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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마쟁투 님의 서재입니다.

데페라도 탈출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와캬퍄
작품등록일 :
2022.10.17 11:51
최근연재일 :
2023.01.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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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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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67,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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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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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10화

DUMMY

쏟아지는 빛에 고개를 숙였던 이강재는 슬며시 눈을 떴다.

갑자기 강렬한 빛을 봤기 때문인지 앞이 흐릿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제야 시력이 회복되었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우, 우아악!”


누워있던 이강재의 바로 앞에 제임스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이강재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너!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데페라도에서의 삼일.

그 지옥 같던 곳에서 살아 돌아온 이강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줄기 정신줄은 부여잡아 선을 넘는 것은 막았다.

놈은 그를 데페라도라는 끔찍한 곳으로 보낸 장본인.

사람 같지 않은 능력을 지닌 그에게 까불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제임스를 가리킨 이강재의 손가락이 잘게 떨렸다.

그의 눈동자도 요동쳤다.

그것을 본 제임스는 피식 웃었다.


“웃지 마!”

“아, 미안합니다.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뭐야?”

“그보다 예상보다 훨씬 더 잘 해주었습니다. 데페라도에 다녀온 소감은 어떤가요?”


제임스는 이강재를 흥미로운 실험체 보듯이 바라봤다.

놈에게는 이강재가 어떤 사선을 넘나들었는지 따위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이 유흥거리일 뿐이었다.

이강재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지옥 같은 곳이 어땠냐고? 너 사람 맞아?”

“하하, 화를 내는 것보다 발부터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떤가요?”

“뭐? 그, 그렇지. 내 발!”


이강재는 데페라도에서 괴물의 함정에 당해 두 발목을 다쳤다.

뼈가 보일 정도의 큰 부상이었는데 문을 통과하기 위해 무리해서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고통이 없었다.

바지를 걷어 발목을 살펴보니 너무나 멀쩡했다.

이강재는 당황하여 두 발목을 번갈아 봤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난 발목을 다쳤는데······.”

“데페라도에서 입은 상처는 현실로 돌아오게 되면 모두 낫습니다.”

“정말이야?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묻지 마세요. 알려준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이 자식이······.”

“물론 죽음마저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저라도 빼앗긴 영혼을 되찾아 올 수는 없으니까요.”


데페라도에서 겪은 고통, 배고픔, 갈증 등 모든 것은 실제와 같았다.

실제로 발목을 다친 이강재는 절뚝이며 걸어 다녔었다.

그런데 제임스가 모두 회복시킬 수 있다니.

무엇보다 그곳에서 죽으면 진짜로 끝이라는 말에 그는 더욱 겁에 질렸다.


“그 괴물에게 죽으면 진짜 죽는 거였다고? 미쳤어. 그게 말이 돼?”

“이제 겨우 튜토리얼이었을 뿐입니다. 다음에는 진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데 어쩌려고 그래요?”

“아니, 다시는 안 해. 내가 미쳤다고 그딴 것을 계속하겠냐?”

“이거야 원. 잊으셨나 본데 당신이 게임에 참가하게 된 것은 죗값을 치르기 위함입니다. 아니면 다른 것으로 치르실래요?”


제임스의 눈빛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는 입꼬리만 올린 채 은빛을 번뜩이는 총을 꺼냈다.

이강재는 침을 삼켰다.

이제 이판사판이다.

총에 맞아 죽나 빌어먹을 데페라도에서 살인마에게 쫓겨 죽나 똑같다.

그는 여차하면 한발 맞고 도망칠 생각으로 말했다.


“죽여. 죽이라고! 괴물한테 쫓겨 죽을 뻔한 내가 겨우 총이 무섭겠냐?”

“그런 말씀은 떨리는 다리부터 멈추고 하시죠.”

“······.”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이강재의 다리는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럼에도 그는 제임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다시 그 게임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괴물에게 쫓기는 것은 사양이었다.

잠깐의 무거운 침묵이 둘 사이에 깔렸다.

가만히 이강재의 눈을 들여다보던 제임스는 총구를 내렸다.


“좋습니다. 게임 규칙에도 언제든 포기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 만큼 하기 싫다면 강요할 수는 없죠.”

“저, 정말이야? 나 안 해도 돼?”

“물론이죠. 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그렇게 싫다는데 강요할 수는 없죠.”

“고, 고마워. 아니,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방에 들어온 것은 그냥 넘어가죠. 그리고 어차피 당신은 제발 참가하게 해달라고 제게 애원하게 될 것입니다.”

“하하, 만에 하나라도 그럴 일 없습니다.”


‘미쳤냐? 머리에 총 맞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어.’


대체 무슨 이유로 괴물에게 쫓겨 다녀야 하고 진짜 죽을지도 모르는 게임에 참가하겠는가?

이강재는 속으로 제임스를 비웃으면서도 혹시 몰라 겉으로는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그는 제임스의 마음이 바뀔까 황급히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볼 일 끝났으니 가 보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잠깐. 가기 전에 이것을 받으세요.”


제임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려는 이강재를 붙잡았다.

그는 이강재에의 손에 휴대폰을 쥐여주었다.


“이게 뭡니까?”

“그래도 게임에 참가하셨는데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죠. 제 번호를 저장해 두었으니 혹시나 마음이 바뀌면 전화 주세요.”

“아,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전 정말로······.”

“에이.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예?”

“혹시나 아픈 곳이 있을 수도 있으니 병원에 가서 검진받아 보세요. 물론 돈은 제가 드립니다.”

“분명 상처를 치료해 주셨다고······.”

“가라면 가세요. 아니면 다시 데페라도로 보내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그럼 병원까지 데려다줄게요. 갑시다.”


이강재는 빨리 제임스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으나 그의 친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괜히 됐다고 말했다가 제임스의 기분이 나빠져 다시 데페라도에 보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는 조용히 제임스의 뒤를 따라갔다.


***


제임스가 건강검진을 받으라며 데려다준 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의들이 있는 구성 병원이었다.

동네 큰 병원에나 데려갈 줄 알았는데 서울까지 와서 구성 병원으로 올 줄은 몰랐다.

이강재는 제임스가 그래도 양심이 있어서 좋은 곳에 데려다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제임스가 예약해 준 대로 절차에 따라 건강검진을 받았다.


“흠······.”


피곤에 찌든 의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그 끔찍한 곳에서 두 다리를 다쳤었는데 하루아침에 깔끔하게 나았다니.

이강재는 혹시나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흙빛이 되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설마 제가 큰 병에 걸린 것입니까?”

“그게······ 이거 참.”

“아이고, 선생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 이제 서른 갓 넘었을 뿐입니다.”


이강재는 의사에 반응에 큰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싶어 걱정했다.

그러고 보면 병이 없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는 하루에 담배 세 갑을 피는 지독한 골초였고 평소 술도 많이 마셨다.

지난 3년간은 감옥에 갇혀 있느라 나름 바른 생활을 하긴 했지만 모르는 일이다.

의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환자분의 몸 상태는 너무나 건강합니다.”

“예? 그런데 왜······.”

“그게 너무 깨끗해서요. 환자분. 담배 피우시죠.”

“예.”

“그런데 환자분의 폐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요. 만약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면 흡연자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의사의 말에 이강재는 믿을 수 없었다.

그의 나이 서른셋.

스물에 오달중을 만나 담배를 배웠으니 십 년을 흡연자로 살았다.

교도소에서도 담배만은 끊을 수 없어 교도관이 버린 꽁초를 물기도 했다.

그런 그의 폐가 멀쩡하다니.

폐암을 걱정했던 이강재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분명했다.

의사는 대충 이강재의 차트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모든 수치도 정상이고 문제없습니다. 이제 가 보셔도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검진을 모두 마친 이강재는 진료실을 나왔다.

망가져 있는 줄 알았던 몸이 괜찮다는 말에 이강재는 담배가 땡겼다.


“설마 나 강철 폐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야? 앞으로 조금 더 펴도 괜찮겠네.”


몸 상태가 괜찮다는 말을 들으니 이젠 다른 걱정거리가 생각났다.

그는 가지고 있던 돈을 신미소에게 모두 주고 와 가진 것이 없었다.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이강재는 막막함에 그냥 병원 복도를 걸었다.


“하아, 오늘은 어디서 자지? 이따 정류장에서 한 건 해야겠다.”


또 역에서 하루를 보낼 수는 없다.

이강재는 버스 정류장에서 서성이다 소매치기라도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오빠?”

“미소?”


뒤를 돌아보니 신미소가 물병을 들고 서 있었다.

이강재는 보육원에 있어야 할 그녀를 병원에서 보니 깜짝 놀랐다.


“네가 여긴 웬일이야?”

“엄마 보러 잠깐 왔지. 오빠는?”

“난 건강검진을 받고 나오는 참이야. 근데 어머니가 여기 계셔?”

“응. 암 치료는 구성 병원이 제일이라고 해서 여기로 모셨어.”

“잘 했다. 근데 네가 돈이 어디서 나서?”

“그게······.”


신미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표정만으로도 동생들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던 이강재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는 신미소의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너 설마. 아니지?”

“어쩔 수 없었어. 큰돈을 빌리려면.”

“진짜 사채를 쓴 거야?”

“그럼 어떡해? 엄마는 살려야지.”


이강재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새희망보육원은 지원이 부족해 아이들 먹을 것과 치료비 등 때문에 은행에서 큰돈을 빌린 적이 있다.

그때 빚을 갚지 못해 담보로 잡은 보육원 건물이 넘어갈 뻔했다.

다행히 이강재가 열심히 일해 갚았기에 넘어가지 않았지 하마터면 보육원이 문 닫을 뻔했었다.

신미소 또한 그때 빚을 갚고자 한 푼이라도 벌려고 공장에 나가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사채를 쓰다니.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했다.


“너 사채가 얼마나 악독한지 몰라?”

“급한 불부터 꺼야 했어. 내가 모아둔 돈도 있으니 기일 안에 갚을 수 있어.”

“얼마 빌렸는데?”

“삼천만 원.”

“뭐? 너 미쳤어? 그걸 네가 어떻게 갚아?”

“강수와 내가 모은 돈을 합치면 어떻게든 돼. 일도 하고 있으니까 기한 안에 충분히 갚을 수 있어.”


태평한 신미소의 말에 이강재는 이마를 감쌌다.

빚을 갚는 거야 둘째치고 사채하는 놈들이 얼마나 지독한 놈들인데.

아마 신미소는 돈을 갚아야 하는 날짜에 그 얼굴조차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빚은 점점 늘어나 능력을 벗어나겠지.


“일단 알았어. 돈은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까 너희는 괜히 돈 버느라 애쓰지 말고 어머니 간호나 잘 해드려.”

“오빠, 우리 애 아니야.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고 엄마를 생각하면 아깝지 않아.”

“시끄러워. 너도 사회복지사 되려면 계속 공부해야 하고 강수도 시험이 얼마 안 남았으니 준비나 똑바로 하라고 해.”

“오빠만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내가 괜히 이래? 너희가 나처럼 되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세 사람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갓난아기 때부터 보육원 앞에 버려졌다는 것.

이강재는 처지가 같은 두 사람을 혈육이라고 생각했고 자신보다 위했다.

비록 그는 잘못된 길로 빠져 도둑질이나 하고 다니지만 동생들만큼은 좋은 직업을 가지고 멋진 배우자를 만나길 바랐다.

그런 동생들이 빚에 허덕이며 인생을 망치길 바라지 않았다.


“명심해. 강수는 회계사가 되고 너는 어머니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되면 되는 거야.”

“오빠······.”

“빚 갚는 날이 언제라고?”

“다음 달 셋째 주 월요일.”

“알았어. 그때까지 돈 구해 올게. 참, 이건 내 번호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이강재는 신미소에게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고 서둘러 병원을 나왔다.

길을 걸으며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며 걸었다.


“분명 놈들은 한 석 달간 만나 주지 않을 거야. 그러니 삼천보다 더 큰돈이 필요해.”


사채를 하는 놈들의 수법은 뻔했다.

빚을 늘리려고 돈을 갚으러 와도 만나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최소 원금의 두 배는 생각해야 했다.


“대충 빡세게 돌면 되겠지. 일단 장비부터 사자.”


아무런 기술도 없는 이강재가 큰돈을 구할 방법은 도둑질뿐이었다.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한 달 동안 아니 적어도 석 달 동안 열심히 빈집을 찾아다니면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다.

이강재는 도둑질을 위한 장비를 구하기 위해 떠났다.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흠. 바로 전화를 할 줄 알았더니 도둑질이라. 어쩔 수 없군요. 오달소를 이용할 수밖에.”


금발의 사내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멀어지는 이강재를 바라봤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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