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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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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글자수 :
530,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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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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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9화

DUMMY

“그래서, 삼촌이 네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데?”


겨울이 못 믿겠다는 얼굴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내 이야기 들어 줄 거예요?”


“들어줄 테니까 말해 봐.”


봄이가 말하자 겨울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봄이의 앞에 와서 앉았다.


“우리 아빠가 내 이름을 왜 겨울이라고 지었냐면요, 꽃도 결국에는 사람이랑 마찬가지래요. 꽃이 겨울이라는 혹독한 과도기를 견뎌내고 결실을 맺듯이 사람도 그런 추운 겨울 같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야만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거라고, 그렇기에 사계절 중에서도 겨울이 가장 우리들에게 중요한 계절인 거라고....... 그래서 제 이름을 겨울이라고 지은 거래요. 멋지죠?”


겨울은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봄이는 그런 겨울의 모습이 너무나도 천진난만하게 느껴져서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래서 저도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요. 얼른 어른이 되어서 다른 아저씨들처럼 멋진 배낭을 메고 바깥세상에 나가서 예쁜 별들을 마음껏 구경하고 싶어요. 지금은 아저씨들이 너무 어리다고 절대로 바깥세상에 못 나가게 하거든요. 바깥세상에는 지금껏 내가 본 적도 없는 괴물들과 악마들이 우글거린대요. 나 같은 어린애가 바깥에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면 바로 악마들한테 유괴돼서 잡아먹힌다는 거 있죠. 봄이 언니는 그런 궤변을 믿어요? 누굴 바보로 아나. 나도 알 건 다 안다구요.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겨울 막바지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오겠네요.”


겨울이 테이블 위를 기어올라 봄이와 은지에게 따뜻한 물을 한 잔씩 건네주었다.


“봄이 언니는 최근에 운 적 있어요?”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봄이에게는 그 말이 가슴 한가운데에 강하게 박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봄이는 왠지 모를 울적함에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대답했다.


“운 적이라...... 많이 있지.”


“정말요? 그럼 선물 못 받겠네.”


겨울이 과하게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기겁했다. 그러나 봄이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아무튼 좋아요. 봄이 언니가 내 이야길 들어줬으니 나도 언니가 묻는 말에 대답해 줄게요. 아까 하려던 말이 뭐였어요?”


“아, 내가 하려던 말은......”


봄이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방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삼촌이었다.


그는 총수실로 돌아오자마자 봄이에게 달려와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내 권한으로 봄이 너와 저 아가씨는 아무런 처벌도 내릴 수 없게끔 처리됐어. 널 끌고 왔었던 창식 씨에게도 절대로 널 건드리지 못하도록 일러두었어.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까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구나, 봄아.”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봄이를 다시 한 번 꼭 안아주었다. 봄이도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삼촌을 두 팔 벌려 끌어안았다. 아까와는 달리 그의 재킷은 따뜻했고, 그는 더 이상 봄이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다.


봄이는 설마 이런 곳에서 그와 재회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말로 기행이었다. 졸지에 범법자로 몰려 포로로 잡혀들어간 조직의 책임자가 봄이가 찾던 가족 중 하나였다니! 봄이는 그와 어렵게 재회한 만큼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였다.


“삼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어쩌다가 이런 곳에서 폭력배들을 이끌고 계시는 거냐구요?”


“그런 게 아니야, 봄아.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예전에 내가 결국 의사의 꿈을 포기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이곳에도 사태가 터졌었어. 조용하던 사람들이 점차 폭력적으로 돌변하기 시작하자 나는 집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러다 보니 결국 식량이 완전히 거덜나게 되었지.”


그가 물을 한 잔 마시고 나서 다시 이야기했다.


“어쩔 수 없이 바깥으로 나가야만 했어.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심했어. 어디서 들여온지도 알 수 없는 불법 총기들이 거래되고 사람 목숨의 값어치가 바닥까지 떨어졌던 그 때, 나는 약탈자들 무리에게 공격당했어. 녀석들은 내가 가진 게 없다는 것을 알자 날 죽이려고 했지. 그런데, 녀석들 중 하나가 최근 심각했던 흑사병에 시름시름 앓고 죽어가고 있었어. 그 자리에 있던 녀석들 중 누구도 병을 고치는 법을 알지 못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내가 제안을 하나 했어. 내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녀석의 흑사병을 고쳐주겠다고 말이야.


나는 문 닫은 근처 병동으로 녀석들을 데리고 갔어.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약품들을 사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녀석은 아직 피부 괴사가 시작되지 않은 증상 초기였기 때문에 치료가 쉬웠고, 녀석들은 동료가 완치되자 약속을 지켰어. 날 건드리지 않았던 건 물론이고 자기들끼리 세운 무리 내 서열도 높게 올려주었어. 무리에는 의사가 반드시 필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나 봐. 그러다가 결국 윗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실종되는 바람에 내가 총책임자가 되고 만 거야.”


“아빠, 의사였어?”


지금껏 잠자코 듣고만 있던 겨울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의학을 배웠었지. 결국 의사는 못 되었지만 말이야.”


삼촌이 그렇게 말하고는 테이블에 놓인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씁쓸한 듯이 담배 연기를 내쉬며 봄이를 애처롭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봄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외투에는 지난번 싸움에서 묻은 진흙과 먼지가 흥건했고, 어깨에는 괴물에게 긁혀 흘렸던 핏자국이 눌러붙어 흉하게 번져 있었다. 제대로 된 응급처치랄 것도 없이 붕대 쪼가리를 감고 있는 것이 전부였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 속까지 입은 상처는 수도 없이 많았다.


“사랑하는 우리 조카, 지금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그는 봄이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봄이를 보고 무작정 가엾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녀의 마음 속까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봄이를 진심으로 걱정해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봄이도 잠시나마 느꼈던 삼촌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을 완전히 풀 수 있었다.


“저기, 삼촌......”


“그렇다면, 이제 저희에게 더 이상 제약을 걸지 않겠다는 말씀이시죠?”


정신을 차린 은지가 꽤 강압적으로 소리쳤다. 삼촌이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가씨. 이제 뜻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그 말을 들은 은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힘겹게 일어섰다.


“우린 공원 너머로 가야만 합니다. 제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공원 너머라는 소리를 듣자 삼촌은 얼굴을 찡그렸고, 씁쓸해 보이던 눈동자는 심각하리만치 굳어버렸다.


“아가씨, 무슨 용무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열차 무덤 너머로는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곳 너머엔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탐색을 위해 무장한 자경단원 몇 명을 보냈지만, 그중 한 명은 실종되었고 나머지는 부상을 입고 가까스로 돌아왔습니다. 대원들은 돌아오자마자 ‘얼굴이 없는 자들에게 공격당했다’ 는 말을 되풀이할 뿐 모두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미쳐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후로부터 우리 자경단에서는 공원 너머를 접근 금지 구역으로 정하고 아무도 그곳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풀어는 드리겠지만, 그곳으로 가신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저도 압니다. 다 안다구요!”


은지가 소리쳤다. 겨울은 의아하다는 듯 책장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고, 삼촌은 아무 대답도 없이 담뱃대를 물고만 있었다. 봄이는 은지가 지금껏 자신과 함께했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눈 앞에서 종민을 잃었다는 죄책감과 충격 때문일까?


“공원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다른 누구보다도 제가 가장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려는 겁니다. 거기엔 도움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이 넘쳐날 테니까.”


“어린아이들을 구한다고요? 어째서 어린아이들을 구하려고 그 위험한 곳까지 가려는 겁니까?”


삼촌이 묻자 은지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봄이에게 전부 말해줬습니다. 제가 저질렀던 모든 과오를 속죄하기 위해서라고.”


은지가 비틀거리며 문으로 향했다. 그녀의 몸은 위험한 곳으로 떠나는 사람이라기엔 생기가 없었다. 그녀의 몰골도 봄이 못지 않게 초췌했고, 봄이도 그녀가 떠나는 것을 말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이거라도 가져가십시오.”


삼촌이 은지에게 흰 뱃지를 내밀었다.


“자경단 증표입니다. 나중에라도 혹여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 저희를 찾아오십시오. 그리고 이걸 보여주시면 분명히 저희 자경단원들이 도움을 드릴 겁니다.”


“내 동료를 눈앞에서 죽여버린 자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증표라...... 재미있네요.”


은지는 그가 건넨 뱃지를 만지작거리며 돌려보더니 재킷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배낭을 챙기고 총수실에서 나갈 채비를 했다. 나가기 전 그녀가 마지막으로 봄이를 돌아보았다.


“봄이야, 여기 남을 거지?”


봄이가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은지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그렇겠지. 나와 다르게 너는 목적을 이뤘으니까 말이야.”


봄이는 은지의 말이 묘하게 자신을 시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봄이는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직 봄이는 가족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삼촌에게 가족의 행방을 묻는다고 해도 삼촌이 그것을 알고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만약 모른다고 하면?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봄이 자신도 어렴풋한 꿈 속에서나 얼굴이 지워진 사람으로 기억해내는 엄마와 아빠를 삼촌이라고 확실히 기억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되든 간에 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이 나오면 다시 직접 가족을 찾아 나설 예정이었다. 물론 어느 때와 같이 계획같은 건 손톱만큼도 없었다.


“.....짧게나마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어. 그럼 안녕, 봄이야.”


은지가 문을 열고 총수실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녀는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은지 언니.”


봄이가 마지막으로 은지를 불렀다. 그녀의 반응은 없었다. 봄이가 한번 더 외쳤지만 이미 그녀는 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봄이 언니, 저 언니는 누구예요?”


겨울이 볼을 우물거리며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확고한 자신만의 길을 걷는,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일 뿐이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봄이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겨울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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