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성식 슬라이더(1)
16. 윤재성식 슬라이더 (1)
― 타석에는 배팅의 마술사 센도 미야키. 카운트는 원 낫씽. 윤재성이 던집니다. 여기서 번트. 3유간으로 뻗는 번트 타구. 어? 어느새 윤재성이 타구 앞에 와 있습니다! 윤재성이 잡아서 그대로 3루로! 3루 주자는―! 아웃입니다! 투수 윤재성이 멋진 수비로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냅니다!
― 와! 이거 3루수 마르티네즈가 잡으라고 댄 번트거든요. 물론 미야키의 번트치고는 그렇게 완벽한 번트는 아니었지만, 3루수나 뒤에 있던 유격수가 잡았으면 3루는 무조건 살았어요. 와―! 그 짧은 순간에 이걸 판단해서 수비합니까 윤재성 선수.
― 말씀드리는 순간 초구를 받아치는 이시노 유카. 2루수 땅볼! 무사 주자 2루의 위기가 있었지만 윤재성의 멋진 수비가 한 차례 나왔습니다. 5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서울 드래곤즈. 저희는 잠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 제5의 내야수 ㄷㄷㄷㄷㄷ
└ 와 진짜 스마트한 수비였다 ㅇㅈ?
└ 왜 스마트한 수비임? 3루수가 잡았어도 된 거 아님?
└ 그럼 3루가 비어서 3루 못 잡잖아 ㅋㅋ
└ ㅋㅋ 투수 돼도 팀원들이 싸지른 거 지가 해결하는 건 똑같네
└ 얘 FA 언제임? 재성신 얼른 드래곤즈 탈출하자
└ 야잘알들은 알 거다 ㅋㅋ 저 배팅 마술사가 번트를 저따위로 댄 이유를. 윤재성의 패스트볼이 생각보다 회전이 많이 걸렸던 거겠지. 스팟 캐스트를 보면···(더 보기)
└ 더 보기 안 눌러지는데 혹시 저만 그런가요?
└ 아 씨 더 보기 낚인 거 나 혼자임?
└ 낚시 오지네
└ ㅅㅂ ㅡㅡ 정성글인 줄 알았지 ㅋ
* * *
서울 드래곤즈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습 경기.
이닝은 6회 초, 2사 주자는 1, 2루.
투수는 윤재성, 타자는 지난 시즌 센트럴리그 홈런 2위, 이스마 토요.
“볼!”
윤재성이 던진 커브를 이를 악물고 참아내는 이스마 토요.
이걸로 카운트는 풀 카운트.
곧 여섯 번째 공이 윤재성의 손을 떠났고.
토요가 155km/h의 전력투구를 기다렸다는 듯 전력으로 응수했다.
따악―!
파괴적인 소리가 경기장을 뒤덮는다.
타구는 파워풀한 소리를 증명하듯 하늘 높이 솟았고.
토요는 타구가 솟자마자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우측 담장, 깊은 수비를 하던 우익수 이경민이 타구를 쫓았다.
펜스 앞까지 이경민의 발이 멈출 줄 몰랐고, 어느새 펜스 앞까지 도착했다.
관중석과 그라운드 사이, 묘한 지점에서 떨어지는 타구.
턱, 마침 토요가 친 공이 착지했다.
···
와아아―!
곧, 이경민이 글러브에서 공을 꺼냈다.
어퍼컷 설레발을 친 토요가 윤재성을 바라봤다.
힘겹게 이닝을 마친 재성은 그런 토요를 무시한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리고는 토요 대신 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 * *
경기는 지고 말았다.
내가 내려가자마자 불펜진이 정신없이 얻어터졌고, Game set 콜이 들렸을 땐 11 대 3, 압도적인 점수 차가 돼 있더라.
오늘 경기를 합리화하자면, 우리는 1.3군에서 시작해서 1.7~1.8군 수준의 타선으로 마무리했고, 자이언츠는 1.8군급 로스터에서 시작해 1.2~1.3군 수준의 타선으로 마무리했다는 것 정돈데.
고백하자면 1군 대 1군으로 붙어도 졌을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오늘 내 성적은 3이닝 2피안타 무실점.
준수한 성적이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커브와 패스트볼.
크게 보면 투 피치의 단조로움 때문인지, 3이닝째 되니까 자이언츠 타자들에게 수를 읽히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무리 슬로 커브를 중간중간 섞어도 확실히 서드 피치 효과는 떨어졌고, 수를 읽힌다는 불안감에 완성되지 않은 슬라이더를 중간에 섞었는데.
그게 또 너무 슬라이더 같지 않으니 맞아 버리더라고.
마지막 타자이자 지난 시즌 전체 홈런 2위였던 힘 좋은 이스마 토요를 상대했을 때, 또 다른 문제점도 보였다.
쓰리 투 풀 카운트에 몰리니, 심리적으로 커브를 선택할 수가 없더라고.
유인구로 던지자니 만루가 되고, 카운트로 던지자니 맞을 것 같았다.
7구, 8구까지 넘어갔다 해도 빠른 볼로 힘 대 힘 승부를 했을 것 같은데.
거기까지 갔다면 담장 앞이 아니라, 분명 담장을 넘어갔을 거다.
진짜 6회 때는 진땀 좀 흘렸다.
감독님이 내게 3이닝을 소화시키게 한 진정한 이유가, 패스트볼 ― 커브로 이뤄진 투 피치의 한계를 몸소 체험하라고 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선수라면 동작 하나하나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오늘 이 발칙한 신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말이요, 선배님이 2043년 8월 18일 대전 피닉스전이 끝난 뒤에 하셨던 말이죠?”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예! 9회 말 동점 상황에서 선배님이 때린 타구를 가랑이 사이로 빠트려 버린 피닉스의 유격수 안영명. 그를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유격수 윤재성!”
“글쎄,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연호는 휴대폰 화면에 띄운 2043년의 기사를 내게 보여 줬다.
“여기 나와 있잖아요.”
당시에는 워낙 끝내기도 많이 쳤었고 인터뷰도 한둘이 아니었다.
밀린 인터뷰를 치느라, 마지막에 퇴근하는 건 일상이었지.
잊어버리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그걸 기억한다는 게 더 신기한데?”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드래곤즈의 날개, 크랙! 윤재성 광팬이었다고요. 유격수의 꿈도 선배님 때문에 꾸게 된 거고요. 제가 드래곤즈에 지명됐을 때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세요?”
아, 얘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나?
투혼을 불사른 뒤에, 이런 수다쟁이 캐릭터와의 대화는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선배님 2년 차 때 생각나네요. 제 친구들은 다 인천 샤크스의 카예프가 홈런왕이 될 거라고 했거든요. 근데 저는 이번 해는 무조―건! 윤재성이 홈런왕이 될 거라고···”
“자! 시간도 늦었으니까 얼른 훈련하고 가자.”
“아 옙! 영광입니다 선배님!”
그렇게 왼손으로 경례를 하며 내게 충성을 표시하는 미필 후배님과 오늘부터 개인 훈련을 같이하기로 했다.
겸사겸사 연호의 훈련을 내가 좀 봐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도 내 훈련이 있다 보니 딱 붙어 도와주지는 못하고, 훈련 방향성만 알려 주고 각자 개인 훈련을 하는 식이 될 것 같다.
“잘 봐라 연호야. 여기서.”
나도 심심하지 않아서 좋고, 놈도 배울 수 있으니 좋고.
열심히 연구해서 한국에 돌아갈 때까진 무조건 서드 피치에 관한 답을 찾으리라.
[윤재성. 센트럴리그 1위 팀 타선 상대로 3이닝 무실점.]
[일본에서도 생중계된 드래곤즈와 자이언츠의 연습 경기. 윤재성 커브 본 일본 누리꾼들 반응. ‘저걸 어떻게 쳐?’]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이스마 토요. ‘드래곤즈의 커브볼러. 언젠가 다시 한번 상대해 보고 싶어.’]
[일본 야구의 신 아사베 하베 감독. ‘오랜만에 낭만 있는 투수를 만나 행복해. 윤재성 잘됐으면.’]
[최대 구속 155km/h! 드래곤즈 럭키 비키 감독. ‘윤재성은 당분간 마무리 투수로 쓸 생각이다.’]
* * *
연습 경기 두 번째 상대는 대만 팀이었다.
그것에 맞게, 대만에서 온 에이스 천즈셩이 선발로 나와 4이닝 무실점을, 패드로가 3이닝 1실점을 하며 8 대 2로 마무리했다.
주전 타자들도 폼이 꽤 올라온 모습이었다.
자이언츠전에서 삼진 2개 무안타를 기록했던 마르티네즈가 쓰리런 포함 2타수 2안타를 기록했고, 이호령은 9회에 대타로 나와 2타점 적시 2루타를 만들어 내며 합계 13안타를 만들어 냈다.
연습 경기 3차전과 4차전은 한국 팀인 대구 라이온즈와 붙는다.
2차전을 쉰 나는, 대구 라이온즈와의 3차전에 등판했다.
경기는 6 대 5로 졌지만, 8회에 등판해 1이닝 동안 3K 무실점을 기록한 나.
그날 경기가 끝난 후 감독님과 면담 시간을 가졌다.
“재성. 자이언츠전에서 3이닝을 던졌고 오늘은 1이닝을 던졌어. 소감이 어때?”
“확실히 포심 ― 커브는 약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닝을 먹을수록 난도가 올라가는 걸 몸으로 느낄 정도로요.”
“음, 그럼 왜 내가 자네에게 3이닝을 몸소 체험시켰는지 알겠나?”
마무리 투수가 한 게임에 3이닝을 던질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미 이닝 소화 능력을 확인해 보고 싶다고 하셨던 감독님이다.
답은 간단했다.
“언젠가는 저를 선발로 쓰실 계획이신 거 아닙니까?”
“정답. 자네는 파이어볼러에 좋은 커브를 가졌어. 멘탈도 튼튼하고 큰 무대 경험도 많지. 지금이야 레퍼토리도 완성되지 않았고 마무리 투수가 더 급해서 쓰는 거지만, 자네 서드만 완성되고 괜찮은 마무리만 구해지면 자네를 선발로 쓸 생각이야. 무슨 이야긴지 알겠지? 똑똑한 자네라면 알아들었을 거라고 믿네.”
그러니까 감독님의 말을 해석하자면, 네가 슬라이더만 마스터하면 언제든 필요할 때 선발로 바로 쓸 수 있잖아. 안 그래도 신경 쓸 일 많으니까 닥치고 슬라이더부터 마스터해! 라는 이야기다.
그만큼 드래곤즈 선발진에 구멍이 많다는 이야기다.
천즈셩, 페드로가 그나마 안정적이지만 박재우는 롤러코스터고, 지난 시즌부터 없어서 쓰는 4, 5선발 고창수와 신지엽은 정말 이닝 버티기용으로 쓰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솔직히 불펜도 썩었고, 클러치 타선도 이호령―마르티네즈 둘뿐이고.
야수는 도연호가 잘 성장한다는 가정하에 2루수도 필요하고, 무릎이 안 좋은 이호령을 로테이션할 포수도 필요하고.
이렇게 말하니 우리 팀이 정말 썩은 팀 같은데, 흠.
내가 봐도 막막한데 감독님은 얼마나 고민이 많을까.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호크스와 안 좋게 이별한 경험이 있는 감독님이다.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느니, 그런 쓸데없는 말까지 남겼던 감독님이 맡는 2번째 한국 팀.
이번에도 불명예스럽게 떠나면 커리어에 제대로 스크래치를 낼 거고, 그렇게 되면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리그에서도 감독님을 달갑지 않게 생각할 거다.
자신의 밥줄을 위해서라도 이번 시즌은 여느 때보다 신중하게 시즌에 임할 거다.
뭐 나는 내 공 던지는 데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드디어 일본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있던 날.
썩은 불펜 나무에서 그나마 힘겹게 가지에 매달려 있는 이파리, 장범준이 9회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하며, 라이온즈를 7 대 5로 이겼다.
“훗. 얘긴 들었다 윤재성.”
만루 위기를 맞았던 주제에 자만 넘치는 표정이다.
“너 마무리 투수 맡는다며?”
범준이에게 필승조 라이벌이 됐다고 거짓말을 해 놨는데, 그새 기사를 봤나 보다.
며칠 더 골려 먹을 생각이었는데 아쉽네.
범준이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한다. 미래의 세이브왕.”
표정을 보니 듣고 싶은 말이 있나 보다.
1안타 2볼넷의 경기력으로 당당히 그 말을 들으려고 하다니.
뭐 잘 던졌어도 안 해 줬겠지만.
나는 녀석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 잘 부탁한다. 미래의 블론왕.”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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