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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488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3.22 12:31
조회
147
추천
1
글자
8쪽

51화

DUMMY

봄이는 더 이상 매달리지 않고 돌아섰다. 몸 속의 장기들이 눈 깜짝할 새에 전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떨떠름했지만 그 느낌은 그녀의 사고회로를 방해할 정도로 오래 가지는 않았다. 봄이는 창구에서 등을 돌려 관리소 바깥으로 이어진 낮은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멈추어 섰다.


쌀쌀한 겨울 밤공기가 무수히 늘어선 천막 지붕을 쓸고 지나갔다. 봄이는 이 알 수 없는 고요한 바람 소리에 얼굴을 맞대고 있자니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봄이는 먼 하늘 저편에서부터 불어오는 겨울 바람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빨갛게 물들어버린 손을 재킷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러고 있으니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봄이는 조심스럽게 계단에 쭈그려 앉았다.


“잠깐 옆 보건소에 들렀다가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있어.”


봄이의 등 뒤에서 휴식을 취하던 상훈이 부스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인도 그와 함께 일어났다. 봄이도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요?”


“좀 오래 걸릴지도 몰라. 영감님 말대로 상처가 곪았는지 뻣뻣해서 움직이기 힘들어. 결과 나오는 대로 알려 줄 테니까 여기 그대로 있어. 아니면 추우니까 영감님이랑 같이 먼저 천막에 들어가 있던가.”


“먼저 들어가 있을 테니까 빨리 끝내요.”


봄이는 그렇게 말하고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상훈과 노인이 두 번째로 큰 건물을 찾아 들어가는 동안 봄이는 늘어선 천막들 사이의 남는 공간을 비집고 들어갔다. 손전등 없이 빨간 비상등 불빛에만 의지한 채로 찾으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탐조등이 가끔 켜지기는 했지만 항상 봄이의 눈 앞을 비춰주는 건 아니라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천막 주변에는 경찰들이 두 명씩 조를 이루어 백열 손전등을 든 채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이들은 서류 뭉치를 들고 다니며 비상등이 켜진 천막 내부를 들여다보며 사람 수를 확인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경찰들도 있었다. 봄이는 그걸 보자 상훈이 예전에 살던 집에 두고 온 흰 털이 풍성한 개가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보았다.


바람에 펄럭이는 천막 천쪼가리는 끝이 없었다. 몇 분씩이나 해매고 나서야 봄이는 창구 남성이 말했던 남는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알루미늄 울타리가 쳐진 통제소 내부 가장자리 안쪽에 비어 있는 천막 두 채가 있었다. 봄이는 두 채의 천막 중에서 더 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천막 내부는 바람만 안 든다 뿐이지 바깥과 다를 게 없었다. 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내부에서 느끼는 체감온도조차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만약 천막 내부에 침낭과 담요가 구비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봄이는 이 소름끼칠 정도로 열악한 통제소 환경에 염증을 느끼고 천막 바깥으로 당장 뛰쳐나왔을지도 몰랐다.


봄이는 천막 입구를 잠그고 담요를 끌어안았다. 그런 채로 조용히 천막 구석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천쪼가리 천막은 외부 기온까지 막아주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바람이 새어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안으로 뚫고 들어오지 못하고 천막 외벽에 부딪혀 웅웅거리는 바람 소리만이 주변을 맴돌며 봄이의 귀를 거슬리게 할 뿐이었다. 봄이에게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이 바람 소리가 왠지 기분 나쁘게 들렸다.


귀를 기울이자 그녀의 등 뒤에서 두런두런거리는 사람 말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말소리를 이루는 공기의 흐름은 봄이가 있는 천막 내부까지 닿지는 않았다. 여러 명이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봄이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치마폭에 오른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중 한 발자국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더니 봄이가 있는 천막 앞에서 소리가 끊겼다. 봄이는 갑자기 몰려드는 한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윽고 천막 입구가 열렸다. 그의 주름진 얼굴은 천막 입구에 달린 붉은 비상등 빛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들어가도 되겠니?”


봄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천막 입구를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입구를 잠그고 봄이와 약간의 거리를 둔 채로 앉았다.


“아저씨랑 같이 보건소에 갔다오신 거죠? 거기서 뭐라던가요?”


“마비가 약간 심하긴 한데, 증상 초기라서 괜찮을 거라고 하더구나. 조금만 더 늦었으면 상처 부위가 동상에 걸려서 피가 얼어붙어 버렸을지도 몰라. 24시간 내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어. 시간이 조금 걸린다길래 먼저 돌아왔긴 했는데..... 걱정되는 모양이구나.”


“할아버지.”


봄이가 노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평소와는 달랐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눈빛이었다.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봄이는 용기내어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그걸 위해 고뇌한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흐려져 버렸다. 결국 그녀는 말을 끝마치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완전히 침묵한 뒤 이어지는 공기의 흐름은 그대로 어색함으로 바뀌었다. 봄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시뻘개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하지만 결국 봄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인 봄이를 보며 노인이 빙긋 웃었다.


“봄이라고 했지, 나한테도 너보다 조금 더 큰 손녀딸이 한 명 있었어.”


봄이는 노인의 말을 듣자 관자놀이가 떨렸다. 무언가 들으면 안 될 것을 들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인사성도 밝고, 늘 활발한 녀석이었어. 조금 감정 표현이 서툴기는 했지만..... 착한 녀석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노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봄이는 더 이상 노인의 말을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노인은 봄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다가 숨을 낮게 한 번 들이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몇 년 전에 집을 나갔어. 불경기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일자리를 잡겠다면서. 그 이후로 소식이 없어.”


봄이는 그제서야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걸 인지했다. 사실 그녀는 노인에게 묻고 싶은 말들이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갑자기 봄이는 막심한 후회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죄송해요.”


“내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구나. 그럼 잘 된 거야.”


노인은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봄이는 그 미소의 의미를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사실 봄이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인가가 자신을 사방에서 마구 억누르는 것 같았다. 봄이는 재빨리 화제를 돌릴 만한 게 없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지게 되었다.


“그만 자자. 아까 그 녀석에게 들었는데 가족을 찾는다고 하던데, 그러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돼. 남들보다 더 빨리.”


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침낭을 정리했다. 하지만 봄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잠깐 들를 데가 있어서요. 갔다 올게요.”


“아무래도 그 녀석이 걱정되서 잠이 안 오는가 보군.”


“.....그런 거 아니에요. 다녀올게요.”


“너무 늦지는 말고. 젊은 아가씨가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하니까.”


봄이는 천막 입구를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본 다음 통제소 내부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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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5화 20.11.28 3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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