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옥하사담 님의 서재입니다.

메뚜기 영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체프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07
최근연재일 :
2019.05.04 14:53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5,947
추천수 :
18
글자수 :
168,894

작성
19.04.02 12:49
조회
291
추천
2
글자
9쪽

1화. 이상한 노인네(2)

DUMMY

12월 유달리 추운 어느 날.


그날은 여의도에 위치한 건축사 사무소에 취업한 동주가 한턱내기로 한 날이었다. 재하가 취업에 또 낙방한 날이기도 했다. 스무 일곱, 동갑내기인 동주가 재하를 위로해 주려고 억지로 마련한 자리였다.


동주는 재하가 군 제대 후에 복학하고 나서 알게 된 친구였다. 먼저 다가온 것은 동주였다. 삼수 끝에 겨우 입학한 동주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 휴학을 밥 먹듯이 해야 했던 재하에 끌리는 구석이 많았다.


나이가 많아 동기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거라든지, 홀어머니에 여동생이 하나 있는 것까지. 내년이면 함께 대학 졸업을 하게 되는 동주만 서울내기라는 것 빼고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어둠이 어둑어둑 내린 여의도 금융가. 추운 날씨 때문인지, 연말이 가까워져서인지 이제 막 퇴근한 듯한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무척 바빠 보였다.


재하는 잠시 걸음을 늦추고 주변 빌딩 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찬찬히 훑었다. 누군가는 제때 퇴근도 못하고 일하고 있겠지만, 재하에겐 무척 부러운 공간이었다.


재하가 두 눈을 내리깔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하 입에서 새어 나온 하얀 입김은 허공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야, 뭐 해? 빨리 와. 추워.”


잠시 감상에 젖어있던 재하를 동주가 재촉했다. 그가 일그러진 얼굴로 냅다 소리치고는 건물 지하 입구 계단으로 쏙 내려갔다.


지하상가로 들어가니 많은 간판이 보였다. 회색빛 벽돌로 마감한 식당 외벽은 전문 음식점처럼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주머니와 지갑마저 가벼운 재하는 저절로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데는 제법 비싸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재하는 동주를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고기 굽는 냄새에 재하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부티가 나는 실내 분위기에 압도된 재하는 잠시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난생처음 접해보는 분위기였다. 세련된 조명과 고급스러운 테이블,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부티가 좔좔 흘렀다.


슈트를 깔끔하게 차려입고, 손님 곁에서 공손한 자세로 고기를 굽고 있는 종업원은 마치 엄마처럼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광경이지 않은가.


“야. 뭐 해?”

동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손짓하며 불렀다.


종업원이 테이블 위에 메뉴판을 두고 사라지자 재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괜찮아.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얼른 고르기나 해. 뭐 먹을까? 정말 간만인데, 우리 비싼 거 먹자. 응?”

“아무거나. 난 상관없어.”

“그럼, 내 맘대로 시킨다?”

“그래.”



그들이 앉은 테이블에 음식이 차려지고, 종업원이 고기를 굽는 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고기 굽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지만, 재하는 군침을 삼키며 체면을 차리려 노력했다. 메뉴판에서 본 가격표가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재하는 동주의 젓가락질에 보조를 맞추며 눈치껏 고기를 집어 먹었다. 그걸 눈치챘는지 동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한소리 했다.


“야, 눈치 보지 말고 실컷 먹어. 오늘은 내가 산다니까. 자식이 정말! 친구끼리 눈치는.”

“아냐, 먹어. 먹고 있잖아.”

“그래, 많이 먹어. 부담 갖지 말고. 대신, 너 취직하면 더 비싼 거 사고. 히히히.”

“......그런 날이 올까?”

“오지 그럼! 재수 없는 소리 말고, 어서 처먹기나 하세요. 소고기는 식으면 맛없어.”


동주는 보란 듯이 쌈에 고기를 듬뿍 올리더니 게걸스럽게 입으로 쑤셔 넣었다. 재하는 그런 그를 흐뭇하게 쳐다봤다. 그 순간, 동주 뒤쪽으로 먼발치에서 낯익은 얼굴이 스치며 지나갔다. 어, 하며 자신도 모르게 재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동주가 왜, 하며 고개를 돌렸다.


“강상준 태주 그룹 전무. 태주 그룹 강홍걸 회장 아들.”

“에이, 난 또 뭐라고.”


재하가 휴학하고 일했던 곳이 태주 그룹이었다. 태주 그룹 본사 건물 스카이 외벽 청소뿐만 아니라 건물 복도 소독과 청소까지 했었던 것이다. 당시에 거기 하루 일당이 엄청 세었기 때문이다.


그때 먼발치에서 강 전무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사람 뒤에서 후광이 비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알 수 없는 향기마저 감돌았다. 재하는 마냥 그런 그가 부러웠다. 여자라면 사랑하고 싶은 남자였다. 그래서 재하는 강 전무를 자신의 ‘멘토’로 삼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졸지에 강 전무는 재하가 흠모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자신과 띠동갑이라는 것을 알고는 어찌나 반갑던지. 꿈속에서 그를 수행하기까지 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강 전무의 등장에 재하가 반가운 얼굴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야. 우리 전무님을 이런 데서 다 만나고.”

“머, 우..리? 허. 저 사람이 머, 네 직장 상사라도 되냐? 우리 전무님, 하게?”

“허허, 이 자식 보소. 감히 우리 전무님 보고 저 사람이라니! 심느님 노하시게. 우헤헤헤.”

“얘가 드디어 미쳤구나, 미쳤어. 차라리 걸그룹이나 좋아할 것이지.”

“야, 또 누가 아냐? 내가 저분 밑에서 일하게 될는지.”

“자식이, 아까는 취직 못할 사람처럼 말하더니. 그래 맞아. 절실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잖냐?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해 봐.”

동주가 환한 얼굴로 고기를 집었다.



찌개로 느끼한 속을 달랠 때였다. 강상준 전무가 반듯한 자세로 안쪽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재하 시야에 들어왔다. 나이 지긋한 남자 서너 명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자신에게 쏠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강 전무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금테 안경을 고쳐 썼다.


올해 나이 39세. 이제 곧 새해가 되면 마흔이다. 태주 그룹 전무이자 태주 화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그는 태주 그룹의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나 다름이 없었다.


부친인 강홍걸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나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 전무의 모친은 지병으로 오래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언론에서 보도한 강 전무에 대한 평가는 좋지만은 않았다. 그가 추진했던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며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기 때문이다. 재벌 3세인 그가 전문경영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기사가 자주 나오긴 했지만 어차피 태주 그룹 차기 회장이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강 전무는 국내 그저 그런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갔어도 몇 번을 낙제한 이력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한 인물이었다. 그저 그런 그가 젊은 나이에 태주 그룹 전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태주 그룹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능력 따위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강 전무가 유일한 상속자이기에 태주 그룹의 차기 총수가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게다가 최근 멘사 회원으로 알려진 혜성 그룹 장녀 차소영과 결혼까지 하였으니 그에게 막강한 힘이 보태진 것이었다. 혜성 그룹의 도움을 받기 위해 태주 그룹 회장이 자신의 아들을 팔았다는 소문이 나돌기까지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벌써 아내 차소영과의 불화설이 떠돌고, 결혼 생활이 그렇게 순탄해 보이지 않는 듯했다. 3년이 지나도록 둘 사이에 자녀가 없는 것만으로 추측성 소문이 도는 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야. 그만 쳐다보고 밥이나 먹어.”

동주가 예민하게 굴었다.


재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 전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동주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숟가락을 들어 제 입으로 가져갔다.


꽈당!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재하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나가려던 강 전무와 그 일행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소란이었다. 놀라기는 동주도 마찬가지였다.


“야. 왜, 왜 그래?”


동주가 얼른 다가가 무릎 꿇고는 재하를 흔들었다. 의식이 없었다. 재하 얼굴 가까이로 귀를 가져가니 숨소리가 느껴졌다. 마치 잠이 든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사장님, 일 일 구! 빨리요.”


소리친 동주는 재하를 최대한 편하게 눕혔다.



그런 동주를 바라보는 강 전무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는 것이 아닌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굳은 얼굴로 입을 떡 벌리고 서 있었던 것이다.


“전무님. 그냥 가시죠.”

일행 중 나이가 제법 지긋한 남자가 무심하게 강 전무를 재촉했다.


재하 혼이 강 전무의 몸으로 옮겨간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하긴, 재하 자신마저도 쉽게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혼이 재하인 강 전무가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꿈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잠이 얼른 깨지 않았다. 현실인 게 분명했다. 게다가 자신을 강 전무로 알고 자꾸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젠장! 강 전무가 맞긴 맞는데, 이거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않은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메뚜기 영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8화. 고독한 해결사(2)-완결 19.05.04 125 1 13쪽
30 8화. 고독한 해결사(1) 19.05.01 116 0 9쪽
29 7화. 근본 없는(4) 19.04.29 114 1 12쪽
28 7화. 근본 없는(3) 19.04.27 122 1 10쪽
27 7화. 근본 없는(2) 19.04.26 194 1 11쪽
26 7화. 근본 없는(1) 19.04.25 123 0 12쪽
25 6화. 가진 자의 품격(4) 19.04.23 137 0 13쪽
24 6화. 가진 자의 품격(3) 19.04.21 157 2 11쪽
23 6화. 가진 자의 품격(2) 19.04.20 137 1 15쪽
22 6화. 가진 자의 품격(1) 19.04.19 154 0 13쪽
21 5화. 어쩌면(4) 19.04.17 150 0 15쪽
20 5화. 어쩌면(3) 19.04.16 181 0 13쪽
19 5화. 어쩌면(2) 19.04.15 211 1 11쪽
18 5화. 어쩌면(1) 19.04.13 202 0 11쪽
17 4화. 나쁜 생각(4) 19.04.12 170 0 12쪽
16 4화. 나쁜 생각(3) 19.04.11 168 0 13쪽
15 4화. 나쁜 생각(2) 19.04.10 171 0 14쪽
14 4화. 나쁜 생각(1) 19.04.09 192 0 14쪽
13 3화. 어린 양의 피(4) 19.04.08 226 1 15쪽
12 3화. 어린 양의 피(3) 19.04.07 214 1 10쪽
11 3화. 어린 양의 피(2) 19.04.06 151 0 11쪽
10 3화. 어린 양의 피(1) 19.04.06 184 0 15쪽
9 2화. 딴생각(4) 19.04.05 169 1 12쪽
8 2화. 딴생각(3) 19.04.05 192 0 11쪽
7 2화. 딴생각(2) 19.04.04 189 1 12쪽
6 2화. 딴생각(1) 19.04.04 225 0 10쪽
5 1화. 이상한 노인네(5) 19.04.03 229 1 15쪽
4 1화. 이상한 노인네(4) 19.04.03 262 1 9쪽
3 1화. 이상한 노인네(3) 19.04.02 320 1 13쪽
» 1화. 이상한 노인네(2) 19.04.02 292 2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