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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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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21.01.0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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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6화

DUMMY

“잠깐만, 당신들 도대체 뭐야?”


종민이 난데없이 들이닥친 위기에 격분하며 한 발자국 나서려고 하자 무장한 남성들이 일제히 소총을 겨누었다.


도대체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중년 남성을 마주한 소년들의 눈동자는 마치 늑대에게서 가족들을 지키려는 다친 노루처럼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절대 겁먹은 얼굴은 아니었다.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분노에 이성을 잃었다고 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아니,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총구를 집중당한 건 봄이나 은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봄이는 손을 들어올린 채 차가운 피로 눈밭을 적시는 소년들을 힐끗 돌아보았다. 식은땀이 흘렀다. 중년 남성이 근처의 부하에게 무전기를 받아들고 말했다.


“교차로 외곽에서 외부분자와 총격전 발생, 위협 제거되었고 포로를 확보했다. 아군 사상자는 없다. 반복한다, 포로를 확보했다.”


그렇게 말하고서 무전기를 부하에게 넘겨주었다. 봄이는 이도저도 할 수 없었다.


“포로가 우리 측에 위협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사살해도 좋다는군요. 그렇지 않다면 그냥 풀어주라고.......”


부하가 말했다. 봄이는 방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윽고 중년 남성의 명령이 떨어졌다.


“사살해.”


“잠깐, 기다려!”


종민이 외쳤다. 다행히도 그들은 종민이 입을 떼기도 전에 사격하지는 않았다.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저 녀석들과 관련이 없어. 그저 똑같은 목적지로 가고 있던 것뿐이야. 무엇보다 우리는 당신들과 싸울 생각도, 당신들을 방해할 생각도 없어.”


“이미 늦었어, 젊은 친구.”


종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년 남성이 권총집을 끄르더니 그의 미간에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젠장, 이제 그만해!”


은지가 봄이를 거칠게 껴안으며 울부짖었다. 총성에 귀가 먹먹해진 봄이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남성이 든 권총의 총구에서 희멀건 연기만 새어나오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누던 그는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땅 위에서 태어난 모든 동물의 마지막 안식처인 눈밭 속에 파묻혔을 때 봄이의 머릿속에서는 마치 메아리치듯 총성이 몇 번이고 다시 울려퍼졌다. 봄이를 껴안은 은지에게서 흐른 눈물이 봄이의 얼굴에 떨어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넋이 나간 봄이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나머지도 대충 처리하고 근처에 묻어둬. 우린 수색을 계속해야 하니까.”


중년 남성은 태연하게 권총을 집어넣더니 트럭으로 돌아갔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봄이의 몇 주에 걸친 여정은 실패로 돌아갔고, 지금까지 봄이의 앞길을 인도해주던 운명의 선로는 낭떠러지 앞에서 끊겨버렸다. 돌아갈 곳도 없었다. 그러나 봄이에게는 쉬운 결정이었다. 체념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러나 봄이와 은지를 둘러싼 수십 개의 총구들이 하나둘씩 내려졌다. 무장한 남성 중 머리가 희끗희끗한 부하 하나가 말했다.


“팀장님, 그래도 이건 너무했지 않습니까. 무장도 안 한 민간인을 처형하다뇨. 더구나 여자애까지 있는데.......”


그 말을 들은 중년 남성은 트럭에서 펄쩍 뛰어내려 부하들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불복하는 건가?”


“자경단의 신조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저희들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흰 저항도 하지 못하는 민간인 여자애들이나 학살하려고 자경단에 자원한 게 아닙니다.”


“그래, 말로 해선 알아듣지 못하겠군.”


중년 남성이 또다시 권총집을 끄르려 했는데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부하는 전혀 주눅들지 않고 맞섰다.


“어디 쏴 보십시오. 전 몰라도 여기 있는 다른 자경단원들이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


그 순간 거의 대부분의 남성들이 중년 남성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도 이런 사태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약간 주춤거렸다. 잠깐 동안의 긴 침묵이 지나고, 중년 남성은 권총집에서 손을 뗐다.


“그래, 좋아. 여자들은 데리고 가서 쓸 곳이 많을 테니까.”


중년 남성은 끝내 달아나듯 트럭으로 돌아갔다. 그가 탄 트럭이 출발하는 것을 본 부하가 봄이에게 다가왔다. 그는 어떻게 얘길 꺼내면 좋을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저...... 일행분들 일은 유감이긴 합니다만, 표면상으로 두 분은 자경단 주둔지를 무단으로 침범했습니다.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은지는 봄이를 껴안고 있던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봄이의 가슴이 눈물로 얼룩졌다. 하지만 봄이는 그런 은지를 밀쳐내거나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봄이와 은지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려 하지 않자 부하가 재촉하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정도도 많이 참작해드린 겁니다.”


부하들이 다가와 봄이의 등을 떠밀었다. 봄이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개 같은 자들의 팔뚝을 잡아당겨 이빨로 뼈 한 조각까지 잘근잘근 씹어주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사람의 목숨을 앞에 두고 참작이라고? 그게 정말로 가능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지금은 이들의 지시에 따르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봄이는 남성들에게 떠밀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봄이는 그를 묻어주지도 못하고 이별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쓰라렸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은 적었지만, 이젠 더 이상 그가 봄이와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영 탐탁지 못했다.


자경단원들이 봄이와 은지를 함께 트럭에 태웠다. 이들의 손길은 그리 거칠지 않았다. 봄이는 어쩔 수 없이 따르면서도 자신들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는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다. 또한 지저분한 아이들을 준혁이 통솔하는 은신처에 데려다 놓은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아이들이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그 죄없는 아이들마저 험한 꼴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모두가 트럭에 탑승하자 자경단원 하나가 지붕이 없는 트렁크에 올라타 해치를 두드렸다. 출발하라는 신호였다. 그들을 태운 트럭이 이윽고 푸른 배기가스를 뿜으며 종민과 두 소년에게서 멀어졌다.


봄이를 태운 트럭은 열에서 두 번째 트럭이었고, 봄이가 탄 트럭 앞에 한 대가 앞서가고 있었다. 모두들 말이 없었고 은지는 쭈그려 앉아 울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봄이는 종민에게 은지와 어떻게 알게 되었고 또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는지 물어본다는 것을 잊었었다.


둘은 어떤 관계였을까? 물론 은지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지금 대답할 기분이 아니어 보였다. 사실 봄이도 깊게 캐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자 트럭이 털털거리며 거칠게 흔들렸다. 봄이는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만 있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들은 우릴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일까? 아까 전 중년 남성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자들은 쓸 곳이 많을 테니까.’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 순간 은지가 말했던 인신매매단이 떠올랐다. 자기들을 식인종에게 팔아넘길 셈인가? 아니면 웃기지도 않는 이유로 자기네들 영역을 침범했다며 재판대로 끌고가 죄를 추궁한 후 교수대에라도 매달 셈인가?


체념에 빠진 봄이에게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아까 전 중년 남성과 포로 처분 문제로 마찰을 빚었던 부하였다.


“꼬마야, 안녕. 몇 살이야?”


그러나 봄이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너무나도 태연하고 뻔뻔한 남성의 태도에 봄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봄이가 그대로 시선을 돌려버리자 남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는 절대 민간인을 해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습니다. 평소였다면 우리가 저지했겠지만 방금 전 상황에서는 그 쪽에서 저항할 낌새가 보이려는 게 명백했기에 저희도 미처 손쓰지 못했습니다. 저흰 무기를 소지한 자에 한해서는 무기 사용이 허용되거든요. 수칙상으로는.”


“도대체 어떤 자식이 저 얼간이를 팀장으로 차출한 거야?”


옆에 앉은 뚱뚱한 남성이 신경질을 냈다.


“저 자식은 우리 자경단의 신조를 완전히 잊은 지 오래야. 무너진 세상의 치안을 바로잡고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걸 최우선 원칙으로 삼기는 개뿔. 저 인간이 사용하는 방식은 완전히 틀려먹었어. 도대체 다른 사람들을 왜 저렇게 적대시하는 거야? 이러니 대낮에 온갖 방송으로 떠들고 다녀도 남은 흩어진 생존자들이 우리 쪽으로 가담하려 하질 않는 거야. 무기도 갖고 있지 않은 민간인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형하다니, 이게 그저 비인도적인 학살 행위가 아니면 뭐라는 거야? 더 많은 생존자들을 모아서 우리 전력을 확장하기에도 모자랄 판에......”


“진정한 치안을 바로세우려면, 우리 내부의 걸림돌부터 없애야 해.”


다른 자경단원이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나도 저 자식이 하는 짓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 본부에 돌아가면 탄원서라도 써 보려고. 저 무능한 놈은 이제 얼마 안 가서 징계받을 거야.”


이윽고 자경단원들이 자기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봄이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저 자경단 본부라는 곳은 바깥보다 편할까? 물론 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게 따뜻한 식사인지 천장에 매달린 올가미 밧줄인지 알 수는 없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부하가 잡담을 멈추고 봄이와 은지의 옆에 다가와 조용히 앉았다.


“그래도 너무 염려 마십시오. 두 분은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있다면 자경단 주둔지에 실수로 발을 들인 것뿐이죠. 저희는 무고한 사실을 지어내지는 않습니다. 두 분은 명백한 피해자시니 저희 쪽에서 최대한 변호하겠습니다. 처벌이 그리 크진 않을 겁니다. 저흴 믿으셔도 좋습니다.”


옆에 있던 뚱뚱한 남성도 거들었다.


“또 아가씨들 친구를 쏜 그 멍청이는 제가 꼭 징계 먹도록 본부에 요청할 테니 기분 푸시오.”


“부디 이번 일로, 저희 자경단에 대한 평판을 나쁘게 보시지 말아주셨으면 하는군요. 저 팀장이라는 얼간이를 빼고는 모두 멋진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나 이들이 떠들든 말든 봄이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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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102화 20.12.20 27 0 16쪽
104 101화 20.12.16 6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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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5화 20.11.28 30 0 14쪽
97 95화 20.11.23 4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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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4화 20.11.19 63 1 9쪽
94 93화 20.11.17 71 0 13쪽
93 92화 19.11.27 58 0 9쪽
92 91화 19.11.24 57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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