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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494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7.07 02:43
조회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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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78화

DUMMY

“분명히 다른 사람이 도와줄 거야.”


바라고 있던 대답을 들은 봄이는 만족해했다. 그리고 이후로는 더 이상 그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조수석에 앉은 상민은 둘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그 이유를 캐물으려고 들지는 않았다. 그는 봄이와 상훈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람이 코빼기도 안 보이긴 개뿔이.”


그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에서 녹고 있는 눈 알갱이들을 손바닥으로 모두 털어내고는 재킷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냈다. 그가 담배를 한 개비 뽑아 입에 문 채로 고개를 돌려 상훈에게 물었다.


“형, 성냥 있어?”


그 말을 들은 상훈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로 가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다 주머니를 뒤지던 상훈과 뒷자석에 앉은 봄이의 눈이 백미러를 통해 마주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상훈은 문득 하던 행동을 그만두었다.


상훈이 다시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으며 말했다.


“다 써버린 것 같군.”


그러자 상민은 이마를 찌푸리며 물고 있던 담배를 다시 담뱃갑으로 집어넣었다. 그는 담뱃갑을 집어넣은 뒤에도 어딘가 아쉬웠는지 계속해서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봄이가 다시 한 번 앞쪽으로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그리고 상훈에게 물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죠?”


상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옆자리에 앉은 상민이 재빨리 대답했다.


“15분 정도 더 가면 돼. 그런데 그거 알아? 여기서부터는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게 더 빨라. 이 주변 골목은 안 그래도 좁았는데 최근에 여기저기 도로가 막히기 시작했거든. 누가 막아 놓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절대로 자연적으로 막힌 건 아니야. 분명히 누군가가 막아놓은 흔적이 있어. 어떤 곳은 대충 지나갈 수 있었지만 어떤 곳은 사람 혼자서 넘어가기엔 어림도 없어. 또 어떤 곳은 차량을 의식하기라도 했는지 바닥에 날카로운 걸 잔뜩 깔아둔 곳도 있었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도로를 막아놓은 건지 모르겠어.”


상민이 말을 멈추고 헛기침을 하는 동안 상훈이 끼어들었다.


“혹시 알아? 무엇인가를 접근시키지 않으려고 그런 걸지도 모르지.”


그 말을 들은 상민이 비웃으며 말했다.


“접근이라니 뭐가 말이야? 이미 여기 살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버렸어. 그런데도 이 바리케이드들은 분명히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어쩌면 그게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리야.”


그의 말에 상민이 쉬쉬거렸다.


“또 그런 헛소리. 그게 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이야? 형도 그 떠돌이들이 퍼뜨린 말을 믿어? 그 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괴물 이야기?”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훈이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춰세웠다. 차량이 꽤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차량에 타고 있던 모든 탑승자의 몸이 앞으로 날아갈 듯 쏠렸다. 앞좌석의 두 사람은 벨트를 매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심하지 않았지만, 벨트를 매지 않은 채 뒷자석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던 봄이는 그대로 앞좌석 등받이에 코를 부딪히고 말았다.


꼴사납게 나자빠진 봄이가 뒷목을 잡고 일어나며 말했다.


“아, 이런 씨.....살살 좀 해요!”


상훈은 씩씩거리는 봄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로 앞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방향 앞쪽에는 어떤 생물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온통 하얀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상반된 시커먼 깃털을 가진 검은 새들이었다. 그 검은 새들은 셀 수도 없을 만큼 한 곳에 몰려 있었다. 새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멀리서 볼 때는 마치 검은 고슴도치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를테면 저런 것들 말이야.”


상훈이 말하자 상민이 눈을 크게 뜬 채 앞을 쳐다보려 했다. 잠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상민이 입을 열었다.


“까마귀다.”


검은 까마귀들은 한 쪽 구석에 둥글게 모여서 무엇인가를 뜯어먹고 있었다. 그 수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아서인지 봄이는 그것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려고 하기 전에 겁부터 집어먹었다. 그럼에도 봄이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이색적인 광경에 그 공포심조차 잊고 까마귀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봄이가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몸을 일으키려 하는 순간 상민이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


“잠깐 나가서 확인해보고 올게.”


그가 차문을 열고 나서자 차량 내부에서 하차를 알리는 신호음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울려퍼졌다. 그가 나가는 것을 본 봄이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도 갔다올게요.”


“야, 너는 어디 가?”


봄이는 뒤돌아보며 묻는 상훈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재빨리 차에서 내려 상민을 뒤쫓아갔다. 상민은 벌써부터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봄이는 그 까마귀들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권총을 뽑아들지는 않았다.


봄이와 상민은 새카맣게 널린 까마귀 떼들에게로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다가갔다. 까마귀 떼들은 그들이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무엇인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것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기분나쁜 고약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봄이가 까마귀들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가자 무엇인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까마귀 떼들이 일제히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그것을 눈치챈 봄이도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춰섰다. 까마귀 떼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춘 채로 조금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봄이의 이마에서는 어느새인가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까마귀들의 시선이 봄이에게로 향했다. 그 광경을 눈앞에서 마주한 봄이의 다리가 얼어붙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봄이는 규칙적으로 내쉬던 호흡조차도 멈춘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그 붉은 눈들의 초점은 분명히 봄이를 향하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까마귀들의 눈에는 초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려 했지만 왜인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견고한 쇠사슬에 온 몸이 구속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때 갑자기 한 까마귀가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이 봄이를 향해 구부러진 부리를 크게 벌리고는 소름끼치도록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은 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윽고 봄이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모든 까마귀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위협적으로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광경에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낀 봄이의 다리는 그대로 풀려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다리가 풀린 봄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 버렸다. 그녀를 향해 마구 울부짖던 까마귀들 중 한 마리가 크게 날개를 펼치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다른 까마귀들도 하나둘씩 날개를 푸드덕거리더니 먼저 간 동료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더니 이윽고 모든 까마귀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사방으로 넓게 퍼진 채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수의 까마귀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봄이는 태양빛을 보지 못했다.


족히 천 마리는 넘어 보이는 까마귀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 까마귀들은 날아오른 채로 울음소리를 내며 한동안 봄이의 머리 위를 맴돌다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넋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봄이의 눈 앞으로 무수한 수의 검은 깃털이 흩날려 떨어졌다. 그 검은 깃털만을 남긴 채로 까마귀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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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01화 20.12.16 6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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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5화 20.11.28 3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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