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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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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7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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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DUMMY

작은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상훈은 마른 남성에게서 약품 대신 건네받은 식량 가방을 만족스럽다는 듯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다.


봄이도 얼굴을 들이밀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그 가방을 볼때마다 김이 나는 사람고기 수프(사실 그 국이 사람고기로 만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봄이는 아예 저 가방에 몸을 반으로 가른 사람 몸뚱이가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지만 상훈의 만족스런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게 맞다면 상훈이 사실 식인종이었다거나.


저 멀리서 작은 집 담벽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로에서부터 작은 집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이 조용한 것을 보니 아직까지는 작은 집에 아무런 이변도 생기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하늘만큼은 봄이가 작은 집에서 나왔을 때보다 훨씬 울적해져 있었다. 해가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치고는 드문 현상이었다. 비가 오려나? 아니,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데......


그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잊을 만하면 들려오던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멈췄다. 거기까지는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일어난 일이 봄이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작은 집 주변에서 시체를 뜯어먹던 까마귀 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 수가 어찌나 많았는지 울적한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전에도 봄이는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달랐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불길한 감각이 봄이의 머릿속에 스쳤다. 그 이유를 알아내기도 전에 수많은 까마귀들은 모두 경계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까마귀들의 날갯짓은 예전처럼 질서정연하지 않았다. 마치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위험을 느끼고 무작정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바로 그 순간 짐승이 표효하는 듯한 우렁찬 괴성이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울려퍼졌다. 봄이에게는 난생 처음 듣는 위협적인 소리였다. 이 정도 괴성이라면 이 세계에 남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분명히 하나도 빠짐없이 이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상훈은 소리를 듣자마자 가방을 돌려메고 자세를 낮췄다. 봄이도 반사적으로 권총을 빼들었다.


봄이와 상훈은 바퀴가 부서진 차량의 잔해 뒤에 숨은 채로 ‘괴물’을 볼 수 있었다. ‘괴물’ 은 네 발로 걸어다녔고, 하반신의 두 배는 될 듯한 상반신은 죄다 북실북실하고 비쩍 마른 털로 덮여있었다. 대가리부터 척추까지 이어지는 등줄기에는 빳빳한 갈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몸 전체의 반을 차지하는 대가리에는 위협적이고 날카로운 엄니가 돋아나 있었다.


자세히 보니 괴물은 혼자가 아니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놈이 어슬렁거리며 까마귀 떼들이 먹다 남긴 시체더미로 향하자 그 뒤를 따라 몸집이 작은 여러 괴물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괴물들은 그 자리에서 날카로운 엄니로 시신들을 찢어내더니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봄이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전에 그들 형제가 차량 안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단 일순간의 기억만이 떠올랐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그것이 지금 봄이의 눈앞에 있었다.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봄이는 시체를 뜯어먹는 괴물들에게서 시선을 치워버렸다. 또다시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발자국 소리라도 잘못 냈다가는 곧바로 저 피에 굶주린 잔혹한 괴물에게 갈가리 찢길 것이 분명했다.


봄이도 추위로 먹을 것이 없어진 야생 멧돼지들이 종종 도심가로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괴물들은 봄이가 아는 멧돼지 무리들이 아니었다. 멧돼지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봄이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허구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봄이의 철썩같은 믿음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깨지지 않았다.


작은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족히 다섯 놈은 되어 보이는 괴물들이 작은 집으로 향하는 모든 경로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봄이가 괴물들을 피해 한 걸음씩 자리를 옮길 때마다 괴물들의 청각이 곤두세워졌다.


상훈이 조용히 봄이에게 속삭였다.


“괜시리 놈들을 자극해서 좋을 건 없겠어.”


상훈이 손가락으로 익숙한 골목 뒤편을 가리켰다. 이전에 상민과 함께 걸어나왔던 적이 있었던 좁은 진흙탕 골목이었다. 골목으로 이어지는 통로 근처에는 그나마 괴물들이 적었던 것이다. 봄이도 곧 그의 의도를 알아채고 발 끝에 힘을 준 채 외진 골목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동안 그 어떤 괴물의 주의도 끌지 않을 수 있었다. 골목 통로는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모퉁이 뒤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점과 발이 흙탕물에 푹푹 빠진다는 것만 제외하면 은밀히 이동하는 통로로 사용하기에 적합했다.


골목 사이사이 보이는 주택마다 고드름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담벽이 무너져 내려 콘크리트 철근과 벽돌들이 폭삭 내려앉아 있는 건물 주변에는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봄이는 이미 발이 젖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제 이 모퉁이만 지나면 작은 집 담벽이 코앞에서 보이는 거리였다.


그러나 모퉁이를 지나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봄이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봄이는 분명히 괴물들이 시체에만 정신이 팔려 있을 뿐 골목 출구에서 떡하니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예측하지 못했다.


통로의 출구에 다다르자마자 물기에 젖은 털이 햇빛을 받아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곱사등이 괴물의 붉은 눈동자가 봄이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괴물의 입가 주변에는 검붉은 피로 물든 이빨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1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마주친 봄이의 다리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괴물이 봄이의 기척을 눈치채자 낮게 그르릉거렸다. 봄이는 숲속에서 맹수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절대로 등을 보여서는 안 되며, 절대 섣부르게 행동해서 맹수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모범 행동지침들이 생각나기도 전에 봄이의 이마에서는 식은땀만 흘러내렸다.


괴물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높이며 봄이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총을 겨누어야 했다. 총만 저 괴물의 머리통에 겨누고 발포할 수만 있다면. 총을 겨눌 수만 있다면......


이윽고 괴물이 공격하기로 결심한 모양인지 갑작스럽게 땅을 박차며 봄이에게로 달려들었다. 봄이가 권총을 치켜들어 돌진해오는 맹수에게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누군가가 몸을 날려 봄이와 함께 길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한참 동안이나 길바닥을 구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봄이에게 상훈이 소리쳤다.


“제정신이야? 그런 걸로 놈들이 끄떡이나 할 것 같아? 빨리 일어나.”


상훈이 봄이의 팔을 잡고 일으키기도 전에 소리를 듣고 몰려온 다른 두 괴물이 달려들었다. 작은 집으로 이어지는 방향은 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더 깊은 골목 내부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봄이의 속도보다 괴물이 더 빨랐기 때문에 넓게 트인 공터로 도망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봄이는 괴물들이 지나치기 힘든 작은 가로수나 이따금씩 보이는 철제 난관 사이사이를 지나쳐갔다. 그럴 때마다 작은 가로수는 송두리째 뽑혀나갔고, 철제 난관들은 나사가 뽑혀 휘어지기도 했다. 만약 괴물들에게 따라잡히기라도 한다면 몸이 어떤 꼴이 될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앞서 달리던 상훈이 밑부분이 내려앉은 2층 건물을 발견하고 봄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바닥에 수북이 쌓인 쓰레기 더미를 밟고 뛰어올라 가까스로 열려있던 2층 창문으로 손을 짚을 수가 있었다. 상훈이 재빨리 올라서고, 다음으로 봄이가 뛰어올랐다. 봄이가 상훈이 뻗은 손을 잡고 난 직후 달려든 괴물들에 의해 쓰레기 더미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 * *


봄이는 상훈에 의해 끌어올려지자마자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래에서는 사람고기에 굶주린 맹수들이 온 세상이 떠나가라 괴성을 질러댔다. 봄이는 그대로 누구의 집인지도 모르는 집 안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한참 동안이나 시끄러운 소리를 지르던 괴물들이 곧 잠잠해졌다. 봄이는 자신들을 포기한 것이 틀림없다고 믿고 싶었다. 너무 무리해서 달려서인지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폐를 움켜쥐고 봄이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가버린 걸까요?”


“그랬으면 좋겠어.”


집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냉장고는 쓰러져 있었고, 탁자는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두 발이 닿는 감각을 자세히 집중해 보니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었다. 물감이라도 칠한 듯 지저분한 바닥에는 유리 조각이나 나사들만 굴러다녔다.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늘어뜨려진 전선 뭉치들이나 콘센트는 피복이 죄다 벗겨져 있었다.


집 전체가 기울어져서인지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봄이가 넘어지려는 것을 상훈이 몇 번이고 잡아주었다. 반쯤 깨진 유리창 사이로 훤히 비치는 햇빛이 바닥에 널린 유리 조각들과 함께 반짝거렸다. 봄이는 조용히 깨진 유리창 틈새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모르는 마음에 시체더미도 확인했지만 괴물들이 함께 데려온 어린 새끼들만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봄이를 덮치려 했던 큰 괴물들은 사라지고 온데간데없었다. 봄이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 집......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요? 다른 집들과 다르게 유난히 이 집만 기둥이 무너져서 내려앉은 것 같아요. 여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상훈이 쭈그려 앉아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봄이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진이 일어났던 걸까요?”


상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처 도로나 다른 집을 보면 지진이 일어났던 것 같지는 않아. 무엇보다 내가 이곳에서 산 지 몇 달은 족히 넘었는데 지금까지 그런 기미는 없었어. 일부 지방이나 외딴 도로가 지진으로 붕괴됐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는데 그다지 신뢰가 가는 정보는 아니야. 그건 그렇고......”


상훈이 말을 끊고 벽에 귀를 바짝 들이댔다.


“무슨 소리 안 들려?”


봄이가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발에 걸린 유리 조각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요.”


봄이가 의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상훈의 표정은 심각하기만 했다.


“예감이 안 좋아...... 어서 여길 벗어나는 게 좋겠어. 날 따라와.”


상훈이 가버리자 봄이가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집 안에는 온통 미세먼지가 가득했다. 상훈이 문을 가로막고 있던 서랍장을 치우자마자 주먹만한 쥐 몇 마리가 재빨리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봄이는 그 광경을 보고는 잘못하면 쥐를 밟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집 끄트머리에는 깨진 베란다가 훤하게 열린 채 칼바람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피투성이였지만 사람이나 동물의 시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베란다 바로 밑에는 찌그러진 버스가 보였다. 상훈이 밑을 가리켰다.


“저 버스 천장으로 우선 뛰어내리는 게 좋겠어. 저기로 뛰어내리는 걸 성공하면 바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달려. 그러면 바로 작은 집 담벽이 보일 거야. 놈들이 거기까진 쫓아오지 못할 거야. 만약에 계획이 틀어진다면....... 내가 찾아갈 때까지 꼼짝도 하지 말고 숨어있어. 알아들었겠지.....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봄이가 고개를 끄덕인 뒤 뛰어내리려 하자 상훈이 어깨를 붙잡았다.


“권총은 사용하지 마. 저지력도 없을뿐더러 안 그래도 미쳐 날뛰는 녀석들을 더 화나게만 할 뿐이야.”


봄이는 힘껏 버스 위로 몸을 던졌다. 발이 쑥 빠지지는 않았지만 꽈당 하는 소리가 고요한 세계의 공기를 타고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예상외로 큰 소리에 봄이가 재빨리 주위를 경계했지만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전하다고 판단한 봄이가 위에다 대고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던 건물 그림자 사이에서 쥐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던 괴물이 무서운 속도로 봄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괴물은 봄이에게는 닿지 못하고 그녀가 밟고 서 있던 버스를 엄청난 힘으로 들이받았다.

계획은 틀어졌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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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5화 20.11.28 30 0 14쪽
97 95화 20.11.23 41 0 13쪽
96 94화 20.11.20 40 1 9쪽
95 94화 20.11.19 6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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