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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37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3.20 06:45
조회
109
추천
1
글자
8쪽

50화

DUMMY

그들이 몇 분 더 걸어가자 어둠에 둘러싸인 건물들 사이에서 한 줄기 빛이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본 노인은 들고 있던 손전등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러자 멀리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울리더니 눈부시게 밝은 탐조등 불빛이 그들의 온 몸을 강렬하게 비추었다. 봄이는 예상치 못한 시각적 위협에 재빨리 고개를 뒤로 돌리고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이내 탐조등은 곧 꺼졌다.


겹겹이 알루미늄 울타리가 쳐진 통제소 주위에는 주차된 자동차가 수도 없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 자동차들의 간격은 뒤죽박죽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었다. 울타리와 함께 지면에 박힌 표지판은 녹슬어 있었고, 그 뒤쪽에는 많은 소형 천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천막에 있던 사람 몇 명은 마당에 피어오르는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기도 했지만,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천막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몇 없었다. 조금 전 봄이에게로 탐조등을 비춘 것으로 보이는 경찰관 몇 명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은 조용히 내려앉은 어둠으로 그늘진 호리호리한 청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입소하러 오셨습니까?”


노인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상훈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조했다. 한 경찰관이 그들을 차례로 둘러보다가 상훈에게로 시선을 흘기며 말했다.


“혹시 다치셨습니까?”


상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봄이는 멀찍이 서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리를 다치셨습니까? 골절상이십니까? 상처입니까? 외부 요인에 의해 발생한 부상이십니까? 병을 앓고 계신다면 병명을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봄이는 속사포처럼 몰아치는 경찰관의 말을 전부 기억하지조차 못했다.


“다리를 다쳤는데, 상처로 균이 들어가서 곪은 것 같소.”


노인이 말하자 경찰관이 소리를 높였다.


“본인이 직접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현재 보호구역 내부 상황상 전염성이 있는 병종이라면 입소시켜 드릴 수가 없습니다.”


경찰들과의 마찰이 길어지자, 통제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점차 고개를 내밀었다. 순식간에 그들에게로 많은 시선이 집중되었다. 봄이는 슬슬 불안해졌다.


“칼에 베였는데, 단순한 베인 상처입니다. 전염성 같은 건 없을 겁니다.”


경찰관은 상훈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 뭐라고 음어를 주고받았다. 봄이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상훈과 노인, 그리고 그 옆에서 무전기를 입에 대고 얼굴을 찡그린 채로 그들을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는 경찰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봄이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혹여나 쫓겨나서 다시 길거리로 내몰리지는 않을까 생각하면서 경찰관의 허리 뒤쪽에 매달린 권총으로 시선을 옮겼다. 많이 본 적이 있는 익숙한 물건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난 봄이의 심장이 쾅쾅 뛰었다.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과 무력감이 엄습해 오는 것이 느껴졌다.


무전을 끝마친 경찰관이 서류를 몇 장 꺼내 그들에게 한 장씩 나눠주며 말했다.


“지금 나눠준 서류에 성함이랑 나이 기재하신 다음에..... 통제소 중앙에 있는 저 제일 큰 건물이 중앙관리소인데, 그 쪽에다가 제출하시고 확인 받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거기 아저씨는 보건증 끊어드릴 테니까 중앙관리소 옆 보건소에서 진찰 받으세요.”


경찰관이 서류뭉치 몇 장과 함께 볼펜을 건넸다. 방금 전까지 경찰관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던 상훈의 얼굴색이 밝아졌다. 봄이의 얼굴에서도 무거운 기운이 걷혔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지품과 위험물질 반입 단속하겠습니다. 외투 벗어주시구요.”


경찰관이 말하며 손짓하자 다른 경찰관 두 명이 그들의 등 뒤로 돌아가 몸 수색을 행했다. 그들은 봄이의 온 몸을 샅샅이 더듬었다. 봄이는 왠지 기분이 나빴지만 지금은 소란 피우지 않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몸 수색이 끝나자 경찰들은 통제소 내부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주었다. 봄이가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앞장서고, 상훈과 노인이 그 뒤를 따랐다.


아까처럼 그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시선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나마 이 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대부분 봄이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고, 봄이와 눈이 마주치자 전부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시선들은 대개 약자를 내려다보는 시선이지만(어쩌면 멸시하는-), 사회적 약자를 동정하는 시선이거나, 극단적으로는 그녀를 노리는 시선일지도 몰랐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봄이는 이러한 시선들이 달갑지 않았고, 익숙했다. 그렇기에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봄이는 가장 먼저 보이는 중앙의 관리소로 걸음을 옮겼다. 봄이는 현재 시각을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밤이 깊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통제소 내부에는 분명히 전기가 돌았지만 대부분 소등되어 있었고, 이따금씩 간격을 두고 천막들의 천정에 매달린 붉은 적열등만이 약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봄이는 이와 같은 비상등 불빛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들이 눈이 잔뜩 쌓인 천막들을 모두 지나치자, 통제소 내부에 있는 유일한 건물 세 곳으로 가는 입구에 도달했다. 중앙의 가장 큰 건물은 중앙관리소였고(크다고 해도 3층 정도 높이밖에 안 돼 보였다-), 그 다음으로 큰 건물은 보건소였다. 제일 작은 건물은 파출소였다.


그들은 우선 제일 중앙 건물의 계단을 올랐다. 상훈은 여전히 거동이 힘들어서인지 고생하는 것 같았다. 노인이 부축하고는 있었지만 그 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보다 못한 봄이가 그에게로 다가가 오른팔을 거들었다.


중앙관리소의 1층에는 작은 창구가 있었다. 건물 내부에는 환하게 백열등이 켜져 있었으며 잘 작동하고 있었다. 창구 안에서 관계자로 보이는 남성이 손을 내밀자 봄이는 경찰관의 말대로 모든 서류를 남성의 손에 쥐어 주었다. 작업복을 입은 남성은 봄이가 제출한 서류를 받아 들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윤 봄 씨하고, 그리고 유 상훈 씨하고..... 지금 남은 천막 자리가 얼마 없어서 F열 제일 끝 줄에서 묵으셔야 할 겁니다. 입소 가능 기간은 3일입니다. 사흘 내로 짐을 싸셔야 합니다.”


작업복을 입은 남성이 그렇게 말하며 노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은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봄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저... 죄송한데,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그 쪽 일은 지금 업무 시간 지났어요.”


남성은 봄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잠깐만요. 잠깐이면 돼요. 입소자 명단만 잠깐 확인하면 된다구요.”


“거기 보호자분들, 가 보셔도 돼요.”


봄이가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창구 남성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의 말뜻을 이해한 상훈이 더 매달리려는 봄이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내일 다시 와 보자꾸나.”


봄이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지금 그녀의 가치관에서 나온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 눈 앞의 남성이 취하는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깐이면 되는데. 아주 잠깐이면 되는데. 단 몇 분이면 그토록 그녀가 궁금해하던 가족의 행방을 알 수 있을 텐데.


“......알겠어요.”


봄이는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상훈의 말에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왜인지는 몰랐으나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자 감정을 쉽게 억누를 수 있었다. 자신의 어깨에 짚은 상훈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차오르는 감정을 녹여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작가의말

저를 죽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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