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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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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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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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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DUMMY

봄이가 탄 트럭이 잠시 멈췄다. 앞서가던 트럭은 야전 초소로 보이는 조그마한 천막 옆에 멈춰섰다.


나름 이곳에는 철조망이나 드럼통으로 세워진 바리케이드도 있었다. 초소에서 모닥불을 피운 채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가와 트럭 운전수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절차가 끝나고 트럭이 다시 움직였다. 전방 초소를 지나자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다. 예전 세계에서 병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인 것 같았다. 건물 표면에 적혀있던 ‘병동’ 이라는 글자가 지워지고 대신 그 위에 흰 천이 걸려 있었다. 트럭들은 모두 그곳에서 멈춰섰다.


다른 트럭에 있던 아까 그 중년 남성이 밧줄을 들고 봄이에게로 다가왔다. 봄이가 저항하자 남성은 봄이의 정강이를 걷어차 강제로 무릎을 꿇린 후에 손목을 묶었다. 그는 욕설을 퍼붓는 봄이의 뺨도 때렸다.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던 은지는 순순히 손목을 묶였다.


자경단원들이 모두 트럭에서 내려 흩어졌다. 아무래도 이곳이 자경단 본부로 보였다. 병동 주변에는 차량이 많았는데 대부분 트럭이었다. 많은 인원수를 수송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였다.


지금 막 주차하려고 하는 트럭에는 물자가 가득 실려있었다. 봄이는 저 물자들 중에 자신에게 줄 식사가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중년 남성이 봄이의 목덜미를 거칠게 움켜쥐자 이러한 생각은 싹 사라졌다.


“너 같은 년들 때문에 이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 덕분에 내가 먹고 살긴 하지만.”


그는 봄이와 은지를 붙잡은 채로 병동으로 끌고 갔다. 병동 내부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남성이었고 무장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밧줄로 묶인 채 끌려오는 봄이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너희들을 자경단 총수에게로 데려갈 거야. 그 양반이 여기 총책임자에다 너희들 같은 범법자들의 처분까지 관리하고 있지. 얼마 전 근처에 돌았던 흑사병으로부터 우릴 구해주기까지 했어. 개인적으로 내가 아주 존경하는 사람이야. 너희들도 그 양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좋을걸.”


중년 남성이 자랑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봄이는 지금 자신들을 보는 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 밧줄만 풀 수 있다면......


그는 포로들을 끌고 계단을 올라갔다. 봄이는 병동을 올라가면서 고층으로 갈수록 점점 배치된 인원이 많아지는 것을 눈치챘다. 원래 병동에 있었을 의료장비나 트롤리, 침대들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무기나 탄약을 보관하는 상자나 회의실로 쓰기 위한 탁자나 의자로 메워져 있었다. 한 병동을 완전히 군사기지로 바꿔놓은 것 같았다.


고층에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중년 남성은 따라가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봄이를 억지로 붙들었다. K-2 소총을 든 지나가던 남성이 한 마디 던졌다.


“창식 씨, 이 두 여자는 누굽니까?”


중년 남성이 흡족한 듯이 대답했다.


“뭐겠소, 오늘 새로 얻은 장난감이지. 이 여자들은 자경단 구역을 허락도 없이 침범했소. 물러나라는 지시를 불이행한 데다 무기로 저항하려고까지 했지. 데리고 가서 정식 범법자로 인정되면, 그때부턴 내 마음대로 처분할 거요.”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저런, 꽤 큰 위법행위를 했군요. 저렇게 어린 아가씨들이 뭘 알겠어요. 그냥 창식 씨가 이번만 눈 감고 자비를 베푸시는 건 어떻습니까?”


봄이는 이 남성이 의외로 다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눈을 번쩍 떴으나 창식의 단호한 대답에 다시 기운이 빠졌다.


“안 돼요. 이 녀석들을 유용하게 써먹을 데가 있소.”


봄이는 이제 이 곳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은 이미 포기해버렸다. 창식이 어떤 방의 문을 두드리자 안에 있던 남자가 문을 열고 말했다.


“총수님은 지금 안 계십니다. 잠깐 나가셨으니 30분 뒤에 다시 오십시오.”


창식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화를 냈다.


“30분이라고? 30분 동안 이 자식들을 어떻게 붙잡고 있으라고?”


“붙잡고 있기 싫으면 좀 놓든지, 이 좆같은......”


봄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봄이의 무릎에 통증이 전해졌다. 남자가 문을 닫아버리자 창식이 짜증났는지 봄이와 은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더니 근처에 있던 두 자경단원에게 포로를 떠넘기며 30분 후에 돌아올 테니 잘 감시하라고 신신당부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자세히 보니 두 사람 중 하나는 아까 전 트럭에서 잠깐 만났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었다. 졸지에 그들은 봄이와 은지를 떠맡아야 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 눈치를 보다 봄이에게 물었다.


“꼬마야, 밥은 먹었니?”


봄이는 그 남자에게 왠지 모르게 증오가 치솟았지만 솔직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봄이는 지금껏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도 했다. 봄이가 대답하자 그는 은지에게 물었다.


“아가씨,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러나 은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남성이 고개를 들이밀고 한 번 다시 되묻고 나서야 은지도 고개를 저었다. 자경단원 둘은 서로 쳐다보더니 봄이와 은지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힘들게 올라온 계단을 도로 내려갔다. 아직 해가 떨어질 시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병동 바깥은 아직까지 사람들이 붐볐다. 앞을 보니 떠났다가 돌아온 마지막 트럭이 들어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차를 도우며 트럭에 잔뜩 실린 물자를 내리고 있었다. 봄이는 아까부터 싣고 들어오는 저 많은 물자들을 어디에서 가져오는 것일지 궁금했다.


두 자경단원은 병동 건물 뒤편으로 봄이와 은지를 데리고 갔다. 뒤편에 모인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안개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중앙 천막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막 주변에는 무장한 단원들이 어슬렁거렸다. 그들을 감시라도 하는 듯했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켜선 안 되지만 급한 대로 일단 배라도 채워두라며 봄이와 은지를 줄에 세웠다.


이윽고 봄이의 차례가 되었다. 배식 감독관은 다른 자경단원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봄이의 몰골에 혀를 내둘렀다. 그가 딱딱하게 물었다.


“식권 있으십니까?”


봄이가 아무 대답도 없자 그가 되물었다.


“아니면 단증이라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설명하자 감독관이 얼굴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포로 식당이라면 지하에 따로 있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 거슬리지 않게 이번 한 번만 봐주게. 내가 지난번에 많이 도와줬잖나. 이런 여자애한테 어떻게 그런 걸 먹이겠어.”


감독관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마지못해 통과시켜주었다. 메뉴는 푸석푸석한 호밀빵과 무국 단 두 개 뿐이었지만 봄이는 호밀빵도 반쪽밖에 받지 못했고 국도 조금밖에 받지 못했다. 봄이는 너무나도 배가 고팠기 때문에 당장 뜨거운 국그릇을 감독관의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만 했다.


봄이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외진 곳에 앉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도 곧 따라와서 앉았다. 그는 자신이 받은 호밀빵과 국그릇을 봄이와 은지에게 건네주었다.


“포로 식당에서는 구운 쥐고기나 바퀴벌레를 갈아서 만든 에너지 바 같은 걸 나눠주거든.”


참다 못한 봄이가 그에게 쏘아붙였다.


“왜 그렇게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는 거죠?”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당신들이 무고하게 끌려왔다는 걸 아니까.”


“우리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걸 알면, 우릴 풀어주면 되겠네요.”


봄이가 신경질적으로 밀어붙이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그랬으면 참 좋겠지만, 그러면 안 된단다. 좋든 싫든 결국 상관의 명령이야. 우리 같은 최하층의 장기말들은 그저 따라야만 하지. 네가 무고하게 끌려왔든, 정말로 위법을 저질러서 끌려왔든 내게 널 구해줄지 말지 결정하는 선택권은 없거든.”


그 말을 들은 봄이는 숟가락을 거칠게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관의 명령에는 따라야 한다면서, 그럼 왜 우리들을 아까 죽이지 않았죠? 종민 아저씨를 쏴버렸던 것처럼 그냥 우릴 죽여버렸으면 됐을 텐데!”


남자는 잠시 동안 말이 없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꼬마야, 네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야. 다만...... 너도 그렇겠지만 우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단다. 우리는 머릿수도 그렇게 많지 않지만 무너진 세계를 다시 재건하겠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어. 이건 우리 자경단 모두에게 해당되는 목표야.


그런데도 생존자들은 결코 우리와 단합하지 못하고 떠나가고, 자경단 내부에서도 ‘미래가 없다’ 며 지속적으로 이탈하는 탈영자가 생기고 있어. 그 와중에도 구해오는 물자는 한정되어 있고, 그 물자마저도 자꾸 줄어만 가지. 그래서 포로들은 물론 우리 자경단원들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치안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극단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무력을 사용해야만 할 때가 있어. 내가 널 이해하듯이 너도 날 이해해줬으면 좋겠구나.”


봄이는 그 말이 가당치도 않은 치졸한 변명처럼 들렸다. 마치 자신이 우발적인 첫 살인을 저질렀을 때처럼. 그 때도 봄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봄이는 역겨워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자신도 결국 이자들과 똑같지 않은가......


“당신도 결국 종민 아저씨를 죽게 만든 그 새끼랑 다르지 않아요. 그렇게 ‘어쩔 수 없었다’ 고 비열하게 자기위로만 하면 좀 더 나은가요? 결국 아저씨를 죽였든 죽게 방치했든 당신이 아저씨를 죽인 거예요. 그리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사실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못하든, 결국 도망치는 건 자기 자신일 뿐이니까!”


“식사 시간에 떠드는 자식이 누구야?”


“넌 또 뭐야, 씨발!”


군중 속에서 터져나온 불만에 봄이는 참지 못하고 군중들에다 대고 소리쳤다. 얼마나 세게 소리쳤는지 한동안 성대가 얼얼해서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모든 군중들이 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진 봄이는 그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봄이의 목덜미를 세게 움켜잡았다.


“누가 멋대로 여기 들어와서 밥 먹으래? 누구야, 여기 널 데리고 온 사람이?”


그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와 다른 자경단원에게 포로를 맡겼던 창식이었다.


“접니다.”


남자가 손을 들자 창식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다그쳤다.


“미쳤어? 뭐 하는 짓이야?”


“그냥 식사 한 끼 대접했을 뿐입니다.”


“너희 둘, 얌전히 따라와.”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던 은지가 일어섰다. 결국 봄이는 빵 몇 입, 국 몇 모금도 마셔보지 못하고 식당에서 내쫓겼다. 봄이는 막심한 후회가 몰려왔다. 그냥 얌전히 밥이나 먹는 거였는데......



* * *


창식은 또 다시 병동 최상층으로 올라가 총수실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십시오.”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자 창식이 문을 열고 묶여있는 봄이와 은지를 거칠게 밀쳤다. 손목이 묶인 봄이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꼴사납게 넘어져 굴렀다. 그리고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바로 앞에 앉아있는 자경단 총수를 올려다보았다.


총수는 창식만큼은 아니었지만 나이가 꽤 되어보였다. 털 장식이 달린 고급스러워 보이는 재킷을 걸치고 있었고, 체형은 약간 마른 편이었지만 굶고 다니지는 않은 듯했다. 얼굴에는 잘 다듬은 턱수염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특이하게도 봄이의 눈동자와 똑같았다.


봄이는 이 남자를 보자 묘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어디선가 본 듯했다. 어디에서 보았나? 꿈에서 보았나? 아니면 떠올리려고 노력했던 옛 기억에서? 봄이는 그의 눈빛을 보자마자 그도 봄이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확실히 눈치챘다.


자신도 믿어지지 않았지만, 봄이의 질문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삼촌?”


< 종착점 > 마침.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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