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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생활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 각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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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퇴생활
작품등록일 :
2022.11.29 18:49
최근연재일 :
2023.03.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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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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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개풍군(2)

DUMMY

“도시를 운영할 인원이 오기 전까지는 빼꼼에서 수고 좀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비 업체 [빼꼼]의 강재오 사장님이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을 하셨다.


그 무표정이 왠지 모르게 더 신뢰가 간다.


수민이의 수행비서 겸 경호원인 한용희 실장님의 추천으로 계약을 했는데,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고 있다.


아사달 방어 전투에서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빼꼼이다.


내가 만들어둔 방어마법과 강력한 마법 무기의 힘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다.


중요한 순간에 적을 죽이는 것을 망설일 법도 하지만, 빼꼼 직원들은 단 한 명도 자신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 인원들이 없었다.


만일을 대비한 대비책들을 사용할 필요도 없는 깔끔한 승리였다.


그 모든 것은 강재오 사장님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특수 부대 출신 임원들의 힘이었다.


평소에도 경계 근무를 서는 직원들을 빼면 한 시도 쉬지 않고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마창 기사단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는 듯 한 분위기까지 만들어져서, 서로에게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경백이한테 말해서 계약 기간 연장하자고 해야겠다. 아니면 종신 계약은 안 되나? 그나저나 승천 그룹은 협약을 맺자마자 대박 터지네.’


개풍군은 승천 그룹에 양도하기로 했다.


어차피 도시를 건설할 돈도, 인력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다른 지역들과 우리 아사달이 직접 맞닿아 있는 것보다는 완충 지대가 있으면 더 좋기도 하기에 그렇게 결정했다.


그래도 공짜로 양도할 수는 없는 법이라서, 우리 아사달에 지원할 물품들의 양과 지원 기간을 더 늘리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도 상당량의 마석을 후불로 받기로 했다.


‘우리를 보고 가능성을 보았겠지. 전투 한 번에 많은 것을 얻게 되었구나.’


승천 그룹에서도 아사달에서 사용한 무기들을 구매하고 싶다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호갱.. 아니 고객님이라서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원가를 모르면 눈탱이 맞는 게 정석이지.’


다운 그레이드를 안 하는 대신, 안전장치로 일정주기마다 무기 승인 코드를 발급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한 기능은 그대로 살려두었다.


물론 그 승인 코드를 발급 받는 것도 전부 비용을 청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독 서비스 시스템은 정말 최고의 수입 모델이다.


물론 북한 주민들에게 팔 무기에도 무기 승인 코드와 비상 정지 코드를 심어두었다.


이건 내가 개발한 것이 아니라, 조동명 선임 연구원과 1호의 인공지능 복사버전인 토트가 개발한 마법진이다.


‘로봇만 만들 줄 아시는지 알았는데, 똑똑하기는 정말 똑똑하단 말이지.’


호기심이 너무 왕성하신 조동명 선임은 자신이 관심이 가는 것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파고드는 사람이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아예 연구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덕업일치의 아주 좋은 예다.


그런데 밥도 자주 거르고 연구만 하고 있어서, 조동명 선임의 식사와 수면 시간, 운동 시간을 전담하는 트레이너까지 붙여두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연구하다가 굶어죽을 사람이다.


‘때가 어느 때인데, 아사에 과로사를 걱정해야 하다니. 차라리 고독사가 낫지.’


여전히 무표정하게 서 있는 강재오 사장님에게 한 번씩 물어보던 질문을 다시 던져보았다.


“그런데 무슨 부대에서 근무하셨는지는 이야기 안 해주실 건가요? 정말 궁금한데요.”


“비밀 서약서에 서명을 해서 말씀드릴 수 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궁금하지만, 비밀 서약서까지 작성했다니, 어쩔 수가 없다.


물론 토트에게 지시해놓으면 온라인상에 관련 정보가 있다면 무조건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알아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수민이의 옆을 지키시는 한용희 실장님에 대한 것은 몰래 찾아보았다.


‘말로만 듣던 그 부대 출신이라니, 그게 진짜 있는 부대라서 더 놀랐었는데. 아마도 강재오 사장님도 관련한 부대 출신이시겠지?’


강재오 사장님이 간혹 보이는 살기는 고 등급 몬스터에 비견될 정도다.


금세 사라지기는 하지만, 나 정도 되는 고위 헌터라면 놓칠 수가 없는 살기다.


그래도 강 사장님은 한용희 실장님에 비하면, 몇 수 아래로 보인다.


수민이 옆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한용희 실장님은 평상시에는 정말로 무생물처럼 보인다.


그러다 수민이에게 무언가 위협이 될 만한 일이 발생하면, 섬뜩한 살기를 뿌려댄다.


처음 한 실장님과 만났을 때, 우리 블린이를 보고서는 살기를 피워냈었다.


수민이에게 자신이 감당할 자신이 없는 생명체라면서 빨리 대피하라고 말하는데, 죽음을 각오한 맹수의 살기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수민이가 괜찮다고 말을 하고서야 살기를 거두었는데, 우리 블린이는 그 뒤에 계속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 실장님을 따라 다녔다.


그러다 블린이가 나에게 말을 했다.


그 한 실장님 인간이 아닌 것 같다고.


‘그 부대 출신이니, 반은 사람이 아니겠지. 그런데 수민이는 도대체 그런 분을 어떻게 영입한 거야? 국방부에서 그냥 놔줬을 리가 없을 텐데.’


나름대로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저 두고 보고만 있다.


수민이에게는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는 것 같으니까.





나 때문에 일을 못하고 계시는 강재오 사장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이제는 그만 떠나야할 시간이다.


“그러면 저희는 아사달로 돌아가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최선봉 자작이 사용하던 건물에서 나와, 아사달로 복귀할 준비를 했다.


개풍군의 주력이었던 각성자 기사단은 내 무력시위에 모두 줄행랑을 쳐버렸고, 남은 개풍군의 병력은 모두 일반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현명하게 항복을 선택했다.


신이 나서 날뛴 블린이 때문에 완전히 무너져버린 성벽에서 튕겨나가 골절상을 입은 병력들 외에는 다행이도 크게 다치거나 죽은 인원이 없었다.


그냥 블린이가 항복을 권유했다면 그 골절상을 입은 병력들마저도 무사했을 것이지만,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라는 내 지시 때문에 신이 난 블린이가 조금 과하게 힘을 보였다.


‘물론 그 덕분에 다들 고분고분 하지만.’


밖으로 나가니, 쇠사슬에 묶여있는 최선봉 전 자작과 샛별씨의 눈치를 보고 있는 리길성 아저씨만, 마창 기사단과 같이 서 있었다.


“백작님. 복 받으실 겁니다.”


개풍군 주민인 노인분이 지나가다 나를 보고서는, 바닥에 엎드리며 인사를 해왔다.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도, 막무가내로 이렇게 행동한다.


이분뿐만 아니라, 다른 주민 분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개풍군에 입성했을 때는 다들 벌벌 떨며 내 눈치만 보던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아공간에서 꺼내서 건네 준 식량들을 받아든 주민들은 그때부터 나를 최선봉의 억압에서 해방시켜준 영웅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다.


그만큼 그의 통치는 통치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었으며, 폭력적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것을 잘 가꾸고 싶은 마음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제왕학이나 정치 경제학 비슷한 것도 배우지 않은 힘만 강한 무지렁이가 통치 비슷한 것을 펼치기에는 너무나 큰 벽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보통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하게 된다.


똑똑한 부하를 시키거나, 포기하거나.


최선봉은 후자를 선택했다.


자신들의 측근들과 기사단들만 배부르고 먹고, 나머지 주민들은 개처럼 일만 했다고 한다.


농경지를 경작하게 만들었으면, 최소한 일하는 동안에는 몬스터들로부터 지켜주는 게 도리가 아닌가?


그런데 주민들 스스로가 순번을 정해, 힘든 노동과 몬스터의 습격을 대비하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니 꼴에 기사단이라는 놈들이 스킬도 낮고, 마법 한 방에 전부 도망가지.’


오합지졸의 끝을 보여준 놈들이지만, 개풍군의 주민들에게는 인간을 잡아먹는 몬스터들보다 더 무서운 놈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서 해방시켜주고, 식량까지 무상으로 나눠준 나를, 당연히 주민들은 환영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시면 제가 더 불편합니다. 어르신. 어서 일어나세요.”


자세를 낮춰 바닥에 엎드려 있는 어르신의 어깨를 잡고 들어 올리니, 종잇장처럼 가볍게 들어 올려졌다.


내가 힘이 강한 것도 있지만, 어르신이 너무나 가벼워서 그런 것이다.


“백작님. 부디 만수무강 하십..시.... 오......”


어르신의 목소리가 의아할 정도로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몸은 내 의지를 벗어나, 스스로 움직였다.


[후우웅! 푸학!]


마법을 실행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듯이, 온몸의 마나가 순식간에 깨어나 방사형으로 뿜어졌다.


“눈치 빠른 놈이로구나!”


내가 뿜어낸 막대한 양의 마나폭풍에도 놈은 굳건하게 서 있었다.


아니, 마나들이 놈을 피해 옆으로 비껴나갔기에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마창 기사단! 이사님을 호위하라!”


소리를 지른 샛별씨가 가장 먼저 황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창을 앞세워 놈을 향해 랜스 차징을 시도했다.


“조무래기들은 빠지거라.”


[털썩..]


“크으으...”


너무나 허무할 정도로 쉽게 샛별씨가 바닥에 쓰러졌고,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혀를 깨물었는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창 기사단들도 뛰어오려는 자세 그대로 멈춰서버렸다.


실감나게 잘 만든 마네킹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아무리 봐도 인간인 것 같은데.”


탐색 마법으로 살펴보아도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 보였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부들거리는 샛별씨와 미동도 없는 마창 기사단의 몸에 매직 배리어를 걸어주고, 놈을 마주 보았다.


“내가 공들여 만든 이곳과 던전, 아이 농장까지. 모두 네놈이 망쳐버렸구나. 어떻게 해야 네놈이 절망할 것이냐? 말을 해 보거라. 네놈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수하들을 목 졸라 죽여줄까? 아니면 네놈이 공들여 만들고 있는 그 아사달을 불태워줄까?”


입을 움직이지 않는데도 나오는 목소리는 기괴한 괴리감으로 굉장히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이지선다? 북한에 살더니 흑백논리에 빠진 거냐?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는 거지? 좋아! 그러면 나도 물어보마.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


“크하하하하! 그거 정말 쉬운 질문이로구나. 살점을 씹어 먹었던 그 풍미는 내 어미보다는 내 아비가 더 좋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황홀했던 순간이지.”


내 도발은 놈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던전 유일교의 전도사인가 하는 놈을 네놈이 보낸 거면, 네놈이 던전 유일교의 교주나 교황 뭐 이런 거냐?”


그러나 보통 이런 놈들일수록 부주의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것에 대한 외로움을 느끼는 변태들이다.


역시나 놈도 순순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네놈은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던전 유일교는 교주가 없다. 그저 교인들만이 있지. 그리고 그 교인들도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다. 세상 어디에라도 우리 교인들은 있는 법이지.”


순순히 대답은 해주었지만, 전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있다.


“말 더럽게 꼬아서 하네. 그러니까 네놈 말은 던전 유일교라는 실체가 없다는 거냐? 그러면 테러를 행하는 놈들은 어떻게 설명을... 아. 그렇군. 던전 유일교라는 이름이 필요한 놈들이면 누구나 필요에 따라서 그 이름을 사용한다는 거로구나. 그렇게 하면 던전 유일교라는 허상에 상대들이 집중하게 되고,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게 되겠군.”


“.....”


“빙고. 정보 고맙다. 더럽게 멍청하네.”


“네놈의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 버릴 것이다! 네놈의 아비와...”


[빠악!!]


“어디서 우리 가족을 입에 올려?”


블링크 마법으로 공간을 접으며 순식간에 내질러진 내 오른손 주먹에, 마나의 폭풍에서도 굳건히 견뎌낸 그놈이 비틀거렸다.


[퍼억!!]


무슨 능력으로 마창 기사단을 멈춰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체능력은 생각보다 훨씬 약했다.


마나를 막아내는 능력은 탁월해보였지만, 물리력에 대한 방어력은 형편없었다.


“노인을 그렇게 패면 쓰나. 예의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바닥에 쓰러진 놈이 아닌, 골목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냐?”


“오늘 내일 하는 노인네를 패면 되겠나?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지? 아. 네놈의 아비까지 이야기를 했었군.”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걸어오며, 입을 열지도 않고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선물해주었던 줄넘기를 하다가 왔는지, 파란색의 줄넘기가 아이의 자그마한 손에 들려있었다.


식량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물건들도 선물해 주었다.


나에게 직접 파란색 줄넘기를 선물 받고, 함박웃음을 지었던 그 아이가 빙글 거리며 웃고 있다.


아이의 입은 여전히 닫혀있었지만, 기괴한 목소리는 정확히 그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본체가 따로 있는 것이냐?”


“모두가 나이고, 내가 모두다.”


이번에는 정말 당황스럽다.


저 말대로라면, 이건 끝이 없는 싸움이다.


놈의 본체를 찾지 못한다면, 끝없는 싸움을 반복해야만 할 것 같다.


놈을 향해 탐색 마법을 펼쳐보았지만, 역시나 평범한 일반인이다.


‘뭐지? 내 패밀리어 마법 같은 건가? 최면이라면 저렇게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못할 것 같은데.’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부들거리며 일어서고 있는 샛별씨를 보면, 마창 기사단을 멈춰 세운 능력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인간을 종속처럼 부리는 저 능력이 문제다.


"왜? 노인은 괜찮아도 아이는 힘든가? 그러면 이런 건 어떠냐?“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파란색 줄넘기를 자신의 목에 휘감고는 나를 향해 해맑게 웃어주었다.


“인간 영웅이라는 것들은 항상 똑같지. 하등 전력에 도움도 되지 않는 이런 놈들의 목숨에 집착한단 말이야.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어디 한 번 지켜보마. 케헥..”


“그만!”


얼마나 강하게 잡아당기는지 아이의 안구는 붉게 충혈 되면서 점점 튀어나오고 있었고, 벌려진 입에서는 혀가 길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블링크를 사용해 순식간에 공간을 넘었다.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르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아채었을 때였다.


“손 잡았네? 그러면 너는 이제부터 나다.”


[삐이이이....]


귀에서 이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들려오던 이명이 사라지며, 놈의 심장 소리와 주변의 소음들까지 모두 사라졌다.


오랫동안 씻지 못한 상태에서 땀까지 흘려, 심하게 나던 아이의 고린내가 더 이상 내 코에 맡아지지가 않았다.


선선하게 불어오며, 내 피부를 자극하던 바람도 모두 사라졌다.


입안의 단내도 더 이상은 없다.


오감이 사라졌다.


‘뭐지?’


오감이 사라지며,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져가기 시작했다.


시간 감각이 사라졌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다.


‘할 일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나에 대해 잊지 않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기억을 떠올려본다.


그러나 떠올리는 기억들마다 모두 신기루처럼 사라져 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멈춘다면, 생각이 멈출 것 같았고 생각이 멈춘다면, 나라는 존재도 멈춰버릴 것만 같은 공포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손을 잡고, 간호사님의 손에 들려 하품하고 있던 내 동생 수민이와의 첫 만남이 사라졌다.


처음 아빠가 가르쳐주신 게임의 이름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엄마 손을 잡고 처음 가게 된 어린이집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섞인 복잡 미묘했던, 그 강렬한 기억이 흐릿해졌다.


내가 떼어준 신장을 이식받고 미안해하던 수민이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각성을 한 날, 환호성을 지르다 희생된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자괴감에 빠져있던, 내가 사라졌다.


죽은 사람들을 대신해 대단한 사람이 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고민글에 달린 댓글을 보며, 삶의 의지를 다시 불태우던 내가...


사람들의 관심이 내가 잘 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에 행복하던 내가....


나를 나라고 정의할 수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기억이라는 것이 없어진다면, 그게 과연 나일까?


이 상태에서 생각을 멈춘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아주 조금 남은 추억이라도 보전하고 사라지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마지막 추억까지도 악착같이 떠올리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나를 붙들어야 할까?


‘무슨 생각 중이었지? 어... 생각이.. 뭐지? 난... 뭐였지?’


기어이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원초적인 감정들뿐이다.


이미 사라진 언어에 대한 기억 대신에 심상만으로 내 존재에 대한 의문을 표하다, 서서히 마지막 남은 감정에 젖어 들어갔다.


후회. 아쉬움. 미련. 그리움.


그리고 마지막은 삶에 대한 간절함.


남은 것은 그것뿐이다.


살고 싶다.


작가의말

나라는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할까요?


기억을 완전히 공유하는 복제인간은 내가 맞을까요?


나란 뭘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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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전투 +2 23.03.02 865 26 15쪽
92 아사달의 발전과 전투 준비 +2 23.03.02 920 26 20쪽
91 소우주 +4 23.03.02 947 26 18쪽
90 연금술사 +3 23.03.02 924 24 15쪽
89 위기 +4 23.03.01 1,165 28 16쪽
88 환영 행사 +4 23.02.28 1,266 3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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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개풍군(1) +5 23.02.15 1,817 45 15쪽
76 돈줄 +5 23.02.14 1,975 4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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