17 0 11쪽
27 1권 (27) 20.06.19 20 0 13쪽
26 1권 (26) 20.06.19 17 0 11쪽
25 1권 (25) 20.06.19 17 0 12쪽
24 1권 (24) 20.06.19 20 0 13쪽
23 1권 (23) 20.06.19 18 0 12쪽
» 1권 (22) 20.06.18 17 0 12쪽
21 1권 (21) 20.06.18 20 0 11쪽
20 1권 (20) 20.06.18 17 1 11쪽
19 1권 (19) 20.06.18 17 0 11쪽
18 1권 (18) 20.06.18 16 0 11쪽
17 1권 (17) 20.06.18 18 0 11쪽
16 1권 (16) 20.06.17 17 0 12쪽
15 1권 (15) 20.06.17 18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