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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하사담 님의 서재입니다.

메뚜기 영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체프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07
최근연재일 :
2019.05.04 14:53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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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8,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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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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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고독한 해결사(1)

DUMMY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다.


차 회장은 골치 아픈 일로 이번 여름휴가는 포기해야 할 듯했다. 재하가 죽였다고 했던 초연이 살아 돌아왔던 것이다. 그것도 강 회장의 아이까지 품에 안고 말이다.


돌연히 나타난 초연이 친자확인 및 재산 상속권을 주장해 왔던 것이다. 결국 차 회장은 법률 대리인을 내세워 초연과의 법정 다툼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승산 없는 싸움이었지만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했다.



7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비가 제법 내린 뒤였다.


대형 로펌에 사건을 의뢰한 차 회장은 초연이 제기한 소송 건에 대해 변호사의 자문을 듣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깔끔한 슈트 차림의 젊은 남자가 가방을 들고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집무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아, 어서 와요. 정 변호사님이라고 하셨죠?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마워요.”

“아, 아닙니다. 뵙게 돼서, 제가 영광입니다.”

“뭘, 그렇게 까지나.”


차 회장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때였다. 바람도 없는데, 차 회장의 재킷 구멍에 꽂혀있던 깃털이 떨리는 것이 아닌가. 차 회장의 미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앉아요.”

상석에 자리 잡은 차 회장이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자리에 앉은 정 변호사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었다. 차 회장이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었다. 테이블 위에 서류를 꺼내놓은 정 변호사는 다소곳이 앉은 채 차 회장의 질문을 기다렸다.


“그래. 재판 기일은, 잡혔나요?”

“예? 아, 아직.”

“아직이라, 음.... 근데, 왜 이렇게 긴장하세요. 무슨 일이라도.”

“아, 아닙니다. 더, 더워서.”

정 변호사 멋쩍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네? 아, 오는데 차가 별로 안 막혀서.”

“호호호.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닌데.”

싱긋이 웃던 차 회장이 편하게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정 변호사는 자신에 쏠리는 차 회장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딴청을 피웠다. 차 회장이 자신의 왼쪽 손목을 들어 보이며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실로 짠 팔찌가 그녀 손목에서 달랑거렸다. 그 모습에 정 변호사가 가소롭다는 듯 싱긋이 웃었다.


차 회장이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고 정 변호사를 차갑게 쳐다봤다.


“어떻게, 용케 살아있었네요?”

“후후. 그러게요. 회장님은 용케도 절 알아보시고요.”

“그야... 어려운 일도 아니죠. 이게, 당신이 왔다고 부들부들 떨리니... 제가 알 수밖에요.”

차 회장은 재킷 구멍에 꽂혀있는 깃털을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대갚음을 해야 할지.”

혼이 재하인 정 변호사가 여유롭게 비웃으며 쳐다봤다. 그러자 차 회장은 자신의 손목에서 팔찌를 풀었다.


“내가, 이걸 당신에게 던지면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아마 이놈의 육신에서 제 혼이 빠져나가겠지요?”

혼이 재하인 정 변호사가 그저 바라보았다.


“잘 아시네요.”

“그럼, 큰일인데. 어떡하지? 돌아갈 내 몸도 없는데. 당신도 잘 알다시피, 불에 시커멓게 타버렸잖아. 게다가 어딘가에 깊숙이 묻어버렸는데.”

“........”

차 회장이 미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이내 고개를 돌렸다.


“나도 궁금했는데, 어떻게 될지. 한번, 해 보실래요.”

“그, 그러지 마요.”


쓸쓸히 중얼거리며 얼굴을 들이대는 혼이 재하인 정 변호사에 차 회장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걱정 마요. 따지고 보면 다 내가 잘못한 건데.”

“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차 회장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바라보았다.


“당신 탓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복수는 무슨.”

“미, 미안해요. 당신 어머님, 그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러게요. 그때 그냥 회장님이 시키는 대로 했으면, 우리 엄마도 그렇게 허무하게 가시진 않았을 텐데. 괜히 고집부리다가... 따지고 보면, 그것도 나 때문에.”

“아, 아니에요. 재하 씨 잘못 아니에요.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제 동생은 끝까지 보살펴 주셨잖아요. 고마워요.”

혼이 재하인 정 변호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차 회장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이 재하인 정 변호사가 돌연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이렇게 찾아온 건, 회장님께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대신, VIP는 회장님 뜻대로 해드릴게요. 잘 될지 모르겠지만.”

“아, 아니에요. 이젠 그럴 필요 없어요.”

“아니 왜요? 일이 잘 풀렸나 보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생각이 바뀌었어요. 어떤 놈이 되던, 밑에 것들이 문제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놈들만 잘 요리하면 되겠더라고요.”

“그게 무슨.”

혼이 재하인 정 변호사는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봤다.


“먼저 말해 봐요, 부탁이 뭔지.”

“들어주실 거죠?”

“일단, 들어나 보고.”


혼이 재하인 정 변호사는 첫째, 둘째, 번호를 붙여가며 부탁을 청했다. 차 회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지막 부탁에서 잠시 주저했다.


“초연 그년이, 그렇게 하겠다고 해요?”

“제가 하게끔 해드리죠.”

“어떻게.”

“잊으셨어요? 제가 자기 자식을 죽게 하겠다면, 거절하겠어요?”

“좋아요, 그럼. 모자가 이민 가서 지낼 수 있도록 제가 준비해 드리죠. 그럼, 이제부터는 제가 부탁할 차례인가요?”

“얼마든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핀 차 회장은 종이와 펜을 들고 와서는 자신의 요구를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태주 그룹과 혜성 그룹을 구하기 위해 제거되어야 할 일종의 살생부였다.


“하나, 둘, 셋, 이렇게 많이?”

“어쩔 수 없죠. 우리가 살아야 해서. 그리고 받아먹은 죄. 입이 가벼운 죄로 죽는 거니까, 머.”

“그렇다면 할 수 없죠. 제가 해야죠.”

“그나저나 이제 어떡해요?”

“뭐가요?”

“이렇게 계속 남의 몸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머. 그래야겠죠? 도서관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빈자리 찾아다니면서. 후후.”


혼이 재하인 정 변호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머쓱하게 웃었다. 차 회장이 속상한 듯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8월 한창 무더운 어느 날.


“택배요.”

오랜 된 복도식 아파트 15층 현관 앞에서 택배 기사가 박스를 들고 초인종을 눌렀다. 의심 없이 아파트 현관문이 열렸다.


굳은 얼굴로 택배 기사에게서 투약병을 건네받은 중년의 여자가 현관문을 닫고 돌아섰다. 소파에 앉아있던 그녀 남편이 궁금한 듯 물었다.


“뭔데?”

“아, 아니에요. 잘못 왔나 봐요.”


주방으로 간 혼이 재하인 중년의 여자가 음료수를 따른 잔에 투약병을 가져다가 몇 방울 떨어트렸다. 얌전하게 잔을 쟁반에 받치고 그녀 남편이 있는 쪽으로 들고 갔다.


“더운데, 드세요.”

“당신이 웬일이야? 또 돈 달라고 그러지.”

“당신도 참.”


남편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한방 날리고는 벌컥벌컥 마셨다. 빈 잔을 아내에게 건넨 그는 TV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년의 여자는 주방으로 가 빈 잔을 싱크대에 두었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물끄러미 그의 남편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뭐 해, 거기서? 안 더워?”

“네.”


잠시 후, 남편은 흐리멍덩한 눈을 뜨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말투도 어눌한 게 약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 게 분명했다. 슬슬 시작할 때가 온 것이었다.


혼이 재하인 중년의 여자는 남편을 부축하여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복도 벽에 흐느적거리며 서 있는 남편을 들어 아래로 밀쳐버렸다.


쿵.


그의 몸이 자동차 위에 떨어지자 자동차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웅성거리며 모여드는 사람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혼이 재하인 중년의 여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 내린 그녀는 곧장 동네 슈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제 혼이 옮겨갈 사람을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저녁. 뉴스에 혜성 그룹 차 회장의 전 운전기사 최 모 씨가 자택에서 그의 부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보도 기사가 나왔다. 최 씨는 차 회장의 불법 자금 전달책으로 혐의를 받고 조사 중이었다고 보도했다.


다음 날.


혜성 그룹 차 회장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것으로 의심받는 김중달 전 국회의원이 그의 부인에 의해 독해되었다는 보도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또 다음 날에도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혜성 그룹 전 임원인 이명수 부회장도 김중달 전 의원과 비슷한 수법으로 독살되었다는 뉴스가 속보로 전해졌다.


그러자 경찰은 혜성 그룹 차 회장의 불법 자금과 연관 있는 인물들에 대해 신변 보호를 강화했다. 하지만 당직자들과 아침 산행을 갔던 나도준 현직 의원이 산 정상에서 추락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동행했던 그의 측근 중 한 명이 나 의원을 정상에서 밀었다는 것이다. 나 의원도 혜성 그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혜성 그룹 차 회장의 혐의를 입증해 줄만한 증거와 증인들이 주변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에 의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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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8화. 고독한 해결사(2)-완결 19.05.04 125 1 13쪽
» 8화. 고독한 해결사(1) 19.05.01 116 0 9쪽
29 7화. 근본 없는(4) 19.04.29 113 1 12쪽
28 7화. 근본 없는(3) 19.04.27 121 1 10쪽
27 7화. 근본 없는(2) 19.04.26 194 1 11쪽
26 7화. 근본 없는(1) 19.04.25 123 0 12쪽
25 6화. 가진 자의 품격(4) 19.04.23 137 0 13쪽
24 6화. 가진 자의 품격(3) 19.04.21 157 2 11쪽
23 6화. 가진 자의 품격(2) 19.04.20 136 1 15쪽
22 6화. 가진 자의 품격(1) 19.04.19 153 0 13쪽
21 5화. 어쩌면(4) 19.04.17 150 0 15쪽
20 5화. 어쩌면(3) 19.04.16 181 0 13쪽
19 5화. 어쩌면(2) 19.04.15 211 1 11쪽
18 5화. 어쩌면(1) 19.04.13 202 0 11쪽
17 4화. 나쁜 생각(4) 19.04.12 169 0 12쪽
16 4화. 나쁜 생각(3) 19.04.11 167 0 13쪽
15 4화. 나쁜 생각(2) 19.04.10 170 0 14쪽
14 4화. 나쁜 생각(1) 19.04.09 192 0 14쪽
13 3화. 어린 양의 피(4) 19.04.08 226 1 15쪽
12 3화. 어린 양의 피(3) 19.04.07 214 1 10쪽
11 3화. 어린 양의 피(2) 19.04.06 151 0 11쪽
10 3화. 어린 양의 피(1) 19.04.06 184 0 15쪽
9 2화. 딴생각(4) 19.04.05 168 1 12쪽
8 2화. 딴생각(3) 19.04.05 192 0 11쪽
7 2화. 딴생각(2) 19.04.04 188 1 12쪽
6 2화. 딴생각(1) 19.04.04 225 0 10쪽
5 1화. 이상한 노인네(5) 19.04.03 229 1 15쪽
4 1화. 이상한 노인네(4) 19.04.03 262 1 9쪽
3 1화. 이상한 노인네(3) 19.04.02 320 1 13쪽
2 1화. 이상한 노인네(2) 19.04.02 291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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