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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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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8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7.13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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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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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79화

DUMMY

족히 천 마리는 넘어 보이는 까마귀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마치 하늘을 나는 한 마리의 거대한 괴수처럼 보였다. 그 까마귀들은 날아오른 채로 울음소리를 내며 한동안 봄이의 머리 위를 맴돌다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넋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봄이의 눈 앞으로 무수한 수의 검은 깃털이 흩날려 떨어졌다. 그 검은 깃털만을 남긴 채로 까마귀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까마귀들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난 뒤에도 봄이는 좀처럼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은 까마귀들이 휩쓸고 지나간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까마귀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흩날리던 검은 깃털들도 모두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텅 빈 허공을 떠다니던 검은 깃털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봄이의 콧등을 스쳤다. 그제서야 봄이는 까마귀들이 몰려 있던 공터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공터 주변에는 낮은 건물들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건물들은 아무리 높아도 1층을 넘기지 못해 보였다. 건물들 사이의 각 맞은편에는 폐가구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대충 지은 벽돌 계단으로 이어진 허름한 시멘트 벽은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봄이가 공터 밖에 있을 때에는 쌓인 잡동사니들과 건물들 때문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봄이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공터 내부에는 족히 대여섯 구는 되어 보이는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봄이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으나 막상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온 몸의 골수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걸 본 봄이는 조용히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시신들 주위에 눌러붙은 핏자국에는 까마귀들의 흔적으로 보이는 검은 깃털들이 지저분하게 엉겨붙은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시신들은 하나같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만약 사람이 저지른 짓이었다고 한다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시신들을 고깃덩이처럼 토막내 눈더미 속에 파묻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어떤 시신은 팔이 없었고, 또 다른 시신은 아예 하반신이 없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핏자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봄이에게는 그 시신들이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자꾸만 보고 있자니 기분이 나빠진 봄이는 이내 시신으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그 모습은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또다시 생각날 것만 같았다.


시신을 알아채고 근처에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봄이와는 달리 상민은 태연하게 시신 한복판으로 걸어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핏자국으로 얼룩진 가방을 주워 가지고 왔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봄이는 그런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왠지 모를 존경심마저 느꼈다.


“아직 이런 건 익숙하지 않은가 보네.”


쭈그려 앉아 피 묻은 가방을 뒤지던 상민이 그렇게 말하고는 봄이의 발밑으로 가방을 집어던졌다. 깜짝 놀란 봄이가 기겁하며 물러나자 상민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떨어진 가방을 다시 주워들었다.


“조만간 곧 익숙해질 거야.”


봄이는 방금 전까지 들었던 그에 대한 일말의 존경심이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쥐꼬리만큼의 존경심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가 어떻게 시신을 눈앞에 두고 웃을 수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꿰찼다. 그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신을 봐왔던 것일까? 또 시신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그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지게 될 때까지의 시간은 과연 얼마나 걸렸을까?


별안 듯 궁금해진 봄이가 물었다.


“당신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죠?”


정신없이 가방을 뒤지던 상민의 눈초리가 봄이에게로 향했다. 봄이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적으로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상민은 그다지 상관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 적 없어.”


봄이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봄이는 더욱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걸 보고도 그렇게 담담할 수 있죠?”


“눈 앞에서 죽어가는 녀석들은 많이 봤으니까.”


상민이 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는 피 묻은 가방을 어깨에 들쳐매고 봄이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다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무덤덤하게 그녀를 지나쳐갔다. 그러다 몇 걸음 가지 않고 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먹다 남은 초콜릿인데 먹을래?”


상민이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초콜릿 포장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봄이는 죽을 만큼 배가 고팠지만 손바닥을 내저었다. 얼어붙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시체 사이에서 나온 음식까지 먹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봄이가 손을 내젓기도 전에 초콜릿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차량으로 돌아가다가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한 번 봄이를 뒤돌아보고 말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괜한 자존심 내세우지 마. 그런 건 지금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상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차량으로 돌아가 버렸다. 봄이가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그녀는 가로등 전선에 홀연히 앉아 있는 무엇인가와 눈이 마주쳤다.


건물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전선에는 날아가버린 줄 알았던 검은 까마귀들이 새카맣게 앉아 있었다. 천 마리는 되어 보이는 까마귀들은 그곳에서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봄이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까마귀들은 절대로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마치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까마귀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봄이는 처음에는 그것들의 식사 시간을 방해한 자신이 어서 빨리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문득 봄이의 머릿속에서 돌연히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자신이 그 자리에 쓰러져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봄이는 고개를 홱 돌려 하늘 위에 줄지어 늘어선 까마귀들을 쳐다보았다. 전선에 앉은 까마귀들은 조용히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까악, 하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이따금씩 공허한 바람 소리만을 타고 봄이의 귓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봄이는 그 울음소리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봄이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고 몸을 돌려 차량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상훈과 상민은 아까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한창 떠들고 있었다. 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기어들어가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아까 그것들은 뭐였어?”


상훈이 운전대에 턱을 괸 채로 묻자 상민이 흥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뭐였긴 뭐였겠어. 불쌍한 녀석들만 있었어. 죽은 지 최소 일주일은 된 모양이던데.”


상민이 딱딱한 초콜릿을 이빨로 힘껏 깨물자 그것을 본 상훈이 그의 말에 흥미를 가졌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봐. 무슨 이상한 점이라던가 그런 건 없었어?”


“이상한 점? 물론 있었지. 들어봐, 시체들이 몇 구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게 당했어. 도대체 어떤 녀석한테 그런 꼴을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참 불쌍한 녀석들이야. 팔다리가 없는 녀석도 있었고, 다리가 없는 녀석도 있었지. 하지만 분명히 까마귀들에게 당했던 건 아니었어. 마치 누군가에게 강제로 사지를 찢기기라도 한 것처럼.....”


상민의 말에 상훈이 비꼬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런 짓을 할 녀석은 분명 인간은 아니겠군.”


“어쩌면 정말로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상민의 태도는 아까 전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봄이에게 보이는 그의 얼굴은 어딘가 사뭇 심각해 보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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