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의욕이 부른 참사.
“제게 이 조미료만 있다면 요식업계를 뒤집어 버릴 수 있습니다.”
임제룡이 자신 있게 말했다.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가 있으면 장인이 만들어내는 맛을 보다 쉽게 구현할 수 있었다.
“일단 상회가 가지고 있는 점포에서 사용하게 해볼까요?”
“그것도 좋겠지요. 하지만 저는 일반 가정에도 보급이 될 수 있도록 양산을 거듭할 겁니다.”
“음······ 의독당 하나로는 그만한 생산성을 확보하기 힘들어요.”
당연강이 난색을 보였다.
그러나 임제룡이 자신을 내보이는 만큼 당장은 무리더라도 양산은 고려할 문제였다.
당연강이 시시덕거리며 짬뽕을 먹는 당연우를 바라봤다.
“막내가 머리가 비상한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네요. 조미료 개발이라니······.”
“저희 세계에는 역사에 남을 발명이죠. 조미료를 화학적인 방식으로 추출하다니······ 아마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법일 겁니다.”
임제룡은 당문에서 초청한 사천 제일이라 불리는 숙수였다.
그런 그가 자부할 정도니, 당연우의 조미료가 사업성이 있는 물건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과연 내 동생, 이런 게 바로 우수한 혈통이 만들어낸 결과인가?”
“동생분 한 명 더 있지 않습니까?”
“······과연 내 막냇동생이야. 이것이 바로 당문의 우수한 교육이 만들어낸 결과지.”
당연강이 태연히 말을 바꿨다.
임제룡도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당연우가 당연강을 보좌할 미래전략회를 만든 이후 소가주로서 실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당연강은 눈에 띄게 성격이 밝아졌다.
‘아마 이게 소가주의 천성인 거겠지.’
독왕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것이 당연우에게 그 짐이 반쯤 덜어간 것도 있었다.
임제룡은 좋은 게 좋은 거란 생각에 당연강이 준비하는 신사업에 한 발 담갔다.
“군사. 이번에 새로 나온 침구류를 써 본 적 있나?”
무림맹주가 업무 중 제갈 군사에게 말을 걸었다.
제갈 군사가 서류 더미를 밀어내고 고개를 내밀었다.
“상점이랑 온수 장판 말씀이십니까? 예, 사용해 봤습니다. 좋긴 좋더군요.”
퉁명한 군사의 말에 맹주가 쓰게 웃었다.
최근 당문의 독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
“흠! 서장 포달랍궁에서 당문에 온수 장판을 주문한다고 하더군. 열양공을 익히기 큰 도움이 된다나?”
퉁명한 제갈 군사의 대답에 무림맹주가 낮게 기침했다.
“미친······ 그 독왕 놈이 새외 세력에게 물건을 팔았단 말입니까?”
포달랍궁은 서장을 지배하는 무림 단체였다.
사파연합과 소림사를 반쯤 섞인 것 같은 곳으로, 중원을 호시탐탐 노리는 새외 세력 중 하나였다.
“녹안공자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판매로를 넓힌 결과겠지. 또 포달랍궁이 양강의 무공을 익히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이러다가 배교나 조로아스터교에도 팔겠군요. 아무리 오대세가 놈들이 돈에 미쳤다지만······ 당문은 좀 너무합니다.”
제갈 군사가 맹주 앞인 것도 잊고 날을 세웠다.
그런 모습에도 맹주는 허허거리면서 차를 홀짝였다.
“당가에 책임을 물려야겠습니다.”
제갈 군사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치며 말했다.
“무슨 책임?”
맹주가 찻잔을 내려놓고 반문했다.
제갈 군사가 당연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적에게 군수 물품을 팔아 전력을 증강한 책임입니다!”
“군사, 잠자리를 따뜻하게 하는 게 언제부터 군수 물품이 됐나? 그리고 포달랍궁이 언제부터 무림맹의 적이었고?”
포달랍궁이 중원을 노린다고는 하지만 잠재적인 적이지 아직 적대적으로 이를 드러낸 적은 없었다.
또 그들의 존재는 다른 새외 세력들, 이를테면 북해빙궁이나 남만독곡 등을 견제하기도 했다.
한편 포달랍궁이 아무리 서장을 지배하는 거대 세력이라지만, 중원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지만 삼키기엔 소화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림맹에는 포달랍궁이 아니라 사파연합이란 확실한 대적자가 존재했다.
“소림이 대환단을 팔아넘겼다면 몰라도 말이지. 아니지, 대환단은 의약품이라 생각하면 마냥 반대할 수도 없겠구나. 허허.”
“맹주님!”
맹주가 도끼눈을 뜬 제갈 군사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뭐, 잠재적 적이라도 그것이 전력 증가로 이어진다면 귀책 사유가 될 순 있겠지.”
이어 손가락을 하나 치켜세웠다.
“그들이 이를 악용하지 않는 증거를 당문에 제시하라고 하면 되지 않겠나? 제재는 그렇지 못할 때 하게 하고.”
“기회를 주시란 말씀이십니까?”
제갈 군사가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에게도 말이지.”
당문은 맹에 소속돼 있었지만, 산하 단체는 아니었다.
무림맹이 성명을 내 당문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결과를 내기는 어려웠다.
특히 당문은 다른 문파나 세가와 다르게 협조성이 떨어졌다.
“결국에 필요한 건 명분이니 말이네.”
반대로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조건을 제시하면 당문도 빠져나가기 어려웠다.
무림맹주가 희게 웃었다.
제갈 군사는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맹주의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달리 당문을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온수 장판을 판다고 경제적, 물리적 제재를 할 수는 없으니······.’
“그건 그렇고 군사, 당문에서 만든 새로운 조미료 역시 화제라던데······.”
온수 장판이 일단락되자 맹주가 화제를 돌렸다.
***
“막내야, 우리 사업이 서장까지 뻗진 않았다. 포달랍궁에서 주문이야 오기는 했다만······.”
입맛도 돌아왔겠다, 이제 14인객과 정의회 문제로 쌓인 피로를 풀어보려 할 때 당연강이 찾아왔다.
당연우는 밑도 끝도 없이 문제만 던진 당연강의 모습에 한숨을 토했다.
원인은 그의 머릿속을 살펴 알 수 있었다.
“무림맹이 사절을 보냈어요?”
“역시 우리 막내는 대충 말해도 다 알아듣는구나. 그래, 그들이 찾아와 이야기하기를······.”
“온수 장판을 포달랍궁에 팔지 말라는 거죠? 우리가 거절한다고 해서 그들이 못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포달랍궁에 직접 팔지 않더라도 유통업자나 중간 거래상에게 대리 구매하면 될 일이었다.
그들이 물건을 확인하고 직접적으로 거래를 요청한 것으로 보아, 이미 포달랍궁은 그런 방법으로 물건을 구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막아보라는 게 무림맹의 뜻이라서······.”
“아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해요.”
온수 장판이 지역 제한을 걸어둘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고, 그런 기술도 없었다.
“하지만 무림맹의 말을 무시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 아니더냐.”
나는 당연강을 따라온 미래전략회 인재들을 둘러봤다.
안절부절못하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당문에서 머리 좀 굴러가는 놈들 모았더니 왜 헛짓거리에요?”
나는 당연강이 아닌 미래전략회 인재들을 나무랐다.
그들 앞에서 큰형이자 소가주의 위신을 상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달랍궁이 문제라면 문제가 아니게 하면 될 거 아니에요.”
“막내 공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참에 북해에도 팔아요. 거기 엄청 춥다던데 온수 장판 팔면 아주 잘 팔릴 거예요.”
당연강이 내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러든 말든 나는 말을 계속했다.
“포달랍궁에 물건이 넘어간 것만으로도 맹에서 그리 반응하는데 어찌 새외 세력에게 또 물건을 넘길 수 있겠느냐.”
아직 소가주인 당연강에게는 무림맹이 너무 큰 상대로 보였다.
분명 무림맹은 큰 연합체였고 정파 무림을 지배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당문도 그런 무림맹에 속해 있었다. 그냥 소속원이 아닌, UN으로 치면 상임이사국쯤 되는 위치였다.
“이이제이라고 해도 되고, 빙궁에 파는 게 아니라 추위에 떠는 북해 사람들의 인도적인 지원이라고 해도 되죠.”
핑곗거리야 만들면 그만이다.
당문의 경제 활동에 무림맹이 나서 직접 제재를 가한다면 당문은 앞으로도 이런저런 이유로 쥐여살 게 뻔했다.
‘당문은 독과 암기를 다루는 문파야. 어떤 일이든 한 번 굽히면 언제고 다른 이유로도 짓밟힐 거야.’
독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당문을 억제할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문 약화에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형님이 조금 과하게 팔아 재끼긴 했어요.”
당문이 문을 연 이후로 이처럼 곳간이 터질 정도로 돈을 번 적이 없었다.
전년도 대비 열 배 이상 번 건 내가 신제품을 만든 것보다도 당연강의 사업적 재능, 아니면 미래전략회의 도움이 더 컸다.
“도대체 온수 장판을 만든 지가 언젠데 그게 서장까지 넘어가요.”
“음, 가주님의 허락 아래 철암당 장인들이 모두 달라붙었고, 당문 산하 상회나 표국 등 홍보도 아끼지 않았더니······.”
당연강은 매트리스에서 돈맛을 본 뒤 온수 장판에 이르러서는 작정하고 달려들었다.
문제는 아직 조미료는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불안한데······.’
당연강의 머릿속을 뒤져보니 임제룡과 함께 사천 요식업계 생태계를 어지럽히려는 음모가 보였다.
임제룡이 감칠맛 조미료가 극대화되는 요리를 개발, 당문의 재력으로 사천 내 이름난 음식점 앞에 저렴하고 맛 좋은 분점을 낸다는 계획이었다.
‘그게 사파 놈들과 뭐가 다른데······.’
당문의 재력과 유통망이라면 어렵지 않은 계획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서고 싶지 않아. 괜히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아!’
정의회를 구성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지쳤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정의회는 당연해의 수완으로 놀라울 정도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한마디는 해야지.’
“형님, 소탐대실이라는 말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상회가 아닌 무림 세가입니다.”
‘이 정도면 알아먹겠지?’
미래전략회 발족 이후 당연강은 습관적으로 머리 쓰는 걸 그들에게 미루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하, 물론이지! 막내가 가끔은 엉뚱한 소리를 하는구나.”
‘아니, 못 알아들었잖아!’
생각해 보면 당연강은 가주 후계자 경쟁에서도 우직하게 무공만 갈고 닦은 인물이었다.
머리가 나쁜 건 아닌데 생각하는 걸 귀찮아하는 성격이 있었다.
‘이런 사람이 차기 가주라고?’
당문의 미래가 깜깜했다.
정확히는 생각 없이 사는 가주를 보필해 가루가 되도록 분골쇄신하는 내 미래의 모습이 그려졌다.
“일단 제가 포달랍궁에서 온 사자와 무림맹 사절을 만나보겠습니다. 한자리에 모아주세요. 되도록······ 제 선에서 처리해 보죠.”
“아, 역시 그 어떤 문제든 막내 앞에선 어림도 없다니까! 하하! 역시 당문의 해결사야! 아니, 14인객 놈들을 때려잡은 걸 생각하면 우리 막내는 강호의 해결사지!”
내 속도 모르고 당연강이 거창한 헛소리를 내뱉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어.’
***
주상열이 가쁜 숨을 내쉬며 검을 휘둘렀다.
핏빛 기운이 단숨에 검을 휘감더니 초승달 같은 검기가 쏘아졌다.
“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수라마교의 마인이 쓰러졌다.
정의회는 발족 이후 쉴새 없이 강호에 암약하는 수라마교와 싸워왔다.
“도대체 어디서 마인들이 쏟아지는 거지?”
주상열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수라마교의 실마리는 당연해가 운영하는 회의 정보부에서 날아왔다.
처음에는 일가족 실종 사건이었다.
수사에 나선 회의 정보원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에 탐명마공을 익힌 회원을 함께 보냈고,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후우, 당 공자는 이런 걸 예상하고 정의회를 만든 건가?”
주상열이 당연우를 떠올렸다.
그러나 정의회는 나이를 떠나 자금이나 정보력이나 개인이 만들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당문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주상열의 권한이 너무 강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과연 백리안인가?”
주상열이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에는 성의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결국 하루를 넘기고 올리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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