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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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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62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21.0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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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5화

DUMMY

종민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봄이도 따라 일어섰다. 어느새 함께 온 아이들은 근처의 다른 하수도 아이들과 어울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녀석들은 우리보다 오늘 처음 만난 또래 친구들이 더 마음에 드나 본데.”


종민이 수다를 떠는 아이들을 보며 웃었다. 은지도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며 흡족해했다.


“아무래도 어른들보단 새로 만난 친구들이랑 있는 게 더 마음이 편할 테니까.”


은지가 준혁에게 자신들과 함께 갈 것을 제안했지만,


“당신들 마음은 잘 알겠는데 그럴 순 없어. 나와 이 많은 아이들이 당신들을 따라갔다간 분명히 발목만 잡을 게 분명해. 당신들은 당신들만이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까.”


하며 손을 내저었다. 은지는 준혁에게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맹세를 받는 조건으로 마지못해 수긍했다. 그러고는 아이들이 먹을 약간의 식량과 물을 건넸다.


봄이가 하수도에서 나가기 위해 입구로 향하자 푸른 빛 전등을 등진 채 기다리고 있던 두 명의 소년과 마주쳤다. 그들의 나이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였지만 키나 덩치는 봄이보다 훨씬 컸다.


그들은 각각 K-2 자동소총을 손으로 짚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피우던 담배를 손으로 눌러 끄더니 일어났다.


“어서 가시죠.”


준혁이 덩치 큰 소년들에게 무어라고 귓속말을 했다. 그가 가버리자 봄이가 덩치 큰 소년에게 물었다.


“저 꼬마 대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덩치 큰 소년이 입을 씰룩이며 말했다.


“무기 사용을 허가할 테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들을 지켜주라더군요.”


다른 소년이 말했다.


“그리고 꼭 살아서 돌아오라고도.”


* * *


봄이 일행과 소년들은 아무 말없이 긴 푸른 빛 통로를 걸어갔다. 전등은 계속 깜빡거렸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푸른 하늘이 보였다. 얼어붙은 구름 사이에 걸린 해도 보였다. 그러나 봄이는 그 눈부신 태양광을 직접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들은 서둘러 공원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몇 분 걸어가자 눈더미에 파묻힌 교차로가 나타났다. 은지는 멈춰서 쭈그려 앉아 너덜너덜한 지도를 꺼내 펼쳤다. 은지가 가리킨 목적지는 이곳에서 제법 멀었다. 봄이의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의욕에서 바람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덩치 큰 소년들은 무거운 자동소총을 들고서도 잘만 따라왔다.


“당신들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지트에서 너무 멀어져서는 안 돼요.”


봄이는 소년들의 큼지막한 K-2 자동소총을 보자 일순간 두려워졌다. 분명히 저 소총에는 봄이가 치마폭에 품고 있는 권총보다 훨씬 크고 날카로운 탄환이 사용될 것이었다.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멋진 총을 가지고 있군. 어머니가 사다 주셨나?”


종민의 비아냥에 덩치 큰 소년의 눈썹이 화난 사람처럼 치켜올라갔다.


“며칠 전에 식인종들과의 전투에서 노획한 거요. 그 날 놈들은 큰 피해를 입었죠. 물론 제대로 된 전투 인원이 없다시피한 우리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건 우리 측 사상자 중에 부상자가 없다는 거였지요. 모두 그 자리에서 죽었거든. 제대로 된 약품이나 치료 수단조차 없는데 총상으로 앓아눕는 것 보다야 몇 배는 낫죠.”


다른 소년이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돼지새끼 같은 놈들. 식인종들은 보고 구분할 수라도 있는데, 정말 무서운 건 식인종들과 항상 연결되어 있는 인신매매단이야. 녀석들은 우리 같은 어린아이들을 대량으로 납치해다 식인종들에게 내다 팔아. 얼마 전 우리 동생들을 눈앞에서 잡아간 것도 이 녀석들이야. 이 녀석들은 상대하기도 정말 까다로운데, 그놈들이 누군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거야. 며칠 전에 다른 생존자 조직들이 와해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아마도 서로를 못 믿었던 거겠지.”


“그렇군. 그래서 그 꼬맹이가 설쳤던 거였어.”


그 말을 듣고 지금껏 뒤에 처져 따라오던 소년이 발끈해서 쏘아붙였다.


“아까부터 자꾸 준혁일 무시하는 것 같은데 적당히 하시죠. 준혁이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녀석입니다. 무엇보다 당신들이랑 그 녀석이 아까 전에 무슨 이야길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잘난 입방정으로 우리들의 결속에 먹칠하지 말라는 겁니다.”


소년의 말을 들은 종민의 눈동자가 커졌다. 봄이는 본능적으로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을 알았다. 종민은 메고 있던 가방을 내팽개치더니 그에게 다가가 멱살을 휘어잡았다.


모두가 놀랐다. 다른 소년은 발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동소총을 들어올려 종민을 겨눴고, 봄이도 재빠르게 권총을 뽑아들어 소년을 겨눴다.


“모르면 잘 들어, 꼬맹아. 네가 말한 그 좋은 녀석이 여기 있는 내 친구의 고막을 박살냈어. 그래놓고는 뭐라는 줄 알아? 미안하다는군. 그래, 사과 말이야. 그 녀석이 우리에게 사과를 했지. 그리고 그게 끝이었어. 다짜고짜 다른 사람을 반불구로 만들어 놓고서는 미안하다고 하면 단가? 이런 게 너희들이 방금 지껄인 그 좋은 녀석과의 결속이란 건가, 응?”


“그만 해요. 저들도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무엇보다 이 아이 잘못이 아니잖아요.”


의외로 차분한 반응과는 달리 은지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웠다. 봄이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했다. 그녀의 어둠은 이제 곧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아이들에 대한 원망감도 아니었다.


봄이는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회한과 음울함이 바로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봄이는 아까 전 은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속죄한다고 말했던 것일까?


종민이 잡고 있던 소년의 멱살을 밀치다시피 놓았다.


“자, 알아들었으면 앞장 서. 우릴 공원으로 안내해야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린 거기까지 갈 수 없어요.”


“대장이 잘못을 했으면, 그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는 것도 좋은 부하의 모범적인 예지.”


“좋아요. 최대한 도와드리죠. 다만, 그러는 동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반드시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겁니다.”


그들은 또다시 말없이 도로를 걸어갔다. 봄이는 점점 자신이 나아가는 길과 원하는 방향이 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봄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가족들을 찾는 것이었다.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은지의 목표가 약간 존경스럽기는 했지만 봄이 자신이 그 사명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만약 이들의 행동에 의해 자신이 위험에 빠진다면, 봄이는 언제든지 대열을 무단 이탈할 생각이었다.


눈 덮힌 얼어붙은 황무지만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무리 걸어도 주변에 공원이라고 불릴 만한 장소는 나오지 않았다. 봄이가 궁금해져서 종민에게 물었다.


“공원이 도대체 어디에 있죠?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게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종민이 아직도 흥분을 추스르지 못한 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공원까지 가려면 여기서 한참 걸려. 그 전에 ‘열차 무덤’을 지나야 해. 그리고 공원에 도착한다고 해도 섣불리 너머까지 갈 순 없어.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살아돌아온 사람이 없거든.”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무엇인가에 홀린 듯 되물었다.


“악마들이....... 살고 있나요?”


난데없이 붕 떠버린 봄이의 질문에 종민이 코웃음을 쳤다.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런 소린 들어본 적도 없어.”


“무슨 소리 안 들립니까?”


소년이 외쳤다. 봄이도 귀를 기울였다. 바퀴가 네 개 달린 차량의 무거운 엔진음이 먼 곳에서부터 들렸다. 심상치 않은 예감이 대기를 감쌌다. 종민이 말했다.


“자경단이야. 총은 꺼낼 생각도 하지 말고 넣어둬. 절대로 녀석들을 자극할 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 돼. 가만히만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커다란 트럭 두 대가 도로를 따라 달려오더니 봄이의 앞에서 털털거리며 멈춰섰다. 잘 보니 두 트럭 모두 몸뚱이에서부터 가로로 묶인 우스꽝스러운 하얀 천이 있었다. 서로 같은 세력임을 증명하려고 해둔 조치 같았다.


흰 천이 묶인 트럭에서 무장한 남성 두 명이 내렸다. 자세히 보니 탑승한 인원 전원이 K-2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봄이는 두 손을 낮게 들어올린 채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무장한 남성이 다가와서 봄이에게 물었다. 그의 검은 두건에도 흰 천이 둘러져 있었다.


“저........ 그러니까 우리는........”


봄이가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아 우물거리는 사이 은지가 나섰다.


“저희는 이 앞에 잠깐 볼일이 있습니다.”


“볼일이라, 이 앞에 말입니까?”


두건의 남성이 봄이 일행을 차례로 훑어보더니 가슴에 달린 무전기에다 대고 말했다.


“교차로 외곽에 무장한 민간인 다섯 명, 어른 둘에 아이 셋입니다. 남자아이가 둘, 여자아이가 하나......”


남자는 잠깐 동안 무전을 더 주고받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 앞에서부터는 전부 자경단 주둔지라서 말이죠. 무장을 하신 이상 들여보낼 수가 없다는군요. 죄송합니다. 돌아가주셨으면 합니다.”


남성은 꽤나 정중하게 봄이 일행을 돌려보내려 했다. 종민이 해명했다.


“우린 자경단 주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공원을 지나가야 할 뿐입니다. 공원 너머로 떠나야 합니다.”


“이봐, 들었어? 공원 너머로 간대. 미친 놈들이야.”


트럭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건의 남성은 난처하다는 듯 재차 설명했다.


“지나가는 것도 안 됩니다. 자경단 주둔지 내에는 무장한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트럭에서 한 남성이 또다시 내렸다. 흰 머리털이 풍성했으며 정돈하지 않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갈색 롱코트를 털조끼 위에 걸치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권총도 차고 있었다.


“팀장님, 이 사람들이......”


그 순간 중년 남성을 보는 소년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소년들의 얼굴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고 만 사람처럼 경직되어 있었고, 입은 벌어진 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중년 남성도 소년들이 할 행동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들을 감싸던 공기의 흐름이 차가워졌다.


소년들 중 하나가 소총을 치켜들기도 전에 중년 남성의 권총에 맞아 쓰러졌다. 다른 소년도 뒤늦게 눈치채고 겨누었지만 총성이 한 발 더 울렸다. 이미 늦어버렸다.


중년 남성은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두 소년에게 다가가 머리에 한 발씩 쏘았다. 소년의 입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하다가 끊어졌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자각할 수 없었다. 봄이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피를 흘린 채 움직이지 않는 두 소년들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중년 남성이 태연하게 말했다.


“자경단 주둔지 내에서 직접지시 불이행에 저항하려고까지 하다니.”


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덧붙였다.


“당신들은 즉결처형이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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