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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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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9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20.12.1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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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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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101화

DUMMY

“반갑다. 참고로 아까 그 이야기들은 너한테만 들려줬어. 저 아이들은 그런 현실을 마주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거든. 반면에 넌 보통 녀석이 아닌 것 같구나.”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그야, 여자애 혼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종민이 깡통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사실 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서 절대로 ‘혼자’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정말로 봄이가 혼자 여정을 시작했다면........그것은........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아무튼 운이 좋았다는 거야. 한잔 할래?”


종민이 손에 든 병을 흔들며 말했다. 봄이가 물었다.


“그게 뭔가요?”


“우린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식량이나 물을 구하면 제일 먼저 저 아이들한테 물어봐. ‘배고프지 않니, 목마르지 않니?’ 라고 물어보지. 그러면 들려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아.


‘네. 배고파요. 목말라요.’. 그러고는 우리가 구한 식량을 반이나 먹어치워 버려. 아이들이 먹다 남기면 그제서야 우리가 남은 식량을 먹지. 그런데 마실 걸 구해도 저 아이들한테 절대로 주지 않는 게 있어. 그게 뭐겠어? 바로 이거지. 정말 끝내줘.”


종민이 액체가 가득 담긴 깡통을 봄이에게 내밀자 봄이가 손을 내저었다.


“사양할 것 없어. 보아하니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모양인데 그렇다면 분명히 이 맛을 모르고 있겠지. 쭉 들이켜도 돼. 괜찮다니까...... 미성년자라서 안 된다고? 요즘 시대에 누가 그런 걸 신경쓴다고.”


마침 돌아온 젊은 여성이 그 광경을 보고는 기겁해서 소리쳤다.


“미쳤어요? 애한테 권해도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지.”


“왜 그래, 요즘 십 대들도 알 건 다 안단 말이야.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종민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그가 든 병을 재빨리 빼앗았다. 두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던 봄이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두 분은.......”


여자가 쓰고 있던 캡모자를 벗고 자리에 앉자 검은 장발이 드러났다. 그녀가 말했다.


“아직 알려주지 않았구나. 난 은지야.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 넌 이름이 뭐니..... 그렇구나. 혹시 몇 살이니? 열 여섯이라......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고등학생이 되겠는걸.”


“아직 고등학생도 안 됐단 말야?”


종민이 반쯤 감긴 눈을 껌뻑이며 끼어들었다. 금방이라도 중심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은 몰골이었다.


“됐어. 저 사람은 벌써 맛이 갔으니까 신경쓰지 마.”


은지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민을 강제로 아이들이 잠든 침낭으로 끌고갔다. 종민은 잠깐 동안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곧 어린애처럼 잠이 들었다.


은지가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늘 저런 식이야. 우리가 이렇게 편히 쉬고 있을 때에도 혼자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지도 모르는데. 바로 너처럼 말이야. 널 일찍 찾아서 데려올 수 있어서 다행이야. 조금만 늦었어도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


은지가 접이식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한쪽으로 전부 밀어냈다. 봄이가 말했다.


“아이들만 모아서 데리고 간다는 식인종 이야기 말인가요?”


“저 사람이 괜한 말을.......”


은지가 아이들이 자고 있는 침구를 노려보다가 곧바로 고개를 돌려 봄이를 안정시켰다.


“그렇기는 한데 신경쓸 것 없어. 녀석들의 본거지는 여기서 아주 멀어. 적어도 여기 있으면 그 식인종들 눈에 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그자들에게 붙잡혀갈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먼저 찾아서 도와주는 게 목표니까. 날이 밝으면 더 많은 아이들을 찾으러 나갈 거야. 그 때는 너도 우리들을 도와줘야겠어.”


봄이는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 판국에 보호해야 할 대상을 더 늘린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봄이는 알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은 약자들을 모아 무너져가는 세계를 지키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다음 세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어린아이들을 모아서 신세계라도 세울 셈인가? 두 사람의 계획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터무니없이 거대한 사명이라고 느껴졌다.


“넌 어쩌다가 이곳에 오게 됐어?”


은지가 의아한 눈길로 봄이에게 물었다. 봄이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오래 전에 소식이 끊긴 가족들을 찾고 있어요.”


“가족이라,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네.”


은지가 팔짱을 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시늉을 했다.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것까지 구구절절 말해줄 필요는 없어. 여기서 중요한 건, 지나간 과거는 지금 여기 있는 우리들이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야. 네가 어떤 계기로 인해서 가족이랑 떨어졌든, 무엇 때문에 가족들을 찾으려고 하든 간에 정작 중요한 건 ‘정말로 찾을 수 있느냐’ 는 거야. 그런 것에 대해서 혹시 생각해본 적 있어?”


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정말로 가족들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면 봄이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계획이 없는 모양인데, 무작정 찾아나서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부주의해서는 안돼. 절대로 혼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마. 여긴 네가 상상하는 곳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니까 말이야. 지금 당장 식인종들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정말로 위험한 건 식인종들과 이어져 있는 인신매매단이야. 녀석들은 정체를 숨긴 채로 이곳저곳에 숨어있어. 너와 가까운 사람일수도 있고, 지금 어딘가에서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 그러니 절대로 우리 곁에서 떨어져서는 안 돼.”


식인종이든 인신매매단이든 봄이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하고 싶어하는 말은 ‘누구도 믿지 말라’ 는 것뿐이었다. 누구도 믿지 말라...... 그렇다면 이들은 믿어도 될까? 가까운 사람......어딘가에서...... 그것보다 가족들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


봄이의 심란한 기분을 눈치챘는지 은지가 우선은 자두라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자신은 잠깐 볼 일이 있다며 트레일러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제 트레일러 안에는 봄이와 코 고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봄이는 조용히 타오르는 화롯불에 차가운 두 손을 가져다 댔다.


이제 자야 했다. 그러나 봄이는 자고 싶지 않았다. 잠이라면 그 역겨운 가방 속에서 질리도록 잤고, 무엇보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을 두고 무방비하게 잠을 잘 수는 없었다.


“누나.”


봄이의 눈앞이 어두워졌다. 피를 얼어붙게 했던 기억들이 다시금 떠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곧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제 잠에서 깨어났던 것인지 담요를 덮고 있던 지저분한 소녀가 봄이를 불렀다. 분명히 여자아이였음에도 소녀는 봄이를 ‘누나’ 라고 부르고 있었다.


“누나, 배고파. 거기 있는......비스킷 좀 줘.”


봄이는 얼떨결에 소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검은 봉투를 가져다주었다. 아까 전 이들과 처음 만났을 때 종민이 봄이에게 내밀었던 봉투였다. 비스킷이 들어 있었구나.


소녀가 받아든 봉투를 입에다 털어넣자 봄이가 물었다.


“마음대로 먹어도 되는 거야?”


“응, 이 아저씨가 배고프면 마음대로 꺼내 먹어도 된댔어.”


소녀가 입 안에 잔뜩 넣은 채로 곤히 잠든 종민을 가리켰다. 적어도 봄이가 전에 머물렀던 다른 곳에서는 한정된 식량을 협의 없이 멋대로 집어먹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이 사람들이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누나도 먹어도 돼.”


“언니, 라고 불러야지.”


지저분한 머리칼이 엉켜 있는 소녀는 겨우 일곱 살 남짓 되어 보였고, 반쯤 벗겨진 외투 사이로 삐쩍 마른 팔뚝이 드러나 보였다. 목에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미아방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소녀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옆에 잠든 다른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 얘가 은지 누나를 부를 때 누나라고 불렀단 말이야.”


순간적으로 봄이의 머릿속에서 홀로 아기를 달래던 기이한 남자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울기만 하던 갓난아이, 그런 아기에게 남자가 불러주던 노랫소리......


“누나, 누나는 몇 살이야? 어디에서 왔어?”


봄이는 무시하고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봄이가 소녀에게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지저분한 소녀는 계속해서 봄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애써 떨쳐버리려고 했지만 독하게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이 소녀가 뭐라고 말하든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봄이는 그렇게 지저분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난 우리 엄마랑 아빠 손을 잡고 어디론가로 갔었어. 어디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 아무튼 거기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 난 어디로 가는지조차 몰랐는데 어찌되었든 간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들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야. 좀 담벽이 높게 둘러져 있고 주위에는 철조망이 막 감겨져 있었어. 엄마는 절대로 자기 손을 놓치지 말라고 했어. 난 엄마 말을 어기지 않으려고 엄마 손을 놓치지 않았어.


우리는 그 좁은 담벽 안에 쳐진 조그만 천막 안에서 사흘 정도 버텼는데, 그 동안 엄마랑 아빠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 엄마는 바깥으로 나갔다가 천막으로 돌아올 때마다 울고 계셨고, 아빠도 마찬가지로 늘 침울해 보였어. 그런 뒤에 나흘째 되는 밤에 엄마가 날 붙잡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어. 엄마랑 아빠, 꼭 돌아올 테니까 여기 꼼짝 말고 있으라고. 그게 마지막으로 엄마랑 아빠 얼굴을 본 날이었어.”


지저분한 소녀는 잠이 오지도 않는지 밤새 떠들어댔다. 봄이가 접이식 테이블 위에 놓인 램프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트레일러 안이 조금이나마 더 밝아졌다.


“그래서,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얼마나 지났어?”


봄이는 어느새 소녀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어울리고 있었다. 지저분한 소녀가 열 손가락을 펴고 셈을 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두 달 정도. 처음에는 울기만 했었는데, 담벽 밖에서 얘랑 같이 있던 은지 누나를 만났어.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아차, 여기서부터는 은지 누나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랬어.”


“언니. 그럴 땐 언니, 라고 부르는 거야.”


봄이는 소녀가 숨기려는 게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소녀가 왠지 모르게 부럽다고 느껴졌다. 소녀의 부모가 그녀를 버리고 무책임하게 떠난 것이든, 정말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든 봄이에게는 모두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였는데도 말이다.


소녀와는 달리 봄이에게는 가족들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다. 만약 자신의 부모가 이 소녀의 부모처럼 자신을 버린 것이라면....... 그 때도 봄이는 계속해서 가족을 찾아나설 수 있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넌 이제 네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어?”


봄이가 불쑥 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몰랐다.


“응, 알고 있어.”


지저분한 소녀가 바짝 마르고 하얗게 튼 입술로 히죽 웃었다.


“그런데 그건 비밀이야. 은지 누나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댔어.”


봄이는 소녀의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램프와 화로는 이미 꺼졌는데도 트레일러 내부는 어둡지 않았다. 이윽고 봄이는 동이 틀 때까지 이 소녀와 이야기를 나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하게도 졸리지 않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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