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성의문 감사.
“성의문에서 강시가 나왔다더군. 그것도 그냥 강시도 아닌 혈강시가 말이야.”
무림맹주의 말에 제갈 군사가 신음을 흘렸다.
성의문에서 마인이 나오더라도 이전처럼 정사를 가리지 않고 치료 중이었다고 변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시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정말 성의문 뒤에 마교가 자리하고 있는 겁니까?”
제갈군사가 주름진 미간을 꾹꾹 누르며 물었다.
무림맹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자네가 알아봐야겠지. 그것이 허황된 소문인지 아니면 진실인지.”
아직은 강호에 떠도는 소문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명망 높은 성의문이라는 것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소문이 퍼진 것이 문제였다.
성의문을 맹신하는 이는 헛소문이라며 격하게 반응했고, 그것이 오히려 화제를 만들었다.
“적어도······ 누군가 손을 쓴 것이 분명합니다. 짧은 시간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퍼졌어요.”
“그렇다면 솜씨가 좋은 자로군. 맹의 정훈공보조에 넣고 싶을 정도로.”
무림맹주의 농에 제갈군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낱 농담이라도 가볍지 않았다.
제갈군사가 이 이야기를 들은 이상 소문의 진위는 물론 소문을 퍼트린 자 역시 찾아야 했다.
“찾아는 보겠습니다만, 기대는 말아주시길.”
“허허, 그럼 기대 하겠네. 군사.”
무림맹주가 놀리듯 말하자 제갈군사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네, 알겠습니다.”
제갈군사가 공손히 대답하며 이를 빠득 갈았다.
***
“형님, 혈강시란 뭔가요?”
수라마교에서 얻은 정보는 말도 안 되는 신위를 가진 물건이었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당연해에게 물었다.
당연해가 어린 시절 책에서 읽은 내용을 떠올렸다.
“강시란 본래 도교의 것이었지. 타지에서 명을 달리한 이를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만들어진 술법이었어.”
당연해의 말에 따르면 이중 혈강시는 마교에서 만든 괴물이라는 것이었다.
피부는 강철과도 같으며 피에서는 맹독이 흐르고 빠르기는 맹호, 일수에 바위를 부수는 괴력을 가졌다고 한다.
“절정급 고수가 체력마저도 무한이니······ 가히 끔찍하다고 볼 수 있지.”
당연해가 성의문 사태가 이토록 화제가 되는 이유는 혈강시의 위험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체력이 무한하다고? 설마 무한동력이려나?’
나명한의 기억에서 혈강시와 관련된 정보는 수집할 수 있었지만, 제조 방법까지는 알 수 없었다.
구미가 돋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죽은 자를 농락하는 물건을 마냥 둘 수는 없지.’
나는 당연해를 통해 혈강시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라마교가 혈강시라는 위협적인 패를 쥐고 있으니 그에 맞설 준비가 필요했다.
“실제로 수라마교에 그런 마물이 있다면······ 정의회도 쉽지 않겠어.”
당연해가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정의회가 단순 무력으로는 수라마교보다 한 수 위였지만, 이야기 속 혈강시가 등장하면 쉽게 전복될 수 있을 만큼의 차이였다.
“그러면 정의회만이 아니라 다른 놈들이랑 함께 싸우면 되죠.”
“염라와 청정경 말인가?”
“네, 그들도 이렇게 입맛 돋는 먹잇감이 나타났는데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성의문을 삼키기 위해서 두 조직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성의문의 정문은 여느 때처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처럼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았다.
“성의문이 제조한 약에 마약 성분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강시가 있다며! 그것도 혈강시가!”
“우리는 성의문을 믿고 있다네, 그러니 당당하게 문을 열고 해명을 해주길 바라네!”
진실규명을 원하는 이들로 인해 성의문은 백 년에 가까운 역사상 처음으로 문을 걸어 잠갔다.
성의문을 믿고 아끼는 이들은 이 모든 것이 악의적인 소문이었음을 증명해주길 바랐다.
‘해명할 수 있겠냐!’
바깥을 지켜보던 나명한이 창문을 세차게 닫았다.
실제로 수라마교를 뒷배로 두고 있는 성의문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언제고 터질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나명한이라고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성의문에게 신세를 진 관이나 상가, 무림 문파 등 인맥을 동원해 소문을 무마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한 번 불거진 논란은 잠재울 수가 없었다.
“서른 명을 죽인 마두의 출현이라든지, 강남성의의 의료사고라든지······ 그런 걸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돌릴 수 없잖아!”
성의문이 쌓아온 이름값이 오히려 독이 됐다.
그동안 문파를 견고한 방패 같이 지켜오던 민심이 순식간에 해일로 변한 것만 같았다.
옹호도, 욕설도 지금의 성의문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삼장로, 무엇이 그리 걱정인가? 허허, 이거 생각보다 삼장로의 간이 작구먼.”
나명한이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태상문주인 일장로가 집무실로 들어섰다.
성의문을 향한 손가락질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평했다.
웃음까지 보이는 그를 향해 나명한이 이를 갈았다.
“······일장로님께서는 지금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십니까?”
나명한의 살기 넘치는 대답에도 일장로가 의자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회에서 우리 뒤를 밟은 것 같더군. 몇 개의 지부가 사라졌어.”
일장로가 성의문 사건을 언급할 때와는 다르게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명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놈들이 어떻게 알았던 걸까요?”
“그들의 눈과 귀가 우리보다 뛰어났다는 거겠지. 교가 수십 년 동안 자체적으로 정보조직을 만들었으나 결국 성의문에 의지하고 있지 않은가?”
수라마교의 교인들은 대부분이 마인들이었고, 그들은 특유의 마기 때문에 몸을 숨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성의문 출신의 교인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었으나, 그마저도 수가 많지 않았다.
“덕분에 상계와 관에서도 달려드는 걸 눈치채지 못했어.”
“염라와 청정경이군요.”
“그래, 오랫동안 침묵하던 그들이 드디어 이를 드러냈더군. 정말이지 가증스러운 놈들이야.”
정의회의 등장 이전 수라마교와 염라상회, 청정경서당은 서로의 존재는 인지하되, 서로 견제하며 직접적으로 대립하던 사이는 아니었다.
수라마교와 정의회의 싸움이 격화되면서 염라상회와 청정경서당도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각설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본교는 조직 개편에 들어간다. 너무 성의문에 의지해 왔고, 집중했어.”
성의문이라는 위장막으로 수라마교는 안정적인 수입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마인들의 수준 저하 등의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다.
“본교와 본문의 분리군요.”
“뒤처리는 당문에 맡기지.”
당문과 간접적으로 제휴를 맺은 이상 다른 조직들의 감사보다 덜 엄격한 눈으로 성의문을 살필 것이다.
“그야 그들이 성의문에 투자한 돈이 적지 않으니, 손해를 보기 싫어서라도 어지간한 의문점은 눈감아 주겠지요.”
당연우는 계약 이후 최근 사천의료학회에서 발표한 의술과 막대한 자금을 성의문에 보내왔다.
그에 반해 성의문을 찾은 당문의 직속 의원은 조명식뿐이었고, 성의문에서 공동 연구를 하는 이들 대부분이 사천의료학회 출신 의원들이었다.
“조 의원에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찌 됐든 이번 일로 제휴를 맺은 당문에게도 피해가 가는 상황이니까요.”
“그래, 삼장로만 믿겠네.”
일장로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정말이지 녀석들이 운이 나쁜 건지, 우리가 운이 좋은 건지······.”
당문이 제휴 계약을 맺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성의문에 마인 논란이 불거졌다.
거금을 투자한 당문 입장에서는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담당자가 당문의 막내 공자입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거겠지요.”
“흠, 백리안이라 불리는 아이 말인가? 하하! 경험이 부족한 거니 어쩌겠나.”
일장로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들은 당연우가 이번 일을 계획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
“성의문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외부인이 평가해줄 필요가 있어요.”
결국 예상대로 성의문이 당문에 외부감사를 요청했다.
실제로 수라마교가 뒤에 있는 성의문이 당문이 아닌 다른 문파에게 감사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연락이 왔을 거예요.”
나는 성의문으로부터 외부감사 의뢰를 받아온 조명식에게 그리 설명했다.
「아니, 난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우리 제자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조명식이 벙찐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의심을 무시하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오대세가인 당문의 이름값이에요.”
당문이 이런저런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정파 오대세가의 일원으로, 말 그대로 명문세가였다.
그리고 성의문은 그 명성을 이용해 소문을 잠재울 요량이었다.
“그리고 굳이 당문을 선택한 이유는 성의문에 투자한 게 있으니 조금 눈감아 줄 거란 생각이 담긴 거죠.”
애초에 이런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 초기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아, 성의문에 부은 거 다 내 비자금이었는데······.’
석 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쏟아부은 황금이 송아지 한 마리쯤은 됐을 양이었다.
현재 성의문에 제공한 의술도 당문의 것이 아닌 사천의료학회를 통해 공개한 의술들이었다.
“물론 저희는 그럴 생각은 꿈에도 없지만요.”
오히려 본격적으로 성의문과 수라마교의 증거를 끄집어낼 생각이었다.
더불어 성의문의 평가를 떨어트려 먹기 쉽게 기름칠하는 역할도 있었다.
‘성의문이라면 투자금을 뽑아내고도 남지.’
나는 조명식과 함께 당문에서 데려갈 감사인원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이거 당 공자께서 직접 나설 줄은 몰랐네요.”
몇 주 뒤 나명한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당문 감사단을 맞이했다.
그의 기억을 살펴보니 수라마교는 짧은 시간 동안 놀라울 정도로 수라마교의 흔적을 지워냈다.
혈강시를 제조하던 비동은 약초 보관소로 바뀌었고, 마약 성분이 함유된 약은 제조법을 바꿨다.
“제가 무림맹주 직속 어사기도 하니까요. 사람들의 의심을 지우기에는 감투가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런데 당 공자, 제 눈에는 당문 사람이 아닌 이들도 보입니다만?”
나명한의 시선이 오기린과 사룡삼봉으로 돌아갔다.
내 의도를 깨달았는지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분들의 도움을 받아 공명정대하게 감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속내와는 전혀 다른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공명정대는 무슨······ 없는 증거도 만들어낼 생각이거든.’
사람들이 성의문에 실망했을 때 의술 제휴를 맺은 당문에 기대도록 유도할 심산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수라마교는 성의문이 백 년 동안 키워온 위장막이었다.
‘잠깐의 의심을 피하고자 모든 관계를 청산했을 리 없지.’
나명한이 어떻게든 수라마교와의 관계를 숨기고 싶어 하지만,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내 앞에서는 무리였다.
나는 방긋 웃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문주님께서는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인과 연루됐다는 누명을 반드시 벗겨보겠습니다.”
***
일장로의 시선이 스무 구의 혈강시로 향했다.
붉은 피부의 괴인들은 항아리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완성만 된다면······ 맹도 연합도 더는 본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것이다.”
일장로가 혈강시를 앞두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백 년 동안 몸을 숨기면서 연성한 혈강시의 수는 겨우 스물. 그나마도 아직 완성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강시에 대한 소문이 퍼지다니······ 본교에 첩자가 있다는 건가?’
그것이 아니라면 정보의 누출이 있다는 것인데, 어느 것 하나 가벼이 여길 사건이 아니었다.
‘회와 싸우는 가운데 솎아내기를 할 여력은 없다.’
가뜩이나 성의문 사건으로 수라마교는 내외로 위축된 상황이었다.
일장로가 굳은 마음으로 시선을 혈강시가 담긴 독에서 철강시로 돌렸다.
“그렇다면 외적을 끌어들여 단번에 끝낸다.”
백여 개의 굴 안에는 푸른 피부의 철강시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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