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64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20.11.19 02:33
조회
62
추천
1
글자
9쪽

94화

DUMMY

봄이는 상훈에 의해 끌어올려지자마자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래에서는 사람고기에 굶주린 맹수들이 온 세상이 떠나가라 괴성을 질러댔다. 봄이는 그대로 누구의 집인지도 모르는 집 안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한참 동안이나 시끄러운 소리를 지르던 괴물들이 곧 잠잠해졌다. 봄이는 자신들을 포기한 것이 틀림없다고 믿고 싶었다. 너무 무리해서 달려서인지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폐를 움켜쥐고 봄이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가버린 걸까요?”


“그랬으면 좋겠어.”


집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냉장고는 쓰러져 있었고, 탁자는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두 발이 닿는 감각을 자세히 집중해 보니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었다. 물감이라도 칠한 듯 지저분한 바닥에는 유리 조각이나 나사들만 굴러다녔다.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늘어뜨려진 전선 뭉치들이나 콘센트는 피복이 죄다 벗겨져 있었다.


집 전체가 기울어져서인지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봄이가 넘어지려는 것을 상훈이 몇 번이고 잡아주었다. 반쯤 깨진 유리창 사이로 훤히 비치는 햇빛이 바닥에 널린 유리 조각들과 함께 반짝거렸다. 봄이는 조용히 깨진 유리창 틈새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모르는 마음에 시체더미도 확인했지만 괴물들이 함께 데려온 어린 새끼들만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봄이를 덮치려 했던 큰 괴물들은 사라지고 온데간데없었다. 봄이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 집......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요? 다른 집들과 다르게 유난히 이 집만 기둥이 무너져서 내려앉은 것 같아요. 여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상훈이 쭈그려 앉아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봄이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진이 일어났던 걸까요?”


상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처 도로나 다른 집을 보면 지진이 일어났던 것 같지는 않아. 무엇보다 내가 이곳에서 산 지 몇 달은 족히 넘었는데 지금까지 그런 기미는 없었어. 일부 지방이나 외딴 도로가 지진으로 붕괴됐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는데 그다지 신뢰가 가는 정보는 아니야. 그건 그렇고......”


상훈이 말을 끊고 벽에 귀를 바짝 들이댔다.


“무슨 소리 안 들려?”


봄이가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발에 걸린 유리 조각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요.”


봄이가 의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상훈의 표정은 심각하기만 했다.


“예감이 안 좋아...... 어서 여길 벗어나는 게 좋겠어. 날 따라와.”


상훈이 가버리자 봄이가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집 안에는 온통 미세먼지가 가득했다. 상훈이 문을 가로막고 있던 서랍장을 치우자마자 주먹만한 쥐 몇 마리가 재빨리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봄이는 그 광경을 보고는 잘못하면 쥐를 밟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집 끄트머리에는 깨진 베란다가 훤하게 열린 채 칼바람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피투성이였지만 사람이나 동물의 시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베란다 바로 밑에는 찌그러진 버스가 보였다. 상훈이 밑을 가리켰다.


“저 버스 천장으로 우선 뛰어내리는 게 좋겠어. 저기로 뛰어내리는 걸 성공하면 바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달려. 그러면 바로 작은 집 담벽이 보일 거야. 놈들이 거기까진 쫓아오지 못할 거야. 만약에 계획이 틀어진다면....... 내가 찾아갈 때까지 꼼짝도 하지 말고 숨어있어. 알아들었겠지.....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봄이가 고개를 끄덕인 뒤 뛰어내리려 하자 상훈이 어깨를 붙잡았다.


“권총은 사용하지 마. 저지력도 없을뿐더러 안 그래도 미쳐 날뛰는 녀석들을 더 화나게만 할 뿐이야.”


봄이는 힘껏 버스 위로 몸을 던졌다. 발이 쑥 빠지지는 않았지만 꽈당 하는 소리가 고요한 세계의 공기를 타고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예상외로 큰 소리에 봄이가 재빨리 주위를 경계했지만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전하다고 판단한 봄이가 위에다 대고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던 건물 그림자 사이에서 쥐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던 괴물이 무서운 속도로 봄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괴물은 봄이에게는 닿지 못하고 그녀가 밟고 서 있던 버스를 엄청난 힘으로 들이받았다.


계획은 틀어졌다.


* * *


괴물이 들이받은 버스는 엄청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봄이는 하마터면 발을 헛디뎌 그대로 괴물의 발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핏자국으로 물든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코앞에서 딱딱 부딪혔다.


휘청거리던 버스는 끝내 중심을 잃고 왼편으로 쓰러졌다. 그 충격으로 봄이는 길바닥에 강하게 내팽개쳐졌다. 아스팔트 바닥에 가슴을 부딪히자 숨이 턱 막혔다. 조금만 더 세게 부딪혔다면 봄이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을 것이다.


봄이가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괴물이 버스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놈이 하늘을 향해 괴성을 지르자 온 몸의 신경세포가 곤두섰다. 떨어진 충격으로 허리가 삔 것 같았지만 봄이는 한쪽 팔로 가슴을 움켜쥔 채 이를 악물고 죽음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건물 위에서 상훈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봄이는 뛰어내리기 전 그가 했던 말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올 때까지 꼼짝 말고 숨어 있어라.......’


곧바로 뒤를 따라잡은 괴물이 봄이를 덮치려 했다. 봄이는 반사적으로 괴물을 피해 몸을 던져 굴렀다.


* * *


봄이는 벽에 기댄 채 조용히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저 살기 위해 정신없이 도망친 봄이는 정확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곳은 빛이 잘 들지 않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봄이가 놈들에게 발각될 위험도 적었다.


빛을 밝힐 것이 필요했다. 가방을 뒤져보았지만 회중전등은 없었다. 봄이는 바로 작은 집에서 사투를 벌이기 전 길바닥에 버렸던 회중전등이 생각났다. 별 수 없이 봄이는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던 지포라이터를 꺼내 불을 비췄다.


불은 예전만큼 강하지 않았다. 가스가 거의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불이 꺼지기 전에 이곳에서 벗어나 작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빠져나가기에는 바깥에 도사리고 있는 곱사등이 괴물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약한 불로 비추어 보니 셔터와 창문들이 굳게 닫힌 편의점 건물인 것 같았다. 바닥에는 어질러진 물건들로 가득했고, 진열대는 텅 비어있었다. 카운터에는 도둑이 훔쳐가다 만 지폐 쪼가리가 휘날렸다. 쓸 만한 물건들은 이미 전부 가져가 버리고 없었다.


봄이는 상훈이 하던 것처럼 조용히 벽에 귀를 갖다댔다. 나무 막대로 벽을 툭툭 치는 듯한 소리와 바람에 가게 간판이 휘날리는 소리만 들렸다. 방금 전까지 봄이의 뒤를 쫓던 괴물은 또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놈은 분명히 봄이가 이 건물로 숨는 걸 보았을 것이다......


봄이는 라이터를 껐다. 약한 빛이라고 해도 더 이상 위치가 노출되어서는 안 되었다. 라이터를 끄자마자 봄이는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카운터 뒤에 누군가가 숨어있는 것 같은 음침한 생각이 들었다. 봄이는 이미 물자를 구할 생각 같은 건 모두 포기한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상훈의 지시대로라면 그를 기다려야만 했다. 봄이는 그 말이 해가 저물고 반나절이 지나도, 며칠이 지나도 언제까지고 자기를 기다려야만 한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생각해 보면 그다지 현명한 판단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건물들이 늘어선 도심가 한가운데서 봄이가 이곳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까?


만약 그가 봄이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가 봄이를 찾아내기 전에 괴물이 먼저 봄이를 찾아내 갈가리 찢어 죽인다면?


굳게 닫힌 셔터 너머로 무언가가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이 상훈보다 더 빨랐던 모양이었다. 봄이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괴물에게 잡아먹혀 죽지 않으려면 무언가라도 해야만 했다.


카운터에 칼이 있었지만 그것은 무기로 적합하지 않았다. 위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칼은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접근해야만 했다. 그렇게 되면 봄이도 안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금 봄이에게 중요한 것은 괴물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괴물을 죽이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봄이는 주변을 뒤져 솔이 말라비틀어진 기다란 대걸레를 집어들었다. 가까운 거리에서는 권총보다 더 믿음직한 무기였다.


이윽고 봄이가 숨어있다는 것을 눈치챈 괴물은 온 힘을 다해 닫힌 셔터를 몸으로 들이받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닷!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지막 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6 113화 21.02.13 32 0 9쪽
115 112화 21.02.05 30 0 15쪽
114 111화 21.01.25 34 0 12쪽
113 110화 21.01.20 54 0 12쪽
112 109화 21.01.15 29 0 11쪽
111 11. 끝나지 않는 밤 21.01.11 49 0 13쪽
110 107화 21.01.08 35 0 12쪽
109 106화 21.01.06 124 1 11쪽
108 105화 21.01.05 33 1 12쪽
107 104화 21.01.03 65 1 13쪽
106 103화 20.12.21 46 0 9쪽
105 102화 20.12.20 27 0 16쪽
104 101화 20.12.16 64 1 12쪽
103 100화 20.12.11 30 0 13쪽
102 99화 20.12.08 38 0 12쪽
101 10. 종착점 20.12.07 38 0 11쪽
100 97화 20.12.02 58 0 13쪽
99 96화 20.11.29 68 0 11쪽
98 95화 20.11.28 30 0 14쪽
97 95화 20.11.23 41 0 13쪽
96 94화 20.11.20 40 1 9쪽
» 94화 20.11.19 63 1 9쪽
94 93화 20.11.17 71 0 13쪽
93 92화 19.11.27 58 0 9쪽
92 91화 19.11.24 57 0 17쪽
91 90화 19.11.23 50 0 26쪽
90 89화 19.11.19 55 0 18쪽
89 88화 19.11.17 53 0 17쪽
88 87화 19.11.16 87 0 19쪽
87 86화 19.11.15 58 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