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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해달달

평범한 서점이라고 하기엔 서점직원들이 평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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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해달달
작품등록일 :
2020.05.11 15:16
최근연재일 :
2020.06.02 21:25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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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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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7,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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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7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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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열등감 그리고 근성(4)

DUMMY

류선경은 며칠째 기분이 좋았다.

며칠 전 이상한 업무지시를 한 자신의 사장에게 허유진을 핑계로 시원하게 한 방 먹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반예준이 지시한 일들도 거의 해결했다.

물건 중 일부는 이미 지하실에 보관중이고, 현재 공사 중인 창고만 완성되면 나머지 물건을 수송할 예정이다.

류선경은 기분 좋게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류매니저, 오늘은 '도서관'에 가고 싶은데.”


책을 보러 내려온 반예준이 류선경 옆으로 다가왔다.

손에는 '나락'에 대해 연구한 책이 들려있었다.


“네? 서점 사장님이 공공도서관 가겠다는 건 아닐 테고. 설마 나락 말하시는 건가요?”

“어. 그래.”

“저기 사장님, 사장님은 따로 입장 자격이 있으신 것도 아니고, 사관학교 생도도 아니잖아요. 돈이야 황실에서 지원되니까 문제가 없지만, 지금 당장 예약해도 1년이 넘게 걸릴 텐데요······.”

“아~ 그래? 그런데 난 오늘 가고 싶은데?”


반예준은 류선경을 빤히 쳐다봤다.

반예준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기분을 망치는데 소질이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말씀하시면······.”

“그래서 갈 수 있어? 없어?”

“······갈수야 있죠.”


제경대에 배정된 입장권한이 있었다.

다른 위상과는 달리 안전하게 렙업할 수 있는 곳이 나락이다.

그 비싼 입장권한을 이 남자에게 써야하다니.

아까운 마음에 류선경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면 오후에 가자고, 책보고 있을 테니 준비해놔.”

“네, 사.장.님.”


류선경은 또박또박 자신의 고용주에 대한 공.경.심. 을 담아 대답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알바생이 학교에 가있는 오후 시간.

사장과 매니저는 1위상 영구 위상문에 도착했다.

여의도 내에 있다보니 서점에서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좀 실망인데?”

“뭐가요?”

“사진에서 보던 위상문이 딱 보일 줄 알았는데, 건물 안에 있나 본데.”


반예준의 눈앞에는 거대한 체육관 같은 건물이 서있었다.


“예, 그래야 입장 통제가 되니까요.”

“저쪽으로 가면 되나?”


반예준은 건물 안에 입장하기 위해 밖에서 대기하는 고등학생들 쪽으로 가려고 했다.


“아뇨, 저 따라오세요. 저희는 입구가 달라요.”


둘은 각성자가 되기 위해 도서관에 처음 들어가는 고등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났다.

다들 긴장해있는지 그 나이 특유의 명랑함은 없었고 얼굴이 굳어있었다.

대한제국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본인이 원한다면 각성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생 중 80~90퍼센트는 각성에 지원했다.

물론 각성식을 한다고 해서 모든 학생이 높은 잠재등급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대부분이 저레벨의 잠재등급을 받는다고 해야할 것이다.


“애들 고1이지?”

“네, 각성 확인을 하고 자신의 진로를 정해요.”

“참, 좋은 세상이네······.”


반예준은 불친절했던 자신이 살았던 세계를 떠올렸다.

그래서 본인의 소설에 각성자의 상태창 설정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나락은 이 나라에서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지?”

“네, 1위상 나락의 통로는 대한제국에만 다섯 군데 있어요. 알다시피 나락은 특별하죠. 나락에서의 죽음은 실제 죽음이 아니니까. 대한제국이 각성자 최강국이 된 이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각성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각성 하지?”

“첫째, 가만히 각성할 때 까지 기다린다. 확률이 낮죠. 둘째, 돈 주고 우리나라에 온다. 참고로 1회 입장권한은 5천만 원, 1년 입장권한은 200억 원이 넘습니다. 방금 말한 건 몇 자리 안 되는 공식 구입가격이고 제 가격에 구하기는 어려워요. 개인거래는 피가 붙어서 더 비싸죠. 그것도 없어서 못 구해요. 셋째, 목숨 걸고 2위상, 3위상에 가서 악의체를 잡는다. 미국 같이 군사력이 뛰어난 나라는 우리나라만큼은 아니더라도 안전하게 각성자를 수급하고 있어요. 자, 우리는 여기로 들어가면 됩니다.”


둘은 복잡한 절차를 통과한 후, 위상문으로 향하는 복도에 섰다.

복도의 끝에는 파란색 물결의 막이 보였다.

좁은 복도가 위상문까지 이어져 있어 위상문의 전체모습을 볼 수 없었다.

여러 개의 복도가 따로 위상문까지 이어져있는 구조라 입장 대상에 따라 다른 입구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퀘스트 깨고 올게. 기다리고 있어.”

“퀘스트는 무슨······.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1위상에 최초 입장하면 먼저 임무(Quest)가 부여된다.

도서관의 입구를 찾는 것.

수십 년간 임무를 완료한 사람은 없었고, 임무 역시 바뀌지 않았다.

도서관의 입구를 찾기 위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연구했다.

하지만 셀 수 없는 악의체가 있는 공간에서 각성자도 아닌 일반인이 도서관에 다가가는 방법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끝도 없이 높은 건물을 멀리서 봤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건물이 도서관일 거라는 예상들을 했지만 아직까지 그곳에 도착한 사람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현실에 타협한 사람들은 임무 실패를 당연시했다.

대신 오랫동안 생존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사람들은 나락안에서의 생존에 관한 수많은 연구물들을 공부해서 입장한다.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물은 어떻게 구하는지.

악의체들은 어떻게 상대하는지.

격투기와 체력훈련까지.

하지만 실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기력했다.

이 황폐한 세계가 자기 눈앞의 현실이 되면 막상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또한 날씨, 지형, 환경, 적 모든 것이 입장하는 사람마다 다 달라지는 바람에 준비했던 것들이 소용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게다가 최초입장의 경우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의상마저 허름한 옷으로 자동으로 바뀐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마치 무언가 시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반예준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말했다.


“아뇨, 오래 있다 오세요. 현재까지 연구결과 생존시간과 각성결과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혀졌으니까요.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워도 되니까 오래 오래 있다 오세요.”


어디 동네 마실 이라도 가는 것 같은 반예준의 말에 류선경은 철없는 아들이 생긴 기분이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기록 중에 최초입장 도전 최고 기록이 현실시간 12시간.

현실과 1위상의 시간 괴리는 1:20의 비율.

그 사람은 1위상에서 무려 열흘을 버틴 것이다.


“그리고 정말 조심하세요. 위험하면 포기선언 하고요. 1위상에서 죽음은 실제 죽음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때 느끼는 감정은 진짜에요. 실제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의 죽음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어요. 발작과 공황은 부지기수고요. 의사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는 이유가 있어요.”


최초 입장의 경우 포기선언을 하거나 죽을 경우 자동으로 위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어, 알았어.”


반예준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위상문으로 향했다.


‘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류신재와의 일도 있고, 아예 허풍만 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류선경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반예준이 어떤 결과를 낼지 궁금했다.


반예준은 천천히 위상문을 통과했다. 위상문을 지나는 동안 잠시 시야가 불편했지만, 잠시 후 반예준은 허물어져가는 건물 안에 서있었다.


[도서관의 입구를 찾으세요.]


눈앞에 퀘스트가 떴다.


“어디, 한번 찾아볼까.”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락의 접근 코드는 벌써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1위상을 분석했다.

사실 반예준은 굳이 위상문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본인이 나락의 입구를 만들 수 있었지만 최초입장 퀘스트 때문에 류선경을 귀찮게 한 것이다.


“찾았다. 북서방향 30Km 이상”


건물 밖을 나가자마자 악의체들이 환영했지만 반예준은 쉽게 뿌리치고 하늘을 갈라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가지 않아 반예준은 높이 솟아있는 도서관을 볼 수 있었다.

도서관이 거대하다 보니 보이고 나서도 꽤 더 가야 했다.

도착 후 도서관의 외관을 잠시 살펴봤다.

도서관의 외벽엔 따로 창이 있지는 않았다.

외벽을 따라 한 바퀴 뛰어서 돌아봤지만 따로 입구는 없었다.


‘부숴볼까? 아, 노크를 해야 하나?’


쾅, 쾅


반예준은 혹시나 해서 외벽에 노크를 했다.

자고 있는 집주인이 놀래서 깰 정도로.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 완료 알림과 동시에 외벽에 출입문이 생겼다.

반예준은 문을 열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그렇게 노크를 강하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반예준을 반겨준 것은 50대로 보이는 흑인 남자였다.

한쪽 눈에 황금색 안대를 차고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남자는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너는 누구지? 여긴 어디고?”


누군지 모르지만 제작자의 하수인일터 반예준은 눈앞의 사내가 달갑지 않았다.


“나는 도서관장이오. 에드워드라 부르시요. 그리고 여긴 도서관 마지막 층이요.”


문을 열고 들어왔으니 당연히 1층이라는 생각이 들법하지만 도서관에서는 공간의 개념이 달랐다.

반예준도 특별히 놀라지 않았다.


“흠, 두 명이오.”


도서관장은 갑자기 뜻 모를 소리를 했다.


“갑자기 뭐가 두 명이라는 거지?”

“저 입구로 들어온 사람 말이오.”

“나 말고 그 다른 한명이 누군지 알겠군. 황제라고 불러야 하나, 제작자라고 불러야 하나, 개자식이라고 불러야하나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도서관의 주인에게서 언질이 있었소.”

“여기선 도서관의 주인이라 부르나 보군.”

“개자식 보다는 그쪽이 부르기 나은 것 같소만.”


반예준의 무례한 태도에도 도서관장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그 놈이 뭐라고 했는데.”

“누가 방화벽을 넘어 들락날락 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라 하였소. 그런데 그 사람이 예상치 못하게 입구로 들어와서 조금 당황했소.”

“아~ 퀘스트라는 게 궁금해서, 그리고 그게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도.”

“불가능 하오. 당신은 이미 존재의 격이 다르오. 나락 시스템에서 이뤄지는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오.”

“예상은 했다.”


반예준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건곤’이나 ‘루나’에서는 다를 것이오. 그곳과 나락은 개념이 다르니. 나락은 오로지 지구의 성장을 위한 설계로 만들어진 세계요. 지구가 악의체를 상대하기 위한. ‘나락’이라는 것은 이 도서관의 이름이자 성장 시스템의 이름이기도 하오. 이미 격을 넘어선 당신에게 나락은 아무런 의미가 없소.”

“돌려 말하지 마, 결국 그놈들 때려잡으라는 거잖아.”


제작자라는 놈. 알아서 하라고 하더니 결국 반예준에게 바라는 것이 있음이었다.


“······나는 당신이 부럽소.”


불만이 가득한 반예준을 잠시 지켜보던 도서관장이 입을 열었다.


“왜?”

“당신은 나의 고향에 갈 수 있잖소.”

“아! ‘후회로 점철된 미망들’이라더니 당신은 이미 멸망한 세계의 존재였군.”

“그렇소. 우리는 종언의 존재에 갈기갈기 찢긴 채 실체 없이 도서관에 갇힌 비루한 존재들이요.”

“나도 다를 바 없어. 단지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


제작자의 하수인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멸망한 세계의 사람이라고 하자 반예준의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래도 당신은 당신이 직접 복수할 기회가 있잖소. 도서관에 갇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하지만.”


도서관에 갇힌 그들은 게임의 NPC마냥 No.15의 인간들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이외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무례하게 굴었던 걸 사과하고 싶군.”


반예준은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운 사람에 대한 존중을 보였다.


“괜찮소. 그런 걸 마음에 두자니 후회와 분노로 가득 찬 내 가슴엔 다른 감정을 넣을 빈자리가 없소. 그건 그렇고 도서관의 주인이 전하라는 게 있소.”


도서관장은 서랍에서 두 권의 책을 꺼내 전달했다.


“당신의 가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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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전설의 시작(3) +3 20.05.28 83 9 12쪽
27 전설의 시작(2) +7 20.05.26 90 10 12쪽
26 전설의 시작(1) +6 20.05.25 93 10 12쪽
25 오해와 의문(9) +3 20.05.24 10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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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오해와 의문(7) 20.05.23 75 5 11쪽
22 오해와 의문(6) +2 20.05.23 85 7 14쪽
21 오해와 의문(5) 20.05.22 94 4 15쪽
20 오해와 의문(4) +1 20.05.21 126 5 14쪽
19 오해와 의문(3) +1 20.05.21 108 4 14쪽
18 오해와 의문(2) +1 20.05.20 125 6 12쪽
17 오해와 의문(1) 20.05.20 86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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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열등감 그리고 근성(8) +2 20.05.19 105 9 12쪽
14 열등감 그리고 근성(7) +1 20.05.18 211 4 11쪽
13 열등감 그리고 근성(6) 20.05.18 87 5 12쪽
12 열등감 그리고 근성(5) 20.05.17 112 2 13쪽
» 열등감 그리고 근성(4) 20.05.17 110 6 13쪽
10 열등감 그리고 근성(3) 20.05.16 105 3 15쪽
9 열등감 그리고 근성(2) 20.05.15 99 5 13쪽
8 열등감 그리고 근성(1) 20.05.14 107 5 8쪽
7 설계 혹은 인연(4) 20.05.14 128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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