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69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20.12.21 19:05
조회
46
추천
0
글자
9쪽

103화

DUMMY

소년이 앞장서고, 나머지가 그 뒤를 따랐다. 소년은 동생에게 권총을 건네주며 일행의 제일 뒤에 있으라고 명령했다.


봄이는 썩 내키지 않았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깊은 하수도를 지나 터진 도관에 쌓인 쓰레기 더미에 도달하고 나서야 기어이 멈춰섰다. 이곳을 지나가면서 봄이는 많은 것을 보았다.


고약한 냄새가 나고 벌레들이 바글거리는 지하 하수도가 기나긴 통로가 되어 있었다.


비록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살 만했다. 하수도를 지나면 지날수록 어렴풋한 푸른 빛이 들었고,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던 통로 깊은 곳에는 많은 아이들이 몰려있었다. 봄이는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는 것을 알자 깜짝 놀랐다.


앞서가던 코트를 질질 끌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이름이 뭐지? 난 이준혁이라고 해. 그리 큰 곳도 아니고 내 이름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여기 책임자지.”


드럼통에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 소년이 그들을 보자마자 일어섰다.


준혁이 그에게 손짓하자 소년이 옆으로 슬금슬금 비켜섰다. 아무래도 준혁이 자칭한 ‘책임자’ 라는 건 빈말이 아닌 듯했다.


더 깊이 들어가자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원래는 하수도 내부시설로 사용되던 곳 같았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배수구들은 거의 다 막혀있었고, 배수시설이 있던 자리는 죄다 누가 뜯어가 버려서 고철덩어리만 남아있었다.


여기가 아이들의 본거지로 사용되는 곳 같았다. 적어도 열댓 명 이상의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떠들고 있었고, 몇몇 아주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여러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어울려 제법 활기가 있는 곳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침입자다!”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자마자 떠들던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모닥불 근처에 놓인 자동소총을 집어들었다. 또다시 누군가가 소리쳤다.


“준혁이 형이 식인종들에게 붙잡혔다.”


“녀석들에게 위협당해서 이곳을 안내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여기저기서 총의 걸쇠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들어올릴 뻔했다.


“진정해, 이 녀석들아. 내가 약속했잖아? 만약 놈들에게 발각되면 ‘반대쪽 하수도’ 로 데려가기로.”


준혁이 그렇게 말하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총을 내렸다.


“맞아.”


“우린 그렇게 약속했어.”


“준혁이 형은 절대 우릴 배신할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떠들더니 아이들은 다시 제 할 일들로 돌아갔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봄이는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저분한 가죽 망토를 뒤집어쓴 소년이 달려와 후드를 벗어제끼고는 말했다.


“준혁이 형님,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뭡니까? 규칙에 어긋납니다. 규칙서 1페이지 제 2항. 분명히 우리들의 은신처에 외부인 출입은 엄격히 금한다고......”


“그리고 내 권한이라면 모든 규칙을 무시하고 최우선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도 나와있지. 규칙서 제대로 안 읽어봐?”


“잠깐만요, 규칙서에 그런 항목이.......”


준혁은 재빨리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 페이지를 넘기는 소년을 밀치고 들어갔다. 망토를 뒤집어쓴 소년이 허둥지둥 준혁을 뒤따르며 말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난데없이 누군지도 모르는 외부인들을 끌고 들어와서는 직접 권한 운운이라니요. 위험이나 의심을 약간이라도 감수해야 하는 일들은 애초부터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지금 형님이 주도한 일이 나중에 얼마나 커다란 불씨가 되어서 우리 아이들한테로 돌아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난번 일을 잊었습니까? 만약에라도 저 외부인들이 지난번 그 식인종들이 풀었던 정찰병이거나 하면.......”


“이봐, 당신들.”


준혁이 망토 소년이 늘어놓는 설교들을 무시하고 봄이 일행에게 물었다.


“당신들, 약상자를 가지고 있었지?”


그렇게 말하고는 말없이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준혁이 천장에 걸린 낡은 포대를 걷어올리자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광경이 펼쳐졌다.


열 명은 되는 어린아이들이 배낭이나 옷가지를 깔고 누운 채 신음하고 있었다. 몇 명은 곤히 잠들어 있었지만, 나머지는 큰 소리로 울거나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모두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준혁이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며칠 전부터 우린 마실 물이 부족했어. 모두들 깨끗한 물이나 정수된 물을 찾느라고 애썼지. 하지만 우리 탐색조들이 지상에서 가져오는 물만으로는 이 많은 아이들이 마시기엔 턱없이 부족했어. 정수제가 바닥나자 저 참을성 없는 자식들이 내 경고도 무시하고 오염된 하수도 물을 들이마셨어. 처음은 한 둘부터 시작했다가, 곧 다들 앞사람을 따라 너도나도 오염된 물을 마신 모양이야. 내가 정수되지 않은 물을 마셔선 안 된다고 그렇게 일렀는데. 물론 저 녀석들도 그 물을 마셔선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왜 그랬을까......”


준혁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내리깔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병에 걸린 아이들을 간호하던 한 소녀가 외쳤다.


“준혁 오빠, 이 두 아이.......죽었어.”


방금 전까지 곤히 잠든 줄 알았던 두 아이였다. 준혁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뒷골목으로 데려가. 데려가서......묻어줘.”


“오빠는, 같이 안 해?”


“나는 여기서 할 일이 있어. 어서.”


소녀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영원히 잠든 두 아이를 들어올렸다. 봄이는 먼 옛날에 죽은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들 중 화장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들에게 베풀어줄 마지막 불꽃 같은 건 없었다.


준혁이 뒤돌아선 채 눈가를 쓱 훔치더니 봄이의 두 팔을 덥석 붙잡고 말했다.


“아무 약이라도 좋아. 어떤 방법이라도 좋아. 이 죽을 만큼 멍청하고도 가엾은 아이들을 살려줘. 유효기간이 지난 항생제라도, 곰팡이가 핀 해열제라도 좋아. 이미 벌써 열다섯 명이 넘는 아이들을 내 손으로 땅에 묻었어. 그 녀석들이 눈을 감기 전에 내게 부탁하던 마지막 말들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아. 이 불쌍한 녀석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 흙탕물을 퍼마신 것도 모두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위험성에 대해 더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 결과 오늘 또다시 두 명을 더 묻어주어야만 해. 놈들에게 습격당한 이후로 동생들은 자꾸만 내 곁을 떠나가. 더 이상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을 죽음에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 제발 부탁이야. 우릴.......”


준혁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은지가 자리에 주저앉아 가방에서 약상자를 꺼냈다. 그녀는 피가 흐르는 귀를 움켜쥔 채 아이들의 이마에 손을 짚어 보았다.


“몸이 불덩이야. 해열제를 먹이고 주사를 놓아야겠어. 좀 도와줘.”


은지가 누워있던 아이를 일으키자마자 아이는 은지의 손에 정신없이 토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아이들에게 증상을 물었다. 하다못해 보고있던 종민도 거들었다.


봄이가 처음 은지와 종민의 목표를 들었을 때, 봄이는 그들이 터무니없는 바보짓을 하고 있다고 속으로 비웃었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이들을 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후회할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내린 결정이 완전히 무의미한 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린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고, 후회하지도 않았다.


말을 끝맺지도 못한 준혁은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런 그에게 봄이가 한 마디 던졌다.


“꼬마 대장,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정말로 운 좋은 줄 알아.”


몇 시간이 지났다. 은지는 바닥에 깔린 포대 사이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간호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그들은 근처에 놓인 세발탁자에 앉아서 쉴 수 있었다.


“해열제가 얼마 남지 않아서 열이 적은 아이들에게는 항생제만 투여했어. 아이들은 화학 작용에 민감하기 때문에 항생제는 극소량이면 될 거야. 독한 항생제는 면역력이 낮은 아이들에게 그다지 좋지 않아. 가진 약품이 얼마 없어서 급한 대로 응급처치만 해두었어. 의외인 건 아이들에게 증상을 물어보니 고통보다는 배고픔과 갈증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는 거야. 못 먹어서 생긴 병이랑 겹친 거지. 그래서 비스킷을 조금 먹였어.”


약의 수면효과 때문인지 아이들은 잘만 잠들었다. 그러나 아까부터 옆에 죽치고 서서 이들을 지켜보던 망토 소년은 아직도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지 자꾸만 눈치를 보았다. 준혁이 그를 쏘아보며 손으로 신호를 보내자 망토 소년은 잽싸게 포대를 걷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혹시 의사였어?”


준혁이 한층 누그러진 투로 묻자 은지가 대답했다.


“의사는 무슨, 그런 건 아무나 하나.”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지막 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6 113화 21.02.13 32 0 9쪽
115 112화 21.02.05 30 0 15쪽
114 111화 21.01.25 34 0 12쪽
113 110화 21.01.20 54 0 12쪽
112 109화 21.01.15 29 0 11쪽
111 11. 끝나지 않는 밤 21.01.11 49 0 13쪽
110 107화 21.01.08 35 0 12쪽
109 106화 21.01.06 125 1 11쪽
108 105화 21.01.05 33 1 12쪽
107 104화 21.01.03 66 1 13쪽
» 103화 20.12.21 47 0 9쪽
105 102화 20.12.20 28 0 16쪽
104 101화 20.12.16 64 1 12쪽
103 100화 20.12.11 30 0 13쪽
102 99화 20.12.08 38 0 12쪽
101 10. 종착점 20.12.07 38 0 11쪽
100 97화 20.12.02 58 0 13쪽
99 96화 20.11.29 68 0 11쪽
98 95화 20.11.28 30 0 14쪽
97 95화 20.11.23 41 0 13쪽
96 94화 20.11.20 40 1 9쪽
95 94화 20.11.19 63 1 9쪽
94 93화 20.11.17 71 0 13쪽
93 92화 19.11.27 58 0 9쪽
92 91화 19.11.24 57 0 17쪽
91 90화 19.11.23 50 0 26쪽
90 89화 19.11.19 55 0 18쪽
89 88화 19.11.17 53 0 17쪽
88 87화 19.11.16 87 0 19쪽
87 86화 19.11.15 58 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