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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20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3.15 05:00
조회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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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8쪽

49화

DUMMY

잠시 후 상훈의 어깨에는 어떤 소녀의 고사리만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야, 아파. 아프다고.”


봄이는 양팔을 마구 상훈에게로 휘둘렀다. 상훈은 웬만해서는 조롱당했다는 부끄러움에 폭발하는 봄이의 난동을 모두 받아주려고 했으나, 그녀의 주먹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의외로 봄이의 힘은 장난이 아니었지만, 참다 못한 상훈이 봄이의 두 팔을 세게 움켜쥐자 그녀는 더 이상 꼼짝할 수가 없었다.


“죽어요, 죽어. 아읏, 이거 놔요!”


상훈은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봄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와 처음 만난 때가 떠올랐다. 그녀가 손바닥만한 권총을 들이밀며 자신을 협박하는 모습도 떠올랐고, 몇 번 달랬지만 결국엔 완고하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채 자신에게서 빼앗은 기름통을 짊어지고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도 떠올랐다. 상훈은 계속해서 가족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봄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의 상훈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봄이의 두 팔을 잡고 있으니 무엇인가가 그녀의 팔을 따라 자신에게로 옮겨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묘한 감정이었다. 자신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피는 멈췄지만 찢어져 있는 봄이의 손바닥이 보였다. 상훈은 무언가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게 된 기분이었다. 만약 상훈이 그 때 이 가엾은 소녀를 보고도 못 본 체 지나갔다면, 아마도 지금 그녀는 여전히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은 채 혼자서 가족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을 것이다. 그녀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얼어죽거나, 무법자들에게 붙잡혀 맞아 죽는다고 해도, 그 어느 누구조차 이 소녀의 죽음을 슬퍼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누구에게도 의지하길 원하지 않은 채로.


봄이의 몸은 여렸고, 나이도 어렸지만,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자신 몸무게의 몇 배는 되는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한참 성장할 성장기에, 제대로 끼니를 채우지 못해 마르고 가는 봄이의 팔을 붙잡아보고 나서야 상훈은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훈은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봄이가 다리를 사용하려 하자 재빨리 그녀의 두 팔을 놔주었다.


뒷자석으로 팔을 내밀고 씨름하던 봄이가 자동차 앞좌석으로 몇 센티미터 튕겨져 나갔다. 아직도 수치심이 사그라들지 않았는지 여전히 씩씩거리는 얼굴로 상훈을 노려보았다.

잠시 후 자동차 문이 벌컥 열리자 봄이와 상훈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으로 향했다. 노인이 온 몸에 눈을 잔뜩 쌓은 채 차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말했다.


“바깥에서 보니까 차 안이 막 들썩거리던데, 무슨 일 있나?”


봄이와 상훈은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통제소 내부 주차장은 전부 가득 찬 것 같아. 대충 아쉬운 대로 여기에 주차해야겠어. 괜찮겠나?”


“그런데, 영감님.”


상훈이 뒷자석에서 얼굴을 불쑥 들이밀고 말했다.


“죄송하지만, 영감님 차에 저희 물건을 조금 두고 내려도 되겠습니까?”


“그거야 상관은 없네만, 통제소 내부로 가지고 들어가서는 안 될 물건이라도 있나?”


“일단은 그런 게 있다고 해 두죠.”


봄이는 짐을 정리하는 상훈과 문 밖에서 기다리는 노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조금 걸어야 하네. 그리 멀지는 않지만 발바닥은 시릴 거야. 준비 다 끝나면 얼른 가세.”


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차 문을 소리가 나게 닫았다. 봄이는 노인이 보이지 않게 되자 재빨리 상훈을 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이리 내놔요.”


상훈이 눈을 껌벅거리며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대답했다.


“뭘 말이냐?”


“잊은 거 없어요?”


봄이의 눈동자가 한층 더 가늘어졌다. 상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 두겠다고 하잖아. 이걸 저 안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분명히 검문소에 잡혀서 몸수색을 당할 거야.”


“그건 알고 있어요. 내 가방에 보관할 거니까 내놓으라구요.”


봄이가 한층 예민해진 말투로 말했다. 사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봄이가 의지하는 유일한 존재였을 테니까. 언제나 사람들은 자신이 의지하는 유일한 존재가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으면 불안감에 시달렸다. 약하면 불안 증세를 보이는 것에서 끝났지만, 심하면 정신 착란 증세를 일으키기도 했다. 봄이는 아직까지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성질 더러운 소녀의 등쌀을 이겨 낼 재간이 없다고 생각한 상훈은 순순히 그녀의 말에 따랐다.


봄이는 재빨리 권총을 받아 가방에 넣고 지퍼를 올렸다.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동차 수납공간 가장자리에 소중히 놓아두었다. 준비가 끝난 봄이는 분홍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눈은 잔뜩 내렸다. 도저히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하늘로 고개를 올려다보자 봄이는 잠깐 동안 노인이 말한 ‘하나님’이 큰 드럼통을 들고 지상 밑으로 눈더미를 들이붓는 장면을 상상했다. 확실히 다리가 오들오들 떨려올 정도의 추위였지만, 딱히 바람은 불지 않아 건조했다. 족히 몇 밀리미터는 되어 보이는 큰 함박눈이 하늘 위에서부터 곧게 그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노인과 봄이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이 늘어선 도로변을 향해 걸어갔다. 이 앙상한 나무들 위에는 눈더미가 쌓여 있었는데, 봄이는 눈으로 뒤덮인 나무들을 보자 삼촌과 함께 보냈던 지난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나무들에게로 몇 걸음 더 걸어가자 봄이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눈을 뜨니 온 거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길거리에 크게 늘어선 눈 덮힌 나무들이 빨간 빛을 뿜어냈고, 노란 빛도 뿜어냈다. 항상 모든 나무의 꼭대기에는 황금빛 별이 빛나고 있었다. 눈 덮힌 거리에는 사람들이 언제나 분주했고, 자동차가 눈길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었다. 봄이는 자신의 오른손에 무엇인가 잡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따뜻했고, 따뜻한 감촉이 봄이의 손바닥을 휘감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함께 도로를 걷고 있었다......


“봄, 봄아! 영감님!”


봄이는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다시 한 번 눈을 떴다. 고개를 올려다봐도 언제나 거리에 분주하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빛을 뿜어내던 잎이 풍성했던 크리스마스 트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 꼭대기에 빛나던 황금빛 별도 보이지 않았다. 잔혹하리만치 삭막하고 황량한 찬 공기만이 정적을 타고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봄이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상훈이 아직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로 이쪽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미안한데, 다리가 잘 안 움직여서 말이야. 좀 도와줄래?”


봄이는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한숨을 쉬고는 이내 자동차로 다가갔다.


그들은 힘을 합쳐 함박눈을 뚫으며 걸어갔다. 상훈의 왼쪽 팔은 노인이 지탱해 주었고, 오른쪽 팔은 봄이가 붙잡고 있었다. 그들의 눈높이 비율은 영 좋지 못해서, 상훈의 오른쪽 어깨 높이는 왼쪽에 비해 아래로 크게 치우쳐 있었다. 봄이는 키가 작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상훈의 자세는 누가 보기에도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봄이가 낑낑거리며 걸어가자, 보다 못한 노인이 그녀를 말렸다.


“아가씨, 힘들어 보이는데 정 힘들면 내가 하겠네.”


노인은 물론 걱정하는 차원에서 해 준 말이었겠지만, 더 이상 봄이는 자신을 약자 취급하는 것이 싫었다.


“.....자꾸 그렇게 부르시면 조금 곤란해요.”


“그러면 뭐라고 불러 주면 되겠니?”


“봄이에요.”


“저 녀석 이름은 참 예쁜데 말이지요.”


봄이는 그냥 상훈의 팔을 놔 버리고 싶었지만 대신 그의 얼굴을 날카롭게 노려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윽고 그들은 여기저기 쳐진 폴리스 라인에 도달했다. 멀리서 희미하게 빛나는 불빛도 보였다.


그들은 통제소에 도착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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