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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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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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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4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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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91화

DUMMY

9.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다들 고생했어. 어디 가서 내밀기에는 초라한 아침이지만 일단 먹지.”


그들은 모처럼 함께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았다. 탁자에 엎드려 꾸벅꾸벅 졸던 봄이도 눈을 비비고 나서 그들 옆에 앉았다. 높이가 제각각인 불 붙은 양초 사이사이에 놋그릇 접시들이 놓여 있었다. 사실 접시라기보다는 캔 뚜껑을 뜯어 급조한 쓰레기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봄이는 이것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껏 배를 곪아왔던 봄이는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이었다.


접시에는 의외로 다양한 먹을거리들이 많았다. 봄이는 윤기가 흐르는 옥수수 알맹이를 한 숟가락 퍼먹어보았다. 알맹이에 버무려진 끈적한 액체에서 달콤한 맛이 났다. 설탕으로 간을 한 건가?


기괴하게 생긴 거무찝찝한 고깃덩어리도 한 점 있었지만 벽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있어 먹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실 조금 맛보기는 했지만 혀가 얼얼해질 정도의 짠맛만 났다. 고기가 어는 것을 방지하려고 소금을 쳤는데 그게 조금 과했던 모양이었다. 봄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혀를 내밀자 상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깃덩어리를 도로 가져갔다.


결국 봄이는 옥수수 몇 알과 맹물맛이 나는 멀건 수프로 배를 채웠다. 아니, 사실 반도 채우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입에 넣자마자 내뱉을 정도였지만 봄이는 그런대로 잘 삼켰다. 봄이는 음식에 맛이 없는 이유가 좋은 식재료가 없어서인 것인지, 중년 여성의 요리 솜씨가 형편없어서인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게 아니면 둘 다인가?


그런 생각은 뜨끈한 차를 한 잔 마시고 나니 금방 사라졌다. 봄이는 문득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찻잔을 내려놓고 1층으로 향했다. 어젯밤과는 달리 현관에는 햇빛이 들어 밝고 고요했다. 대신 현관 주변의 바닥이나 천장이 온통 불타버려 검게 그슬려 있었다. 현관문은 이미 다 떨어져 나가 너덜너덜했고, 어젯밤 잠시나마 놈들의 침입을 막아주었던 가죽 소파는 이미 만지면 부스러질 정도의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집안 곳곳에 아직도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봄이는 이 핏자국들이 누구의 피인지, 또 누구에 의해서 생긴 핏자국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려 하니 머리가 핑 돌았다. 어느새 봄이를 따라온 중년 여성이 뒤에서 말했다.


“누가 불장난이라도 했던 모양이지?”


그녀가 웃는가 싶더니 이내 웃음을 뚝 그치고 계단 위에다 대고 소리쳤다.


“다 먹었으면 얼른 내려와.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어.”


이윽고 상훈이 다친 손목을 부여잡고 어기적거리며 내려왔다. 중년 여성이 뒷정리를 한다며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봄이가 상훈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그 때 기억나요?”


“너랑 지낸 게 하루이틀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


“그 때 말이에요. 아저씨가 나 집에 데려가서 같이 고기 먹었잖아요. 생각 안 나요?”


상훈이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듣고 나니까 기억나기는 하는데 무슨 일이야?”


“그냥요. 갑자기 그 때가 생각나서요. 적어도 이것보단 맛있었는데.”


봄이가 입맛을 다시자 상훈이 피식 웃었다.


“그거 정말로 구하기 힘들었던 거였어. 그 살점 몇 개 때문에 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네가 알면 놀라 자빠질걸. 왜, 아직 허기가 안 가셔?”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전 아직 성장기예요. 많이 먹어야 한다구요. 혹시 먹을 것 좀 더 있어요?”


그러나 상훈의 대답 대신 창 밖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상훈이 이마를 찌푸리고는 말했다.


“놈들을 좀 더 먼 곳에 내다 버렸어야 했는데. 결국 까마귀에게 먹이만 주는 꼴이 돼 버렸어.”


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먹이라니요.”


상훈이 정말로 모르느냐고 말하는 듯한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봄이에게는 이게 일종의 멸시처럼 느껴졌다.


“네가 아까 잠깐 졸던 사이에 우리가 바깥을 청소했어. 담벽 안에 있는 시신들을 경고의 표시로 근처 바깥에 던져 놨는데 내가 어리석었어. 녀석들이 냄새를 맡은 거야. 틀림없이 그때처럼 검은 깃털을 잔뜩 치켜세운 채로 놈들의 시체를 먹어치우고 있을 거야.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리고 난 이후로 제일 득을 많이 본 녀석들이겠지. 이 근방은 그나마 덜하지만 예전에는 어딜 가나 길거리에 썩은 고기들이 즐비했어. 그야말로 녀석들이 활보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어. 시체 썩는 냄새 때문에 누구도 집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지.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의 시체, 칼에 찔려 죽은 사람의 시체....... 아무튼 당분간 바깥에는 나가지 않는 게 좋겠어.”


상훈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목에 감긴 붕대를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봄이가 말했다.


“손 이리 줘 봐요.”


상훈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약 때문인지 몰라도 붕대가 감긴 그의 손목에서는 축축하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손가락 마디는 녹슨 철사처럼 뻣뻣하기만 했다. 처음으로 만져보는 상훈의 손이었다. 봄이는 얼어죽은 사람의 손을 직접 만져본 적은 없지만 만약 만져본다면 틀림없이 이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봄이가 그의 손목을 이리저리 살펴보려고 했지만 상훈은 곧 봄이에게서 손목을 치워버렸다.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신기한 거라도 있어?”


봄이는 그가 어쩌다가 손목에 상처를 입게 되었는지 떠올렸다. 분명히 그 때, 어둠에 감싸인 작은 집이 불타오르기 불과 몇 초 전에 상훈은 놈들의 총알에 손목이 꿰뚫렸다. 봄이가 손을 뻗었지만 그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런 직후 터져나온 불길 속에 휘말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봄이를 밀쳐 죽음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그 다음은 잘 기억나지도 않았고 떠올리기도 싫었다.


봄이는 지금껏 그에게 대했던 태도와 그의 초라한 손목에 남은 상처가 어떠한 상반관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그것은 은근히 봄이의 마음을 초조하게 했다.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를 갈가리 찢어놓으려던 놈들을 향해 칼을 집어들고 무작정 달려나갔던 그 때의 일이 설명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 같았다면 그의 말에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맞섰겠지만 지금 봄이에게는 그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목을 보자 있던 힘마저 빠져나갔다. 봄이는 더 이상 그에게 원한을 품지 않고 순순히 물러섰다.


상훈이 위층에다 대고 나머지 사람들을 소리쳐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상훈이 봄이를 지나쳐 계단으로 향했다.


“아저씨.”


봄이가 힘없이 말했다. 그가 돌아섰다.


“앞으로 혹시라도, 제가 도움을 줄 만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그 말을 들은 상훈의 표정이 먹먹해졌다. 봄이는 고개를 든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봄이에게 손짓했다.


* * *


2층에서는 중년 여성과 상민이 테이블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계단을 올라오는 봄이를 보자 펼쳐 놓았던 물건들을 재빨리 가방 속으로 주워담았다.


“미안, 지금 내려갈게.”


“뭘 하고 있었어?”


상훈이 그들에게 묻자 봄이가 의문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중년 여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슬슬 물자를 찾을 탐색 범위를 넓혀야겠어. 아침식사 전까지만 해도 충분해 보였던 캔이 거의 바닥났어. 오늘은 갑작스럽게 식구가 한 명 더 느는 바람에 개인 분배량을 줄이기는 했지만 줄인 게 이 정도야. 게다가 저 벽돌 같은 건 이제 먹지도 못하겠어. 사제 냉장고 같은 걸 믿었던 내가 바보지.”


중년 여성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휙 집어던졌다.


“오늘 저녁까지는 그나마 상민이가 어젯밤에 가져온 약간의 식량 덕분에 버틸 수는 있겠지만, 이 말인즉 오늘 밤까지 아무 수확이 없다면 더 이상 내일부터는 장담할 수 없다는 소리야. 어젯밤 내다버린 시체를 뜯어먹어야 할지도 몰라. 그러고 싶지 않으면 식량을 지금까지보단 더 많이 구해야 할 거야. 식구가 한 명 늘었으니까.”


중년 여성이 ‘식구가 한 명 늘었다’는 말을 강조했다. 봄이는 그런 이유가 자신이 조직 구성원이 된 이상 꼭 밥값을 해내야만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게 아니면 밥을 축내는 눈엣가시가 하나 늘었다는 소리인가?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할 거야. 마침 한 명이 더 늘었으니까 이제부터는 두 명씩 움직여도 되겠어. 조를 어떻게 짜면 좋을까...... 역시 비슷한 녀석들끼리 묶어두는 게 좋겠지. 봄이랑 상민이를 한 조로 하고 나랑 상훈이를 같은 조로 할 거야. 이의 있는 사람?”


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란지붕 녀석들은 아직 아무 소식 없어?”


상훈이 묻자 중년 여성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좋은 지적이야. 그렇잖아도 오늘 아침에 다시 만남을 가지기로 했어. 약속시간을 잡기는 했지만 어차피 시간은 의미가 없다는 걸 그쪽도 알고 있기 때문에 대충 만나도 괜찮을 거야. 우선은 그래서 누가 갈지가 문제인데......”


중년 여성이 말끝을 흐리자 봄이가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학교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고 싶어 안달난 학생처럼.


봄이의 자신있는 모습에 중년 여성이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원자가 나왔군. 그러면 오늘 아침은 봄이랑 상민이네 조가 가는 걸로 하자.”


“아주머니, 죄송한데......”


이번에는 봄이가 말끝을 흐렸다. 방금 전 자진해서 지원하겠다고 나섰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상훈이 아저씨랑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


봄이의 입에서 나온 너무나도 의외의 말에 중년 여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상훈에게 말했다.


“괜찮겠어?”


상훈이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어때. 나도 저 녀석이랑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어.......”


작은 집에 남게 된 두 사람이 현관문을 고치는 동안 봄이는 상훈과 함께 집을 나섰다. 중년 여성은 봄이가 집을 나서기 전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다. 물론 해가 질 시간이 되기까지는 아직 족히 몇 시간이나 남아있었기 때문에 봄이는 중년 여성의 충고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건조한 바람기가 콧등에 맴돌자 기침이 나왔다. 담벽 너머 눈길은 이미 모조리 녹아버려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어젯밤 타올랐던 불길이 아스팔트 담벽에까지 번진 흔적이 보였다. 어둠이 자욱했던 어젯밤과는 달리 안개가 걷힌 큰 대로 주변 건물들과 앙상한 가로수들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 보이는 커다란 건물 뒤에는 눈부신 태양이 걸려 있었다.


봄이는 길을 걸어가면서 어젯밤 온 세계를 전부 다 태워버릴 것처럼 타오르던 불의 장막이 어째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는지 생각해보았다. 지난 밤에 벌어졌던 그 ‘전투’ 는 지금껏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을 봄이의 뇌리에 직접적으로 각인시켰다. 봄이는 지금껏 이 세계에 총이라는 치명적인 무기를 가진 사람이 자신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그들도 봄이처럼 우연히 총을 주웠던 것일까? 아니면 그런 무기들이 아무도 몰래 밀수되어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남아있은 총은 몇 정일까? 이미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이 세계의 마지막 남은 주인이 그 재앙의 방아쇠에 의해 사라지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봄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서가던 상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아저씨, 그런데 아까 전에 말했던 파란지붕이란 게 뭐죠?”


상훈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쉽게 말하자면 거래처 이름이야. 이 세상에 몇 남지 않은 믿을만한 녀석들이지. 물론 거래 대상으로서 믿을만하다는 뜻이야. 놈들이 속내에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봄이가 말이 없자 그가 계속 말했다.


“네가 이곳에 오기 몇 달 전부터 우리는 서로 안심할 수 있고 고정적인 거래 대상을 늘 찾아왔어. ‘파란지붕’ 도 그 녀석들 중 하나야. 이 놈들은 물자 거래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다 눈치도 빨라. 안정적인 거래를 하기에 턱없이 좋은 녀석들이지. 하지만 이 녀석들이랑은 서로 알게 된 지 아직 몇 주도 안 됐어. 그래서인진 몰라도 그저 철썩같이 믿고 있기에는 아직까지는 조금 찝찝한 맛이 나. 그러니까 너도 절대로 경계를 늦추지 마.”


“그렇다면 왜 하필 이름이 ‘파란지붕’ 인 거죠?”


봄이가 묻자 상훈이 헛기침을 하고 나서 말했다.


“맨 처음에 만난 녀석들은 ‘빨간지붕’이었어. 그런데 그 놈들이랑은 곧 연락이 끊겨버렸어. 그 다음 녀석들이 ‘주황지붕’ 이었는데 이 녀석들은 한 달 전에 변사체로 발견됐어. 그 다음에 만난 녀석들도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렸어. 이번이 다섯 번째라서 ‘파란지붕’ 인 거야. 별다른 뜻은 없어. 처음에는 ‘녀석들’ 이나 ‘놈들’ 로 불렀는데 그 두 단어들의 의미가 워낙 포괄적이라서 단골 거래처들을 지칭할 만한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어. 그래서 우리는 늘 그렇게 불러..... 그건 그렇고 다 왔다.”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어떤 건물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건물은 ‘파란지붕’ 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짙은 회색이었다. 주변에는 족히 몇 미터는 되어 보이는 구덩이들이 여기저기 파여 있었다. 이 집 역시 작은 집처럼 높은 담벽이 둘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작은 집과는 다르게 철조망까지 쳐져 있었다.


상훈이 봄이의 귀에다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내 옆에서 잠자코 있어. 절대로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나 약간 모자란 듯한 얼굴을 해서는 안 돼. 나머지는 전부 다 내가 알아서 할게.”


상훈이 철조망 담벽으로 다가가 굳게 닫혀 있는 대문을 두드렸다.


“누구시오?”


안에서 쉰 목소리가 들렸다.


“산행로 3가.”


상훈이 외치자 잠시 후 덩치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 한 명이 어슬렁거리며 기어나왔다. 그는 한쪽 손에 커다란 삽을 들고 있었다. 봄이는 그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전에 되레 겁부터 집어먹었다.


“당신들 누구요?”


족히 봄이의 두 배는 될 법한 남성이 어줍짢다는 듯이 건들거렸다. 봄이와는 다르게 상훈은 남성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또렷하고 분명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못 보던 분이신데, 이걸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시오.”


상훈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덩치에게 넘겨주었다. 덩치는 그 종이를 대충 읽더니 주머니에 구겨넣고는 말했다.


“지금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외출했소. 용무가 있을 때 다시 찾겠소.”


덩치가 무성의하게 등을 돌리려 하자 상훈이 말했다.


“그럼 안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날 알 거요.”


“거 당신, 몇 살이쇼?”


덩치가 노골적으로 짜증난다는 얼굴로 쏘아붙였다. 봄이는 어딘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귀찮게 굴지 말고 저리 꺼지란 말이야.”


덩치가 봄이에게로 홱 눈길을 돌렸다. 봄이는 그의 강압적인 눈빛에 맞서기 위해 눈을 부라렸지만 이내 얼마 못 가 시선을 피해버렸다. 분명히 상훈이 믿을 만한 녀석들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집을 잘못 찾아온 것 아닌가?


상훈이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당신들이 이래도 됩니까? 애초에 당신은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는 되어 있는 거요?”


“이야기고 뭐고 여기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어. 한 번만 더......”


“잠깐, 신참. 그만 해. 내가 아는 사람이야.”


덩치의 넓은 어깨 뒤로 한 남성이 소리쳤다. 재킷을 제대로 입지도 못한 채 헐레벌떡 뛰쳐나오는 마른 남성이 보였다. 덩치가 그를 뒤돌아보고 말했다.


“아는 사람이오? 그렇다면 어째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소?”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걸 깜빡 잊었지 뭡니까. 거기 당신들, 어서 들어오십시오.”


마른 남성의 안내를 따라 들어가면서도 상훈과 덩치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작가의말

감사하바ㅣㅇ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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