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그림자 강호.
강호에서 전문적인 교육기관이라 하면 무관이나 서당 정도였다.
대부분의 직종이 도제식 교육으로 진행되면서 너무 많은 인재가 버려지고 있었다.
‘나라나 강호의 교육관이나 시설 등은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고······ 당장 쓸만한 놈들이 필요한 거지.’
그런 마음으로 다시 금민재의 인피면구를 뒤집어쓰고 정의회를 찾았다.
마치 돼지가 새끼 치듯 오십 명이었던 회원들은 어느새 이백 명까지 늘어나 있었다.
그들 모두 탐명마공을 배웠으나 초기 오십 명의 회원들에 비해서는 수준이 현저히 낮았다.
“사람이 없다고 이렇게 불러서야······ 비밀결사라 할 수 있겠어요?”
내 말에 주상열이 입맛을 다셨다.
그와 당연해가 말한 건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라 당장에 쓸 인재가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뭐 그 의미를 알고 인재개발원 이야기를 한 거니까.’
나는 회원들을 쓱 둘러보고는 팔이 하나 없는 자, 주화입마로 무공을 쓸 수 없게 된 자들을 골라냈다.
이들은 전력이 될 수 없는 이들이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첩보 교육을 받은 적도 없으니······.’
나는 회원들을 쭉 둘러봤다.
마공의 장점이 빠른 속도로 축기가 가능하단 점이었다.
정의회의 회원들은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강해졌다.
‘하지만 정의회가 배워야 할 것이 마공만은 아니지.’
정의회가 소수정예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이상, 전투 외에도 정보를 수집하고 다루는 법, 도망치는 법 등 여러 방면에서 재능을 보여야 했다.
‘이런 건 작은형 선에서 해결해줬으면 좋겠는데······.’
당연해 혼자서는 중과부적이라는 것은 알면서도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나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볼 수도 없었고, 만화루나 14인객을 흡수해 돈줄이나 정보원을 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들을 전문 강사······ 교두로 임명하고 교육하겠습니다.”
“음, 결국 그렇게 되는 건가?”
주상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 의심 없이 수긍하는 모습이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아무리 후방지원이라고 해도 회에 발길을 옮기지 않은 기간이 있는데······.’
과한 신용은 나를 좋게 평가한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게으름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다른 회원들 앞에서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크흠! 그러면 이들에게 교육 방법을 욱여넣겠습니다.”
그 정도가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불만 표현이었다.
괜히 불만을 토로했다가 발을 너무 깊게 담글 것 같았다.
‘내 강호의 평화를 위해 불만 정도는 조금 감수하죠.’
나는 시선을 돌려 정의회 예비 교두들을 돌아봤다.
그 대신 이들을 철저하게 교육해 두면 될 일이었다.
내가 시행하는 교육법이란 그다지 대단한 이론 같은 건 없었다.
목표를 정해두고 학생이 모르는 부분을 정확하게 꼬집어 이해될 수준으로 풀이해주는 정도였다.
다만 이는 전적으로 독심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육법이라······.’
당장에 떠오르는 건 인구수 감소로 인한 사라져 가는 초등학교를 취재했던 기억이었다.
교육청 담당 선배와 함께 기획 취재를 했었다.
‘절반은 자기 밥그릇 챙기는 것만 생각하던 놈들이었지. 아마?’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경쟁률을 뚫고 선생이 됐고 또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하는지 열변을 토하는 한편,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며 푸념하는 이들이었다.
‘장학사나 교사나······.’
입맛을 다시고는 나는 그들에게서 뽑아낼 교육론을 끄집어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은 누구를 가르치기 위해 전문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른 이들이었다.
머리에서 뽑아낼 교육론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나는 현장실습과 이론과 관련된 내용을 전여문과 제갈균의 깨달음으로 분석해, 체득했다.
그리고 부상 등으로 현장에서 낙오한 회원들 앞에 섰다.
“여러분들께서는 현장에서 누구보다 활약하신 영웅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회원들은 장애를 안고 현장에서 밀려난 이들이었다.
수라마교와 격전이 이뤄지는 만큼 그들이 투입될 현장은 없었다.
당연해가 배려라고 위장으로 세운 표국에 자리를 줬다지만, 표국 역시 거친 노동과 전투를 기반으로 하는 단체인 만큼 장애인을 고용할 자리가 없었다.
마땅한 자리가 없다 보니 그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였다.
“부회주님 뿐입니다. 그런 말을 해주는 분은······.”
“귀 간지러운 이야기는 됐습니다. 우린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는 마인들과 싸우다 뼈를 묻겠습니다.”
감동하는 회원, 불안한 심리를 보이는 회원, 죽더라도 현장 복귀를 원하는 이들까지.
자리에 모인 회원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일단 먼저 이들을 정의회 신입 교두로 바꿔야겠지.’
나는 자리에 모인 회원들을 돌아봤다.
수는 일곱.
모든 걸 버리고 정의회에 투신한 만큼 정의감 하나는 투철한 이들이었다.
“여러분이 하셔야 할 일은 후학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는 결국 정의회의 강화, 무림의 안녕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요.”
나는 조용히, 그리고 그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그들에게 역할을 부여했으며, 임무의 실패 역시 후학들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걸 부정적으로만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뼈아픈 실책이겠으나 후배들에게는 훌륭한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실패도 아니다.
우리는 정의회의 짐이 아니라 초석이다.
임무에서 장애를 갖게 된 회원들에게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켜 마음을 다잡게 했다.
‘요컨대 간단한 세뇌의 일종이지.’
다른 곳에 신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믿음 속에 신이 있는 것이었다.
‘광신도가 괜히 생기는 게 아니지.’
안주할 곳이 생긴다면 불편한 현실을 마주할 필요가 없었다.
“하긴 부회주님 말씀대로입니다.”
“저도 회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겠군요.”
“미래를 살리는 위해서라······.”
설득 다음에는 어떻게 인재를 양성하느냐였다.
마공은 단기간에 강해질 수 있는 무공이나, 숙련도만큼은 무공이 아닌 경험과 재능으로 키울 문제였다.
‘같은 체험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시간 낭비고, 누군가에게는 금과 같은 시간이 되는 거지.’
회원들이 가장 많이 죽는 현장은 첫 임무에서다.
초기에 모인 오십 명은 그래도 강호를 구를 대로 구른 낭인 출신들이었다.
그들에게 부족한 무공이었지 생존 방식이 아니었다.
‘2기부터는 생초짜니까. 그 부분을 고려해 커리큘럼을 만들어야 해.’
나는 교두들에게 사례 중심의 교습법과 채점 방식 등을 도입해 신입 교육의 체계화를 만들었다.
더불어 교두가 되는 회원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장점을 꼬집어 강의의 전문화를 꾀했다.
그리고 그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먼저 여러분의 특기를 전문화하여 후학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 주세요.”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
현진 사태와 홍성진은 당연우에게 서찰을 하나 받았다.
인수인계를 마친 그들은 평생을 아미파와 청성파를 위해 살 생각이었다.
그것이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참회라 생각했다.
“강호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헌신하지 않겠습니까?”
당연우의 호출에 응한 것은 그에게 입은 은혜 때문이었고, 그가 권하는 일은 또 다른 일이었다.
“표국이라······ 평범한 곳은 아니군.”
현진 사태가 위장 표국을 둘러보고는 짧은 감상평을 내뱉었다.
홍성진도 웃고는 있었지만 곳곳에서 느껴지는 마기에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당 공자가 인물이긴 하다만······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두 전대 장문인은 언제 검을 뽑아야 할지 고민하며 당연우를 만났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당연우가 정중히 포권을 하며 두 장문인을 반겼다.
만상표국의 접객실에서 만난 당연우는 어느새 훌쩍 커 더는 어린 소년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현진 사태와 홍성진도 그를 보자 미소를 지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허안공자라는 말이 돌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외모는 더욱 헌앙해졌다.
‘딸과 만나게 해서는 안 되겠어.’
홍성진이 딸을 가진 아비 심정으로 당연우를 경계했다.
목석같은 현진 사태도 웃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얼굴도 그렇지만 말솜씨도 뛰어났다. 그의 외모와 지모만으로도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흔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 당 공자가 뒷방으로 밀려난 퇴물들을 부른 이유가 무엇인가?”
현진 사태는 그 성격 때문인지 허례허식보다는 곧바로 용건부터 물었다.
당연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수라마교라고 아십니까?”
현진과 홍성진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두 사람은 백 년 전 혈마의 난을 떠올렸다.
몇 세대 전이었지만, 강호를 피로 물든 마인의 이름은 아직도 상흔처럼 남아 있었다.
“모른다고 하기에는 혈마가 저지른 일이 너무 컸지.”
홍성진이 당연우가 내민 차를 홀짝이며 답했다.
현진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그들이 강호에 암약하고 있다는 첩보를 들었습니다. 마치 14인객처럼요.”
당연우는 태연히 말했지만 14인객은 두 전대 장문인의 역린이었다.
두 사람은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14인객의 청명해, 그가 익힌 마공이 혈마의 무공이었고, 수라마교와 연결돼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당 공자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홍성진이 당연우를 노려보며 되물었다.
구파에서도 입수하지 못한 정보를 당문의, 그것도 강호에 발을 내민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후기지수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허황된 생각이라거나 거짓된 정보라고 치부하기 어려웠다.
당연우는 홀로 14인객을 양지로 끌어올려 처리한 실적이 있었다.
‘과연 백리안······이란 건가?’
최근 당문이 여러 사업을 하면서 화제를 몰고 있는 가운데 당연우의 행적은 묘연했다.
현진과 홍성진은 그동안 당연우의 소식이 들리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것이 물밑에서 수라마교를 찾고 있었던 것인가?’
홍성진은 눈앞 후기지수의 행동에 적잖이 감탄했다.
머리도 비상하고 무공 실력도 또래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났다.
홍성진은 당연우가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까?’
그런 가운데 홀로 강호에 암약한 수라마교와 싸우고 있었다.
가족의 정 때문에 눈이 흐려진 자신과는 대조돼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현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정의회라는 곳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언제 14인객처럼 변질될지 모르니 마공을 익히게 했고요.”
당연우는 정의회에 대해 두 전대 장문인에게 설명했다.
수라마교와 싸울 조직이며 마공이라는 금제로 섣불리 강호에 나설 수 없는 이들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현진이나 홍성진이나 당연우의 치밀한 심계에 혀를 내둘렀다.
‘과연 그래서 이곳에서 마기가 느껴졌던 거군.’
‘마를 구제하고자 스스로 마인이 된다고? 당 공자는 상당히 잔인한 계획을 만들었구나. 그러나 효율적이야.’
“그래서 두 분께 부탁드릴 건 마인을 잡기 위한 인재 양성입니다.”
“그건 정의회에 소속되란 이야긴가?”
그들이 장문인 직을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아미와 청성의 문도였다.
당연우가 두 사람의 의문을 단칼에 잘랐다.
“아니요. 오로지 마인을 잡기 위한 인재 양성입니다.”
그 싸늘한 목소리에 현진과 홍성진은 당연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의회조차 잡을 인재란 말이지?’
‘자신이 만들었거늘······. 끝까지 견제할 수단을 마련하는구나.’
두 사람은 당연우의 독한 면모에 역시 당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미나 청성의 무공이 아닌, 마인을 말살할 수단을 가르쳐 주시지요.”
당연우는 현진에게서 훔친 항마후의 깨달음을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한 시진(약 두 시간) 정도면 될까요?”
정의회의 성격상 어차피 다른 누군가와 상의할 수는 없었다.
결단을 내리기에는 한 시진이면 충분했다.
현진과 홍성진이 허하자 당연우는 조용히 접객실의 방문을 닫고 나갔다.
“홍 장문······ 홍 시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진의 물음에 홍성진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당 공자의 인품을 생각하면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홍성진은 14인객 사건 이후 당연우에게 크게 감복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번 일도 숨김없이 충분히 설명했고, 직접 나서 싸워달라는 것도 아니었으니, 도와주는 정도는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청성의 무공을 가르치라는 것도 아니니.’
마인을 상대하는 요령 정도는 문파를 떠나 후학을 위해서 얼마든지 가르쳐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현진도 마찬가지였다.
“한 시진이나 고민해볼 일은 아니었습니다.”
“허허, 그러면 우린 당 공자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이야기나 해보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본 당연우라면 정의회를 단순히 수라마교를 상대하기 위한 조직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14인객을 상대로 천라지망을 와해하고, 첩자를 발본색원한 인물이었다.
‘당 공자는 무림에 비밀경찰을 만들려는 걸까?’
현진이나 홍성진이나 정의회가 단순히 수라마교 상대하기 귀찮아서 만든 조직이라고는, 그리고 그 뒤처리마저 자신들에게 떠넘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두 전대 장문인을 교두로 고용한 가운데 나는 방 안에서 그간 수라마교와 정의회의 전쟁을 살폈다.
“그러니까 박빙이네.”
과연 구무협의 주인공이라 할 정도로 주상열의 실력은 월등했다.
더불어 청명해가 수라마교를 경계하며 구축한 14인객의 정보력은 수라마교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면 지난 그들의 행적을 보아 숨은 곳이 어딘지 유추하자면······.’
지도를 펼쳐 두 세력이 일전을 벌인 곳을 찍어내고, 선을 그었다.
그들이 이용한 표국이나 상회 등이 겹치는 것은 없었다. 다만 관계성이 전혀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음, 성의문인가?”
서너 다리를 지나야 하긴 했지만 성의문에 은혜를 입은 자가 있거나 연줄이 있는 이들이었다.
문제는 14인객처럼 성의문 밑에 숨은 것인지, 아니면 성의문 자체가 그들의 위장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보다······.”
나는 지도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문제는 정의회가 마주한 건 수라마교뿐만이 아니었다.
정의회와 수라마교 외 다른 암중 세력의 흔적들이 눈에 보였다.
“이 강호에 왜 이렇게 숨어서 활동하는 놈들이 많아?”
***
“무림맹이 중앙전장을 감사했더군.”
금과 옥으로 도배를 한 것같이 화려한 방 안에서 매의 가면을 쓴 사내가 말했다.
가면 역시 진짜 매의 시체를 이용해 만든 것이라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 생생했다.
“하! 싸울 줄밖에 모르는 버러지 새끼들이 감히 주인을 물어?”
속살이 그대로 비치는 여인 역시 매의 가면을 쓰고 있는 건 마찬가지.
가면 사이로 옥빛 눈동자는 뭇 남성들을 홀릴 정도로 고혹적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거늘······. 우리 상회가 무림맹에 돈의 무서움을 가르쳐줘야겠소.”
역시 매의 가면을 쓴 노인이 쇳소리를 내며 말했다.
암중 세력 중 하나인 염라상회가 중앙전장 감찰 사건 이후로 오랜만에 기지개를 켰다.
허름한 서당 안 노학사가 책장을 넘겼다.
곳곳이 무너진 서당이었지만 노학사의 순백의 학사의에는 단 한 톨의 먼지도 허용되지 않았다.
주름진 그의 시선이 굽이치는 글자를 탐닉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조용히 책을 덮었다. 책 표지에는 ‘역근경도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왔는가?”
노학사의 말에 청년 학사가 고개를 깊게 숙이며 입을 열었다.
“예, 훈장님, 수라와 염라가 결국 참지 못하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훈장이라 불린 노학사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사이비나 돈의 망자들이 끝까지 숨죽이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객이 무너진 것이 컸습니다.”
청년 학사가 14인객을 언급했다.
훈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새하얀 부채를 들었다.
“새로이 회가 나타났다고 하던데······ 흠, 결국 사파전이 되는 건가?”
“머리가 빈 놈들입니다.”
“그렇지. 우리는 적당히 그들을 흔들어 주기만 하면 될 일이야.”
훈장이 부채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또 다른 세력 청정경서당의 오랜 침묵을 깨고 일어섰다.
***
머리가 좋고 나쁨을 떠나 정보를 다룸에 있어서 그 수준이 중세와 현대가 같을 수 없었다.
특히 대 미디어 시대의 현장에서 구를 대로 굴렀던 나는 정보를 다루는 데는 전문가였다.
“그러니까 암약하는 놈들이 정의회를 제외하면 세 곳인가?”
나는 중원전서협회를 통해 얻은 정보를 정리해 각 세력을 나눴다.
수라마교는 성의문에서, 염라상회는 강호경제인연합, 청정경서당은 관과 연결돼 있었다.
“무림맹과 사파연합의 오랜 냉전이 만들어낸 상황이려나?”
14인객을 비롯한 우후죽순 생겨난 암중세력들은 강호를 지배하는 두 절대자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나는 흥미롭게 세력도를 보면서 생각을 이었다.
‘그대로 놔두자니 잠자리가 사납고, 다 뭉개자니 아깝단 말이지.’
내가 쥔 정의회를 제외하면 각 분야의 음지에서 영향력을 가진 세력들이었다.
입맛이 돋았다.
“그러면 오랜만에 강호행을 즐겨 볼까?”
- 작가의말
먼저 소식 없이 일주일 가까이 자리를 비운 것에 독자님들과의 약속과 기대를 배신했습니다.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어떤 일이 있든 공지라도 남겼어야 하는데, 글이라도 한 편 올려야 한단 생각에 이렇게 뒤늦게 찾아뵙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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